• 매카시즘의 광풍과
    반공주의의 암연, 그 시적 응전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어둠 일소하는 미래 향한 의지의 갈무리가 필요'
        2013년 11월 18일 04: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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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반공주의의 물신화, 한국사회의 초헌법적 위력

    한국사회는 현상적으로 20세기를 벗어나 있되, 20세기의 폭력적 근대의 유산으로부터 심한 신열(身熱)을 앓고 있다.

    일제의 식민지 근대가 낳은 온갖 식민주의 병폐는 해방 이후 미국과 소련의 정치적 개입으로 인한 냉전의 국제질서가 잉태한 복잡한 문제들과 뒤섞이는 가운데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항미전쟁(抗美戰爭)의 명분으로 개입한 중국의 존재와 더불어 한반도를 한층 복잡해진 국제 이해관계의 장으로 만들었다.

    여기서 태평양을 포함한 아시아를 향한 정치경제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미국은 소련과 중국에 대한 이념적 대립 시각을 더욱 예각화함으로써 ‘반공주의=자유민주주의’라는 도식을 한국사회에 주도면밀하게 내면화시킨다.

    물론, 여기에는 일제의 잔재를 말끔히 일소하지 못한 채 미군정(美軍政)이 부일(咐日)협력자를 친미파(親美派)로 적극 활용하면서 38도선 북쪽에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는 소련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대아시아 정치의 기획을 간과할 수 없다.

    그리하여 한반도는 새로운 제국, 즉 38도선 이남의 미국과 38도선 이북의 소련,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새롭게 부상한 중국의 국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면서 냉전체제에 휩싸인다. 이 지면에서 한반도를 에워싼 이 복잡하고 심층적인 냉전체제를 논의하는 것은 내 비평적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시 한 번 환기해야 할 사안은 이러한 냉전체제의 엄연한 현실이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삶을 최종심급에서 반공주의로 억압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방공간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사회에 착근한 반공주의는 근대의 다양한 정치경제적 이념 중 하나로 간주되는 게 아니라 앞서 간략히 언급했듯이 식민주의 유산과 혼재되는 가운데 대한민국이란 국민국가의 정치적 이념을 이루는 가장 핵심적 근간을 이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반공주의가 한국사회의 근대를 이루는 이념태로서 존재하는 것을 넘어 한국사회를 포괄적으로 규정짓는 가장 강력한 초헌법적 위력을 지닌 물신화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사회에서 국가발전주의를 보위하고 견인해내는 데 반공주의가 지대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폭력적 근대가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 안 된다.

    지금, 이곳에서도 여전히 반공주의는 분단기득권을 지탱하고자 하는 세력들에게 자의적으로 활용되는, 그리하여 언제든지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국사회의 최종 심급에서 효과적으로 적실하게 기꺼이 활용될 초헌법적 위력 그 자체다.

    나는 한국사회의 이러한 근대의 폭력을 대면한 한국시의 가팔랐던 운명과 이에 대한 시적 응전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반공병영사회의 문화적 억압, 김수영과 신동엽의 서랍 속 문학

    한국현대시사에서 김수영과 신동엽의 존재는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되고 있다. 그들의 치열한 시작(詩作)은 한국시의 근대의 안팎을 이루는 첨예한 쟁점과 맞물리면서 한국시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는 시인들에게 일종의 거울과 같은 위상을 지닌다.

    무엇보다 김수영과 신동엽 역시 반공주의와 관련한 폭력적 근대는 회피해서는 안 될 시적 응전의 과제라는 점에서 후배 시인들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모종의 성찰의 계기를 갖도록 한다.

    김수영의 경우 이어령과의 이른바 불온시 논쟁을 통해 이에 대한 뚜렷한 문제의식을 제출했는데, 김수영이 힘주어 강조하고 있는 사안은 “언론의 자유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고, 언론의 자유는 국가의 정치의 유무(有無)와 직통하는 문제”로서 “유상무상(有象無象)의 정치권력의 탄압에 더 큰 원인이 있다”(김수영, 「지식인의 사회참여」,<사상계>, 1968. 1)는 정곡을 찌른 통찰이다.

    김수영 시인

    김수영 시인

    이것은 “하나의 정치사회의 이데올로기만을 강요하는”(김수영, 「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인 자유」, <조선일보>, 1968. 2. 29), 즉 한국사회의 분단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반공주의의 억압 아래 생산되는 문화예술의 반예술적 측면을 날카롭게 겨냥한 비판이다. 김수영의 이와 같은 비평적 입장은 실제로 그의 시에서 다음과 같이 실현되고 있다.

    ‘金日成萬歲’/韓國의 言論自由의 出發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 「金日成萬歲」(1960. 10. 6) 부분

    종이를 짤라내듯/긴장하지 말라구요/긴장하지 말라구요/사회주의 동지들/연꽃이 있지 않어/頭痛이 있지 않어/흙이 있지 않어/사랑이 있지 않어
    ― 「연꽃」(1961. 3) 부분

     물론, 위 두 시는 당시 지면에 공개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채 2008년에 소개될 때까지 그의 서랍 속 깊숙한 곳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위 시들이 쓰여진 시기가 단적으로 웅변해주듯, 비록 4‧19혁명 이후 한국사회 전 부문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의지와 욕망으로 충만된 시기라 할지라도 냉전체제의 분단시대의 냉엄한 현실 속에서 ‘김일성’과 ‘사회주의’를 공적 담론의 장에서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금기였다.

    그래서였을까. 김수영의 미망인 김현경은 ‘김일성만세’라는 시를 “수영은 이후 「잠꼬대」라고 제목만 바꾸어 <현대문학>에 보냈지만 게재되지 않고 반려되”(김현경, <김수영의 연인>, 책읽는 오두막, 2013, 94쪽)었다고 한다. 반공주의는 김수영에게 근대의 값진 산물인 자유를 훼손시키고 불구화시키는 폭력적 근대 그 자체였다.

    김수영을 가깝게 지켜본 미망인은 그의 시에서 목도되는 사회주의에 대한 “본질적인 뜻은 ‘사회주의 사상의 촉진’이라기보다는 ‘사상적 자유의 촉진’에 가까운 것”(김현경, 위의 책, 94쪽)인데도, 그 당시 한국사회는 김수영의 래디컬한 정치적 상상력을 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 1960년대에만 해당되는 얘기인가. 만일 누군가가 위 두 시와 같은 시적 전언을 지금, 이곳에서 드러낸다면, 십중팔구 반공주의란 올가미로 그를 정치적으로 탄압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한국사회의 최종심급에서 언제든지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반공주의이며 매카시즘의 광풍이기 때문이다. 결국 김수영의 「김일성만세」와 「연꽃」이야말로 김수영 스스로 신랄하게 비판했던 한국사회의 “획일주의가 강요하는 대제도의 유형무형의 문화기관의 <에이전트>들의 검열”(김수영, 「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인 자유」)에 희생양이 되었던 셈이다.

    이처럼 한국사회에 짙게 드리운 매카시즘은 신동엽의 다음과 같은 산문 역시 서랍 속에 가둬버렸다. 조금 길지만 부분을 소개해본다.

    (전략) 얼마 전 북한작가동맹위원장이 남북한문화교류를 제의해왔다. 그 저의가 기만적인 것인지 정략적인 것인지 아니면 함께 붙들고 몸부림칠 수 있는 순수한 진정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또 그런 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 우리는 종전후 15년간 북한은 북한대로, 남한은 남한대로 너무 이질적인 강압 속에서 운명해왔다. 이 이질적인 운명의 구둣발이 우리에게 온갖 아픔을 가져다 준 것이다. 그것을 (그 구둣발을) 우리 강토(제주에서 압록까지)에서 불식해 보자고 나는 이 소론에서 주장하려는 것이다. (중략) 젊고 싱싱한 민중지성이 지금 어느 역에 이르렀음을 기성세대(일제말기의 문화적 파편인들)은 알아야 할 때다. 왜 북한 정치집단의 대변자들의 제의에만 답변하려 하는 것인가. 왜 그곳 사람들의 정치적 흥정에만 눈을 팔고 있는가. 조국의 운명에 당신들은 그렇게도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하품밖에 줄 게 없단 말인가. 그렇다면 한국 문학인 ․ 지성인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권외에서 발언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조국(남북한)의 역사적 주인임을 각성하자. 적극적으로 나서서 조국의 운명을 연구하고 모색 ․ 실천하고 발언해야 하는 것이다. (중략) 전체주의도 방임주의도 우리의 체질이 아님을 조국의 양쪽 현실이 증명하고 있다. (중략)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원하는 비정치적 문화단체나 개인들로 구성된 남북문화교류준비위원회의 예비위원을 조성하기 위해 자유로운 분위기를 중립지대나 기타 비정치적 지역에 마련하도록 우리들은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할 줄 안다. 북한정부나 남한정부는 순수한 문화인(문학인 ․ 예술인)들의 자유로운 교류를 위해 제반 편의를 제공할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할 때다. 무서워한다는 건 정치브로커들의 신경과민이거나 수관노들의 협심증세이다. 동족인의 얼굴이나 문화를 무서워한다면 영세분단을 원하고 있는 소치다. 국제정세의 귀결을 기다리자는 것은 미소양세력의 처리만 기다리고 우리는 칼도마 위에 생선처럼 누워 있으라는 말과 같다. 그들 외부 세력을 우리 문화국민이 지성적 운동으로써 좌우할 수 있음을 자신하라. 우리의 의견을 그들 외부에 반영하여 영향을 주라. 우리는 아무에게도 이용당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남북공동으로 선언하라.
    그것을 위해 배달지성의 교류회동은 기필코 있어야 할 것이다.
    — 신동엽, 「전통정신 속으로 결속하라」, <신동엽 전집>, 창작과비평사, 1980 개정판, 398-399쪽.

    비록 위 글이 그 당시 공론화된 적은 없지만, “종전후 15년간”이란 표현을 통해 이 글이 씌어진 시기가 1968년도임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작가동맹위원장 한설야가 남북문화교류를 제의해오자, 신동엽은 위 글의 부제―남북의 자유로운 문화교류를 위한 준비회의를 제의하며―에서 명확한 뜻을 전달하고 있듯이, 한반도의 분단시대를 종식하기 위한 “배달지성의 교류회동은 기필코 있어야 할 것”임을 힘주어 강조하면서 이에 대한 구두선(口頭禪)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실질적 교류를 위해 ‘준비회의’를 가질 것을 제의한다.

    신동엽 시인

    신동엽 시인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신동엽의 저 거칠 것 없는 도도한 분단극복의 산문정신이다. 신동엽이 제안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사안은 세계 냉전체제의 유산인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한 불구화된 국민국가를 정상적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각각 분단기득권을 소유하고 있는 수구냉전적 정치 주체들이 아닌,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원하는 비정치적 문화단체나 개인들로 구성된 남북문화교류준비위원회의 예비위원을 조성”하여, 그들을 “중립지대나 기타 비정치적 지역”에서 만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실로 신동엽의 이러한 주장은 휴전 60주년을 맞이한 작금의 현실 속에서도 얼마나 선진적인 견해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특히 이 글이 씌어진 시기, 곧 박정희의 5.16군사쿠데타 이후 민정 이양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본격화된 군부독재가 반공주의와 매카시즘의 서슬퍼런 공포정치를 통해 한국사회를 반공병영사회로 구축시켜나갔다는 역사적 사실을 환기해볼 때, 신동엽의 이 같은 분단극복의 의지는 무소불위의 반공주의에 대한 강렬한 비타협의 윤리적 실천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김수영의 「김일성만세」와 「연꽃」의 미발표작 시편들처럼 신동엽의 생존 당시 이 글이 공론화될 수 없었던 한국사회의 매카시즘이 지닌 폭력적 근대에 숨죽여야 한 서글픈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와 관련하여 신동엽 사후 <신동엽 시 전집>이 1975년에 발간되었을 무렵 박정희의 유신체제 아래 초헌법적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판매 금지 당했다는 사실은 신동엽의 시세계 전면에 흐르고 있는 분단극복을 향한 민족적 민중적 염원이 당시 분단기득권 세력에게 얼마나 강력한 정치적 저항의 성격을 띤 것이라는 점을 여실히 방증해준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그걸 하늘로 알고/一生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쇠 항아리,/그걸 하늘로 알고/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네 마음속 구름/찢어라, 사람들아,/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부분

    신동엽의 저 준열하면서 간결한 시적 진실을 접하면서 아직도 우리들은 “머리 덮은 쇠 항아리”의 암연(黯然)으로부터 자유로운지 가슴이 먹먹하기만 하다.

    3. 군부파쇼정부의 개발독재에 대한 풍자, 김명식의 「10장의 역사연구」

    혹자는 얘기한다. 1970~80년대는 한국문학사에서 ‘필화의 시대’ 그 자체라고 말이다. 이 시기의 한국사회는 개발독재에 따른 반민주주의에 대한 민주화운동이 사회 전 부문에 걸쳐 역동적으로 일어났으며, 진보적 한국문학 역시 문학운동을 가열차게 벌여나갔다. 분단극복과 민주회복은 이 시기를 관통하고 있던 문학운동의 거시적 주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숱한 양심적 문인들의 문학이 반공주의와 매카시즘의 정치적 탄압을 받는다. 한국시문학사에서 익히 잘 알려진 김지하의 담시 「오적」 필화사건을 비롯하여 양성우의 시 「겨울공화국」, 이산하의 서사시 「한라산」, 오봉옥의 시집 <붉은 산 검은 피> 등의 필화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러한 필화사건들 속에서 그동안 망각의 사위에 갇혀 있던 김명식의 장시 「10장의 역사연구」를 소개해본다. 1976년에 씌어진 「10장의 역사연구」는 김명식이 박정희의 유신체제의 공포정치의 실상과 반민주주의적 만행을 고발한 시다.

    김명식의 술회에 따르면, 이 시가 씌어진 후 수도권과 광주 지역으로 은밀하게 퍼져나가자 중앙정보부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를 체포, 감금, 고문하여 결국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3년간의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시의 한 대목을 들어보자.

    그놈들이/여보게/법도 새로 만들고/정치도 새로 만들고/병정도 새로 만들고/거처도 새로 만들고/장군도 새로 만들고/술집도 새로 만들고/기생도 새로 만들고/글방도 새로 만들고/마을도 새로 만들고/사회도 새로 만들고/그 나라도 새로 만들고/여보게/그게 정말이오./세월이 지나면 시간이 간다더니/세월이 지나니 시간이 가서는/새로 살맛이 난 모양인데/살판이 난 것이 뭐요.//
    오호, 여보게 살짝 이야기 해보소/그 살판이 난 게 뭐요.//
    그래. 시간. 그래./시간이 지나긴 지났지/여보게/나에겐 비밀이란 게 없지 않소./그래. 어디. 그래 들어봅시다.//
    살판이 났지요. 살판이./그놈들이 살판이 났지요./그놈들이야말로/사람들의 목숨까지……/여보게, 이 세상에/비밀이란 게 어디 있겠소./코 큰 놈들까지도 벙거지 쓰고/다시 죽는 시늉까지 알고 있는 사실인데/아니. 그놈들이/그놈들이/온 나라의 백성들의 입을 틀어막고/바람구멍만큼한 주둥아리만 열게 하여/새야. 새야. 유하고 신새야/새하고 마하고 을하고…하고…하고…고 고…/노래 부르게 하며/지붕엔 파랑색/붉은색/검정색/주황색/하얀색/온갖 색을 칠하게 하고/오직/그. 그. 그 노래만 배창이 터지도록 부르게 하더니/요새는 백성들에게 냇가로 가서 개천 공사준비를 시작하라고
    ― 「10장의 역사연구」 부분

    우리는 위 시가 무엇에 대해 누구를 향해 신랄한 야유와 풍자를 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새삼스레 풍자의 미학을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 시의 풍자 대상은 박정희를 비롯한 유신체제의 분단기득권으로, 풍자의 주체는 이 풍자의 대상을 낱낱이 발가벗겨 조롱하면서 비판적 웃음을 자아낸다.

    특히, 박정희의 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새마을 운동’에 대한 시인의 풍자적 언어 유희의 행간에 흐르고 있는 개발독재에 대한 비판은 국가발전주의에 함몰된 채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망실한 한국사회의 씁쓸한 풍경을 마주하도록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시인에게 안타깝고 서글픈 것은 그의 시 「10장의 역사연구」에서 총체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이 반민주주적 역사현실에 대한 비판의 자유가 좀처럼 허락되지 않고, 크고 작은 비판들을 반공 병영사회의 초헌법적 반공주의로 억압하는 폭력적 근대에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얼마나 많은 양심적 문인들이 이 부정한 현실 속에서 그들의 공적 분노를 침묵해야 했던가. 또한 얼마나 많은 진보적 문인들이 군부파쇼정부의 정치적 탄압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가.

    1970~80년대의 필화사건에 연루된 양성우의 시집과 이산하의 시집

    1970~80년대의 필화사건에 연루된 양성우의 시집과 이산하의 시집

    하물며 이 과정 속에서 힘겹게 쟁취한 민주화의 현실 속에서 더욱 끔찍한 것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인들의 이러한 평화의 노래에 깃든 시적 진실을 우리는 얼마나 빨리 망각하고 있는가. 반공 병영사회의 공포정치로 드리운 근대의 폭력을 뒤로 한 채, 게다가 그 과정에서 잃은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너무나 안이하게 생각한 채 눈 앞에 가시화된 경제적 성과에만 도취됨으로써 역사에 대한 성찰적 시각을 소홀히 하는 우리시대의 자화상을 마주하는 일은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곤혹스러움을 회피할 수 없다. 이 글의 서두에서 간략히 언급했듯이, 한반도에 드리운 세계 냉전체제의 유산으로부터 우리는 현상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한반도를 에워싼 국제적 이해관계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에 오랜 냉전적 대결 구도를 이러저러한 명분으로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시대 퇴행적인 매카시즘에 동요되지 않는, 분단의 현실에 대한 성숙한 자기인식과 이 모든 어둠을 일소해내는 미래를 향한 의지를 갈무리하는 게 더욱 긴요하다. 그래서일까. 김명식의 「10장의 역사연구」의 마지막 10장에서 들려주고 있는 시적 전언이 예사롭지 않은 이명(耳鳴)으로 들린다.

    10
    여보게/말 못하는 세상의 어둠이여/희망 잃은 마음의 참담함이여/질서없는 나라의 혼돈함이여/길 잃은 자 갈 길에 방황함이여/빛으로/밝혀서/평탄케/길잡이//
    새날을 밝게 하고/새희망을 마중하고/새질서를 마련하고/새사람 길 잡아서/여보게/먼 먼 행로에 어둠이 깃들지 않게/합시다. 그려―//
    여보게/여보게/여보게//
    (모든 시간과 모든 이야기, 그리고 모든 꿈은 새롭게 되리니, 그날이 오면―)
    ― 「10장의 역사연구」 부분

    * 이 글은 계간 <시와 시>(2013년 겨울호)에 발표된 것임을 밝혀둔다.

    필자소개
    문학평론가, 광운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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