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대선,
바첼라트 압도적 1위...12월 결선
    2013년 11월 18일 03: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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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바첼레트 중도좌파 대통령 후보는 지난 일요일 선거에서 2위 후보 보다 2배 많은 득표를 했지만 과반에 부족해 12월 15일의 결선투표를 치를 예정이다.

<가디언>에 의하면 현지시간(18일 월요일 오전 2시) 기준으로 92%의 개표가 진행되었는데 바첼레트 후보는 약 47%를 득표했고 보수정당의 반대파 마테이 후보는 25% 가량 득표했다. 7명의 다른 후보들은 많이 뒤처져있다. 전체 9명의 후보 중 정치적 성향은 좌파가 5명으로 많고 나머지 4명은 우파 혹은 중도파로 분류된다.

바첼레트 후보는 결선에서의 승리를 낙관하며 유의미한 사회개혁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테이 후보는 지지자들에게 “결선투표를 치르는 것 자체가 분명한 승리”라고 말했다.

62세의 바첼레트 후보는 2006년에서 2010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했고 퇴임할 때의 지지율은 84%에 이르렀다. 이번 선거에서 그녀는 헌법 개정, 교육개혁 재정과 부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 법인세 인상을 약속했다.

하지만 일요일 선거에서 그녀의 중도좌파연합 ‘누에바 마요리아’는 이러한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의회 내의 절대 다수를 획득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중도좌파연합 ‘누에바 마요리아'(Nueva Mayoria)는 사회당, 기독교민주당, 민주사회당, 급진당 등 4개 정당을 중심으로 중도좌파 정치세력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바첼레트의 첫 번째 집권 당시 집권 기반이던 중도좌파연합 콘세르타시온(Concertacion)이 더욱 확장된 것이다.

중도우파인 60세의 마테이 후보는 전 노동부장관이며 보수우파연합 ‘알리안사(Alianza)’의 후보인데, 그녀는 칠레는 친기업가(비지니스) 정책을 지속해야 하며 피네라 현 대통령 하에서 빠른 성장과 낮은 실업률을 달성한 것을 신뢰한다고 밝혔다. 알리안사는 마테이가 속한 독립민주연합(UDI)과 피네라 대통령이 이끄는 국가개혁당(RN)이 주축이다.

바체라트-하라

피노체트 세력에 의해 살해당한 칠레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 추도식에 참석한 바첼라트 대통령

 이번 선거는 칠레가 유권자들이 자동적으로 등록되도록 바꾼 이후의 첫 선거이다. 이로 인해 유권자 수가 820만명에서 1350만명으로 늘어났다. 반면 새로운 시스템에서는 투표 불참에 대한 벌칙이 없다. 이전에는 투표의무제였다. 피네라 대통령은 일요일 오후 투표율이 낮은데 대해 유감 입장을 밝혔다. 등록 유권자의 44%가 투표에 불참했다.

한편 대선과 함께 하원의 120석과 상원 38석 중 20석도 새로 선출한다. 하지만 낮은 투표율은 바첼레트의 중도좌파연합이 절대다수를 획득하는데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변화를 가로막으려는 과거의 군사독재자 피노체트에 의해 만들어진 선거법 하에서는 승리한 당이 2/3의 절대 다수를 획득하는데 실패할 경우 각 지역에서 패배한 정당이 절반의 의석을 갖게 된다.

(상하원 모두 중선거구이다. 단 두 명의 후보가 한 당에서 출마할 수 있지만 두 명의 후보가 다 당선되려면 그 정당 후보의 득표율 합이 67%을 넘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다른 당 후보가 3위를 했다 하더라도 3위 후보가 당선되는 시스템이다.)

또 군사독재 시대에 만들어진 법률은 교육개혁을 위해서는 의회의 57%, 선거법 개혁에는 60%, 헌법개정을 위해서는 67%의 찬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개표 결과 바첼레트의 중도좌파연합은 상원의 51%, 하원의 48%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바첼레트는 과거와 미래의 양쪽에 갇혀 있는 꼴이 된 것이다. <가디언>은 한 정치전문가의 말을 빌어 “거리에서는 헌법 개혁에 대한 광범위한 요구가 있다. 그러나 그녀는 동반당선시스템(the binominal elections system)에 의해 선출되는 의회와 직면하고 있다.”며 “이 제도하에서는 다수파가 형성될 수 없다. 독재의 영향이 여전히 그녀의 개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바첼레트와 마테이 후보는 어린 시절 이웃으로 살며 교류를 했으나 1973년의 피노체트 쿠데타에 의해 바첼레트의 군 장성이었던 아버지는 고문으로 사망하고, 마테이의 아버지는 공군 참모총장으로 승진하면서 서로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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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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