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 사회적기업가들의 열정
    [책소개] 『청춘, 착한기업 시작했습니다』(이회수/ 부키)
        2013년 11월 16일 01: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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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이상 없군요. 안녕하십니까? 못골시장의 라디오 스타, 매력 만점 DJ 김승일입니다! 못골 온에어 이제 시작합니다! 오늘은 ‘종로오뎅’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시장 길 사이로 담백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전통시장 전문 문화 기획컨설팅 기업 ㈜시장과사람들의 김승일 대표의 목소리다.

    할아버지 때부터 본인까지 3대가 수원의 못골시장에서 장사를 한 덕분에 어릴 적부터 시장에서 자라난 그는 못골시장을 찾는 손님이 자꾸만 줄어드는 것이 안타까워 스스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시장의 소식을 전하는 신문인『못골 뉘우스』를 비롯해, 여성 상인들로 이루어진 ‘줌마불평합창단’을 만들고, 노래와 함께 손님들의 불만까지 전하는 라디오 ‘못골 온에어’를 본인이 DJ가 되어 방송하며 시장 살리기에 나선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하루 7천 명 수준이던 못골시장의 방문객이 1만 5천 명을 넘긴 것이다.

    ‘전통 시장 활성화’의 희망을 발견한 김승일 대표는 이제 사람들의 발길이 갈수록 줄고 있는 전국 1500여 개의 전통 시장을 다시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게 하기 위해 뛰고 또 뛰고 있다.

    좌절 대신 사회적기업에 뛰어든 청춘들

    이렇듯 청년 실업자가 100만 명에 달한다는 이태백 시대(20대 태반이 백수)에 취업의 높은 벽에 좌절하기보다는 열정과 혁신으로 사회적기업을 일구며 사람과 환경을 살리고 수익까지 거두는 청년들이 있다.

    전공이 적성과 맞지 않아 냉가슴을 앓다가 우연히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미술계의 아이돌을 키우는 미술기획사 대표로 변신한 에이컴퍼니의 정지연, 공연기획사 토크앤플레이를 만들어 동네 주민이 극본을 쓰고 배우로 참여하는 연극으로 흥행 돌풍을 일으킨 무명 배우 출신의 김동하, 돈도 되지 않는 ‘딱정벌레’를 연구한다고 교수에게 “부모님이 돈이 많냐?”는 질문까지 들었지만 빌딩 옥상에서 양봉을 시도하며 곤충과 인간의 상생을 추구하는 비틀에코의 한이곤 등 열정과 도전 정신으로 똘똘 뭉친 이들 청년 사회적기업가 12인은 지금 무한 경쟁을 유도하는 사회에서 선을 향한 경쟁으로 세상을 뒤집는 아름다운 반란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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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시생에서 미술기획사 대표로”

    “왜 화가는 팬클럽이 있으면 안 되나요?” 정지연 대표의 에이컴퍼니는 이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다 몇 년을 백수 고시생으로 지냈던 정지연은 좌절하거나, 삶을 포기하기보다는 새로운 영역에의 ‘팬질’을 시작하면서 인생의 방향을 180도 바꾸었다.

    우연히 미술 정보를 전하는 뉴스를 보다가 아이돌과 그 음악을 좋아하듯이 미술작가와 작품에 빠져들어 자발적으로 네이버에 ‘아티스트팬클럽’이라는 카페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 카페를 작가와의 인터뷰, 온라인 전시, 아트 워크숍 등 다양한 콘텐츠로 채우면서 알게 된 신인 작가들을 대중에게 사랑받는 미술계의 아이돌로 키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정지연은 미술기획사 에이컴퍼니를 차렸다.

    미술에 문외한이었던 대표가 운영하는 만큼, 에이컴퍼니의 활동 요소요소에는 기존의 상식을 대폭 뛰어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넘친다. 번화가의 카페에서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브리지 아트페어>, 게릴라 콘서트처럼 딱 2시간만 전시하는 <반짝쇼>, 가능성 있는 신인 작가의 첫 전시회를 열어 주는 <나의 첫 전시회>, 영화관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구입할 수 있도록 한 <영화관 옆 미술관> 등 정지연 대표의 에이컴퍼니는 대중에게 직접 다가가는 신선한 기획으로 아티스트와 팬을 연결하는 교두보가 되고 있다.

    “진로를 고민하다 청소년을 위한 무료 진로 잡지를 창간”

    “지방 출신이라는 게 혹 취업에 핸디캡은 되지 않을까? 모두가 선망하는 길을 가는데 왜 외교관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지?” 대학 재학 중에 외통부에서 군 생활을 한 권태훈은 현직 외교관들의 생활을 곁에서 지켜보다 외교관을 꿈꿨던 자신의 진로를 재설정하기로 결심하고 여러 선배와 전문가들을 만나 조언을 들었다.

    선배들 덕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그는 진로로 고민하는 중고등학생 후배들에게도 자신이 알고 있는 진로 정보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청소년을 위한 진로 잡지를 펴내겠다는 취지에 동감한 서울대 선후배 8명을 모아 ‘모두커뮤니케이션즈’를 세웠다.

    그러나 잡지를 만들고 홍보하는 과정은 수난의 연속이었다. 창간호를 알리려고 찾은 고등학교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고, 광고 수주에 번번이 실패해 제작비 마련에 쩔쩔매야 했을 정도로 잡지 경영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권태훈은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호는 없게 하겠다며, 지금도 학교와 취재 현장을 분주히 누비고 있다.

    “절대 치킨집은 하지 않을 것”

    사회적기업가를 꿈꾸는 청년들의 창업 열기는 무척이나 뜨겁지만, 이들이 처한 현실은 여전히 냉혹하고 지뢰밭이다. 여전히 사회 혁신과 창업을 위한 사회적기업 생태계는 다른 경제영역에 비해 사회적으로 자원 배분이 잘 안 되고 있으며, 획기적인 성과를 창출할 인프라와 시스템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다.

    『청춘, 착한 기업 시작했습니다』에 등장하는 청년 사회적기업가들 역시, 청년들을 무조건 창업으로 내몰 것이 아니라 먼저 창업 인프라와 시스템을 조성해 주길 바라고 있다. 동시에 정부의 지원 없이도 자생할 수 있는 기업이 되고자 그들 스스로 사업 분야의 전문성을 높이고, 대기업과 협력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빌딩 옥상마다 달콤한 꿀이 흐르는 그 날까지”

    한이곤 대표의 비틀에코는 곤충과의 공생을 추구하며 방과 후 교실을 통한 곤충 생태 교육, 옥상 정원, 빌딩 옥상 양봉 등을 시행 중인 에코기업이다.

    한이곤 대표는 강원대 재학 시절 딱정벌레에 푹 빠져 연구를 거듭하다 딱정벌레에 인생을 걸겠다고 결심하고, 정부에서 청년사회적기업가 1기를 모집한다는 소식에 학교를 휴학하고는 참가하여 비틀에코를 탄생시켰다.

    요즘 그의 최대 고민은 지속 가능한 사회적 기업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사회적기업 경영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지금까지는 청년사회적기업가 공모 상금과 현대자동차그룹의 점프업 프로그램 지원금 등으로 버텨 왔지만 이젠 달라져야 한다.” 현재는 이 분야의 독보적 실력을 갖추고 아울러 인지도를 높여 대기업 등과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왜 소비하는가, 왜 만드는가를 생각해야 할 때”

    지역의 공공 공방을 운영하는 안연정 대표의 문화로놀이짱은 서울월드컵경기장 서문 한쪽에 자리 잡은 ‘명랑에너지발전소’를 근거지로 재활용 공방 ‘명랑 작업장’과 ‘목공 워크숍’, 인문학 강의가 이루어지는 ‘명랑 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다.

    특히 명랑 아카데미에서는 <적정 규모의 생활을 찾기 위해 생각해야 할 것들> <민폐의 인간적 작용> <나를 닮은 진짜 공간 만들기> 등의 강의를 진행하며 지역 주민과 함께 우리의 소비 문화와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

    “각자의 삶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왜 소비하는가, 왜 만드는가를 생각해야 할 때”라는 안연정 대표는 폐가구를 재생해서 재활용품을 만드는 일에는 새 가구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많이 들어 운영에 어려움이 많고 정부의 지원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량생산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고자 하는 사람이 있고 그들이 이 사회에서 주눅 들지 않고 살아가는 데 재활용품이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그들을 위해 폐가구를 수선하는 공방을 계속 이어 나가겠다며 당차게 포부를 밝혔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창조하는 선구자는 언제나 고독하고 외롭다. 하지만 역사는 그들의 편이 되어 줄 것이고, 결국 선구자는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등장할 것이다. 사회적기업은 이미 메가트렌드이고 현재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다.”

    여는 글에서 사회적기업 활동가 이회수는 이렇게 말하며 사회적기업을 이끌고 있는 청춘들을 격려했다. 창업을 하기에는 아직도 어렵고 힘든 환경이지만 용기와 열정으로 부딪쳐 성공을 일구어 내는 기특한 청년들이 여기 있다.

    사회적 가치와 기업으로서의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힘겨운 길을 걷는 이들의 도전 정신에 이제 우리가 시선을 돌려 박수를 쳐 주고, 그들의 바람에 귀 기울이며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차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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