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와 송전탑
[에정칼럼] 탈핵희망버스 참여에 앞장서는 노동자들
    2013년 11월 12일 10: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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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던 서울시청 앞, 쌀쌀해진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노동자’가 아닌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 중에는 밀양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를 홍보하는 이들도 있었다. 밀양에서 올라온 할매가 사전행사에서 마이크를 잡기도 했거니와, 참가자들은 유인물을 받아 보며 밀양의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노동자들은 밀양 부스에 들어와 배지 판매와 탈핵희망버스 참가를 직접 적극 홍보하는 모습도 보였다. 밀양이 지금 어려우니까, 짠해 보이니까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 보다는 진한 느낌이랄까.

이미 지난 7월 영남권 건설노동자들이 밀양 송전탑 공사 협조를 거부한다는 의사를 밝힌 바도 있고, 밀양에 가까운 울산, 부산, 경남 등 민주노총 지역본부에서는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현장에 직접 결합하여 열심히 돕고 있는 터다.

더군다나 노동자대회에 함께 했던 노동자들 중 일부는 밀양 할매 할배들과 벌써 구면인 사이며 ‘송전탑’이라는 인연 혹은 악연으로 엮이게 된 사연이 있었다.

기억하다시피, 2012년 가을부터 2013년 여름에 걸쳐 울산과 평택에서 노동자들이 앞 다투어 송전탑을 올라 장기 고공농성을 펼쳤다. 쌍용자동차 먹튀와 정리해고에 항의하는 쌍차 지부 노동자들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정당하게 요구하는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은 각각 공장이 건너다보이는 우뚝한 송전탑에라도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고공의 혹독한 날씨와 각종 생리적 고충 외에도, 고압송전탑이라 전자파도 이들을 힘들게 했다. 울산은 농성이 시작되자 다른 송전선로로 전력을 우회시켰지만, 평택의 송전탑에는 고압 전류가 계속 흘렀다.

2013년 1월 중순, ‘희망의 순례’ 버스를 타고 평택을 찾은 밀양 할매들은 대번에 그것이 154kV 송전탑인 줄 알아보았다. 밀양에 건설되고 있는 765kV 송전탑은 그것 보다 높이도 두 배가 넘고, 흐르는 전력량도 18배나 되지만, 그래도 15만 4천 볼트도 고압인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바로 그 아래에서 노동자들이 171일간 먹고 자야 했으니 건강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송전탑의 전자파(전자계)가 인체에 별 영향이 없다는 또는 악영향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전문가들이 아직도 있지만, 이 노동자들은 불가피하게 생체 실험을 하게 된 꼴이었다.

지난 7월 서울시청광장에서 밀양송전탑 반대 집회(사진=레프트21)

지난 7월 서울시청광장에서 밀양송전탑 반대 집회(사진=레프트21)

평택 송전탑에 올랐던 노동자들은 삼겹살 굽는 것처럼 지글거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루기 힘들었고, 귀가 울리고 잘 안 들리는 현상이 생겼고 기운도 빠지는 느낌을 경험했다고 한다. 안개나 부슬비가 내릴 때면 불꽃이 튀며 소음과 감전의 공포감이 함께 더 심해졌다. 송전탑 농성에서 내려온 복기성 수석은 두 주간 입원을 하고도 또 두 달을 요양해야 했다.

잠시 투쟁에서 한 숨 돌리고 있던 밀양 어르신들은 이런 노동자들이 남의 일이 아니었다. 희망의 순례 버스는 부산 한진중공업 앞과 평택 송전탑, 아산 유성기업, 서울 한전 본사 앞, 그리고 대한문 앞의 “함께 살자” 농성촌을 이어 들렀다. 어르신들도 이겨내고 있으니 죽지말고 싸우자며 힘을 넣어주고 가셨다. 그렇게 송전탑의 노동자들과 밀양의 어르신들은 친구가 되었다. 울산으로 가는 희망버스에는 밀양에서 떠나는 버스도 있었다.

이제 제법 끈끈한 친구가 된 이들이 서로를 돕는다. 이번에는 노동자들이 밀양으로 가자고 호소하는 중이다. 지난 11월 5일에는 한진중공업지회와 현대차 비정규직 3지회, 쌍용차지부,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 등이 11월 30일과 12월 1일에 걸쳐 밀양으로 가는 탈핵희망버스에 동승하자고 제안했다. 희망버스로 얻었던 힘과 넓어진 연대를 이제 밀양에 조금이라도 돌려주자는 것이다.

울산의 최병승 조합원은 자신이 철탑에서 농성할 때 밀양 할매들이 두 번이나 오셨는데 이제 자신의 빚을 이자까지 쳐서 갚으러 가겠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통해 밀양 송전탑 문제를 알리려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송전탑이라는 매개를 통해 전기와 사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각자 느끼게 된 이들의 연대는 이렇게 구체적이다. 공장으로 돌아가서도 이들은 이 연대의 구체성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서, 세상을 만드는 것도 노동자이고 바꿀 수 있는 것도 노동자라면, 좀 더 욕심을 내어 묻게 된다. 송전탑은 누가 만들고, 전기는 누가 만들며, 자동차와 도로는 누가 만드는가? 그리고 그것을 ‘정의롭게’ 만들 수 있는 이들은 또 누구인가?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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