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진당 해산청구 논란에서
    돌아보는 '정의당'의 현 주소
    [기고] 단순한 '통합진보당 탈당파'의 정체성을 넘어서려면
        2013년 11월 08일 02: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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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는 5일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안>을 제출했다. 내걸은 이유는 ‘헌법의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 수호’다. 통합진보당의 강령 등 당의 설립 목적과 일부 활동이 헌법 질서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건데, 과연 박근혜 정부는 헌법적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나 있는지, 그리고 그 가치를 수호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참으로 기가찰 노릇이다. 정당 활동의 자유야말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헌법적 가치에 해당한다. 정당 및 정치세력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국민의 몫이며, 정당 존립 여부는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이 표로 결정한다. 정부가 편향된 시각으로 특정 정당을 해산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국민의 선택권 및 헌법에 보장된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집권한 세력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번 사태는 심각한 권력 남용이자 국민의 선거권을 무시하는 후안무치의 극치이다.

    법무부가 밝힌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청구 경위를 읽어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통합진보당의 최고이념, 강령이 우리나라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강령이 김일성의 진보적 민주주의와 같다는 것이다.

    현재의 통합진보당 강령은 현재의 ‘정의당’이 함께 할 때 만들어진 강령이다. 최근, ‘전교조 법외노조화’ 이번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등, 여권의 초헌법적 무리수는 무엇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들은 국민이 원한다했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이지만, 나름 시사점이 크다. 종북세력인 통합진보당에 대한 비토를 일정부분 여론이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담컨데, 이석기는 무죄판결을 받을 것이며, 통합진보당은 해산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통합진보당은 사법적 판결은 면할지 몰라도 이미 정치적 사망선고를 판결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박근혜 정부가 초강수의 무리수를 두는 까닭은 매우 단순하다. 내년 지방선거와 범진보진영을 무력화시키고자함이다.

    페이스북 등 SNS가 후끈 달아올랐다. 지금 당장이라도 통합진보당을 구하러 청와대로 달려갈 듯한 비분강개가 넘쳐난다. 이번 사태는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기에 통합진보당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과 작년의 5.12폭력사태와 이석기RO사건에 불구하고 반성 없는 그들에 대해 더욱 강하게 비토하고 완전하게 결별해야한다는 주장 등이 분분하다.

    찬반을 떠나 이 시점에서 냉정히 생각해보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말이다. 그리고, 지난 일 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말이다. 우리가 그토록 질시했던 통합진보당과 우리는,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고, 혁신했는지 말이다. 그들이 종북세력이라면 그들로부터 차별화하고, 대중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우리들만의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뒤돌아 생각해 볼 일이다.

    정의당은 작년 9월, 통합진보당 자민통 세력의 패권의 질곡을 피해 도망치듯 창당한 당이다. 지난 일 년 동안 재창당의 혁신작업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실패했다. 이념과 경험이 다른 이질적인 3주체를 하나로 묶기 위한 새로운 정치이념을 만들어 내고자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3대세습, 북한인권, 북한핵 등 북한문제에 관해 단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또한 어디로 가야할지, 당 정체성과 방향마저 정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지난 7월 당대회, 이석기 체포동의안과 최근 주사파 논쟁에서 보듯이 우리는 아직도 통진당 탈당시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들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잠깐 우리를 돌아본다. 지난 진보정의당의 창당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고,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무엇을 꿈꾸었는지 말이다. 솔직히 별로 적어낼 만한 의미가 없다. 단순히 그들을 반대했을 뿐이었다. 다수파인 당권파 세력에 밀렸고, 다음 선거에서 좀 더 나은 결과를 얻고자했던 비겁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불현듯 지금도 통합진보당에 남아 지역에서 헌신하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생각해 보건데 솔직히 일상적 활동은 그 친구들과 내 자신이 무엇이 다른지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스스로, 내게 묻는다. 한편으론 총 한 자루, 압력밥솥 폭탄 농담을 까면서 뼛속까지 평화주의자’라고 말했던 이석기류를 사상적 이단아로 치부하고, 다른 한편으론 비현실적인 정치사생아로 매도시키고, 희화화하면서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진보운동의 지배적 주류 자리를 내가 차지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그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자 노릇을 하고 있지만, 이미 그들과 몇 차례 정치담론을 공유, 동의했고, 창당과 탈당을 반복했고, 용산지구당 불법접수사건, 일심회사건 등 헤아릴 수 없는 패권과 패악질을 ‘민중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그릇된 욕망과 환상으로 방조, 묵인해놓고서 비례2번 이석기 존재를 몰랐다, 진보정당 내 주사파의 존재를 미처 몰랐다는 식으로 비겁한 삽질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에 와서야 마치, 정의의 사도처럼 행세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

    북한 체제는 진부하며 이 체제를 미래의 체제로 인식하는 이른바 주체사상과 주사파도 시대착오적이며, 너무 낡았다는 주장과 이석기류 일파와 결별하는 것으로만 혁신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안이할 뿐 아니라 기회주의적 발상이다.

    또한, 현존하는 정치 질서에 적응하거나 생존하기 위해 당의 정체성 찾기 위한 노력을 폄하하거나, 체념하는 것은 다른 진보의 꿈들을 외면하고 기존의 낡은 진보를 다시 끌어와 서둘러 자리매꿈하는 ‘봉합주의’에 불과하다. 언제까지 진보정치를 황폐화시킨 과오를 되풀이 할 것인가?

    정치적 이해 때문에 혁신의 목소리를 묵살하거나 배척하고, ‘봉합주의’로의 투항을 ‘합리적 진보’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패권과 독재자에 대한 적의敵意만으로 자신의 당위성을 보장받을 수는 없다. 이러한 논리로 합리화시킬 때, 우리는 보수정권이 만들어 놓은 ‘종북프레임’의 덫에 걸려 허우적거릴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현재에 머무른다면 결국, 우리의 정체성은 ‘통합진보당 탈당파일 뿐이다.

    필자소개
    정의당 광주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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