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구적 시각 벗어나
    새로 쓰는 아시아의 저항운동사
    [책소개]『현대 인도 저항운동사』(한형식 이광수/ 그린비)
        2013년 11월 01일 05: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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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그간 국내 진보/좌파 담론의 전개가 지나치게 서구에서 생산된 ‘이론’을 추종하는 경향에 젖어 대중의 삶과 괴리를 만들고 있음을 지적해 왔다. 정작 우리 사회를 변혁해 가는 데 참조할 수 있을 실천의 사례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비서구 국가들에서 더욱 다양하게 찾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가 많은 비서구 국가들 중에서 특히 인도로 관심을 먼저 향한 것은, 인도가 “세계에 현존하는 거의 모든 저항운동의 전시장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실천의 사례들을 가지고 있”고 “이 다양한 운동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가 역시 전 세계적 상황의 압축판”이라고 할 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가 방대한 관련 문헌을 섭렵한 아시아 저항운동 세미나의 결과물을 토대로 초고를 집필했고, 편집과정에서 인도 전문가인 이광수 교수가 합류해 보론 격인 ‘더 생각할 거리’(인터넷 신문 『레디앙』 연재 칼럼 ‘현대 인도 인민의 역사’를 재편집해 수록)를 덧붙임으로써 이 책이 완성되었다.

    영국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한 이래 인도의 민중들이 겪어야 했던 질곡의 역사와 저항적 실천의 사례들을 촘촘히 담아낸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금과는 다른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다른 세상의 구체적 모습과 실현 과정을 고민할 때 참조할 수 있는 역사적 경험”으로서의 인도 저항운동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인도저항사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 對 원칙 없는 합종연횡의 정치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는 식민주의의 종식과 독립, 급격한 자본주의 경제의 이식과 그 부작용으로서의 불균등한 발전, 카스트라는 구습적 신분제, 종교 갈등, 극심한 빈부격차 문제, 수많은 정치 세력이 난립하며 합종연횡하는 혼란스러운 정치 문화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 인도의 약사(略史)로 시작된다.

    인도의 현대사는 식민 지배가 종식되는 1947년부터 시작된다. 인도 역시 신생 독립국들이 대개 그렇듯 독립부터 많은 분열상을 안은 상태로 출발했는데, 특히 파키스탄과의 분리 독립은 인도 국내의 종교 갈등이라는 아물지 않는 상처의 싹이 되었다.

    인도 독립운동의 두 거두 마하뜨마 간디와 자와하를 네루가 이끈 인도국민회의(회의당)는 독립 후 첫 보통선거를 무난히 치러내며 집권당이 되었고, 이로부터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회의당은 헌법상에 사회주의 원리를 반영하고 국가 주도 경제 모델을 채택했지만, 동시에 독립운동 시기 자금원 역할을 했던 토착 자본가들의 막강한 영향력 탓에 시장경제적 지향과 사회주의적 원리의 기형적 동거 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결국 토지 개혁을 비롯한 분배 불평등 개선을 위한 시도는 지지부진했고 지주 계급의 기득권도 고스란히 유지되었다.

    게다가 네루의 딸인 인디라 간디(‘간디’라는 성은 마하뜨마 간디와는 무관하다)가 네루의 후임자였던 샤스뜨리 사후에 집권하면서 회의당은 유사 세습제의 길을 걷게 된다. 비상통치를 선포하는 등 독재적 통치로 치닫던 인디라 간디는 결국 종교 갈등의 결과로 암살당하고, 아들 라지브 간디가 회의당의 수장이 되어 재집권하지만 곧 정권을 인민당에 내주고 그 또한 1991년에 암살당한다. 아내 소냐 간디가 다시 회의당을 이끌어 공산당 세력까지 포함하는 연합전선을 통해 재집권에 성공했고, 2009년엔 아들인 라훌 간디가 세습 권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회의당은 사회주의적 지향을 내세운 중도좌파 정당이었지만 그것은 명목이었을 뿐, 표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어떤 정치적 차이를 가진 세력과도 연합했다. 그리고 이런 행태는 비단 회의당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고, 심지어는 극좌파적 강령을 내세우는 공산당 세력조차 원칙 없는 정치적 합종연횡을 거듭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집권을 위해서라면 종교 갈등을 부채질하는 것도 불사하고 일단 당선만 되면 어제 표를 준 민중들을 배반하는 조치를 거리낌 없이 취하는 모습이 빈번하다. 이런 면에서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별명도 허울뿐이란 평가를 듣게 된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혁의 해악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오늘날에도 회의당 주도의 UPA 정권은 ‘인간의 얼굴을 한 발전’을 슬로건으로서만 내세울 뿐, 일단 선거가 끝난 이후로는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의 틀을 유지하며 기득권 세력에 복무하는 한편, 무역협정 체결을 통해 세계경제로의 편입을 가속화하는 등 민중을 한층 더 가혹한 경쟁 시스템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세계 제2규모 공산당의 현실

    인도에는 합법정당인 공산당만 셋이나 된다. 인도공산당(CPI), 인도공산당 맑스주의당(CPI-M), 인도공산당 맑스-레닌주의당(CPI-ML)이 그들이며, 비합법적 공산주의 세력은 훨씬 더 많다고 한다(규모로만 따지면 중국공산당에 버금간다).

    그러나 의회정치에 공산당이 참여하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민중을 온전히 대변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저자들은 “인도 공산당 운동의 특징은 이론과 실천의 현격한 분리”라고 지적하고 있다.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에서 배태된 공산주의 운동은 코민테른의 지원으로 가능했지만 또한 코민테른의 입장이 서구 공산주의 운동의 이해에 따라 좌우될 때가 많았으므로 그 영향 아래에 놓인 인도의 공산당(CPI) 또한 자주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독립운동 시기 인도공산당에게는 식민 지배국인 영국에 대한 반제 투쟁이 당면 과제였는데, 2차 대전 중 반파시즘 전선이 형성되면서 코민테른의 방침이 반영 투쟁에 반대한 일이 대표적이다(노동운동에 대해서는 파업 금지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이렇게 거듭되는 혼란 탓에 독립 이후에도 공산당 내에서 온건파와 급진파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고, 회의당이 내분을 부추겨 당 지도부와 급진적 당원들 간의 괴리는 더욱 심각해졌다. 결국 지도부에 의해 좌파, 중도파가 출당당하는 데 이르렀고, 이들이 만든 새로운 정당이 CPI-M이었다(그러나 좌파 분파가 갈라져 나온 정당이라 해서 기존 공산당보다 특별히 더 ‘공산당다운’ 모습을 보여 준 것은 아니다).

    당의 분열로 지지 기반을 잃은 CPI는 회의당에 기생적으로 연합하는 선택을 하고, CPI-M는 당이 틀을 잡으면서 중도파가 주도하는 모양새가 되어 급진파와 재분열하게 된다. 여기서 갈라져 나온 급진파의 당이 세 번째 공산당인 CPI-ML으로서, 이들은 인도 동부에 세력을 떨치는 ‘낙살 반군’(Naxalite)과 연계되어 설립된 정당이다.

    그러나 이런 끝없는 분열의 결과로 남은 것은, 세 공산당 모두 강령으로서는 급진 노선을 표방하지만, 실천에서는 합법의 테두리를 넘지 않으며 집권 지역에서의 투자 유치를 위해 소수 세력을 폭력적으로 탄압하기도 하는 명실상부한 ‘정당’이라는 현실이다.

    참여민주주의로 충분할까?: 께랄라 모델의 등장과 쇠퇴

    그러나 공산당이 집권 지역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바도 없지 않았다.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는 특히 께랄라 주의 성과를 면밀히 검토하는데, 공산당이 주도한 께랄라 발전 모델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띠야 센 등 대안적 경제 발전 모델 연구자들이 각별히 주목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께랄라는 인도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 빠르게 기대수명이나 유아 사망률, 문맹률 등 주요 지표를 개선시켰고, 성별이나 카스트에 따른 차별도 상당히 저감시키는 성취를 거뒀다. 저자들은 이 성취의 비결이 단지 집권 께랄라 공산당의 지도력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오히려 풀뿌리 민중 수준에서의 적극적 참여가 정치 세력이 개혁 시도를 게을리 하지 못하게 끊임없이 추동하고 또 감시했기 때문에 가능한 성취였다는 것이다.

    1960년대에 토지개혁을 내세워 하층 계급의 지지를 얻은 께랄라 CPI-M은 정권을 얻지 못했을 때에도 민중의 파업이나 토지 점거 활동을 지원하고 대중교육 사업을 벌이는 등의 활동을 이어나갔다. 또 집권 후 실시한 토지 개혁은 농촌의 구체제적 질서를 약화시켜 풀뿌리 민중의 정치적 역량을 촉진시켰다. 즉 민중과 정당의 건강한 관계가 께랄라 모델의 성공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께랄라 모델은 인도가 1980년대에 경제위기를 맞으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비록 께랄라 모델이 분배적 측면에서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고질적인 낮은 경제 성장률 때문에 그 지속 가능성이 의문에 부쳐졌다(‘성장 없는 분배’라는 비판).

    이 위기 속에서 CPI-M은 국가(께랄라 주 정부) 주도 발전 노선에서 사회 주도적 발전 노선으로의 변화를 꾀했으나 대중적 수준에서는 부정적 반응을 유발했다. 정치적 민주화를 명분으로 복지 후퇴 등 경제적 문제를 회피하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또한 민중에게 자치적 제도를 운용할 역량이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역할이 주어지자 많은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결국 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며 인도에서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시대 하에서 CPI-M은 점점 더 우경화하고 께랄라 모델은 쇠퇴의 길로 접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인도 민중의 절망의 깊은 골과 투쟁의 높은 산을 마주하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인도 저항운동사가 결코 명망 높은 지도자나 제도 정당에 기대어 전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오히려 민중의 요구는 바로 민중 스스로에 의해서 주장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힘겹게 증명하며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저발전 상태와 분배 불평등이라는 경제적 현실은 카스트 차별, 여성 차별, 소수 부족민 차별의 문제와 맞물려 인도 민중을 더욱 혹독한 지경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저 ‘위대한 영혼’(‘마하뜨마’의 뜻) 간디를 필두로 한 민족 지도자들은 농촌 사회 내에 엄존하는 계급 대립을 부정하고 카스트 제도와 지주 기득권을 온존시키며 계급이 조화를 이루는 전통 사회를 이상으로 제시하는 계급 화해 노선을 내세웠다.

    또한 강성 노동운동이 확산될 것을 우려해 자본가들의 후원을 받아 독자 노선의 노조를 설립하고 파업을 금지시켰다. 여성운동에 대해선 자기희생이 인도 전통의 여성적 미덕이라며 관념적 여성상을 내세웠고 명목뿐인 성평등 입법과 지원으로 하층민 여성들의 요구를 외면했다. 덩치만 큰 공산당 역시 민중의 요구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에 카스트 최하층에 속한 불가촉천민들은 ‘억압받는 자’라는 뜻의 ‘달리뜨’(간디가 사용한 ‘신의 아들’이라는 뜻의 ‘하리잔’과 대조를 이룬다)를 자칭하며 ‘불가촉천민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하는 반카스트 운동의 기치를 올렸고, 노동자들은 제도 정당에 종속되지 않는 독립노조 운동을 전개해 자생적 요구를 표출하려 했다.

    언제나 2~3중의 압력 아래에 놓인 채 외면당하던 여성과 부족민, 하층 농민들은 자신들의 현실 안에서 서로 연대하며 대안적 농민운동과 환경운동을 펼쳐나갔다. 대표적으로 까르나따까 농업연맹(KRRS)이 마을 자치와 성평등, 카스트 철폐를 원칙으로 무역 자유화의 물결과 함께 민중들을 수탈하는 카길·몬산토 등의 곡물 메이저와 맞선 사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낙살 반군 봉기 같은 급진주의적 저항 또한 인도 저항운동의 일면이다.

    이 모든 운동들은 이제 신자유주의적 개혁 프로그램이 초래한 새로운 곤경들과도 대결해야 한다. 기득권 세력은 경제성장을 위한 자본 투자 환경의 조성을 명분으로 무자비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수입을 자유화하며 자국의 수출/농업 보조금을 삭감해 사회적 약자들을 무방비한 상태로 경쟁 시스템에 노출시켰다.

    인도는 2011년 기준 글로벌기아지수(GHI) 65위로 심각한 기아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지역 간 불균형 발전 문제도 악화일로이다.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생태적 위기 폭증과 전통적 삶의 방식의 파괴 역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으며, 대도시 인구 집중에 따른 슬럼가 확산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파괴적 진행에 대해 반카스트 운동은, 농민운동, 노동운동은, 여성과 부족민 등 소수자 운동은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는 윗 문단에서 언급한 KRRS 등의 새로운 사례 외에도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침체기를 벗어나고 있는 노동운동을 언급하고 있다.

    역사가 보여 주듯 어떤 운동은 다시 현실의 파고 속에서 무너질지 모르지만 그 좌절을 유산으로 새롭게 일어서는 저항 역시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선은 저자들의 말처럼 “우리 스스로의 눈으로 인도 민중의 절망의 깊은 골과 투쟁의 높은 산을 그대로 마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도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세계의 민중이 처한 곤경이 점점 더 많은 연결점을 노출하고 있는 현재이기에, 우리가 스스로의 눈으로 인도 민중의 실천에서 우리의 난관을 돌파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또한 다른 민중에게 그들의 난관을 돌파할 실마리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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