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섬마을의 초가 - 까치구멍집
    [목수의 옛집 나들이] 함경도 산간집이 평지에 적응하는 과정 담겨 있어
        2013년 11월 01일 02: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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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 무섬마을

    영주 무섬마을은 지난 8월 23일에 국가지정문화재 주요민속문화재 278호로 지정되었다.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제주 성읍마을, 아산 외암마을, 고성 왕곡마을, 성주 한개마을에 이어 일곱 번째로 지정된 민속마을이다.

    마을의 형상은 안동 하회마을, 예천 회룡포와 같이 낙동강이 마을을 중심으로 크게 휘감아 돌아 마치 동네가 육지속의 섬과 같다. 낙동강 상류는 사행천(蛇行川)이기에 이와 같은 지형이 여러 군데 생긴 것이다.

    조선시대 마을은 양반과 평민, 노비가 따로 떨어져 살지 않고 한 마을에 같이 살았다. 상류층인 양반끼리만 한 동네에서 살면 적당한 격식과 품위는 유지되겠지만 평민이나 노비가 없으면 일상생활에서 무한한 서비스를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무섬마을에는 부유한 양반의 기와집과 일반 백성의 초가집이 한데 어울려 있다.

    이 동네 기와집은 주로 18세기~20세기에 지어진 것인데 이 동네만의 주목할 만한 특징은 없다. 경북북부 어디를 가더라도 쉽게, 자주 볼 수 있는 口자형 집들이다.

    무섬마을의 기와집은 그냥 지나쳐도 되지만 초가는 눈여겨 볼만한 집이 많다. 함경도의 田자형 겹집은 한반도 북부와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한 산간에 분포하던 것이 평지인 무섬마을까지 내려왔다.

    현대의 아파트 평면과도 비슷한 田자형 겹집은 지역에 따라 까치구멍집, 도토마리집 등으로 불린다. 출입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벽으로 막혀있던 까치구멍집이 평지에 적응하면서 어떻게 변화하는지가 보이는 곳이 이곳 무섬마을이다.

    까치 구멍집

    아궁이와 외양간이 실내에 들어와 있는 까치구멍집은 연기와 냄새의 배출을 위한 환기구가 반드시 필요하기에 지붕 용마루 양 끝단 아래 합각부분을 막지 않고 틔워 놓았다. 이곳으로 간혹 까치가 드나든다고 해서 까치구멍집이다.

    까치구멍집은 밖에서 보면 모두 벽으로 막혀있어 난방과 방어에 유리하다. 정면 가운데 있는 판문을 들어서면 봉당이고 좌우로 부엌과 외양간이 함께 있는 게 보통이다. 농경이 중심이던 시기에 소는 가족구성원으로 집안에 들어왔다. 바닥이 낮은 부엌과 외양간은 상부공간에 여유가 있어 고미다락을 만들어 추수한 곡식이나 생활용품의 보관소로 활용했다. 봉당 뒤로는 마루가 있고 좌우로 방이 있다.

    부유한 양반층의 집인 口자형 기와집은 공간의 용도와 사용자의 위계에 따라 안채, 좌우 부속채, 전면 사랑채 등으로 건물을 분리하였다. 반면 일반 백성들은 기능에 따라 건물을 따로 짓는 게 힘이 드니 한 채에 필요한 모든 공간을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생활의 지혜가 중첩되어 현대의 아파트 평면과 유사한 합리적인 공간배치가 나왔다.

    자 이제 무섬마을의 대표적인 초가를 한번 둘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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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덕우 가옥 / 사면이 막혀있는 산지형 까치구멍집의 전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363호 /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229-3번지

    무섬마을의 까치구멍집은 산간의 겹집이 평지의 일자형 집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박덕우 가옥은 조선 후기의 까치구멍집이다. 박정희 정권의 무지막지한 새마을 운동으로 지붕이 초가에서 시멘트 기와로 1976년에 바뀌었다가 근래에 다시 초가로 환원했다. 전형적 산간지방의 까치구멍집으로 모든 공간이 벽으로 막혀있고 외부로 열린 곳은 대문밖에 없다. 함경도나 더 높은 산지에서는 정면 중앙 출입문외에 밖으로 통하는 문도 없는 반면에 여기서는 안방, 건넛방에서 밖으로 바로 향하는 문이 있다는 것이 다르다.

    비교적 작은 규모이지만 앞부분에는 봉당을 중심으로 외양간과 부엌이 있고 뒷부분은 안방, 마루, 건넛방이 있는 전형적 산지형 까치구멍집이다.

    이렇게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방이 나뉘어져 있으면 두 군데 아궁이에 불을 떼야 하니 나무도 많이 필요하고 일도 많다. 한쪽에 방을 몰아서 배치하면 에너지 효율은 더욱 놓아질 것이나 마루를 중심으로 안방과 나머지 방을 나누는 이유는 2세 생산을 위한 부부들의 사생활 공간 확보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는 다년간 겹집 답사를 다닌 나의 친구의 의견이다.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 363호로 지정된 집이지만 요즘은 주인이 살고 있지 않아 문이 잠겨 있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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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진 가옥 / 까치구멍집 변화의 조짐 – 쪽마루의 부설로 공간의 확장.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361호 /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214번지

    김규진 가옥과 박덕우 가옥은 기본적인 구조는 다르지 않다. 박덕우 가옥에서 소가 있던 외양간을 방으로 확장한 것만이 다르다. 한 번씩 다니러 오는 50대 집주인의 말에 따르면 자신들이 어릴 때 칠남매와 부모님이 이 집에서 살았다고 하니 소가 바깥으로 쫓겨날 수밖에…

    이 집은 외부공간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바로 안방과 건넛방에서 밖으로 향하는 문 앞에 있는 쪽마루가 그것이다. 두 자도 되지 않는 좁은 쪽마루에 불과하지만 벽체 바깥에 외부로 열린 공간이 있다는 것에 커다란 의의를 둘 수 있다.

    이제 바깥에서 쪽마루를 통해 안방과 건넛방으로 들어올 수도 있고, 반대로 방에서 마루와 봉당을 통하지 않고 바로 밖으로 나갈 수도 있게 되었다. 여기서 부터 더 이상 까치구멍집은 벽체로 갇힌 집이 아닌 것이다.

    이 집은 한번 수리를 했지만 부재를 대부분 재사용 했기에 예스런 느낌이 잘 남아있다. 집 주인이 살지 않아 잠겨 있는 때가 대부분이지만 바로 앞집(오늘 네 번째 소개하는 김재진 가옥)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께 부탁을 하면 집안을 볼 수 있다. 연기로 까맣게 그을린 서까래, 사람들의 손길로 반질반질 하게 윤이 나는 마루, 출입문 앞 광창에 걸린 액막이용 엄나무 토막… 불과 삼십 년 전, 무섬마을 사람들이 살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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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규 가옥 / 까치구멍집의 본격적인 변화 – 기둥열 내부 툇마루 부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362호 /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227-1번지

    이 집은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 총 아홉 칸 집으로 까치구멍집으로는 규모가 크다. 특히 두 칸 반의 건넛방은 매우 넓다. 동네 어르신께 들으니 전에는 둘로 나누어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 앞쪽의 방은 사랑방이었고 자그마한 마루는 사랑마루였단다.

    왼쪽 앞의 모퉁이에 있는 자그마한 마루가 이집의 특징이다. 건너방의 앞쪽 반 칸을 잘라서 만들었는데 벽으로 막힌 공간이 아니라 외부로 열린 공간이다. 앞의 김규진 가옥에서는 단순히 쪽마루를 덧달아 외부공간을 끌어들인 것에 불과하지만 여기서는 적극적으로 내부공간을 잘라서 외부로 열어 놓았다.

    난방의 효율과 방어를 위해 벽으로 막힌 집의 내부에 모든 공간을 배치하던 까치구멍집에 변화가 생겼다. 폐쇄적인 까치구멍집이 평지의 개방적인 일자형 초가를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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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진 가옥 – 까치구멍집과 평지형 초가와의 만남.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217번지

    김재진 가옥은 매우 큰 집이다. 초가이기는 하나 사랑방 창호 아래에는 쌍사를 넣은 머름을 짜 넣을 정도로 격식도 있는 집이다.

    사진으로만 보면 평지의 개방적인 일자형 초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집의 전면 반을 차지하는 두 칸 툇마루는 벽으로 막힌 일반적인 까치구멍집과는 달리 시원함 개방감을 준다. 여기로 오면 사랑방의 주된 출입구가 바깥으로 열린 마루를 향해 열린 문이다. 때문에 하나의 통로를 통해 집안의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까치구멍집 특성을 잃고 있다.

    오른쪽 반은 까치구멍집, 왼쪽 반은 일자형 초가가 결합된 집이다. 드디어 산간의 폐쇄적인 까치구멍집은 평지의 개방적인 일자형 초가와 만난 것이다.

    이 집은 소개하는 네 집 중 유일하게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다. 할머니가 본채가 아닌 부속채에 방을 한 칸 들여 살고 계신다. 본채는 여름이면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이 되는데 그곳에서 할머니들의 살아오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집도 1970년대 초가에서 시멘트기와로 바뀌었다가 민속마을로 지정받기 위해 얼마 전 다시 초가로 환원했다. 며칠 전 들러니 할머니께서 초가에 굼벵이가 많아 불편하다고 지청구를 하시더라.

    깊어가는 가을 무섬마을로 가보시라.

    양반들이 살던 고래등같은 기와집은 그냥 지나쳐도 된다.

    곧 무너질 것 같더라도 또 비어 있더라도 초가를 찬찬히 살펴보자.

    혹시 할머니가 혼자 계시는 집을 들리게 되면 잠시나마 말벗이 되어 드리면 더욱 좋다.

    아무도 없는 집의 툇마루에 앉아 쬐는 가을볕이 참 좋다.

    필자소개
    진정추와 민주노동당 활동을 했고, 지금은 사찰과 옛집, 문화재 보수 복원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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