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정규직화 공약 파기 감추기?
[현장편지]고용노동부 ‘사기저하’ 이유로 ‘무기계약직’ 새이름 공모 … 누리꾼 ‘종신노예직’ 조롱
    2013년 10월 29일 09: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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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4일 박근혜 정부와 고용노동부는 25년 동안 참교육을 위해 힘써온 전교조 6만 명의 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했습니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박근혜 정부에 대해 헌법과 법률에 의한 대통령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하며 멋지게 응수했습니다.

국정원과 군대, 정부 부처가 모두 나서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박근혜 씨는 그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정권의 정통성을 위해 교사들을 제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교조 교사들은 25년 전 노태우 군사독재정권에 무릎 꿇지 않고 맞섰던 것처럼 당당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고용노동부는 언론에 보도자료 한 줄 내지 않고 새로운 공모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야심찬 사업의 이름은 <“무기계약직” 근로자 새이름 공모전>입니다.

고용노동부는 예산과 인력을 들여 이 사업을 벌이는 이유를 “‘무기계약직’은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 근로자임에도 용어가 주는 딱딱한 어감과 계약이라는 단어가 강조되어 해당 근로자의 사기를 저하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고용노동부는 “미래지향적이고 긍정적이며, 국민 모두가 부담없이 지칭할 수 있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기 위해 10월 24일부터 11월 3일까지 공모전을 합니다. 1등에게 50만원 상품권 등을 지급하며, 11월 11일 ‘우수 아이디어’를 발표합니다.

전교조에 ‘노조 아님’ 통보한 날 ‘무기계약직’ 새이름 공모전

새이름 공모전

<사진 = 고용노동부 새이름 공모전 홈페이지(http://moel-event.kr/newname)>

국어사전을 보면 정규직은 “기간을 정하지 아니하고 정년까지의 고용이 보장되며 전일제로 일하는 직위나 직무”를 말합니다. 비정규직은 “근로 방식 및 기간, 고용의 지속성 등에서 정규직과 달리 보장을 받지 못하는 직위나 직무. 계약직, 임시직, 일용직 따위가 이에 속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무기계약직은 어느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은 무기계약직이 고용은 어느 정도 보장되지만 임금과 처우는 정규직보다 훨씬 열악해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중규직’이라고 부르거나 ‘짝퉁 정규직’이라고 말합니다. 정규직인 것처럼 속이려고 하고 있지만 ‘사실상 비정규직’이라는 뜻입니다.

고용노동부는 공모전 안내에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기간제 근로자와 달리 고용이 안정된 사실상 정규직 근로자”라고 했습니다. 비정규직이 아닌데 ‘계약직’이라는 단어 때문에 억울하게 비정규직으로 인식되고 있어서 이름을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무기계약직은 사실상 정규직? 사실상 비정규직?

무기계약직이 기간의 정함이 없는 정규직과 똑같다면 그냥 정규직이라고 하면 되지 왜 ‘사실상 정규직’이라고 할까요? 도대체 이 ‘무기계약직’이라는 해괴망측한 단어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노무현 정권은 2006년 11월 30일 비정규직 당사자들과 민주노총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법(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의보호등에관한법률)을 날치기 통과시켰고, 2007년 7월 1일 시행되었습니다.

사용자들은 2년 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피해가기 위해 2년이 되기 전에 해고하거나 외주, 용역, 하청으로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기간제 노동자들을 한꺼번에 해고하거나 외주화하면 업무가 마비될 수밖에 없었던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처우는 비정규직이지만 고용을 보장하는 새로운 직무를 부여해 ‘무기계약직’을 만들어냈습니다.

2007년 우리은행과 신세계가 각각 3000여명과 5000여명의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고, ‘가짜 정규직’이라는 노동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가 무기계약직을 인정하면서 공공과 민간부문으로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2년 경과 후 정규직 전환을 피하기 위한 꼼수

무기계약직의 신분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두 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올해 1월 25일부터 한 달간 전국 초중고 1만1000여 개 학교를 대상으로 학교비정규직 계약해지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6475명이 해고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중 기간제 노동자는 5537명(85.51%)이었고,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 전환 대상자로 분류될 상시·지속적 업무자는 5128명으로 기간제 노동자의 92.61%에 달했습니다.

해고된 노동자 중에서 정부가 ‘사실상 정규직’이라고 주장해왔던 무기계약직이 1118명(17.26%)이나 해고됐습니다. 무기계약직이 ‘무기한 계약직’도, ‘중규직’도 아닌 ‘짝퉁 정규직’이라는 사실이 정부 조사 결과에서 확인된 것입니다.

경기문화재단은 “공공기관으로서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을 통한 안정적 일자리 확립에 모범을 보이고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기조에 동참한다”며 지난 7월 30일 열린 정규직 전환 심사에서 무기·전문계약직 직원 32명을 문화행정직과 학예연구직 등 정규직으로 전환했습니다.

공공기관 스스로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학교 무기계약직 1118명 해고됐는데 고용보장?

고용노동부가 ‘무기계약직’의 새로운 작명 운동에 나선 이유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라는 대선 공약과 무관하지 않은 듯합니다.

박근혜 씨는 비정규직 제 1공약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내걸었고, 고용노동부는 “대통령 공약대로 공공부문 상시·지속적 업무의 비정규직을 2015년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말하는 정규직은 임금과 처우가 정규직과 비교할 수조차 없이 열악한 ‘무기계약직’이었습니다. 매년 임금인상도 정규직과 차이가 컸습니다.

10월 21일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비정규직이 무기계약직으로 바뀔 경우 정규직과 동일한 임금인상률을 적용하고, 복리후생비도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무기계약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295개 공공기관에 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동일한 임금과 처우가 아니라 동일한 임금인상률은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의 격차를 더욱 확산시킵니다. 정규직보다 훨씬 낮은 임금을 받는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에게 정규직과 동일한 3%를 인상시켜도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올해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은 97,000원 인상돼 정규직 임금인상분과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호봉, 각종 수당, 성과급, 상여금, 각종 단체협약 상의 임금을 포함하면 사내하청의 임금총액은 정규직 노동자의 5~60%에서 좁혀지지 않고 더욱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무기계약으로 전환한 이들의 임금을 각 공공기관 특성에 따라 연봉제나 직무급제 등으로 적용하도록 했고, 처우 개선 등 추가 비용도 각 기관이 자체 재원을 활용해 처리하라는 해 임금과 처우의 극심한 차별은 해소될 가능성이 전무합니다.

결국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의 차별을 해소할 의지도, 계획도 없는 정부는 ‘무기계약직’이라는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를 바꿔 ‘상시·지속적 업무의 정규직화와 차별해소’라는 공약을 파기하지 않은 것처럼 눈속임을 하려는 것입니다.

공약 파기 숨기기 위해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둔갑시키기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10년 2월 5일 고용노동부는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집단이라는 부정적 가치를 확산시킨다”며 전문가와 이해당사자 등의 의견을 수렴해 다른 단어로 바꾸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대해 노동자들은 현대자동차가 “거부감이 일거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담은 용어에 대한 순화운동”을 벌인다며 ‘사내하청’을 ‘협력업체’로 바꾸는 운동을 했던 것을 노동부가 따라하느냐며 비판했습니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니까 비정규직을 유령직으로 하면 되겠냐?”며 노동부를 비판했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시간이 흘렀지만 비정규직, 사내하청이라는 단어는 다른 ‘긍정적인’ 말로 대체되지 않았고, 노동자들의 착취와 차별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자 고용노동부는 비정규직 대신에 ‘무기계약직’을 다른 ‘멋진’ 이름으로 바꾸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2010년 비정규직을 다른 말로 바꾸자던 노동부

멋진 이름을 지어주고, 재수 좋으면 상금도 받을 수 있는 고용노동부의 이름 공모에 많은 노동자들이 참여하고 있을까요? 비정규직, 무기계약직 당사자들이 정부의 주장처럼 ‘사기를 저하시키는’ 스스로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바꾸겠다며 고용노동부의 취지에 동참하고 있을까요?

신종노예, 어떻습니까? 포에버 슬레이브는요?(Nam** 10월 24일 오후 4:21)

정규직이랑 대우가 같다면 무기계약이란 단어를 없애고 정규직이라고 하면 될 텐데.. 실제로는 처우도, 대우도 달라요. 무기계약은 정규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어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기보다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김** 10월 24일 오후 4:49)

무기계약직때문에 배움카드도 혜택 못받고 정규직이면 정규직 계약직이면 계약직이지 무기계약직은 누가 만들어서 평생 백만원 받으라는건가요? 나쁜 사람들(조** 10월 25일 오전 9:20)

‘평생직장 근로자’라고 쓰고 종신노예라고 읽는다.(안** 10월 24일 오후 5:16)

무기계약직이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 근로자라면 그냥 정규직이라고 호칭하여서는 안 될 이유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호칭이 아니라, 실제로 정규직 근로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 없는가입니다. 그 동등한 대우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노동부의 역할인데, 어찌하여 이는 방기한 채 따로이 다른 호칭을 공모하려고 합니까. 다리가 낡고 위태로워 무너지려고 하는데, 이를 고칠 생각은 않고 페인트칠만 새로 하려는 수작은 그만 두시고 본연의 업무를 이행하시기 바랍니다.(Choi** 5시간 전)

눈가리고 아옹이네.(이** 10월 24일 오후 10:56)

님들 이름부터 고용자본부로 바꾸는건 어때요? 노동자들 응원은 못할지언정 똥은 뿌리지 말아주면 안될까요? 제발 가만히 있어주세요.(최** 10월 24일 오후 4:39)

웃기고있네. 정규직은 근속연수가 있어서 월급이 오르지만 무기계약직은 평생 월급이 안 오르는데 무슨 정규직 대우야?(정** 10월 24일 오후 4:08)

가난하고 낙후된 동네를 판자촌이라고 부르면 어감이 부정적이니까 비버리힐즈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요? 용역깡패들이 비버리힐즈를 강제철거한다고 하면 이상하니까 리모델링이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요? 이름만 바꿔 부르면 빈곤과 주거지 문제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겠죠?(손** 2시간 전)

어디서 같잖은 짓거리를.. 정규직이면 정규직이지 무기계약직 새이름은 뭔 개소리야(오** 6시간)

고용노동부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moel.tomorrow)에 올라온 글들입니다. 아마 이 글이 나가면 국정원이 즐겨 했던 것처럼 갑자기 칭찬하는 댓글이 쉴 새 없이 달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참, 고용노동부는 ‘노사브라보’라는 명칭으로 운영 중인 노사문화 홈페이지의 새 이름을 10월 31일까지 공모한다고 합니다. 대상에는 상금 100만원을 준다는데요, 누리꾼 여러분과 특히 노동자 여러분, 이들에게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재벌브라보’나 ‘정경한마음’은 어떨까요?

고용노동부에 딱 맞고 재밌는 이름을 지어 마음껏 조롱해주세요^^

필자소개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전 금속노조 비정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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