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신'의 악마화를 걷어내라
    [책소개]『광신-어느 저주받은 개념의 계보학』(알베르토 토스카노/ 후마니타스)
        2013년 10월 26일 03:30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이 책은 어느 저주받은 개념의 계보학을 다시 그리는 책이다. “관용과는 담을 쌓았고 소통은 불가능하며, 어떤 논쟁도 용납하지 않으면서 오직 상대편의 관점이나 생활 방식이 뿌리 뽑힐 때라야 비로소 안도하는” “폭력적 신념에 사로잡혀 있는” 광신자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역사에서 그들은 다양한 형상과 목소리로 등장했다. 천년왕국운동, 노예폐지론자들, 농민 혁명가들, 아나키스트들, 마르크스주의자들에서부터 오늘날 이슬람교도들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그들을 부르는 데에는 지역적 차이도, 시간의 간극도, 역사의 맥락도 필요치 않다.

    제 아무리 말을 걸고 설득하려 해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고, 바꿀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주제를 다른 것으로 돌리는 것마저 용납하지 않는 고집불통들, 시대착오자들, 미친 신념의 무리들……. 그런 이들을 설명하는 말은 바로 ‘광신’이라는 한 단어면 족하다. 이런 점에서 광신 개념은 역설적으로 역사가 없다. 그것은 그저 비난의 대상이자, 비역사적인 병리 현상일 뿐이다.

    광신

    그렇다면, 우리 시대 광신은 무엇인가?

    우리 시대 광신자로 규정된 이들은 자본주의사회를 넘어 그 외부를 사유하는 이들이다. 사회는 존재하지 않으며, 대안은 없다는 신자유주의의 구호 아래에서, 자유는 자연적인 것이고 평등은 인위적인 것이라는 지배적인 생각 아래서,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 평등은 달성해야 할 목표이기에 앞서 사회의 전제 조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두 우리 시대의 광신도들이다.

    주주들은 수백억 주식 배당 잔치를 벌이면서도 노동자들은 경영상의 위기를 명목으로 마음대로 자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정리 해고에 반대해 크레인에 올라가 제 몸을 묶은 자, 전력 대란이라고들 하는 사회에서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드러누운 자, 민주주의국가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해 촛불을 켠 자, 이 모든 이들에게도 광신자라는 딱지가 붙는 건 마찬가지다. 하물며, 그들에게 연대와 지지를 보내는 행동은 순진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에게 광신의 씨앗을 심는 외부 불순 세력의 행동에 다름 아닌 것이 된다.

    과연 이들은 단순한 미치광이에 불과한 존재들인가? 그들이 만들어 낸 역사의 풍경은 그저 한순간의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인가? 이 책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외려 이 책은 기존 질서를 넘어서려는 모든 급진적 시도에 ‘광신’이라는 딱지를 붙일 때, 이런 급진적 시도를 만들어 낸 ‘원인’과 대면하기를 거부할 때, 그 사회는 자신의 모순을 극복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역량을 상실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광신을 오로지 병리적인 관점에서만 다루는 기존의 주류 담론을 넘어, 광신의 이면에 담긴 정치적 차원을 되살리는 것, 바로 이것이 서양 철학사와 정치사를 종횡무진 누비며 토스카노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이다.

    다른 어떤 시대보다도 근본적 저항을 반대하는 운동에 의해 규정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광신이 또다시 모욕적 용어나 정치적 비방의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현재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이 책은 광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칸트, 헤겔, 마르크스, 그리고 프로이트, 블로흐, 바디우를 관통하는 비판적·변증법적 계보를 재조명하고, 광신 개념이 겪은 어두운 모험들을 읽어 나간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전체주의 대 자유주의, 회의 대 신념, 합리 대 광신 등으로 모든 논의를 단순화함으로써, 모든 대안과 가능성을 봉쇄해 온, 정치 종교 담론과 세속화 담론의 이면을 파헤친다. 토스카노의 이와 같은 연구의 목적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악마화 담론 속에 갇혀 있는 광신 개념을 비판적으로 발굴함으로써 열정과 관념을 해방의 정치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수용할 수 있는 정치적 어휘를 재구성하고, 비판자들에 의해 관념적이며 위험한 열정으로 인식될 ‘평등주의적 정치’, ‘해방의 정치’에 관해 기여하고자 한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