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대강 '사업'을 넘어
    여전히 지속되는 개발과 재앙들
    [흘러야 강이다 ⑥] 자연 경시와 인간 기술의 오만함들
        2013년 10월 25일 10:52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기이한 일이다.

    4대강 사업이 완공된 지 일 년이 넘었는데, 한창 4대강 공사중일 때 보다, 4대강 곳곳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보다도 오히려 요즘 4대강 관련 보도를 훨씬 많이 접할 수 있다. 2013년 국정감사는 ‘4대강 국정감사’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국토교통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뿐 아니라 13개 상임위 중에서 11개 국정감사에서 4대강 관련 질의가 나왔다니 말이다.

    또한,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만에 나온 ‘충남도 금강 물고기 집단폐사 민관합동 조사단’의 공동조사 보고서가 10월 21일 공개되었다. 결론은 물고기 집단폐사의 원인은 4대강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사고 직후 대한하천학회나 시민단체들이 제시한 ‘용존산소 부족으로 인한 폐사’라는 추정과 달라지거나 심도있는 내용도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을 뒤늦게라도 잘못을 바로 잡으려고 하는 노력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까? 아니, 그보다 뒷북은 알아서 치게 놔두고 우리는 지금까지 짚어 온 문제들을 바로 잡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책임자 처벌과 강의 복원

    얼마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이준익 감독이 출연하여 자신이 연출한 영화 “소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2008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두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소원”은 사건의 처리 과정이나 가해자에 대한 처벌보다는 피해자가 삶을 회복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따뜻한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감독은 “피해자에 대한 과중한 처벌을 주장하는 관성이 약간 비겁할 수 있다”며 “뉴스에 범인이 나타나면 ‘저 놈은 죽여야 해!’라며 본인의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하면서 피해자의 삶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이 그치는 모습에 대해 지적하며 영화의 연출 의도를 밝혔다. 분노를 유발하고 그에 편승하는 것이 가장 쉬운 선택이라는 것이다.

    인권을 유린하는 여러 사건들과 자연을 수탈하는 사업들은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지만, 특히 그러한 면에서 닮아있다. 가해자를 철저히 처벌하는 것은, 어리석은 반복을 피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지만, 가해자의 형량을 늘린다고 피해자의 삶을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정책과정과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파괴된 자연은 책임자 처벌만으로 복원되지 않는다. 이렇게 변해버린 자연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는 당장 ‘범인’을 처벌하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훨씬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

    가해자에 대한 조치 -단순한 처벌이 아닌 단죄(斷罪)가 필요한 시점

    책임자 처벌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정쟁에서 칼로 쓰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수와 실패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는 데에 있다. 흔히 사용하는 ‘단죄(斷罪)’라는 단어의 본래 뜻은 죄를 끊어낸다는 뜻이다.

    그 동안 목적 대규모 토목사업이 끊임없이 이슈화 되면서도 같은 패턴의 싸움이 반복되어 온 것은, 책임자 처벌과는 별개로 적어도 진정한 의미의 단죄는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의미한다.한 번 삽을 뜬 사업은 강행할 수 있으며, ‘먹튀’ 후에도 별 뒷탈 없이 더 큰 먹잇감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사회. 그 사회가 만들어 낸 괴물이 바로 4대강 사업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4대강 사업의 결과를 무기로 휘두르려는 많은 정치세력은 4대강 사업의 주체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민주-참여정부 10년동안 벌어졌던 개발사업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지금 국토 환경의 수호자인 것처럼 나서고 있는 세력들이 ‘경제’를 살리겠다는 미명하에 경제성도 없는 사업을 강행했던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이 사업을 빌미삼아 한 세력이 다른 세력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이다.

    그 주체가 누구이든지 한 사람, 혹은 한 편의 이익을 위해 대규모 토목사업이 추진되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로의 이행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사회로의 전환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영주댐 건설, 댐건설 중장기계획 등을 멈춤으로서 가능하다.

    이미 4대강 사업의 허구성이 드러나고 책임자 처벌을 논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진행 중인 사업들을 멈추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공정율을 따지며 매몰비용을 논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오류를 되풀이 하는 것에 불과하다.

    현1

    ▲ 내성천 전경

    현정2

    ▲ 영주댐 건선 예정지 하류 내성천 바닥의 자갈.
    이전보다 많이 거칠어진 입자를 볼 수 있다.

    피해자에 대한 조치 -복원, 재자연화, 자연성 회복… 문제는 내용

    요즘 한국사회에서 4대강 이후에 달라진 강을 되살리기 위해 취해져야 할 조치를 의미하는 용어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단어는 ‘재자연화(renaturalization)’란 단어이다. 흔히 사용되는 ‘복원(restoration)’이란 용어가 아니라 재자연화라는 단어가 쓰이게 된 것은 복원이라는 단어가 원래의 의미와 다르게 남용되고 오염되었다는 인식이 확산된 데에서 기인한다.

    실제로 복원이라는 단어는 가장 일반적이며 포괄적인 단어로, 기술적이고 단기적인 보수에서부터 유역의 기능적인 복원에까지 폭넓게 쓰이고 있지만, 그런 만큼 실질적으로는 개발사업이면서 사업의 본질을 흐리고 좋게 포장하기위해 이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4대강 ‘살리기’ 사업 역시 죽어가는 강을 복원하겠다는 목표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 외에도 하천의 서식처로서의 기능을 강조하는 회복(rehabilitation)이나 소생(reviving)이란 용어도 사용된다.

    용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 의미나 사회적 용례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중요성이 구체적인 내용의 중요성을 앞설 수는 없다. 복원이라는 단어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4대강의 재자연화가 필요함을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에 대해서는 합의된 바가 없다.

    물론 개략적으로 공감대를 이룬 부분도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한 변화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심각하게 일어났다는 현상 인식과 그러므로 강은 다시 흘러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언젠가는 보를 철거해야 할 것이라는 정도이다. 문제는 그러한 내용을 어떤 사람들이 모여 논의할 것인지, 이미 일어난 변화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지,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두 다른 상을 가지고 있으며, 거기에 각자의 정치사회적 이해가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공간과 사람에 대한 애정, 그리고, 긴 호흡

    대규모 개발사업은 그 자체로 인간성 상실의 단편을 보여줄 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파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경제적인 이익을 미끼로 사람들을 이간질시켜 분열과 싸움을 조장하는 일은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영양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한 장파천 일대의 마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양군수의 비리와 영양댐에 대한 언론의 관심으로 댐건설 반대 운동이 힘을 받던 와중에 열린 제2회 장파천 문화제에서는 도중에 경운기로 축제중인 교차로 한 가운데를 지나가며, 불편함을 나타내는 주민이 있었고, 며칠 후, 누군가 축제 때 만든 솟대를 베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정3

    ▲ 영양댐 건설로 수몰위기에 처한 장파천

    현정4

    ▲ 지난 6월 제2회 장파천 문화제에서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 만든 솟대

    현정5

    ▲ 세워진 솟대

    경제적인 이익만이 위기를 낳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도림천과 관련한 한 학술대회에서 나경채 관악구 의원은 “도림천에는 4년에 한 번씩 위기가 찾아온다고 알려져 있다.”는 발언을 했다. 청중들은 웃음과 함께 그 말이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해 곱씹었을 것이다.

    자연 환경을 대상으로 정책을 만들고 그 정책을 본인의 치적으로 삼는 것은 이제 매우 일반적이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로인해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려 없이 정책이 세워지고, 그간의 추진 방향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히거나 임기 내에 무언가를 완성하기 위해 무리하게 계획을 추진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 또한 장기적으로 꼭 필요한 일들이 계속해서 유보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요즈음 밀양의 상황 때문에 다시 회자되고 있는 말이 ‘외부세력’이라는 말이다. 원칙적으로 지역 주민이외에는 모두가 외부세력으로 불릴 수 있다. 그러나 그 공간을, 그리고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 이들을 단순히 자신의 이익-그 이익이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혹은 둘 다 이든지-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사람들은 명확히 다르다. 후자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외부세력일 것이다.

    진보정당이 다른 정치를 하겠다면, 여기서부터 다른 정치세력들과 달라야 한다. 개발과 지역의 현안을 정치적인 도약대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지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오랜 시간 함께 고민하고 헤쳐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환경을 지키고 복원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자연 그 이상의 시스템과 인간 공동체 자체를 복원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환경운동의 오래된 구호,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Think Globally, Act Locally!)’는 여전히 유효하다.

    4대강 재자연화의 과정이 4대강 사업처럼 전국 규모에서 일괄적으로 적용된다면, 그것은 제2의 4대강 사업과 다를 바 없는 사업이 될 것이다. 그 과정은 지역의 문제를 면밀히 검토하고, 당사자들의 의견을 모으는 절차를 거쳐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때로는 당사자로, 때로는 든든한 지원군으로 지속적으로 연대하며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질서

    대부분의 환경문제는 상당부분 우리가 저지른 난개발의 결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하나도 놓치지 않으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그러나 많은 사례들이 삶의 방식의 변화와 양보 없이 기술발전만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4대강 사업은 경제적 목적을 가진 특정 세력의 강력한 의지와 권력에 의해 추진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의 힘에 대한 경시와 인간의 기술에 대한 오만함이 사회 전반적으로 깔려있기에 가능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4대강 사업이후 홍수피해액이 8배나 증가했으며, 보호동물 28종이 낙동강을 떠났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주댐은 여전히 건설 중에 있고, 댐건설 중장기 계획에는 10년 내에 14개의 댐을 건설할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4대강 사업으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천 차원에서 ‘고향의 강 정비사업’ 등 여러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우리는 무력감을 느끼며 같은 싸움을 계속 하게 될지도 모른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구호 중에 가장 직관적인 구호 중 하나가 ‘강은 흘러야 한다.’는 구호였다. 그러나 훨씬 더 긴 시간과 공간 차원에서 보자면 강들은 4대강 사업과 상관없이 언젠가 다시 흐를 것이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강이 주는 혜택을 누리며 조화롭게 살 것인가는 우리 스스로의 몫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결국 그 결과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돌아 올 것이다.

    강과 사람 모두를 위한 새로운 질서가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필자소개
    ㈜국토환경연구소 연구원, 대한하천학회 이사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