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신당, 또 논란의 광풍에 휘말리나
    [기고]남의 집 불구경하듯 할 수 없는 한 당원의 걱정
        2012년 06월 13일 04: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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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로부터 ‘싸움구경과 불구경이 제일 재미난다’라는 속담이 있다. 인간 내부의 악한 심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속담이 생각났다. 언제? 지난 9일 진행된 진보신당 전국위를 구경하다가. 무언가 무난하게 끝날 것 같던 이 날 전국위는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진보신당 아니랄까봐 길고 때론 지루하게 때론 놀랍게 진행됐다.

    남의 집 일이라면 그저 즐겁게 구경만 하면 된다. 헌데 이제 우리 집 일이라 근심만 커진다. 앞으로 진보신당에 불어 닥칠 또 한 번의 광풍의 향기가 이 날 전국위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진보신당 9차 전국위

    삭제된 총론, 통진당과 민주노총 비판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인가

    “새로운 주체의 형성과 정치세력화를 외면하고, 출세주의와 극단적 정파패권주의로 무장하고서 진보 통합을 운운했던 세력들의 실체가 낱낱이 들추어지며, 자신을 지지했던 대중들에게도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대중운동 지도부를 구성하였던 주류의 세력들 또한 관료적 조직운영과 약자에 대한 이중의 배제를 마다하지 않으며, 운동의 쇄락과 정치적 조직적 기반의 해체과정에 일조하고 있다.”

    전국위원회 논의 결과 삭제된 총론의 일부다. 총론 삭제를 수정동의안으로 제출한 김준수 전국위원은 “‘출세주의’, ‘극단적 정파패권주의’. ‘비웃음의 대상’ 등 당 공식문서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고 근거를 제시했고, 55명 중 33명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공당의 문서에서 쓰지 말아야 할 문구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신당의 사업계획에서 통합진보당과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왜 굳이 필요하단 말인가.

    ‘진단’ 수준에서 언급될 수는 있다. 최근 통합진보당 사태로 인한 국민의 실망, 민주노총 현장 노동자들의 혼란과 동요 등 진보신당이 처한 조건에 있어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객관적 서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총론은 그저 통합진보당으로 간 새진보통합연대에 대한 분노와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불신 토로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일부 진보신당 활동가들이여, 언제까지 탈당한 통합파들과 민주노총 비판으로 먹고 살 생각인가.

    안티테제는 언제까지나 우리를 소수로 만들 것이며, 대안세력은 커녕 비토세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역시, 그걸 부정할 수는 없지만.

    ‘9월 중순까지’ 재창당 1표차로 가결, 표찰을 든 전국위원들에게 묻는다

    놀라운 것은 ‘9월 중순까지’ 재창당 시한이 통과된 일이다. 이 수정동의안을 제기한 이근선 전국위원은 “진보좌파정당 건설에 동의하는 세력과 함께 하반기 창당을 목표로 추진”이라는 원안이 “시한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으면 붕 뜰 수밖에 없다”라는 이유로 9월 중순을 명시할 것을 주장했다.

    어차피 창당준비위 등록 후 6개월 내 창당이 법적 시한이기에 10월 18일까진 형식적 창당이라도 할 수밖에 없다는 건 이미 다들 아는 사실이다. 10월 18일과 9월 중순의 차이는 과연 무엇인가. 노동, 학계 등 타 세력과의 논의를 통한 더 넓고 힘 있는 진보좌파정당의 건설, 그리고 실질적인(!) 재창당을 하는 데는 하루라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이라는 시한을 더 당겨 재창당을 해야한다는 이 선택에, 진보신당이 지금의 존재감을 넘어 통합진보당의 우경화 속에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도모해야 한다는 전체 진보운동의 책임감이 요만큼이라도 있는 전국위원이라면 이 안에 찬성 표찰을 들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재창당이 붕 떠버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외부세력을 언제까지 기다리느냐”는 주장으로 9월 중순 창당을 주장한 동지들의 걱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필자의 걱정은 현재 진보신당 그대로 재창당을 할 경우다. 어떠한 외부적 확대도 깊이도 없이, 진보진영 전체에서 회자되지도 않을 그런 조용한 재창당 말이다.

    그래서 이 안건에 표찰을 든 전국위원들께 묻는다.

    첫째, 9월과 10월 한 달의 기간의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나.
    둘째, 통합진보당에도 진보신당에도 마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진보적 대중을 어떻게 감싸 안을 것인가, 그럴 의지는 있는가.
    셋째, 진보신당의 재창당이 진보정치의 재구성과 맞물려 있어야 한다는 혁신의 의지에 동의는 하는 건가.

    이 세 가지 질문은 물음이자 필자의 주장이기도 하다. 법적시한인 10월 18일까지는 어떻게든 노동, 학계 등 타세력과의 만남 및 함께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며, 이는 진보신당의 초라한 정치력과 대중적 지지를 높이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리고 재창당은 그저 세력끼리의 규합이 아닌 진보정치 혁신의 내용에 동의하는 이들의 집합이어야 한다.

    ‘좌파공동대응을 전제로’의 함의를 모르는가?

    대선과 관련한 원안은 “좌파 공동 대응을 전제로 추진하며, 좌파 논의 결과에 따라 대응 수위를 결정하여 진행”이라고 서술됐다. 이에 대해 다수의 전국위원이 “좌파 공동 대응이 아니면 대선을 치르지 않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는 오독이 아니라 그 뜻을 제대로 읽은 것이다. 전제가 좌파 공동대응이라면 좌파공동대응이 불가능할 경우 진보신당만의 대선은 치르지 않는다는 지도부 의지의 표현이다. 이에 문제를 제기한 전국위원들이 굳이 이런 질문은 한 이유는 그분들의 머릿속엔 독자 후보 출마를 통한 대선 대응이란 전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선 후보 배출을 위해서는 대선후보에 걸맞는 후보군이 존재해야 하며, 3억원의 기탁금을 포함해 최소한 10억여원의 자금과, 대통령 선거를 치러낼 수 있는 조직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선거결과 이후 당의 정치적 상황 예측도 빼놓을 수 없는 판단 기준이다.

    그렇다면 지금 진보신당에 대선후보에 맞는 후보군이 있는가. 좌파 공동대응을 통해 만들 수도 있고, 당 내부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답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재정 상황은 어떠한가.

    2012년 대선은 정권교체를 중심으로 표쏠림 현상이 총선보다 더 극심할 것이다. 그 안에서 진보신당 후보는 어떤 결과를 얻을까. 총선 당시 우리가 얻은 1.13보다 낮은 수치라면 당은 앞으로 어떤 후과를 맞게 될까.

    필자는 대선 후보 출마를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정당으로서 대통령 후보 출마는 지극히도 당연한 주장이다.

    87년 대선 이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진보독자후보, 후보 대응이 불가능해질 경우 그것 또한 철저한 비극이란 점도 당연히 고려돼야 한다. 그러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현재 우리의 상황에서 이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무조건 후보 출마와 무조건 완주를 전제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또 닥칠 논란의 광풍, 당의 체력이 걱정이다

    지난 9일 전국위를 지켜보며 든 생각 중 가장 큰 것은 대선대응을 중심으로 이 작은 당이 또 한 번의 논쟁에 휘말리겠구나 하는 불길한 예감이었다. 이미 거대한 논쟁으로 분당사태까지 겪은 진보신당이 지금의 체력으로 그 논쟁을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욱이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강조하는 좌파 특유의 논쟁・대화 방식 또한 문제다.

    이미 지난 독자/통합 논쟁에서 충분히 겪지 않았는가. 굳이 싸우지 않을 일도 전투적으로 어렵게 치러내왔던 진보신당, 그에 대한 반성 없이는 당의 미래도 없다.

    부디 대선과 관련한 건강하고 건설적인 논쟁을 기대한다. 진보신당이 한국 정치의 진보적 대안으로 제대로 서야한다라는 원칙하에 머리를 모아 결론을 도출하자. 그리고 정치적으로 판단하자. 우리에게 정언명령은 없다.

    또 한 번의 피터지는 전투가 치러질 경우, 가장 먼저 떨어져 나갈 건 당원들이다. 작년의 격한 논쟁을 지켜보던 당원들은 이미 너무도 많이 지쳤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한 명의 당원으로서 간곡히 부탁 드린다.

    필자소개
    진보신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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