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색성장에서 창조경제로?
    거짓과 정치적 수사는 이제 그만!
    [에정칼럼] 에너지 지속가능성 지수, 한국은 64위
        2013년 10월 22일 01: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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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차 세계에너지총회가 ‘내일의 에너지를 위한 오늘의 행동’이란 주제로 지난 10월 13일부터 4일간 대구에서 열렸다. 각국 에너지 부처, 다국적 기업, 국제기구 등에서 많은 수장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참가자 수로 보더라도 역대 최고의 총회로 꼽힌다고 한다.

    3년마다 개최되면서 ‘에너지 분야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에너지총회를 주최하는 국제 민간기구인 세계에너지협의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최대한의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공급과 이용”을 목표로 한다.

    이번 세계에너지협의회는 에너지의 삼중고(Energy Trilemma)를 정의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리우+20회의 등 국제회의가 주도하는 담론들과 비교해서 새로움을 발견하기 힘들지만,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다.

    첫째, 미래에 지속가능한 안정적인 에너지원 확보인데, 보통 이는 에너지 안보로 부른다. 둘째, 에너지 수급 불균형 문제 해소로 에너지 형평성이나 에너지 접근성에 해당한다. 셋째, 기후 변화로 대변되는 환경적 책임은 보통 환경 지속가능성으로 말한다.

    세계가 직면한 이런 3대 난제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유사한 개념으로 우리에게도 제법 익숙해졌다. 그런데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또 다른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자본 친화적, 자본 유치적인 시장주의와 체제 이행 없이 첨단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기술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세계에너지협의회가 미래를 정의하는 방식인 셈인데, 2년에 걸쳐 실행한 세계에너지 삼중고(World Energy Trilemma) 연구 결과 중 하나로 제시된 ‘지속가능 미래를 위한 10가지 시행계획(action plan)’에서도 잘 드러난다.

    22차 세계에너지총회 개막식 모습

    22차 세계에너지총회 개막식 모습

    그렇다면 한국은 이런 논의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16일 ‘에너지정책의 삼중고 극복하기’ 주제로 열린 오프닝 세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연설한 내용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에너지 대전환’ 표현은, 핵발전과 밀양 송전탑 등 국내 현안을 처리하는 태도를 보면, 거짓이거나 수사에 불과하거나 이도 아니면 전혀 다른 생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번 총회의 공동 주관기관이 한국전력공사라는 점을 떠올려보자.

    ‘글로벌 에너지 협력의 대전환’은 상황이 조금 더 복잡하다. 18일에 서울에서 조용한 잔치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의 국제용으로 출범시킨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의 국제기구 전환 1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2010년 비영리 재단으로 설립되어 현재 덴마크, 호주, 캄보이다, 에티오피아, 영국, 베트남, 몽글 등 20개국이 회원국인데, 한국이 주도해서 만든 첫 국제기구로 불린다. 최고 통치자와 국정 기조가 바뀐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불과 1, 2년 전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행사였다.

    한편 글로벌녹색성장기구가 국제 협력의 실패 사례로 남을 수밖에 없는 소식이 멀리서 들려온다. 최근 덴마크에서 여행 경비와 관련된 정치 스캔들이 터졌다. 바로 글로벌녹색성장기구 의장인 라스 뢰케 라스무센이 그 주인공이다. 사민당 등 야당은 이를 공격하면서 글로벌녹생성장기구 의장 자리도 내놔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문제는 스캔들이 여기서 끝나지 않고, 글로벌녹색성장기구의 역할과 그 배경이 되는 한국의 ‘녹색성장’의 실체로 논쟁이 확대되고 있는 데 있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이 사실은 ‘고탄소 회색성장’이라는 사실은 국내외에서 주로 운동 진영에서 제기되었다. 유엔과 국제협력개발기구 등에서는 그 실체와 무관하게 한국을 녹색뉴딜의 모범 사례로 들곤 했다. 그런데 이제 글로벌녹색성장기구의 국제기구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던 덴마크에서 한국의 녹색성장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극적인 변화로 우리는 몇 가지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우선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이 국제사회에서 쟁점으로 부각된다. 그리고 4대강 사업을 동남아시아에 수출하려는 한국 정부와 기업의 ‘불순한’ 의도가 도마 위에 오른다. 그 결과 녹색성장을 해외에 전파하는 첨병인 글로벌녹색성장기구도 그만큼 타격을 받게 된다.

    글로벌녹색성장기구의 기능 축소는 박근혜 정부 들어 극명하게 나타났다. 녹색 간판이 창조로 죄다 변경되면서 녹색은 창조로 흡수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특별 연설에서 정점을 찍었다. ‘창조형 에너지 경제 모델’로 재탄생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명박 대통령의 녹색이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다. 석유제품 수출국과 원전 수출국으로서 에너지 강국, 에너지 중심국가로 도약하고자 한다. 에너지 저장장치(ESS), 에너지 관리시스템(EMS) 등 정보통신기술(ICT)이 녹색성장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라고 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하는 태도다.

    국제사회에서 에너지 삼중고 해결을 선도하고자 한다면, 한국의 노하우를 속살 그대로 보여야 한다. 세계에너지총회가 열리는 행사장 앞에서 울려 퍼진 밀양의 진실도 그중에 하나다. 칸데 윰켈라 유엔사무총장 특별대표의 말을 거꾸로 하면, 이제는 탈핵 에너지 전환이 한국 혁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밑에서부터 시작되는 빈곤층에 대한 전력 공급을 강조한 인도의 산짓 벙커 로이의 설명을 바꾸면, 밑에서 일어나는 일은 위로 전달되지 않는다. ‘에너지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총회에서 밀양은 더 이상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율 증가는 환경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도쿄전력 부사장이 와서 한 말이다.

    또 다른 진실은 세계에너지협의회가 직접 말해준다. 이번에 발간된 ‘2013 에너지 지속가능성 지수’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129개국에서 64위를 기록했다.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오스트리아, 영국, 캐나다, 노르웨이, 뉴질랜드, 스페인, 프랑스 순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16위로 제일 높은 순위에 올랐다. 한국은 전년도에 비해 10단계 하락했는데, 에너지 안보 D, 에너지 효율 B, 환경 지속가능성 C로 평가됐다. 원전 비리와 밀양 송전탑 갈등을 반영했다면, 더 낮은 곳에 자리매김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보자. 녹색과 창조가 더 이상 거짓으로 쓰이거나 정치적 수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 내년에 한국에서 개최되는 ‘청정에너지장관회의’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을 바라보는 용기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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