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노동자와 대학생,
    만남 통해 서로에 대한 존중 배워
    [노동자의 구술생애사] 에필로그 : 프로젝트를 마치며
        2013년 10월 17일 01: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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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0월 3일에 시작했으니 구술생애사 프로젝트를 진행한 지 일 년이 넘었다. 애초에 방학 동안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장기 프로젝트가 되었다.

    인터뷰를 제안 드린 네 분에게 거절당해 낙담을 했다가 다섯 번째에 비로소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던 친구도 있었고, 갑자기 눈물을 터뜨린 조합원을 어떻게 위로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했던 친구도 있었다.

    인터뷰 중에 말을 더듬거리다가 질문을 하고 있던 학생에게 조용히 자리를 옮기자고 말씀하신 조합원도 계셨다. 다른 조합원들이 한글을 배우는 일에 관해 듣는 것이 껄끄러웠다는 말씀을 듣고 위신이란 것을 고려하지 못했다고 반성을 하던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기록으로 남겼지만, 인터넷언론에 게재를 하는 것에 무어라 딱히 말하기 어려운 조심스러움이 느껴져 연재를 하지 않은 친구도 있었다.

    여러 우여곡절들을 통해 구술생애사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을 한 가지 정도는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만나는 청소노동자에게 분리수거나 인사를 잘하는 정도의 예의를 다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한다. 청소노동자라고 하면 저임금‧고령‧고강도의 업무 등을 쉽게 떠올리고 ‘예의를 갖춰야지’라는 생각으로 마무리해버린다.

    여기에는 어떠한 책임도 발생하지 않는다. 흔히 청소노동자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깨끗하게 해주는 고마운 ‘어머님’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어느 날 그 고마웠던 어머님이 파업을 해서 화장실에 휴지가 쌓이고 학교에는 쓰레기가 넘친다면 학생들의 태도는 180도 바뀌곤 한다.

    그러한 예의바름 속에는 질서가 있고, 질서만 지키면 본인은 문제가 없는 것이다. 질서 자체가 문제라고 외치는 사람에게 예의만 지키는 건 ‘네가 그 위치에 조용히 있다면 나는 상관없어’라는 말을 하는 것과 같다.

    반대로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다른 누군가도 계속 무언가를 요구하고 욕망하는 주체라고 생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타인의 삶을 경청해보려는 노력은 그래서 중요하다. 누군가가 들려준 삶의 구체적인 경험들을 들을 때면 비로소 구체적인 얼굴을 지닌 사람으로서 만나게 된다. 이런 얼굴을 가진 사람이 고통을 호소할 때,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를 구술생애사 작업을 통해 조금이나마 익혀볼 수 있었다.

    인터뷰를 했던 조합원들이 들려주신 삶은 처음에는 그저 낯선 것이었지만, 이내 ‘아는 분의 살아온 이야기’로 변해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 모임원들은 세상과 만나게 되었다. 사람은 이렇듯 함께함을 이해하는 만남 속에 있을 때 성장한다는 것을 배웠다.

    철학자 김상봉은 낯선 타인과의 만남에서 중요한 것이 배움이라고 말했다. “타인에게 자기를 낮추고 배우지 않고 다만 타인을 사랑하고 책임지겠다는 것은 타인을 지배하겠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타인에게 배우려는 사람은 이미 타인을 모시는 것이며, 사랑하는 것이다.”

    이처럼 배움이 빠진 채로 사랑한다고 하는 말은 포장한 지배욕과 같다. 그러나 배움은 그저 배우겠다고 말하는 선언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 모임원들이 계속해서 호소했던 것처럼 당황스럽고 곤란하고 막막한 만남을 통해서만 비로소 타인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

    대학캠퍼스라는 같은 장소를 공유했지만 늘 스쳐만 지나쳤던 타인을 온전히 만나보고자 했다던 우리 모임원들에게 구술생애사 프로젝트가 가르쳐준 것이 바로 만남 그 자체였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다음은 인터뷰를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던 학생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정리한 글이다. 이성우, 연세대학교 시작교실 회원이다. <노동자 구술생애사 프로젝트 모임 간사 백승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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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운수노조 자료사진

    공공운수노조 자료사진

    구술생애사 프로젝트에 바랐던 점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공간을 관리하고 청소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흔히 ‘청소하는 아줌마’, ‘경비 아저씨’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 구술생애사 프로젝트는 그런 일상적이고 돋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고 있는, 특히 고령의 여성이라는 일반적 특징을 갖고 있는 청소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프로젝트라고 하면 거창해 보이고, ‘청소노동자를 대상으로’라는 말은 다소 전문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한 우리들은 모두 대학생이고 문화인류학적 연구방식에 대해 뭔가 아는 것도 없는 문외한이다. 우리들 또한 이 프로젝트가 살펴보고자 했던 ‘대상’이었기에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를 이제는 우리의 이야기로 끝내려고 한다.

    이 프로젝트가 단순하게 청소노동자들이란 이름으로만 불린 그녀들 스스로의 이야기를 통해 재규명하려는 작업으로만 그치지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학생으로서의 정체성과 청소노동자라는 정체성 사이의 벽을 허무는 작업이기를 바란다.

    돋보이지 않는 노동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시설을 청소하는 노동자들이 그들의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보통 청소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말은 ‘화장실 아줌마’다.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있으면 한번쯤 나타나서 청소하고 나가거나 걸레 빨고 나가는 아주머니들이다. 남자화장실에 여성 청소노동자가 들어와도 아무도 놀라지 않으며 노동자 또한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이렇듯 사람들에게 있어 청소노동자는 무성적인 존재이고, 도구적인 존재이다.

    인사하며 지내고 싶었던 ‘화장실 아줌마’의 이야기를 듣다

    우린 각 대학의 여러 ‘화장실 아줌마’들을 만나서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청소노동을 하기 전까지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부터 시작해서 현재의 노동과 투쟁에 대해서까지 듣고자 했다. 우리가 인터뷰한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된 조합원들이었기 때문이다.

    청소노동자와의 대화가 처음이었던 내 친구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이렇게 노동자들의 얘기를 듣는 게 굉장히 신기하고 좋다고 했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학생들 대부분은 이미 청소노동자들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단순히 등교길의 청소 노동자들과 인사하고 지내고 싶은 마음에 노학연대 활동을 하고, 구술생애사 프로젝트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교실’이란 공간에서 청소노동자들에게 ‘선생님’이라 불리며 만남을 가진 지도 2년이 넘었는데, 그때에도 여전히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항상 선생님과 제자, 혹은 대학의 청소 노동자와 학생으로만 만났다. 나에게도 이미 청소 노동자들은 그렇게 정체화되었지만, 그 정체화를 넘어서 새롭게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구술생애사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였던 것 같다.

    당신들의 입을 통해 재구성된 당신들의 생애

    인터뷰를 진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약속을 잡는 것도 어려웠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일대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반면에 나는 시작교실(시간을 돌리는 작은교실)에 참여하지 못했던 친구와 함께 조합원 두 분과 함께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학생 두 명과 노동자 두 명이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던 우리 팀의 특성상 한 번 인터뷰 약속을 잡는 것은 다른 팀보다 더 어려웠다.

    시간적인 문제뿐 아니라 청소노동자들이 쉽게 인터뷰에 응하지 않던 것도 난점이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얘기를 직접 하라는데 선뜻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부탁한 결과 몇 번의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인터뷰 과정은 또 다른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우선 앞서도 얘기했지만, 작업을 주도하는 우리도 구술생애사 작업이란 것을 처음 접해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해야 할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또한 아무리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 해도, 나의 할머니뻘 되는 분들에게 생애 이야기를 대뜸 물어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른 팀의 경우, 청소노동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중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며 더 이상 얘기를 못하겠다고 했던 경우도 있었다. 우리 팀의 청소노동자들은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인 건 아니지만, 자꾸만 할 얘기가 없다고 손사래를 치곤 하셨다.

    어려움을 겪던 와중에 다행이었던 것은 한 번 이야기가 시작되면 많은 내용이 쏟아져 나왔다는 점이었다. 할 이야기 없다고 손사래 치시다가도, 특정 시대나 사건에 대해 질문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쏟아내 주셨다. 매 인터뷰 때마다 중복되어 나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것이 정말로 가슴 속에 담아두고 사는 이야기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이야기 속에서 그녀들은 씩씩하고 억척스러운 13남매의 맏딸이었고, 남편 없이 혼자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어머니였다. 어떨 때는 사랑밖에는 쳐다보지도 않을 로맨티스트, 또 어떨 때에는 냉정하게 삶을 바라보는 현실주의자, 청소노동자의 유니폼 안에선 볼 수 없었던, 혹은 보려 하지조차 않았던 모습들이었다.

    프로젝트 중에 몇 번이나 들었던 말이 ‘내 이야기는 책으로 쓰면 한 권이 나온다’라는 이야기였다. 오래 전 일을 얘기하는지라 격정이 되어 흘러나오진 않았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눈앞에 보인다는 듯이 두 노동자는 그들의 삶을 들려주곤 했다. 결국, 어느 누구나 자신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가 아니겠는가.

    노동자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던 바람

    아쉽게도 우리 팀의 인터뷰는 그렇게 잘 진행이 되진 않았다. 두어 번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후 “학생들이랑 만나서 얘기하는 게 창피하다며 얘기는 그만하고 다음에 밥이나 같이 먹자”며 부담을 에둘러 표현하시기도 했다.

    학생들 또한 밀도 있는 진행이 안 되어 프로젝트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다른 일도 생기고 집중력도 떨어져서 우리 팀의 인터뷰 자체가 좀 흐지부지 되었다.

    그래서 우리의 인터뷰 본편 또한 없다. 인터뷰도 제대로 못 끝냈고, 내가 처음에 기대했던 것만큼 청소노동자와의 벽을 극복했을까-라는 회의가 가끔 든다. 그래도 가끔 도서관이나 단과대 건물에서 아는 청소노동자들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잠깐 멈춰 서서 이야기도 나눈다. 여전히 우리는 학생과 노동자로 만나지만, 그래도 서로에 대해서 더 알게 되었다.

    애초에 내가 학생과 노동자의 정체성을 허물고 그녀들과 만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또한 정체성을 허무는 것이 필요한 것인가? 나는 왜 그러고 싶다고 생각한 것인가? 분명한 것은, 학생과 노동자로 우리가 만나는 것이 충분히 멋지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구술생애사도, 노동자들과의 연대활동도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지나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게 된 많은 노동자 친구들이 많아서 행복하다.

    필자소개
    노동자 구술생애사 참여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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