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령 나치전범 사망
    장례식, 반파시즘 시위로 무산돼
        2013년 10월 16일 05:40 오후

    Print Friendly

    지난 1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사망한 전 나치 친위대 책임자였던 최고령 나치전범 에리리 프리프케의 장례식을 둘러싸고 충돌이 벌어져 결국 장례식이 취소되었다.

    지난 15일에는 그의 장례식이 열리는 초보수파 교회 근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나치 전범 프리프케의 장례식을 저지하기 위해 시위를 벌였고 경찰 및 극우파들과 충돌하기도 했다.

    로마교황청은 그의 장례식을 성당에서 치를 수 없다는 공식 결정을 내렸지만, 1970년 교황청에서 분리된 초보수파 교회인 <성 피우스 10세회>는 그의 장례식을 알바노의 자파 교회에서 치르겠다고 밝혀 이날 장례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결국 취소된 것이다.

    15일 오전 프리프케의 영구차는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교회로 들어갔고, 나치전범에 항의하는 사람들은 ‘암살자’라고 규탄하며 영구차의 교회 진입을 막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다수의 반나치 시위대와 소수의 파시스트 극우파들이 충돌했지만 경찰이 양쪽을 갈랐다. 취루탄을 발사하는 등 격한 충돌이 지속되자 결국 프리프케 측에서 장례식을 취소했다.

    에리히 프리프케

    ‘아르데아티네 동굴의 백정’으로 악명이 높았던 프리프케는 15년의 가택연금 끝에 지난 11일 100세의 생존하는 최고령 나치 전범으로 사망했다.

    그는 1944년 3월 히틀러의 지시를 받고 로마 외곽의 아르데아티네 동굴에서 레지스탕스, 유대인, 어린이 등 335명을 학살한 혐의로 1998년 이탈리아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그는 생전에 한 번도 범행을 사과하지 않았고 ‘상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죽기 직전에는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는 발명된 것이라고까지 말해 사람들을 격분시키기도 했다.

    종전 후 그는 아르헨티나로 도망쳐서 호텔지배인과 지역 유지 행세를 하며 50년 가까이 평온하게 살았다. 그러던 중 1994년 미국 ABC방송이 그의 과거를 폭로하여 정체가 드러났고 95년 이탈리아로 송환되어 98년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고령을 이유로 가택연금 상태로 사망 때까지 살았다.

    프리프케는 50년 이상을 아르헨티나에서 살았고 그는 죽어서 아르헨티나에 묻히길 원했지만 아르헨티나는 “인류의 품위에 대한 모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그의 무덤을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바티칸이 그의 장례식을 성당이 치를 수 없다고 밝힌 이후 그가 사망한 로마의 시장도 로마에 그의 묘지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독일의 그의 고향에서도, 그의 장례식이 열린 알바노에서도 그의 묘지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로마의 유대인 공동체 대표는 (나치 전범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경우처럼 화장하여 뿌리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