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시대의 잊혀진 고전
    [책소개] 『국가와 혁명』(V.I.레닌/ 아고라)
        2013년 10월 12일 01: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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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닌은 부르주아 국가의 해체와 새로운 사회주의 건설의 전략과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국가와 혁명』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수정주의자와 기회주의자로부터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고, 프랑스 및 러시아의 혁명 경험 위에서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발전시킬 것을 강변한다.

    이 책은 출간된 이래 사회주의 혁명사상의 고전 중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 책으로 평가받아왔다. 그의 사상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혁명가, 정치가는 물론 지성계와 문화계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끼쳐왔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이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이상을 소개한 책이라면『국가와 혁명』은 이를 현실로 옮길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서양의 어느 정치학자는 이 책에 이르러 “서양 정치학 전통에서 썼던 어휘와 문법이 갑자기 불필요하게 되었다”(Neil Harding, Leninism,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1996, p. 309)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레닌의 이 핵심 저작은 사회변혁의 의지가 옅어지면서 우리 사회에서 자연히 사라져갔다. 한때 대학가의 스테디셀러로 각광받았던 이 책은 지금은 헌책방에서조차 찾기 힘든 귀중한(?) 아이템이 된 것이다.

    급진 좌파라 자처하는 이들조차 레닌이 갈파한 비타협적 계급투쟁, 계급정당, 폭력혁명의 여정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독재 등은 폐기해야 할 유산이라고 말한다. 과연 이러한 평가는 온당한 것일까? 평가의 시간성을 차치하더라도 그와 그의 사상, 그의 저작물에 대한 폭넓은 이해 속에서 내린 결론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레닌 재조명을 주창하고 있는 유럽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이렇게 말한다.

    “언뜻 확신에 차 보이는 이러한 지적들이 너무 쉽게 레닌에 대한 이미지, 즉 현명한 혁명 지도자 레닌이라는 기존의 상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만약 레닌에 대한 다른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면 어떨까.”(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서원 옮김, 『혁명이 다가온다』, 길, 2006, 24쪽)

    물론 지젝과 같은 뛰어난 이론가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레닌의 사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읽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다시 맹목적 종속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국가와 혁명

    해방되기 위해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

    레닌은 러시아 혁명이 결정적 시기에 있던 1917년 8월과 9월에 걸쳐 『국가와 혁명』을 썼다. 그래서 그는 시급하고 실천적인 주제를 다뤘다. 당시 러시아는 ‘이중권력’ 상황이었다. 즉 한편에는 1917년 2월 혁명으로 차르가 타도된 뒤에 들어선 자유주의자와 자본가 들의 임시정부가, 다른 한편에는 혁명 초기부터 노동자와 병사 들이 자주적으로 건설한 노동자·병사 대표 소비에트가 있었다.

    비록 초기에 소비에트 지도자들이 대부분 임시정부에 호의적이었을지라도 이 둘은 본질이 서로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둘 중 하나가 나머지 하나를 파괴하고 권력을 장악해야 했다. 그래서 이중권력 상황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떠오른다. 혁명의 진행 과정에서 둘 중 누가 승리할 것인가? 노동계급이 승리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국가권력 문제는 러시아 혁명의 성공과 직결된 문제였다.

    그러나 『국가와 혁명』은 단순히 혁명기의 러시아에만 국한되는 내용을 다룬 책이 아니다. 노동계급의 대중정당이 공개적으로 활동하면서 의회나 지방정부에도 대표를 파견한, 의회민주주의가 발달한 유럽 국가들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레닌이 언급하는 당대의 좌파 사상가들이나 그들의 정책과 노선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전 유럽에 걸쳐 존재했기 때문이다.

    레닌이 이 책을 썼을 때는 국제적으로는 1914년에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 와중이었다. 1914년부터 시작된 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의 행동들은 레닌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당시 전쟁이 시작되자 세계의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국제주의 원칙을 저버리고 자국 정부를 지지해 서로 분열했다.

    ‘마르크스주의의 교황’이라고 불리던 카를 카우츠키 같은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도 의회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며 사실상 기존 국가를 방어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그것도 ‘마르크스주의’를 이용해서 말이다. 일련의 사건들은 레닌에게 있어 사회주의 운동이 사라져버린 것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오늘날의 현실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의 『국가와 혁명』은 이러한 절망, 충격적인 경험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이 책이 아무리 위대한 저작일지라도 쓰였던 당시와 현 정세는 많은 차이가 있으므로 그 내용을 현 상황에 기계적으로 대입시키는 것은 그 저작을 단순히 지나간 시대의 산물로 묻어버리는 것 못지않게 잘못된 태도다. 이 책을 읽는 적극적 의미는 현실과 맺는 긴장관계 속에서 충실히 드러날 것이며, 따라서 이 책은 항상 새롭게 읽힐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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