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양, 불행한 역사의 압축판?
        2013년 10월 11일 10: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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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제가 밀양에 가본지 벌써 3년이나 된 셈입니다. 그 때는 발표차 아주 잠깐, 하루치기로 갔는데, 서울과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습니다.

    느리면서 조용한 생활 리듬도 그렇고, “이해관계”보다 “정”의 논리에 더 강점을 두는 사람도 그렇고, 고요하면서도 마음에 바로 와닿는 풍경도 그렇고…

    아마도 밀양 같은 곳이야말로 제게 “한국/조선”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서울의 아파트촌, 수도권 “명문대”의 얄팍한 “글러벌리즘”, 휴대폰을 만지지 않고서 1분도 버티지 못하는 서울의 외로운 군중들에게는 그 어떤 특정의 “현지성”이 있는가요?

    하나의 시장이자 하나의 도살장이 되고, 점차 인류의 하나의 커다란 무덤이 될 “글로벌 세계”에는 “현지성”은 오락이나 “취미”, “재미”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합니다. 돈부터 언어까지, 가장 중요한 부분들은 다 초국가적으로, 초지역적으로 균질화돼 있기 때문입니다.

    “빨리빨리”, “영어 못하면 인간도 아니다!”, “친구 사귈 시간에 공부나 해서 성공의 바탕을 잡으라!”, 이렇게 돌아가는 한국의 중심부는 과연 지리적 위치 이상으로는 “한국”과 그 어떤 관계라도 있나요?

    그런데 그 중심부의 머나먼 식민지, 밀양이라는 “지방”에서는 아직도 어떤 개성이 남아 있어서, 정말로 늘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적어도 스마트폰을 매 분 보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도요….

    그런데 인제 밀양은 또 다른 의미에서도 “한국”을 상징하게 됐습니다. 거기에서 한전과 공무원, 경찰들이 벌이는 폭거는, 어떻게 보면 최근 100여 년간의 한국사, 아니 어쩌면 아세아 역사 전체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아세아 근현대사의 그 무시무시한 키워드, “개발”을 조금 더 정확하게 해석하자면 이는 도심 엘리트들의 농촌에 대한 완승, 그리고 농촌에 대한 폭력적 해체의 과정인데, 지금 바로 이와 같은 일들이 밀양에서 계속 벌어지는 것입니다.

    시작은, 크게 봐서는 일제시대이었죠. 한국 민중의 암흑기이자 한국 자본주의의 여명기, 일제 강점기. 바로 그 때에 정미소에서 나온 이득으로 이병철이라는, 일본어가 일본인만큼 유창했던 와세다대 졸업생이 마산 근방에서 땅을 사재기하여, 작인들에게 쥐어짠 그 피땀 어린 돈으로 미쯔보시(三星)상회를 1938년에 설립한 것입니다. 미쯔비시, 미쯔이처럼 크게 되겠다는 포부이었겠죠?

    삼성상회의 옛모습(위키피디아)

    삼성(미쯔보시)상회의 옛모습(사진=위키피디아)

    이병철의 증손자는 이제 일어보다 영어에 능통할 것이고, 위대한 황군에다가 군납하는 일 대신에 조금 더 멋진 세계적 휴대폰 등등의 장사를 해서 그 이름을 오대륙에 다 날렸지만, 그의 밥이 됐던 마산 근방의 그 작인들의 이름들을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요? 이병철의 마름들이 그들에게 적용한 소작료 수준은요?

    뭐, 미쯔보시 집단뿐 만입니까? 김요협, 김기중, 김성수 등 경성방직/동아일보/보성전문학교 왕조 집단의 기반은 과연 부안, 고창 농민들에 대한 악질적인 착취는 아니었을까요? 착취한 쪽은 “기업가로 전환한 선구적인 지주”, “애국적 사업가”가 되고, 착취당한 쪽은? 그 이름들조차도 역사기록에서 지워지고 말죠.

    일제시대도 그랬지만, 박정희의 “개발”도 새마을운동 등의 선심을 가장한 미봉책으로 호도되었던 “농촌 쥐어짜기”에 불과했습니다. 저곡가 정책으로 도농격차는 아예 고질화됐고, 점차 소작 등의 과거의 악폐들이 다시 되살아나고, 도시에다가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농현상으로 농촌들이 다 피폐, 고령화되고, 그리고 특히 군부대들에 의한 토지 강제수용 등에 농민들이 계속 울어야 했습니다.

    강군화, 공업화 정책에 올인한 정권 하에서는 토지 수용 보상이란 쥐꼬리만 하고, 최소한의 불만표시도 무시무시한 국가폭력을 부르곤 했습니다. “국책 사업”, 옛날의 “대동아전쟁 총동원” 만큼이나 절대적인 그 두 단어 앞에서는 평생 흙을 파온 사람들은 그저 흙만을 쳐다보고 체념해야 했던 것입니다.

    참, 지금 밀양에서 어르신들에 대한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의 폭력”을 자행하는 정부를 운영하시는 공주님께서는, 父王폐하의 유산을 훌륭하게 계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참, 공주님께 공평하게 대합시다.

    밀양 부근의 농업을 망치기로 한 계획이 세워진 것은 2005년, 농촌 출신의 노짱이 한국 “진보”(?)의 환심을 사가면서 “진보형(?) 신자유주의” 정책을 NGO출신들의 각료, 보좌진들과 함께 해나갔을 때이었습니다. 농촌을 망가뜨리는 데에 있어서는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대한민국의 “주류”는 하나입니다! 거국일치, 거족단결!

    한국은 “근대화, 산업화에 성공했다”고 외치는 뉴라이트 따위들이 밀양에 가서 그 “성공”의 진면목을 손수 구경하시기만을 바라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건 지난 100여 년 동안 우리 “성공”의 압축판입니다.

    그런데 과연 밀양의 비극은 단지 (역대) 정부들, 공무원 집단, 그리고 한전만의 만행의 문제인가요?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식민지 백성격인 지방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원전들에서 발전되는 “싼”(실제로는 싸지도 않습니다!) 전기 덕에 윤택 나는 삶을 즐기는 것은… 결국 중심부 중산층에 속하는 우리 모두들입니다.

    컴퓨터와 휴대폰 없이 몇 분 지낼 수 없을 만큼 전기를 먹는 기계에 중독돼 있고, 심지어 바지 하나 사려고 해도 재래시장에 제 발로 가는 대신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고, 바보상자를 하루 3-4시간 켜고 승강기를 타고 다니고 에어컨을 트는 것을 당연지사로 아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요? 소수의 착취자만인가요?

    결국 소수의 착취자들이 만들어놓은 반생명적인, 반환경적인 삶의 패턴에다가 우리 모두가 그냥 포획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편함”을 즐기고 저들이 수익을 올리고, 밀양 주민들과 같은 주변분자들이 모든 것을 빼앗기고, 지구가 지구대로 멍들어가고… 착취자들에게도 할 말 해야 하지만, 우리부터 우리 삶의 틀들을 연대해서 바꾸어보는 것이 어떨까요?

    의식적으로, 같이 연대해서 승강기/텔레비전/휴대폰/에어컨/컴퓨터 등의 사용을 자제하고, 필요할 때만, 필요한 만큼만 써보는 게 어떨까요? 결국 원전에서 나오는 전기를 마구마구 써대는 우리도, 똑같이 밀양주민들에 대해서 가해자가 되는 게 아닐까요?

    필자소개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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