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 선거 추천 서류가
    은행금고에 보관돼야 하는 현실
    80년대 민주노조 상징이었던 현대중공업노조에 다시 민주파 깃발이 서기를
        2013년 10월 10일 09:37 오전

    Print Friendly

    8일 저녁, 태풍 ‘다나스’의 영향으로 비바람이 몰아치는 남목고개를 넘어서 울산시 동구로 들어갔다. 현대중공업 미포문 앞 과거 한일은행 골목으로 들어서니 1990년대 현대중공업노조의 128일 총파업과 골리앗 점거투쟁 당시 이 골목에서 날아다녔던 짱돌과 최루탄 가스가 생각난다.

    골목 안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현장조직 전노회(전진하는 노동자회) 사무실에 들어갔다.

    다가오는 10월 17일,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20대 위원장 선거에 출마하는 정병모 선배님의 선대본 결의대회에 지지와 응원을 하러 갔었다,

    병모형, 종철이형, 형광이형, 철모형, 갑용이형, 남종이형, 진오동지, 형균동지…. 그야말로 역전의 용사들이 그 옛날 그 모습(외모는 조금씩 늙었지만)으로 반겨 주신다.

    1987년 민주노조운동의 성지였던 미포만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그러나 민주노조 세력들이 노조 집행권을 빼앗긴 지 12년이 넘었고, 파업 한 번 못한 지가 20년이 다 되어가는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다. 오죽하면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이 “이러다가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꼬라지 날라” 이런 소리를 할까.

    이런 현대중공업에서 회사 측의 악랄한 탄압과 때로는 조합원들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서 “민주노조”의 희망을 놓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고, 싸우고 계시는 분들이다. 존경스럽다.

     중공업

    이날 나와 함께 지지 방문에 나선 현대자동차 김희환 동지가 승리를 기원하며 정병모 후보와 포옹하고 있다. “조합원 가슴 피멍 든다”는 현수막 글귀가 가슴에 팍 꽂힌다.

    유리 창문에는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쳤지만 참가자들은 힘찬 구호와 박수로 결의대회를 시작하였다. 행사가 한창 진행 중인데 어느 한 동지가 이런 질문을 하신다,

    “정병모 후보가 이번 선거에 출마하면서 조합원들의 추천 서명을 받았는데, 그 서명한 조합원들의 신분에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할 방안이 있습니까?”

    나 같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 듣기에는 언뜻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다.

    노조위원장 후보로 출마하시는 분을 위해 조합원이 추천서에 서명을 해 줬을 뿐인데, 왜 이 조합원들의 신분에 불이익이 오는 걸까?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자 선거등록 서류를 회사에 넘겨주나? 그렇다고 회사가 그 서류를 보고 민주파 후보자에게 추천 서명을 해 준 조합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건가?

    이 모든 대목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그러나 이곳 현대중공업의 현장은 나 같은 사람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란다.

    몇 년 전,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추천 서명한 조합원들의 신분에 불이익을 우려해서 선관위에 제출한 추천 서명용지를 은행의 금고에 서명 서류를 보관해두었다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있었다니 할 말이 없다,

    ‘민주노조가 망하면 이런 꼴을 당하는 구나’ 몸서리치는 현실이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결의대회가 끝날 무렵에 한 명의 노동자가 소개되었다,

    이날 참가한 활동가들이 대부분 50대 늙은 노동자들인데 이분의 나이는 고작(?) 36세, 진짜 새파란 청년노동자였다. 그는 정병모 후보가 혹여나 신분에 불이익 당할까봐 걱정을 전했는데도 스스로 전노회 사무실로 찾아왔고, 스스로 정병모 후보 선거운동을 자원했다고 한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는 선배 노동자들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저희 아버지가 현대중공업에 다니다가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2002년에 입사해서 이제 10년 정도 현대중공업을 다녔습니다. 제가 현대중공업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제가 중학교 때 학교에서 배웠던 도덕과 민주주의, 선거제도, 정의, 이런 것들이 아무 것도 지켜지지 않는 곳이 현대중공업이라고 느꼈습니다.

    이 골목을 지나다니면서 수십 번 ‘저 전노회 사무실로 찾아갈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정병모 후보께서 출마하신다고 하기에 제가 먼저 연락을 드리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앞으로 현장에서 일하는 내 주변 동료들에게 민주노조와 정의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듣는 나는 감동에 가슴이 울컥했다. 사회를 보시는 동지께서도 이후 발언에 감정이 묻어난다.

    수년 전부터 현대중공업 활동가들에게 들어보면 조합원들이 민주파 후보에게 추천 서명을 해줬다는 이유로 사무실에 불려가 면담을 당해야하고, 기표한 결과를 핸드폰으로 찍어서 확인 받아야 한다는 경우, 줄을 서서 투표할 때 기표한 용지를 투표함에 넣기 전에 뒤에 서있는 동료에게 보여주고 넣는다는 이야기, 민주파 활동가들을 찍어서 잔업특근 등에서 배제 당하거나 현장에서 왕따 취급당하는 일 등등.

    36세 청년노동자의 눈에는 지난 10년 동안 현대중공업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겪어 왔던 일들이 중학교 다닐 때 교과서와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던 민주주의 일반 원리, 직접 비밀 무기명 선거제도, 정의와 상식의 어느 것도 통하지 않는 이상한 회사, 이상한 노동조합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렇게 민주주의와 공정선거, 상식과 정의가 무너져 내린 현대중공업에서 민주노조를 염원하는 분들이 모여서 정병모 선배님을 위원장 후보로 출마를 시켰다.

    이번에는 청년노동자가 목격하고 경험한 비상식의 역사를 끊고, 상식과 정의와 민주주의와 공명선거가 보장되는 현대중공업 민주노조의 새로운 역사가 정병모 선배님 당선과 함께 만들어졌으면…..

    현대중공엄 노동조합 조합원의 용기 있는 결단으로 꼭, 그렇게 다시 민주노조의 깃발이 전하동 1번지, 미포만에 높이 휘날리기를, 폭풍우가 쏟아지는 남목고개를 넘어오면서 간절히 바래본다.

    한 가지 더,

    36살 청년 노동자가 지난 10년 동안 직접 보고 겪으면서 알게 되었다는, 중학생이면 다 배우는 민주주의와 공명선거, 정의조차 실종된 현대중공업, 이 회사의 실질적인 주인은 누군가? 새누리당 정몽준 국회의원이 아닌가.

    “민주 공화국”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 전에 스스로가 주인인 그 회사 내부의 민주주의와 정의와 상식부터 바로 잡으시는 게 어떨지?

    이래서 옛날 어른들이 이런 말을 만드셨나 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기 마련이다”

    필자소개
    현대자동차노조 전 위원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