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정치연석회의의 ‘진보정당, 어디로 가야 하나’ 3차 토론회가 열렸다. 그 관련 기사(기사 링크)와 별개로 노동정치연석회의 양경규 소집권자의 발제문을 주최측의 양해를 얻어 게재한다. 다소 긴 발제문이지만 노동정치의 고민과 생각을 비교적 잘 정리한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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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어느 책에선가.(1) “역사란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고 했다. 한참 무거워야할 ‘역사’에 대한 조롱이고 희화화로 들린다.
그런데 진보정치를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지고 있는 지금 이 말은 오히려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는 지금, 지난 시기 있었던 진보정치의 궤적을 돌아보며, 또 이후의 전망에 대하여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이런 저런 말과 글들을 확신을 담아 쏟아놓고 있다. 1997년 국민승리 21로부터 민주노동당의 창당, 2008년 분당과 진보신당의 창당, 2011년 진보대통합과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 정의당의 창당, 그리고 최근의 이석기 사태까지 그렇게 우리는 자신들의 진보정치의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역사들은 모두 다르다. 그 역사는 상대방에 대한 배제를 끝없이 전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확신에 차서 자기 나름의 과거를 재구성하고, 그 과거에 근거하여 현재를 정당화하고 또 지금 모두 각각 서로 다른 진보정치의 미래를 새로운 전망으로 제시하고 있다.
오늘, 연석회의는 이 토론회에서 우리 모두가 자기확신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게 되기를 기대한다.연석회의 또한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오늘의 이 토론회를 통해 과거에 대한 부정확한 기억을 서로가 확인하고 교류하고 교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동시에 앞으로 진보정치의 미래를 어떻게 써나갈 것인가를 열린 마음으로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오늘의 토론회를 통해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진보정치의 새 길을 열기 위해 같이 할 수 있는 지점은 없는 것인가를 놓고 이야기했으면 한다.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아니면 얼마나 같은지를 서로 확인하면서 지금의 진보정치에서 우리가 무엇을 같이 할 수 있을 것인지를 찾아가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먼저 진보정치의 미래를 위해 몇 가지 고민거리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 고민거리들에 대한 논의를 통해 서로를 확인하는 가운데 진보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같이 열어가자는 제안을 할 것이다.
과연 현재의 세계질서의 변화에 대해, 또 진보정치를 포함하는 변혁운동의 과제에 대해, 세계적인 흐름에 비추어 점점 주변화되고 있는 우리 진보정치에 대해, 과거 진보정치에 대한 평가에 대해 우리 각각의 주체들의 생각은 무엇이며 그 차이는 무엇인지, 아니면 우리가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러한 고민을 공유하는 가운데 연석회의는 진보정치의 새로운 길을 ‘연합정당’이라는 구조를 통해 진보정치를 통일하고 재편하자는 제안을 할 것이다. 동시에 연석회의는 통일과 재편으로만 진보정치의 전망을 세울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새로운 진보정치의 방향과 과제들도 제안할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경제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의 경제적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순환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구조적 모순에서 발생하는 위기라고들 말한다. 이러한 위기의 양상은 자본주의 체제로 전일화된 세계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을 불러오고 있다. 여기에는 여전히 전통적인 사회주의 혁명의 전략을 고수하면서 대안사회의 전망을 찾는 흐름도 있지만 최근의 저항운동은 보다 다원적인 가치와 요구를 통해 기존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특징을 띠고 있다. 그리고 그 운동의 양상도 매우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반신자유주의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국제적인 연대운동에서 월스트리트의 점거운동까지, 전통적인 계급문제, 민족문제에서 생태와 여성, 청년, 문화, 인권과 개인의 자유 등 그동안 계급문제의 하위가치나 혹은 계급운동이 포괄하는 가치로 보았던 영역까지 다양한 부문의 운동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운동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넘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진보를 지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운동들은 때로는 독립적인 영역을 구축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연대를 통해 운동의 범주를 확장시키고 있다. 스스로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들을 대변할 새로운 대안적 조직이나 통합적 운동을 찾기도 한다. 이러한 운동들은 기존의 주류정당의 바깥에서 대안을 찾고자 하고 있으며 새로운 대변자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유럽에서 나타나고 있는 극우파의 부상이나 좌파 혹은 진보정당의 재구성이나 연합은 그 궤를 달리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는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넓게 보면 최근 이슬람세계를 격동케 한 민주화운동도 같은 흐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우리 사회의 진보적인 운동의 중심적인 추동체로서의 역할을 맡아왔던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민주노동운동은 민주화의 진전과 한국자본주의 체제의 세계질서로의 인입과 신자유주의를 통한 자본의 전면적 지배가 구축된 한국사회에서 계급문제, 그것도 조직화된 노동자의 개량적인 운동으로 그 범주가 축소되어 왔다. 신자유주의의 지배가 강화되는 조건에서 계급적 의미를 확장시키지 못한 민주노동운동은 사회전체의 변혁을 담당하는 운동체로서의 의미가 점차 퇴색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존의 조직화된 노동운동 틀 밖에서 새로운 노동운동의 흐름이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비정규운동을 중심으로 한 현장의 자발적인 투쟁과 함께 부문과 지역으로 노동운동의 지평을 넓히려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할 것이다.
자본의 전면적인 사회통제는 단순히 계급에 대한 지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라는 외피를 쓰고 개인의 생활세계와 사회 전반의 정치 경제 문화적 구조와 삶에 대한 통제를 도모한다. 우리 사회에도 세계적인 흐름과 같이 하면서 체제에 저항하는 새로운 형태의 저항운동들이 등장하고 있다. 계급과 지역, 지역과 부문, 계급과 부문이 결합하고 연대하는 새로운 운동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투쟁, 희망버스 등에서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운동의 흐름을 충분히 목도했다. 강정 싸움이나 밀양송전탑 싸움은 물론 청년 유니온, 알바연대 등도 이러한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2)
이러한 운동들은 종래의 운동 조직의 틀이나 단일한 이념적 잣대로만 규정될 수 없는 운동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본질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의 야만적 지배로부터 기인하는 것이지만 거기에는 계급의 문제를 넘어서는 개인적 사회적 인권에 대한 억압, 생태의 파괴와 왜곡, 정체성의 위기 등이 결합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위한 진보의 가치가 다양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의 흐름들은 때로 연대하지만 때로는 매우 고립적이고 분산적인 운동의 양상을 띠기도 한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새로운 운동들은 우리 사회에서 보다 새로운 가치, 새로운 전망, 새로운 진보의 대변자를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자유주의 정당, 민주당이 누렸던 기득권 혹은 정치적 헤게모니는 이러한 사회적 질서와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담론의 생성과 실천들에 의해 상당한 정도로 그 주도성과 헤게모니가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안철수에 대한 대중의 열광은 이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기존의 주류 정치(여기에는 이미 진보정당도 포함된다)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대중의 자생적 열망이며 동시에 전도된 이반인 것이다. 어쩌면 안철수 현상은 새로운 가치에 대한 대중적 열망과 흐름을 진보정치가 수렴하고 포괄하지 못할 때 그 대중적 기반과 근거지를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설적 사례이기도 하다고 할 수 있다.(3)
시대를 막론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적인 모순에 저항하는 운동에 가장 큰 도전은 중도적인(혹은 보수적인) 자유주의 정당의 존재였다. 이는 우리와 같이 오랜 기간 정치적 독재와 자유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 구조화된 곳에서는 더욱 분명하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자본주의 체제가 갖는 기본적인 모순이 자유주의적 정치운동에 의해 은폐되거나 부차적이 된다.
87년 민주화운동과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이러한 부분이 극복되기 시작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중도적인 자유주의 정당의 헤게모니는 상당한 정도 축소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몇 가지의 요인들, 분단체제와 지역문제, 후진적인 정치문화, 왜곡된 근대화 과정을 통해 구축된 지배계급의 강고한 질서와 집권 등은 자유주의 정당의 기반을 쉽게 허물지 못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러한 자유주의 정당의 지배력은 잇단 선거의 실패, 보수지배세력의 적극적인 좌클릭 담론과 정책의 등장,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모순에 기인하는 사회질서의 변화와 새로운 운동의 부상으로 그 지지기반이 매우 취약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에서 중도 자유주의 정당의 헤게모니에 대항하면서 대안적 정치세력으로서 진보정치의 가능성이 조금씩 형성되고 확장되고 있었지만 시대적 변화와 새로운 운동적 흐름, 자기 혁신의 모습을 보이면서 진화된 진보정치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었다. 그 결과 진보정치에 대한 대중의 지지 확대가 아니라 지지 철회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의 평가가 현재의 자기 모습을 정당화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동안의 진보정치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위치에 따라 그 강조점을 달리하지만 진보정치가 실패 혹은 주변화 되었다는 점에서는 대부분은 의견을 달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평가가 다르니 만큼 진보정치의 새 길과 새로운 전망 또한 다르게 제시되고 있다. 물론 길은 달라도 모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모아지기 보다는 각자의 논에 ‘따로’ 농사를 짓기 위해 ‘따로’ 물을 대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는 과거에 대한 평가의 강조점이 다른 데에도 원인이 있지만 자기성찰을 비켜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석회의는 그동안의 활동 속에서 몇 가지 지점에서 과거 노동자정치운동, 진보정치운동이 실패한 원인을 짚어 보았다. 여러 평가 중에 몇 가지만 생각해 보자.
연석회의는 진보정치의 실패의 원인 중 첫 번째는 노동운동에 있었음을, 우리 노동자들에게 있었음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진보정당이 사회변혁운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 데는 현장을 핑계로 조합주의 운동으로 전락한 노동운동이 있었다.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에 기반하여 공장 안으로 스스로를 가두어 둠으로써 변화된 질서, 즉 자본의 전면적인 사회통제에 저항하면서 분출하는 새로운 사회적 의제들을 받아 안는 노력들이 부족했다. 현장과 지역, 현장과 부문을 묶어세우면서 진보정치의 토대와 근거지로 기능해야 할 노동운동은 진보정당의 이념적 지평의 확대를 막았고 나아가 오히려 당의 개량주의를 부추겼다. 당이 진보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자유주의 정당과의 연합과 연대, 나아가 연립정부 구상에 이른 데에는 노동운동의 이러한 태도와 조합주의적 실용주의적 사고가 큰 영향을 미쳤다.
당을 구성하는 가장 대중적인 토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진보정치에 실천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서 당을 자신들의 현안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치부했다. 당내 민주주의의 위기는 노동계급의 대중적 참여의 부재로부터 비롯되었다. 민주노조운동의 이러한 태도는 이내 당 내에 패권주의와 의회주의가 만연하게 만들었고 진보정치의 분열과 파행을 초래하고 말았다. 정규직 중심이라는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적 토대의 취약은 바로 당의 대중적 토대를 확장하는데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이 민주노총당이라는 이름에 부담을 느낀다는 것에 대하여, 당이 계급문제에 대하여 소극적이라는데 대하여 현장의 노동자들은 분노했지만 이는 노동운동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도 했다. 과거의 진보정당 운동의 오류와 실패의 상당부분이 민주노조운동과 조직 노동자들에게 그 책임이 있었음을 우리는 분명하게 직시하고 있다.
두 번째로 연석회의는 진보의 담론을 새롭게 형성하고 이를 구체화시키는 의제의 부재가 진보정치의 실패를 가져왔다고 평가한다. 혹자는 진보정당으로서의 이념적 정체성, 즉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변혁을 중심에 놓는 반자본주의라는 이념적 정체성을 명확하게 확립하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체성의 상실이 자유주의 개혁세력과의 차별성을 분명하게 각인시키지 못함으로써 명확한 대중적 토대를 형성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진보정당으로서의 다양한 사회운동적 실천을 방기한 채 의회전술에만 몰두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는 진보정당의 독자성이란,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변혁을 통한 새로운 사회의 창출을 최종적인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에서 당연한 지적이다.
그러나 실천적으로는 이것이 당의 이념적 지향을 대중적으로 선포하거나 선언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보정당의 정체성의 문제는 실천적으로 현실에서 제시하는 구체적 정책/의제/이슈가 대중의 요구, 지향, 욕구들과 얼마나 잘 조응하고 접합하느냐의 문제였다. 내용적인 면과 실천적 조직적 면에서. 이는 진보정치의 대중화, 대중들의 급진화를 통한 헤게모니의 구축과정이다. 진보정치의 실패 혹은 주변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결정적이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은 매우 급진적인 진보적 의제였지만 대중에게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각인시킨 것이었다. 진보정당이 새로운 대안의 정치세력으로서 가장 대중적인 토대가 확장되었던 시기가 바로 이 시기였음을 감안한다면 이후 진보정치의 쇠락이 보다 급진적이고 대안적인 의제의 부재에 있었다는 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평가라 할 것이다. 그런데 진보정치는 오히려 이 시기를 지나면서 보수지배세력은 물론 자유주의 개혁세력이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위해 진보적 의제들을 수용해가고 있는 형국에서, 진보의 유연성이나 자유주의 개혁세력과의 연대에 급급하는 선거중심적 실용주의의 모양을 보이면서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하거나 약화시키는 양상을 드러냈다.
복지의제, 고용문제, 양극화, 경제민주화와 재벌문제 등에서 진보정치는 자유주의 세력의 담론에 대해 보다 근본적이면서 급진적인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자유주의 세력이 복지나 고용 등의 의제를 이끌어 나가고 진보진영이 뒤따르는 꼴이었던 것이다. 이는 진보정당의 독자성과 대중성이라는 것이 추상적 이념의 선언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이념과 지향은 정책과 의제에서의 구체성, 급진성, 대중성을 확보하고, 대중들의 실천이나 요구와 결합해야 하는 문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념적 지향과 개혁적 실천과제는 결국 ‘총체성’(4)의 문제임이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진보정치를 의회와 제도권력이라는 공간에 한정시킴으로써 사회운동적 정당으로서의 위상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점에 연석회의는 주목한다. 대중적인 진보정당을 지향하는 한 의회와 제도권력의 공간은 진보정당의 매우 유의미한 활동공간이다. 의회와 각종 권력기구는 대중의 정치적 이해를 현실적으로 수렴하고 실현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진보정치가 대중정당을 지향하는 한 권력장악과 의회 진출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과제가 된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권력장악이 곧 새로운 사회의 창출을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사회의 창출은 권력장악과 함께 이를 가능케 하는 사회적 플랜과 헤게모니의 실현이 뒤따라야 한다. 진보정당이 사회운동적 정당으로서의 자기 위상을 정립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만약 진보정당이 의회주의 혹은 권력에의 참여만을 그 정치적 활동의 주요 공간으로 생각한다면 진보정당은 의회 중심의 당 운영과 이로 인해 파생되는 의원단의 권력 강화, 당내 민주주의의 실종과 패권주의에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시기 진보정당 운동의 실패는 바로 사회운동적 정당으로서 정립, 의회정치와 대중정치의 결합, 대중 참여에 근거한 정치운동의 부재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대중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당의 민주주의를 실질화하는 제도, 프로그램, 운영의 면에서 구제척이고 총체적인 전략이 부재한 것에 기인한다. 물론 이러한 실천적인 정치운동의 부재에는 위에 언급한 당의 대중적 토대인 노동자들이 공장의 담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다 실천적으로 드러난 실패의 요인들은 진보정당의 분당과 이어지는 진보대통합, 그리고 구 통진당 내에서 빚어진 혼란이었다. 분당은 위에서 언급한 문제점들이 누적되면서 ‘결과’로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분당 그 자체를 진보정치 실패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보는 것은 과도한 평가이다. 진보정치운동의 과정에서 발생한 많은 문제들에 대한 성찰적인 반성과 혁신이 모든 주체들에게 없는 구조에서 분당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따라서 분당 그 자체나 당을 분열시켰다는 비판을 받는 진보신당 결성의 주체들에게 진보정치 실패의 책임을 묻는 것 또한 온당치 못하고 부적절하다.
오히려 문제는 분당이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반성에 근거하여 과거의 오류들이 극복되는 과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문제점들은 이후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활동과정에서 여전히 그대로 존재했으며 때로는 더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대중은 이반하기 시작했고 진보정치의 성장에 의해 정체성의 동요와 지지기반의 위기를 겪고 있던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헤게모니는 복원되고 유지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진보대통합 또한 과거의 문제점들을 제대로 극복하는 과정이 되지 못했다. 판도라의 상자에 가두어 둔 진보정치의 문제점들을 열어 볼 엄두도 내지 못한 상태에서 당면한 선거를 겨냥한 의회권력의 문제와 통합이라는 대중적 이미지에만 매달렸던 통합이었다. 결과적으로 통합은 실패했고 다시 한 번 진보정치는 휘청거리다가 통합진보당의 부정․부실선거 문제와 이어진 2차 분당으로 벼랑 끝으로 몰리고 말았다. 원인이 결과를 낳고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는 악순환의 과정이었다. 허나 지금 진보정당들은 아주 많다.
진보정치의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이 왜 필요한가?
진보정치의 새 길은 이러한 문제들이 극복될 때 가능하다. 진보정치의 주체를 자임하고 있는 진보정당들은 나름의 처방과 진단을 통해 저마다 새로운 진보정치의 길을 제시하며 독자적인 행보에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과거에 대한 기억이 다르고 과거로부터 불러 온 사실들도 선별적이다. 과거로부터 미래를 모색하기 보다는 갈 길을 정해두고 과거를 역사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진보정치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과거에만 있지는 않다. 현재와 미래에도 여전히 진보정치의 발전과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더 높은 벽을 쌓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각자의 전망이 무엇이든 진보정치의 앞길에 놓인 또 다른 도전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우선 고민스러운 것은 진보정치의 대중적 토대로서, 또 진보의 정체성의 가치의 저수지가 되어야 할 노동운동이 여전히 자기전망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대중적 역동성도 현저히 약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진보정치의 일각에서 민주노조운동을 뛰어 넘는 새로운 형태의 대중적 기반, 계급적 기반을 이야기하지만 조직화된 노동의 새로운 단결과 혁신이 전제되지 않는 계급의 단결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동시에 노동운동의 침체는 전반적인 사회적 저항전선의 약화를 의미한다. 체제에 대한 저항과 이를 통한 새로운 질서를 중심에 놓는 진보정치에게 있어서 대중운동의 침체와 사회적 전선의 붕괴는 그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는 지점이다.
이런 연유로 진보정치에서의 철수와 대중운동의 강화를 주장하는 것은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5) 그러나 노동운동의 과제가 과거처럼 공장의 담 안에만 있지 않은 조건에서 대중운동의 정치성은 불가피한 문제이며 이는 곧 바로 노동자정치운동, 진보정치운동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대중운동의 강화를 위해서도 진보정치의 새로운 전망이 제시되어야 할 시점이다. 정치에서의 철수는 대중운동의 강화가 아니라 보수적 또는 자유주의 정치에 대중운동은 떠넘기는 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대중운동과 진보정치가 서로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형국이다. 발본적인 평가와 재정립이 시급한 이유이다.
다음으로 박근혜정부의 등장이 진보정치의 지형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부정적이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1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정치의 지형을 바꾸어 놓고 있다. 국정원 문제, 대북 강경 정책, 공무원노조와 전교조 합법성 부정 등 노동운동에 대한 전략적 공격, 이석기 사건을 빌미로 한 진보세력의 마녀화, 복지공약의 폐기와 후퇴 등을 통해 한국사회는 다시 ‘민주-반민주’의 왜곡된 구도가 부활되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필연적으로 대중의 자유주의 정당으로의 경도를 부추기고 이에 근거한 자유주의 세력들은 반독재연합전선 혹은 민주대연합의 구축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유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치적 지형에서 형성되는 전선에서 진보진영이 취약하다면 그 주도권은 필연적으로 자유주의 정치세력에게 넘어가게 된다. 이로 인해 대중의 우경화와 진보정치 내부에서의 정체성의 동요와 혼란의 가능성은 더 높아지게 된다. 가뜩이나 취약한 진보정치의 토대는 더욱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 지는 것이다.
이석기 사태 또한 강 건너 불구경의 문제가 아니다. 단순하게 공안탄압에 대한 공동대응 문제를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석기 사태는 진보정치의 대중적 토대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이석기 사태를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의 차별성과 존립의 근거로 삼고 있지만 대중적인 변별력을 획득하기는 어렵다. 진보진영 내부에서는 이석기 사태에 대한 인식과 처방에서 대립 갈등하면서 분열하고, 보수세력들은 진보세력 모두가 이석기류의 세력이라는 낙인을 찍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대해 진보정치가 새로운 근거지를 재구축하고 제대로 된 전망, 과거의 낡은 관행과 사고를 혁신하는 대중적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진보정치에 대한 대중의 기대는 점점 더 사그라질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각각의 진보정당이 어떤 새로운 전망을 세우든지 홀로 쉽게 돌파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진보정치의 분화와 각개약진, 그 속에서 파생되는 일정한 정파주의(자기정당화), 혹은 경쟁적 패권주의(타인에 대한 배제)는 진보정치를 강화하는 순기능으로 작용하지 못할 것이다.
요컨대 진보정치는 ‘확장의 가능성’과 ‘전망의 부재’라는 모순적인 구조에 놓여 있다. 한편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모순으로부터 비롯된 체제에 대한 광범위하고 다양한 저항운동과 그 운동이 새롭게 제기하고 있는 진보의 가치가 전통적인 계급대립의 폭을 넓히면서 진보정치에게 확장의 가능성을 던져주고 있다면 또 한편으로는 대중운동의 침체, 박근혜 정권의 등장에 따른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헤게모니 복원과 진보정치의 동요, 이석기 사태로 인한 진보정치의 총체적 위기, 분화와 대립 속에 독자적인 자기전망에 갇혀 있는 진보정당의 전략 등이 전망의 부재를 낳고 있다.(6)
진보정치의 새 길은 확장성의 실현과 전망 부재의 극복에 있다. 연석회의는 그 시작을 위해 현재 분화 또는 대립적인 진보정치의 지형이 통일되고 재편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진보정치 통일과 재편이 필요한 것은 운동의 복원과 재결집이 필요하기 때문
진보정치의 통일.재편에 대한 생각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진보정치가 반드시 새로운 전망을 세워야 한다는 당위에 동의하면서, 그리고 통일과 재편에 대해 원론적으로 그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방법에 있어서 지금 바로 진보정치의 지형을 통일․재편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들이 있다. 이미 실패한 진보대통합, 혹은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진보대통합과 비교하여 지금의 통일․재편 논의가 전혀 새롭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한 번의 무조건적 통합이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나타나는 성찰 없는 정치공학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통일과 재편이 실질적으로 어떤 정치적 효과를 줄 수 있겠냐는 회의도 있다. 기존의 진보정치세력들의 통합이 대중에게 과연 희망을 줄 것인지, 또 구체적으로는 지방선거로 대표되는 정치적 계기에서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 모두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기존 진보정당들의 내부적 조건, 즉 진보대통합의 실패에 따른 혼란의 후유증으로 인한 당원들의 우려, 내부정치의 긴장, 지방선거 준비를 포함하는 정치 일정 등도 만만치 않은 문제라는 것이다. 자칫 통일․재편 논의가 그나마 일정하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자기 정당의 구심력을 훼손하고 또 다시 혼란에 빠지게 할지 모른다는 우려이다.
또한 이런 문제들보다 근본적인 것으로 과연 진보정치의 통일․재편의 기본적인 방향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즉 통일․재편으로 포괄하는 이념과 노선은 무엇이고 진보정치의 주요한 정책 의제들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념적 차이와 갈등이 크게 나타났던 과거 진보정당운동 내부의 혼란과 분열을 고려할 때 이런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합의 없이 통일․재편이 과연 가능하겠냐는 의구심이다. 보다 분명하게 말하면 현재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들의 이념과 가치가 다른데 과연 가능하겠냐는 질문이다.
현재의 진보정치의 지형에서 충분히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연석회의는 이런 문제에 대한 주체들의 고민을 충분히 수용하지 않는 통일․재편 논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연석회의는 우선 새로운 통일․재편 논의가 종래의 상층 중심의 진보대통합 논의와는 다르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싶다. 통일․재편 논의가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단결과 요구, 그리고 과거에 대한 성찰을 기반으로 한 실천적인 노동자정치운동의 과정에서 제안되고 있다는 점이 평가되기를 바란다. 또한 종래의 진보대통합이 기존의 진보정당의 필요에 의해 진행되고 그로 인해 1+1의 구조를 넘을 수 없었던 한계가 있었던 반면에 노동자들의 책임 있는 참여가 진보정치 전반에 대한 대중적 기반의 확장 가능성을 열 수 있을 것이라는 점도 평가되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연석회의는 통일․재편의 과정에서 위에서 언급한 지난 시기 진보정치운동에서 나타난 문제에 대한 구체적 대안에 대한 논의를 우선 과제로 함으로써 명확하게 과거의 성찰 위에 통일․재편 논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논의가 상층의 논의에 그치지 않고 지역에서도 구체적인 연대활동과 토론을 통해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아주 구체적인 정치적 실익이나 대중적 희망의 부재 문제도 좀 더 넒은 시각에서 보아야한다는 생각이다. 통일․재편을 지방선거에서 단순히 얼마나 제도권력에 진입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좁게만 바라보는 것은 진보대통합의 오류를 반복할 수 있다. 당장 그 정치적 실익에 주목하기 보다는 통일과 재편을 통해 노동자와 대중들에게 진보정치의 정치적 존재감을 확인시키는 것이 현재 우리 진보정치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라는 점이 공유되어야 한다. 새로운 전진을 위한 진지를 구축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진지의 구축이 현장정치를 복구할 것이며 지역에서의 진보의 헤게모니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통일과 재편의 과정이 당장 대중에게 눈이 번쩍 떠지는 희망으로 비추어 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그동안 진보정치의 실패가 노정한 여러 가지 요인들 때문이다. 통일․재편이 대중에게 희망으로 다가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통일․재편을 위한 우리들의 노력의 과정에서 분명하게 확인될 것으로 믿는다.
각각의 진보정당들이 처한 조건 또한 연석회의는 간과하지 않는다. 우리는 통일․재편에 대한 논의가 각 정당들이 우려하듯 혼란의 발원지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는 각 당의 조건을 충분히 고려하며 통일․재편 논의가 운동적 의미를 가질 수 있게 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반대로 각 정당은 현재 진보정치의 여러 가지 한계를 공유하며 통일․재편의 필요성을 확인하면서도 당의 내부적 조건 때문에 통일․재편 논의 자체를 거부하거나 소극적으로 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진보정당은 사회변혁운동의 가장 중요한 조직의 하나이다. 대중운동 조직이 갖고 있는 개량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채워주는 곳도 당이고, 진보의 다양한 가치를 포괄하여 계급운동과 부문운동을 결합시켜 나가는 주체도 당이다. 따라서 진보정당은 노동운동을 포함하는 진보운동 전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며 전체 진보운동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전략을 가져야 한다. 그 전략 속에서 정당의 정치전략도 존재하는 것이다. 자기 당의 정치전략이나 자기 조직의 확대 혹은 내부정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자체에 대한 전략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선거가 진보정치 전체에 미치는 영향과 정세에 대한 진단 속에서 자기 전략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연석회의는 진보정당의 주체들이 당 내부에서 책임 있는 공론화를 통해 내부정치의 조건들에 대해 소통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통일․재편을 포괄하는 이념은 과연 가능한가?
우리 진보정당들이 표방하는 기본적인 방향은 그대로 놓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조직적인 노선으로서 독자적인 진보정당으로서의 발전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전위나 엘리트 정당이 아닌 대중적인 토대에 근거하는 대중정당을 지향하고 있다. 의회정치에 대해서도 그동안 의회주의에 경도되었던 오류가 평가되면서 각 당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의회정치의 기능에 대해 일정한 고민들을 공유하면서 사회운동적 정당으로서의 전망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진보정당 운동에서 치명적인 상처가 되었던 당 내 민주주의의 문제는 현재 진보정당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기존의 진보정당들이 하나의 정당으로 통일․재편되는 것이 과연 어렵고 불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7)
그러나 이런 점들에 우선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지향하는 이념의 문제이다. 결국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진보정치의 통일․재편 문제는 논쟁의 한 가운데로 들어서게 된다.
결국 질문은 통일․재편을 포괄하는 이념은 과연 가능한가? 이다. 이 질문이 00주의라는 이름을 들이대는 논쟁으로 진행될 경우 결코 통일․재편을 포괄하는 특정한 이념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진보정당들은 이와 관련하여 각각 강령과 선언 등을 통해 제각기 나름의 이념적 지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어느 정당도 이념적 지향을 넘어 명확하게 단일한 00주의 정당이라고 못 박고 있지는 못하다.(8) 이는 각각의 주의에 대한 정의가 일률적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닌데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개념 또한 변화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선언과 강령이 일정한 지향과 방향성을 의미할 수는 있어도 다른 진보정치세력에 대한 배타적 정체성으로까지 규정하기에는 그 경계가 모호하다. 따라서 그 대중적 기반 또한 분명하게 차별적이거나 분리되지도 않고 있다.
연석회의 또한 지향하는 이념에 대하여 일정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연석회의는 현존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사회를 지향하는 진보정당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서 대안사회란 곧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이 견지되는 새로운 대안적 사회체제임을 확인하고 있다. 연석회의는 이러한 방향과 지향을 실현하는 주체로서 노동의 가치를 중심에 놓는 노동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연석회의의 가치와 지향 또한 대중적 진보정당이라는 정체성에 우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다양한 가치와 요구가 분출되면서 종래의 계급 해방으로 환원할 수 없는 생태, 여성, 소수자, 문화 등 다양한 차원의 가치와 모순이 존재하며,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또 다른 저항의 전선들이 구축되고 있다. 당연히 그것이 어떤 주의든 그 범위는 때로는 서로 긴장하며 상호침투하고 때로는 자기 범주를 확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은 민족문제와 계급문제의 전통적인 차이를 좁히기도 하고 때로는 여성운동과 노동운동, 계급문제와 환경문제의 차이를 노정하기도 했으며 사회주의와 사민주의의 새로운 접점을 형성시키기도 했다. 또 이런 과정에서 낡고 교조적인 이념은 수정되기도 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최근 통진당 사태가 진보정치 전반에 시사하는 지점은 바로 이것이라 할 수 있다. 통진당은 과거의 정당운동에서 보인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분명한 반성과 혁신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통진당이 견지해 온 이념에 대한 자기성찰이 될 것이다.(9)
이처럼 현재 현실에서의 이념은 매우 다양하게 교직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특정한 주의를 표방하는 것만으로 진보의 정체성을 모두 포괄할 수는 없게 되었다. 이말은 이념의 폐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의 이념적 확장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측면에서 소위 사회주의 혹은 사민주의 정당 또는 PD당, NL당으로 규정하고 한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념적 지향성이 전혀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진보정치를 지향한다는 것은 현존하는 질서에 대한 새로운 대안, 즉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한계를 넘는 새로운 대안적 사회질서를 창출한다는 목표는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연석회의는 현 단계에서 진보정당은 00주의로 스스로를 특정하여 규정하기 보다는 포괄적인 사회변혁을 목표로 하는 이념적 지향을 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연장선에서 통일․재편에 의한 연합정치의 이념적 지향을 공유하고 그 속에서 각 주체들의 구체적인 이념과 가치가 공존하고 경쟁하는 체제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 구체적인 과정은 정책강령이나 행동강령의 논의와 합의일 것이다. 북한문제, 공공부문에 대한 문제, 생태문제, 자유주의 세력과의 연합 혹은 연대의 문제, 복지문제 등에 대한 진보정치의 공격적인 담론과 의제들이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진보정치의 통일.재편을 포괄하는 이념이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진보진영의 ‘연합정당’을 제안한다. 우리는 이를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연석회의는 이러한 조건들 속에서 통일․재편의 현실적인 방안으로 연합정당을 제안한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2차 토론회에 제출되었던 연석회의의 공식 발제문을 첨부한다. 요약하면 연석회의는 이 발제문에서 연합정당의 기본적인 상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고 있다.
진보 연합정당은 사회주의와 사민주의 등 일정한 이념적 차이들이 공존하고 민주주의와 소통의 원리가 관철되는 정당이다. 연합정당은 과거 진보정치를 퇴행시켰던 정파주의, 패권주의적 기조와 철저하게 단절하는 정당이다. 연합정당은 중도 자유주의 세력과 구별되는 독립된 세력을 지향하며,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철저하게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정당이다. 연합정당은 급진적인 진보적 정책강령을 수립하고 이를 의제화하는 한편 현실에서 벌어지는 현장투쟁을 비롯한 다양한 투쟁에 함께 하는 정당이다. 연합정당은 진보진영의 모든 세력을 한꺼번에 포괄하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연합과 단결을 단계적으로 확장시켜 가는 정당이다.
단언컨대 연합정당이 진보정치의 새로운 전망을 열기 위한, 혹은 진보정치의 통일․재편을 위한 가장 완벽한 방안은 아니다. 연석회의는 통일․재편을 위해 여러 가지 다양한 방안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연석회의가 연합정당을 제안하는 것은 각 주체의 현재의 조건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고민하면서 보다 유연하고 폭 넓은 논의의 장을 만들기 위한 것임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연석회의는 이러한 논의들이 끈질기게, 그리고 진정성 있는 토론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다만 연석회의가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연석회의의 기본입장이 각 정치주체들로 하여금 이러한 논의를 당의 전략적 대응의 수준에서 바라보게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어떤 방식이든 책임 있는 논의에 함께 해 줄 것을 기대한다.
우리는 조급한 논의도 원치 않지만 진보정치의 통일․재편을 막연하게 장기적 과제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지방선거가 진보정치의 사활적 문제라고 보지도 않지만 현재의 진보정치의 상태를 볼 때 적당히 넘어가도 될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우리는 진보정치의 통일․재편이 지방선거 전에 이루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것이 또 선거를 앞둔 공학적 접근으로 이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지방선거가 다시 노동현장의 대중적 혼란 속에서, 그리고 일반 민중들의 관심의 영역 밖에서 진행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지방선거에서의 구체적 성과가 아니라 지방선거가 진보정치의 새로운 진지 구축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진보정치의 통일․재편 혹은 연합정당의 건설이 진보정치의 새로운 전망을 여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연석회의는 그것이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통일․재편의 논의과정에서 충분조건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내 민주주의와 소통의 문제, 의회활동과 제도권력에 대한 문제, 진보의 헤게모니를 강화하기 위한 실천적인 정치운동과 지역거점 운동, 지역과 현장, 그리고 부문에서 진행되는 각종의 현안투쟁에 대한 공동의 연대투쟁, 대중조직과의 연대 등이 논의의 과정에서 진보정치의 새로운 전망과 어울리며 중요한 과제로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연석회의는 이런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대안을 제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진보정치 주체들의 논의와 협의 기구를 제안한다.
진보정치의 통일․재편을 포함하여 진보정치의 새로운 전망을 논의하기 위해
연석회의는 이러한 모든 논의를 위하여 진보정당을 포함하는 진보정치 주체들의 논의기구를 제안한다. 우리는 이 논의기구가 상설적이고 정례적인 성격을 갖는 공식적인 기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논의기구를 통해서 진보정치의 통일․재편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진보정치의 전망을 제시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연석회의는 11월 2일 그동안 전국에서 조직된 지역조직의 대표들이 모여서 공식적인 노동정치의 전국추진체를 결성할 예정이다. 그동안 임시조직으로서 전국적인 노동정치 추진체의 추동체로서 역할을 해왔던 노동정치연석회의를 해소하고 본조직을 건설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조직의 결성 이후 다시 공식적으로 이러한 논의기구의 구성을 각 진보정치 주체들에게 제안할 예정이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이러한 제안에 앞서 당연하게 각 주체들과의 충분한 협의를 거칠 것이다. 왜냐면 우리는 이것이 어느 한 주체의 몫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함께 고민을 풀어 나가기를 바란다.
글을 마치며 – 간절하게 참 철없이(10)
연석회의는 새로운 노동정치, 진보정치를 열어가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정치적 결사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진보정치의 현장 조건에 대한 이해가 연석회의 입장을 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노동현장에는 진보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이 팽배해 있다. 이러한 흐름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혹자는 다 쓰러져야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현재의 노동운동의 조건으로 미루어 현장의 정치적 의식이 자생적으로 성장할 것 같지는 않다. 한때 진보정치의 가장 중요한 저수지였던 대중운동은 말라붙고 있다. 이는 진보정치의 전망에도 치명적이다.
현장의 노동자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그리고 짐짓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조합주의에 가져다 붙이는 정치적 알리바이도 모두 진보정당의 분열 탓이다. 진보정당의 분화는 나름대로의 역사적 과정이고 이유가 있는 것이지만 대중에게 진보정당의 변별력을 확인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11) 따라서 분화의 정당성을 설득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문제이다. 더구나 최근에 터진 이석기 사태는 이석기 그룹만이 아니라 진보정치 전체에 대한 외면 흐름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연석회의가 다소 조급하게 비치는 면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진보정치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단지 현장의 노동자들뿐만 아니다. 오랜 기간 진보정치를 위해 노력했던 활동가들도 고개를 젓는다. 진보정치의 새로운 전망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당위’와 ‘현실’의 갭 속에서 엄두가 안 난다는 입장이다. 진보정당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도 우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현재의 상황에 대하여 뭘 잘 모르고 있는 것 아니냐는 표정이 돌아오기도 한다. 더 심한 경우에는 쓸데없는 일을 벌이고 있다는 핀잔도 듣는다. 이 복잡한 지형과 구조를 생각하면 우리가 철이 없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자문해 보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와는 다른 입장, 다른 반응들이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정치의 험난한 과정 속에서 애써 왔던 사람들의 고민을 우리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진보정치를 위해 노동자들이 어떻게든 나서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그 진정성을 폄하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이 설사 즉각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하더라도 새로운 진보정치의 역사를 써가는 과정이 될 것으로 믿고 싶다.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바람이 여기 함께 한 모든 진보정치의 주체들의 바람도 되기를 기대한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각주>
1. 영국의 소설가 줄리안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책이다.
2. 조희연 교수는 이러한 운동들이 세계적 흐름인 2차 대안세계화운동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보면서 진보정당은 이러한 운동들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감수성을 갖고 당적 실천에 반영시키는 과제를 갖고 있다고 한다. 2차 토론회 자료 – <2차 대안지구화와 포스트민주화의 조건 속에서의 연합정당의 가능성과 성격에 대한 시론> 2013
3.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의 조사에 의하면 ‘만일 안철수신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후보자를 출마시킨다면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하여 응답자 중 14.9%가 ‘매우 큰 영향력을’, 40.7%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고 답했다. 응답자 중 약 55.6%가 안철수 신당이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4. 사회변혁운동에 있어서 이론과 실천, 궁극적 목표와 현실적 과제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중요한 문제였다. 마르크스는 이에 대해 “사상이 현실을 향해 다가가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현실 스스로가 사상을 향해 다가가야 한다”고 했고 로자 룩셈부르크는 “개량과 혁명의 관계란 결코 이분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관되어 있고 결합되어 있는 것”이라 했다. 이런 이론과 실천의 통일 문제를 ‘총체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한 사람은 루카치다.
5. 임영일 교수는 노동운동이 현재의 진보정치 혹은 진보정당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 시기는 독자적인 노동정치를 모색해야 할 시기이며 이를 위해서는 독자적인 실천으로서의 노동자 정치운동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즉 노동자의 정치적 요구를 중심으로 대중운동의 영역에서 정치적 실천운동을 진행하면서 기존의 진보정당과의 관계는 상호독립과 협조관계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중심의 진보정당 건설은 그 이후의 과제라는 것이다. 이는 노동운동의 정치에서의 철수라는 문제와는 구별될 필요가 있다. <함께하는 품 3호> 2012. 10
6. 진보정치의 확장 가능성과 관련하여 청년세대를 포괄하는 문제는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이다. 2012년 총선직전 한 여론조사결과는 진보정치가 청년세대의 대안이 아님을 보여준다. 전국의 대학생 1073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정치성향에 대해 46.77%가 ‘중도’ 24.29%가 ‘진보’, 13.95%가 ‘보수, ‘14.99%가 ’모르겠다‘라고 응답했는데 그나마 ‘진보’라고 응답한 대학생들 중 12.39%가 통합진보당, 5.75%가 진보신당, 1.33%만이 녹색당이라고 답했다. 민주당은 34.51%, 지지정당 없음은 34.51%였다. <고함20, 총선여론조사>
7. 정의당과 노동당의 진보정치의 통일.재편에 대한 기본방침은 다음과 같이 알려져 있다. 정의당은 2012년 10월 창당대회에서 ‘혁신을 전제로 노동자.농민과 함께 하는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추진하고 이를 통해 제2창당을 실현한다’라고 결의한 데 이어 2013년 6월의 혁신전당대회에서 제2창당을 결의하면서 ‘노동 등 혁신진보세력과 함께 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한다’라는 방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노동당은 진보신당 시절부터 진보정치의 통일과 재편 문제를 당론으로 계속 확인해 왔으며 2013년 3월 9일 전국위원회에서 이를 다시 확인하면서 기본원칙으로 4가지 원칙(독자적 진보정당, 사회주의 이상과 원칙, 대중정당, 민주적 결정과 존중)을 정한 바 있다.
8. 당의 이념적 지향을 규정하는 강령의 첫 부분을 노동당과 정의당은 각각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노동당 – “노동당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성별위계 구조와 생태 파괴 문명에 맞서 싸우며, 생태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 소수자 운동과 결합된 사회주의를 추구한다.”
정의당 – “정의당은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며,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이룰 것이다. 정의당은 우리나라와 세계 진보 운동의 이상과 역사적 성과와 한계를 비판적으로 계승한다.”
9. 이념적 지향에 대한 자기성찰이 통진당만의 몫이라는 뜻은 아니다. 모든 진보정치세력에게 이 지점에 대해 자기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언급했다. 다만 통진당이 최근의 문제에 대하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더욱 그 틀에 가두는 것에 대한 우려이다.
10. 안도현 시인의 시집 제목에서 따 온 말이다.
11. 민주노총의 상황인식 또한 다르지 않다. 2차 토론회에서 발표된 이근원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의 토론문이다. “진보정당의 분열은 노동현장에 대단히 심각한 폐해를 낳고 있음. 현장의 분열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고 조합원들의 노동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환멸을 낳고 있기도 함. 이런 상황에서 2014년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음. 산하 가맹조직에서 민주노총의 방치을 기다리고 있기도 함………. 진보정당의 분산이라는 조건으로 곤란함이 증대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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