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을 만든 8할은
위선과 부조리에 대한 비판정신
[책소개] 『이 개만도 못한 버러지들아』(정약용/ 앨피)
    2013년 10월 06일 12: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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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마디로 불세출의 학자이자 경세가인 다산 정약용의 사회비판적 논설과 한시, 소설, 편지글 등을 주제별로 엮고, 이를 18세기 후반의 요동치는 정치사회사 및 다산 개인의 삶과 연결 지어 재미나게 풀어 쓴 최초의 ‘참여작가 다산’ 연구서이다.

다산의 올곧은 성품과 치열한 사회비판 의식 및 인간적인 매력뿐 아니라, 당시 조선 사회가 안고 있던 각종 문제들과 시대적 한계를 음미하고 성찰한다.

조선의 참여파 작가라 불러다오

단군 이래 우리나라 최고의 학자로 평가받는 다산 정약용. 다산은 ‘개혁군주’ 정조의 측근에서 개혁정치를 주도하다, 18세 후반 격렬했던 당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무려 18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다산 연구는 곧 조선사의 연구요, 조선 근세사상의 연구요, 조선의 성쇠존멸에 대한 연구”라는 극찬은 이 기나긴 유배 생활이 준 쓰디쓴 선물이었던 셈이다. 실학자, 개혁가, 시인, 경세가, 의약학자, 언어학자, 행정가, 논변가, 과학자, 지리학자…… 다산 정약용이라는 이름 앞에는 무수한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런데 다산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그러나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한 타이틀이 하나 있으니 바로 ‘참여파 작가’이다. 기실 실학자 다산을 만든 8할은, 후기 조선 사회의 위선과 부조리에 대한 뼈아픈 각성과 비판정신이었다.

다산이 쏟아내는 ‘썩은 사회’에 대한 분노

다산을 실학자로 만든 사회 상황, 다산이 실학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당대의 정치 환경은, 다산을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한” 깨어 있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부조리한 사회 환경과 그에 대한 예민한 자각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한 시대의 거봉’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산은 탁월한 리얼리스트 학자로서, 당시 가장 고통받는 일반 백성들의 눈높이에서 당대의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그 개선책을 제시하려 애썼다. 비록 다산은 왕도정치의 구현이라는 조선 왕조의 유교적 기틀을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았지만, 그 사회질서 안에서 부패한 환부를 도려내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 진정한 왕도정치의 이상을 실현하려 노력했다. 약자의 편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개선하는 것, 그것이 참여작가 다산이 추구한 유일한 목표이자 궁극의 지향점이었다.

개만도 못한

2백년 전 조선과 2백년 후 대한민국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슬픈 자각이 밀려든다. 200년 전의 조선 사회와 200년 후 대한민국의 현실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자각. 200년이라는 세월이 격동 치며 흘러갔지만, 이 땅의 민초들을 옥죄는 부조리한 정치적 경제적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깨달음이다.

이 책의 목차를 보자.

― 나라의 안위는 경제에 달렸거늘
― 당나라 징세법처럼 현물 세금만 늘어나네
― 박격포 앞에서 활이나 익히라고 꾸짖는대서야
― 과거가 조선을 망친다
― 한 자리를 오래 꿰차고 있지 못하도록 하라
― 당쟁 그치고 화합하세
― 전라도에 대한 물음에 답하다
― 신분과 지역 차별을 없애십시오
― 중국 간다고 건들거리지 말라……

여기서 몇몇 단어들만 바꾸면, 일부는 아예 바꾸지 않아도 오늘날 우리가 껴안고 있는 문제의식과 거의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지점이 바로 이 책 <이 개만도 못한 버러지들아>의 출발점이자 문제의식이다.

다산을 읽는 감동

그렇다면 다산은 이런 ‘고질적인’ 사회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았을까?

당연히도, 그 방법은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상식과 인간애이다. 다시 목차를 보자.

― 모두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다
― 지체 높은 자보다 가난한 자 먼저
― 바른말 하는 자는 천금을 주고도 못 얻는다
― 백성을 수고롭게 하지 말라
― 돈을 간직하는 최고의 방법은 나눔이다……

다산은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궁에 머물 때에나,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유배지를 떠돌 때에나 변함없이 양반지배층의 특권을 제한하고 신분제를 완화하여 양반 천민 구분 없이 인재를 발탁해야 한다고 간언한다. 관료들의 부패를 막고, 백성들의 삶을 편안하게 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문제는 지배층의 반성과 실천이다. 그래서 다산은 쉼 없이 관찰하고, 고민하고, 반성하고, 실천할 방안을 모색한다. 감동적인 것은, 이 과정에서 다산이 언제나 힘없는 백성의 편에 섰다는 점이다. 다산은 특권을 대대손손 대물림하며 백성의 고통은 안중에 없는 양반층의 작태를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고 꾸짖지만, 저잣거리나 논밭에서 마주치는 일반 백성들에겐 한없는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아파한다. 바로 이것이 다산을 읽는 감동이다.

철저한 현실인(人) 정약용

다산은 결국 모든 것은 경제문제로 귀결된다고 보았다. 백성들이 부모자식을 버리고 관리들이 부정을 저지르는 이유도 돈 때문이요, 양반들이 백성들을 내려다보며 양반 행세를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돈 덕분이다.

다산은 지극히 현실적인, 봉건제 말기로 접어든 시대적 흐름을 예민하게 체득한 현실정치가이자 지식인이었다. 그래서 나라의 안위도 경제에 달렸고, 백성의 안민도 경제에 달렸다고 굽힘 없이 주장한다. 다산이 모색하는 길은 ‘다 같이 잘사는 길’이다. 이는 양반층의 특권을 줄이고, 백성의 세금을 줄이고, 토지제도를 바꾸고, 관리로 대표되는 행정체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면 가능한 일이다. 이를 위해선 조선의 지배층인 양반계급이 먼저 각성해야 한다.

다산은 주장한다. “선비도 먹고 사는 수단을 경영하라!” 당시의 봉건적인 사회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실로 혁신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다산이 자식들에게 주는 가르침

다산의 세계관과 신념은 공인公人 정약용의 대외용 구호가 아니었다. 사인私人 정약용의 삶도 철저히 그의 신념에 부합했다. 다산은 현실적인 아비이자 남편, 자식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곁들인다면, 다정한 사람이었다. 이는 다산이 유배 시절에 두 아들과 《자산어보》의 저자인 둘째 형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글들에 잘 드러난다.

다산은 귀양지 강진에서도 몸소 남새밭을 일구며 먹을거리를 자급자족하였다.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가서도 과일나무를 심고 채소밭을 가꾸고 뽕나무도 재배했으며, 닭을 비롯한 가축도 길렀다. 고향에서는 검단산 아래에서 인삼을 재배하기까지 했다. 그 덕에 나중에는 그리 어렵지 않게 살았다. 아버지 정약용이 자식들에게 주는 가르침은 구구절절 현실적이다.

― 생계가 먼저고 공부는 그 다음이다
― 출세에도, 경제에도 마음을 두어라
― 재물은 미꾸라지다
― ‘근과 검’ 두 글자를 유산으로 물려주마
― 모든 식구에게 일을 맡겨라
― 옳지 못한 재물은 오래 지킬 수 없다
― 베풀되 거저 주지 말라

한 마디로, 입신양명과 생계를 둘 다 챙기라는 당부다. 물론 그 과정은 옳아야 한다. 다산은 지행일치知行一致의 표본이었고, 이는 자식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언행일치에서 비롯되는 문장의 힘

다산의 세계관은 곧 다산의 글이었다. 굳이 ‘참여파 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일 이유가 없을 정도로, 다산의 삶은 곧 다산의 문장이었다. 다산은 백성을 아끼는 마음과 같이 문학을 숭상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곧 문학을 숭상하듯 백성을 아껴야 한다는 말이고, 이처럼 백성과 문학을 한자리에 놓고 아끼고 숭상하는 것이 다산의 시론이자 문장론의 출발점이다. ‘문장의 길은 곧 사람의 길’이기 때문이다.

― 시를 쓰려면 먼저 뜻을 세우라
― 미묘하고 완곡하게 드러내라
― 고전을 닦으면 나머지는 따라온다

굳이 ‘참여파’라는 수식어가 필요치 않을 정도로, 다산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가 곧 글을 쓰는 태도와 목적으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다산은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는 마음이 없이 쓰는 시는 시가 아니다”라고 천명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삶과 학문, 지식과 행동의 합일이 있었기에 다산의 글이 “몽둥이로 때리고 욕설로 꾸짖는 것보다 아프고 쓰라린”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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