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한 행성을 위한 경제학
[책소개] 『성장 없는 번영』(팀 잭슨/ 착한책가게)
    2013년 10월 06일 12: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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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을 포함한 지구상의 거대한 동물들은 어떤 이유로든 모두 멸종되었다. 제한된 환경과 자원을 지닌 지구라는 행성이 공룡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유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는 공룡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무수히 많은 소비상품들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유한한 행성인 지구 안에서 끊임없이 지구의 자원을 소모하고 환경을 파괴하며 만들어지고 있다. 70억에 이르는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을 소비하며 생산 시스템을 유지시킨다.

이러한 현실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유한한 지구가 이 거대한 시스템을 언제까지 유지시킬 수 있을까?

《성장 없는 번영》의 저자인 팀 잭슨은 생태 한계 속에서도 인류사회에 의미 있는 번영을 가져다 줄, 신뢰할 만한 전망을 탐색하여 우리에게 제시한다. 이미 생태계의 한계와 부존자원량의 한계를 더는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징후들과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와 주류경제학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추구하며 세계를 위험으로 내몰았고, 최근엔 오히려 경제침체를 불러왔다.

지금의 시스템을 유지해서는 모두가 파멸의 길로 접어들 것이 분명해진 시점에서 저자는 경제성장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바라는 우리의 열망과 유한한 지구가 지닌 한계가 조화를 이루는 길을 모색한다.

지속가능한 번영을 위한 제언

이 책은 영국 정부 산하의 ‘지속가능개발위원회’가 지속가능성과 경제성장 사이의 관계에 대해 진행한 광범위한 연구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다. 위원회에서 만든 같은 제목의 보고서를 토대로 일반 독자를 위해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눈부신 경제 발전을 통해서 부를 축적해온 경제 선진국들은 너무 일찍 자기들만을 위한 샴페인을 터뜨렸다. 황폐해진 지구와 하루 생계비가 1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생활을 하는 10억 명의 가난한 사람들을 둔 채로 말이다.

지금 세계 인구의 20%가 전 세계 소득의 2%를 얻고, 상위 20%의 부자들이 전 세계 소득의 74%를 거둬들인다. 그 막대한 소득은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선진국 국민들의 삶을 동경하게 만들어 온갖 종류의 소비상품을 만들어 팔아 얻은 것이다.

물론 그 소비상품은 지구 환경과 자원을 약탈하여 만들어 낸 것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은 금융시스템을 통하여 생산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2008년 금융 위기 직전까지 전 세계 부자들과 은행들을 위한 음악은 멈추지 않았고, 그들은 “여전히 춤을 추고” 있었다.

2008년 말 금융 거품이 터지며 전 세계는 재앙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음악은 멈추었고 더 이상 춤도 추지 못했다. 소비심리는 싸늘히 식어버렸고 투자도 멈추었다. 실업률은 급상승했고, 세계는 장기적인 경기 침체 전망에 직면했다. 각국 정부와 지도자들은 은행과 대기업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그 목적은 금융계와 거대기업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킴으로써 시중 자금의 유동성이 회복되고 수요가 다시 확대되어 경기침체를 멈추는 데 있었다. 좀 더 궁극적으로는 계속해서 경제성장을 추구할 수 있도록 지금의 경제 시스템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엔 누구도 말하지 않는 진실이 숨어 있다.

성장 벗는

현재의 경제체제는 번영을 위해 경제성장에 매달려왔다. 지금까지의 경제성장은 끊임없이 경제주체들의 부채와 소비수요를 증대시키며 달성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최근의 위기 상황이 대변해 주고 있다. 한마디로,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이 위기를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2008년 10월 런던시장 보리스 존슨은 금융위기가 정점에 이른 시점에 새로운 대규모 쇼핑센터를 개장하면서, 심각한 신용위기 상황인데도 사람들에게 집 밖으로 나와서 돈을 쓰라고 재촉했다. 런던시장은 개장행사에 참석한 수많은 인파를 향해서, 런던 시민들은 “목요일 아침에도 거르지 않고 쇼핑을 하러 오는 현명한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전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가 9·11 테러사건의 와중에도 사람들에게 “쇼핑을 하라”고 다그친 악명 높은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경제 전문가와 정부와 정치지도자들, 그리고 언론도 소비 증대를 통한 경제성장이라는 강력한 마법의 주문에 걸려 있는 것이다.

앞으로 세계 인구가 90억 명이 되는 시점에 모두가 OECD 국가에서 기대하는 만큼의 풍요로움에 도달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2050년까지 지금보다 15배 이상, 금세기말에 가서는 40배 이상의 경제 규모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대체 그러한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단 말인가?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한한 성장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이다.

성장 없는 경제라는 개념은 경제학자에게 저주?

지금의 경제 시스템은 구조적으로 경제성장을 통해 안정성을 유지한다. 2008년 후반 경제가 비틀거리자 정치인들과 자본가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기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실업과 파산위기에 몰린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침제의 악순환에 빠져든 것이다. 그럼에도 기존의 성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정신이상자나 몽상가, 또는 혁명주의자로 여겨졌다. 2008년 후반 <인디펜던트 온 선데이Independent on Sunday> 지는 다음과 같이 힘주어 주장했다. “우리는 사회주의자든 환경근본주의자든 경제위기를 자신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강요할 기회로 삼으려는 반자본주의자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유로운 자본주의 덕분에 오랫동안 만족스러운 삶을 누려왔다. 우리는 노동자 소비에트 치하의 유르트(몽골식 천막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과연 자유로운 자본주의 덕분에 오랫동안 만족스러운 삶을 누려온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왜 우리는 자유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금의 경제위기를 맞은 것일까?

이제 우리는 성장에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에게 성장 없는 경제라는 개념은 저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나 생태주의자에게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는 개념이야말로 저주이다. 제한된 시스템 안에서 무한히 성장할 수 있는 하위 시스템은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유한한 생태계 안에 어떻게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경제체제가 놓일 수 있는지에 대해 경제학자들과 성장 숭배자들, 그리고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과 그들과 공생하는 언론은 답해야만 한다.

결국 성장을 문제 삼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 성장 신화는 우리를 실패로 내몰았다. 성장 신화는 저유가 시대의 종말, 상품가격의 지속적 상승, 환경오염, 자연자원을 둘러싼 분쟁, 기후변화를 진정시켜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와 경제를 회생시켜야 하는 절박함까지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예전의 성장 우선 사회로 되돌아가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생태계 파괴와 변함없는 사회 부정의를 기반으로 한, 소수를 위한 번영으로는 문명사회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는 우리에게 변화를 위해 노력할 모처럼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사회를 병들게 한 근시안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여 지속 가능한 번영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이 책의 전반부에서 다루듯, 성장에 대한 고찰과 번영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탐색하는 것으로써 내딛을 수 있다.

생태거시경제학의 탄생!

우리는 성장의 딜레마에 묶여 있다. 이 딜레마는 안정을 이루려면 성장을 피할 수 없고, 경제가 성장할수록 환경에 대한 악영향 또한 커지기 때문에 생긴다. 성장 지지자들은 성장이 생태적 목표와 공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성장은 경제 규모를 키울 뿐 아니라, 기술효율성도 향상시키기 때문에 생태 한계 안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커지는 경제 규모를 지속적으로 초과하여 기술효율성을 향상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증거는 이 전략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선진국의 탄소 배출량 감소는 공장의 해외이전 등을 통해, 그리고 국경을 넘나드는 무역을 통해 이룬 것이지 근본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킨 것은 아니다. 또한 기술혁신은 소비를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불러왔다. 기술효율성은 경제 규모의 증대분을 초과하지 못했으며, 앞으로 그럴 수 있다는 징후 또한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의 경제구조와 우리를 소비주의의 ‘철창’에 가두는 사회논리, 이 둘 모두와 맞서야 한다. 우리에게는 더는 지속적인 소비성장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안정을 실현하고, 경제활동이 생태 한계를 넘어서지 않도록 하는 거시경제학이 필요하다. 이 새로운 거시경제학하에서는 우리가 생태 한계 안에서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삶의 덕목이자 성공의 주요 척도가 되어야 한다.

케인스의 거시경제학이 부작용이 없는 성장에 대해 크게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지만, 케인스는 ‘경제 문제’가 해결될 경우 “우리는 더 많은 에너지를 비경제적 목적에 투여하기를 더욱 원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생태학이 결합된 거시경제학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일 것이다. 사실, 생태거시경제학이 현실적으로 유효함을 증명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우리는 아직 생태 한계 내에서 경제안정을 이뤄낼 능력은 부족하다. 우리는 자본이 축적되지 않는 경우 일반 거시경제학상의 ‘총량’(생산, 소비, 투자, 무역, 자본, 공적 지출, 노동, 자금 공급 등)이 어떻게 작용할지에 대한 모델을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우리는 생태적 요인(예컨대, 자원이용과 생태계 서비스)들에 대한 경제의 의존성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모델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문제들이 경제학자들에게 친숙한 과제는 아니지만, 그 과제들이 의미 있을 뿐 아니라, 성취 가능한 것임은 분명하다.

기후변화와 자원고갈은 미래의 문제처럼 여겨질 수도 있고, 열대우림의 소실 역시 ‘아직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극심한 빈곤은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문제로만 비쳐질 수도 있다. 이는 우리가 근시안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망원경을 거꾸로 들고서 미래를(그리고 우리보다 운이 없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모든 것이 저 멀리 떨어져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근시안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공평하고 지속가능한 번영에 대한 전망은 침식되고 만다.

생태거시경제학의 기초

생태거시경제학의 출발점은 영구적인 소비증가가 경제안정화의 유일한 토대가 된다는 가설을 버리고, 지속가능한 경제의 기본 조건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기본 조건 역시 경제안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요구를 담아야 한다. 이 요구란 아마도 ‘회복력’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경제는 침체기 동안 혼란을 초래하는 내적인 모순을 극복하고 외부 충격에도 저항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회복력은 사람들의 생활에 안정성을 보장하고, 공평한 분배를 확실히 실행하며, 자원처리량을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자연자본natural capital을 보존하는 것을 전제로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통상적 거시경제학의 기본 변수들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지출할 것이고 또 저축할 것이다. 기업은 여전히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것이다. 정부는 여전히 세수를 높일 것이고 그것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지출할 것이다. 사적 부문과 공적 부문 모두가 물적, 인적, 사회적 자산에 투자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거시경제학의 변수들이 확실한 역할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변수 중에는 경제의 에너지 및 자원 의존도와, 탄소 한계를 반영하는 변수가 분명히 포함될 것이다. 또한 생태계 서비스나 자연자본의 가치를 반영하는 변수도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변수일지라도 생태거시경제학에서는 그 작용방식에서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소비와 투자 사이의 균형, 공적 부문과 사적 부문 사이의 균형, 다양한 부문들의 역할, 생산성 향상의 성격, 수익성의 조건 등 이런 모든 사항들이 다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생태투자가 반드시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채 규모를 통제하고자 한다면 저축률에 변화를 주어야 할 것이고, 총수요함수에서 소비와 투자 사이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이런 투자의 수준과 성격은 공적부문 투자와 사적부문 투자 사이의 새로운 균형을 요구할 것이다.

생태거시경제학은 새로운 투자 생태학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수익률과 생산성 개념을 다시 정립하여 장기적으로 사회 목표를 추구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되도록 함을 뜻한다. 또한 노동생산성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과 저탄소 산업에서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방법에 대해 체계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거시경제학은 경제를 사회와 환경에서 분리시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학문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자본시장이 만든 경제위기를 고려하면, 그 새로운 방식은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경제를 여전히 자본주의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구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할까? 그러한 구분이 중요하다고 계속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스타트렉’에 나오는 스포크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봐, 짐. 그 자본주의는 말이야,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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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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