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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나고 쓰는 노점일기] 노점의 성공이 노점의 위협 되는 역설
        2013년 10월 02일 11: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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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흥사거리에 잉어빵 노점을 시작한지 20일쯤. 단속은 계속 있었지만 메뚜기 생활도 조금 익숙해 질 무렵의 오후.

    잉어빵은 오후 4시부터 6시 사이에 제일 많이 팔린다.

    아침 11시쯤 마차를 펴고 장사 준비를 마친 후 일단 잉어빵 한 판을 굽는다. 그러면 점심을 못 먹고 시장에 가는 사람이 마수걸이를 해주기 십상이다. 그래봐야 한 시간에 잉어빵 열 개 팔기가 쉽지 않기에 오후 3시까지는 햇살을 쬐며 놀고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3시가 넘어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신데렐라에서 호박이 멋진 마차로 변신하는 것처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대목욕탕에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연예인 한 명이 내 마차에 앉아 있는 것처럼 잉어빵 마차의 존재감은 불쑥 커지고 사람들은 내 쪽으로 끌려들어오는 것이었다.

    잉어빵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다되어 가고 계속되는 단속에 주변의 시선도 꽤 받았으며, 잉어빵도 팥 듬뿍 넣어 잘 구워내기도 하니 당연할 것일 수도 있고 죽으란 법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정신없이 잉어빵을 구워낸다. 그러다가 6시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람들의 발길은 거짓말처럼 뚝 끊어진다. 사실 하루의 장사는 이때 다 하는 것이었다.

    이 날도 오후 3시가 지나 슬슬 잉어빵을 굽고 있는데,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무언가를 들고 지나간다. 무언가를 먹고 있다.

    무슨 일인가 확인해보니 내가 있는 곳 옆 건물 1층에 ‘동빵’이 들어섰다. 개점 인사라며 무료 시식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고, 동빵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빵을 받고 있었다. 낮인데도 동빵의 불빛은 밝디 밝았다.

    그 순간. 나와 내 마차는 흙빛이 되었다. 내 마차는 존재감이 없는 것처럼 투명해지고 있었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동빵을 들고 “너는 끝났어! 캬하하하!”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반죽 4개 팔고, 내일은 5개를 주문해볼까 하던 궁리는 오늘 남은 반죽은 어떻게 해야하나로 바뀌었다. 민원이 없으면 다음 주쯤 오뎅도 올려볼까 했던 계획은 더 힘겨워질 단속의 고민으로 바뀌었다. 단속이 있더라도 버티고 버텨 사브작사브작 잉어빵을 팔면 인건비는 나오겠다던 희망은 피시식 꺼져버렸다. 내 마차의 불은 꺼졌다.

    동빵

    동빵 매장의 모습(사진은 필자)

    동빵과 젠장버거

    동빵은 ‘똥빵’이라고들 부른다. 빵이 똥 모양으로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프렌차이즈 매장인 동빵은 태국식 자재 유통을 하던 동빵 대표가 한국의 붕어빵을 습기 많은 태국에 맞게 변형하면서 반죽을 개발한 것이다.

    동빵 초기에 안테나 매장(홍보를 위한 초기 샘플 매장)은 노점에서 했으나 동빵은 상가 매장 상품이다. 안정적으로 전기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전기를 쓰지 못하는 대다수의 노점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꽤 높은 체인비와 함께 반죽뿐 아니라 빵틀과 반죽 붓는 주전자까지 본사에서 구매해야 하는데다가 높은 임대료에 인건비까지 들어가야 상가매장이기에 빠르게 확산되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이는 상가매장에서 장사할 만큼 수입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근 동빵이 노점쪽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매장 창업주를 찾는 것보다 기존 노점에 기계와 반죽을 대는 것이 훨씬 수훨하기 때문이리라.

    홍대에는 저렴한 가격에 두툼한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로 유명한 젠장버거가 있다.

    언뜻 보면 노점인 것 같지만 노점은 아니다. 거리 쪽으로 나온 약간의 공간에서 세를 내고 장사하는 곳이다. 임대료가 4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홍대의 젠장버거는 직영점이고 다른 상가 매장은 별로 없다. 젠장버거를 하는 곳은 대부분 노점이다. 매장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매장에서 홍대만큼 팔리면 타산이 나오지만 다른 매장은 그렇게 안 되니까 늘리지 못하는 것이다.

    젠장버거는 노점에 고기 패티와 소스를 공급하는데 노점에서 팔아도 이문이 크지 않다. 그래서 노점도 젠장버거만 팔지 않고 이것저것 함께 팔고 있다.

    아딸이나 죠스, 국대떡볶이는 품목의 특성상 원가가 높고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데다가 임대료에 인건비까지 들어가야 한다. 최근 대로변 매장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는 00떡볶이 등은 더욱 많은 임대료가 들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우후죽순 떡볶이 프랜차이즈가 늘어나는 것은 다른 프랜차이즈에 비해 상대적으로 창업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브랜드간의 맛의 차이나 인기와는 별도로 창업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매장의 입지가 좋아야 하며 주변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나 같은 신규노점에게 단속이 가장 힘겨운 일이라면, 기존 노점에게 가장 위협적인 대상은 길거리 음식을 프랜차이즈한 가게이다. 죠스, 아딸, 국대떡볶이 등의 등장은 경기침체와 더불어 노점을 포기하게 만드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다. 사람들은 이제 길 가다가 먹었던 떡볶이나 오뎅, 닭강정이나 잉어빵을, 깨끗한 가게에서 젊은 청년들이 내어주는 보다 고급스러운 음식으로 먹는 것을 즐기고 있다.

    이렇듯 상품이 될 만한 메뉴를 개발해도 젠장버거처럼 매장에 들어가는데 한계가 있는 품목이 있고 동빵처럼 노점이나 매장이나 다 가능한 품목이 있으며 떡볶이 프랜차이즈처럼 길거리 음식을 브랜드화한 것도 있다.

    그리고 여전히 노점이 있다.

    젠장버거 대표의 입장에서는 노점은 중요한 유통망이고, 동빵이나 떡볶이 가맹점의 경우 유사 품목의 노점은 없어져야 할 존재이다. 무엇보다 노점은 ‘민원’이라는 노점을 없애기 위한 구체적인 행위가 가능한 경쟁 대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길거리음식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들어서면 주변의 노점은 민원으로 인한 단속에 시달리기 일쑤이다.

    누구나 노점을 하면서 돈을 벌어 안정적인 자신의 가게를 차리는 것이 꿈이다. 아무리 노점이 월세나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해도, 노점상들은 세금을 내며 불법이라는 딱지 없이 장사하는 것을 바라고, 월세를 내더라도 길거리의 노동과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노점에서 시작해서 성공했다는 떡볶이 프랜차이즈 창업주의 이야기를 보며 더 많은 노점이 그렇게 성공하기를 바래보기도 했다. 그러나 노점에서 성공한 가게가 역설적이게도 노점의 생계를 위협하는 현실을 보면서는 노점으로 생존하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다.

    좌절금지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만, 별다른 수가 없다. 나는 잉어빵 굽기를 중단했고, 동빵의 무료 시식이 밤까지 이어진다면 마차를 일찍 접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동빵을 들고 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즈음, 한 아저씨가 마차로 오더니 잉어빵을 4천원어치 달라고 한다. 네?

    내 마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잉어빵을 천원어치만 산다. 시장 안에서 4개 천원에 파는 아주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학생 4명이 오면 천원에 네 개도 준다. 아주아주 간혹 2천원어치를 사는 사람이 있는 수준이니, 3천원어치를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하고 싶을 정도이다. 그런데 사아천원어치라니!

    세 번이나 되묻고 나서야 나는 잉어빵을 싸기 시작했고, 싸면서 아저씨한테 슬쩍 얘기를 걸었다. “옆에 동빵 가게 개업했다고 공짜로도 나눠주던데요…”

    아저씨는 무뚝뚝하게 대답한다.

    “나는 잉어빵을 먹으려는 거거든”

    좌절금지.

    동빵 먹을 사람은 동빵 먹고, 잉어빵 먹을 사람은 잉어빵 먹는다.

    필자소개
    전직 잉어빵 노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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