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본 나의 조국-2
[파독광부 50년사] 아직 한국은 아버지의 고향이자 조국일뿐<검정밥 27>
    2013년 09월 27일 01: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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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을 몇 주 앞둔 한국은 자유로웠다. 어디에서나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고 작년과 같은 감시도 없었다. 올림픽이 한국에 가져다주는 제일 큰 선물의 포장지를 나는 만지는 것 같았다.

명동의 다방에서 <5공 비리>에 대한 책자를 팔러 온 젊은이를 만났다. 책을 한권 사면서 이런 책을 팔고 다녀도 암암리의 압력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나는 또 하나의 올림픽의 선물을 보았다.

나는 한국에서도 코리나에게 어떻게 처신하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코리나는 독일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화장도 하지 않고 제가 집어기운 바지에 위에 젖가슴까지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상의를 입고는 제 사촌과 함께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길거리에서나 교정에서 거의 반이나 들어 난 젖가슴에 오고 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끼고는 그 이튿날부터 코리나는 제 사촌 윤아가 무엇을 어떻게 입는가 보고, 저도 몸가짐을 달리했지만 화장은 하지 않았다. 코리나는 한국의 여대생들이 거의 다 일반인보다 더 사치하고, 멋진 옷을 입고, 화사하게 화장을 하고 다니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루는 윤아를 따라 대학가에 갔다가 돌아온 코리나가 흥분해 있는 것을 보았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코리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불평이 가득 찬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 왜 한국에는 대학생들이 히틀러를 영웅이라고 존경하고 있어요?”

나는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할 수 없었다. 나도 왜 아직까지 한국 대학생들이 – 물론 소수이겠지만 – 인간의 탈을 쓰고 도저히 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히틀러 같은 독재자를 영웅으로 취급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생각으로는 한국에서 해방 후 오늘까지 나치 전제주의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관심이 부족했고, 지금까지 국민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히틀러와 동맹국이었던 일본제국주의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로서 히틀러를 위대한 정복자로 취급하고 영웅으로 인정하는 일본인들의 안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사상을 후세대에게 넘겨주었고 또한 그 후세대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상의 평가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 이유에서 오는 것 같다. 나의 학교시절에도 중, 고등학생들의 졸업 사인북(sign book)의 설문에서 ‘존경하는 영웅?’에 대한 대답이 주로 한니발, 알렉산더, 나폴레옹, 히틀러라고 기재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에도 어른들이 술좌석에서 일본노래를 공공연히 부르는 것을 보았다. 그러한 어른들로부터 교육을 받은 우리 세대가 또한 얼마나 참된 교육을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었는지, 가히 네가 직접 보고 들은 것에서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대학생이 히틀러를 영웅으로 취급한다는 것은 인간 사회에 대한 엄청난 죄악을 정당화시키는 분별없는 교육의 진상과 한국 대학생들의 유럽 현대사에 대한 무관심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이 얼마나 민족주의자들인지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에요? 민족주의자들은 역사의 평가에 대한 정확한 안목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히틀러 같은 비인간적인 독재자도 영웅으로 취급할 뿐만 아니라, 정권을 획득한 사람이 독재를 하려고 하는 의도는 정상적인 동시에 또 그러한 정권을 찬성하는 심리가 국민에게 잠재하고 있다고 저는 볼 수 있어요.”

“민족주의와 그것으로 인한 독재 가능의 이론은 나도 인정하고 싶지만, 네가 우연히 접견하게 된 히틀러에 관한 견해를 들어서 한국 대학생들의 독재에 대한 무관심을 정당화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히틀러를 찬양하는 무식한 대학생들의 수는 아주 적은 것으로 추측하는 동시에, 한국 대학생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의지는 세상 어느 나라의 젊은이와 비교해도 높으면 높지, 뒤떨어지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 대학생들은 겨우 삼십년이라는 짧은 세월에 이승만 독재정권을 물리치고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을 민주주의로 이끌게 한, 세계에서 둘도 없는 찬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번에는 집권자들이 올림픽으로 인한 세계의 시선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도 군정독재에서 벗어나야만 했지만, 지난해와 비교하면 나는 오늘의 한국은 천국의 문 앞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로 기쁨을 감출 수 없다. 이러한 오늘이 있기까지는 수없는 이 나라의 대학생들이 길바닥에 피를 뿌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네가 시간 있는 대로 대학생들과 이야기하면 차츰 더 한국 대학생들의 생각과 사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오래 동안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히틀러

히틀러와 나찌 당원들의 모습

대인관계에 대한 한국은 코리나에게 어떠한 씁쓸한 느낌을 안겨준 것 같았다. 어떤 클럽이나 모임에서는 거의 모두가 아주 친절하고 정이 넘치는 것을 느끼지만, 서로 모르는 무명으로 오고가는 대인관계의 경우는 얼음처럼 차게 느꼈다고 했다. 내가 항상 상투적으로 코리나에게 자랑하던 <동방예의지국>의 이미지는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했다.

코리나는 간격이 없는 친척 간의 거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것 같았다. 물론 친척이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친척간의 사랑도 있기 때문에 보고 느낄 수 있지, 아무리 친척이라도 없는 사랑을 보일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마음에 든 것은 친척이나 친구 간에 어려움이나 격식이 없다는 점이었다. 언제 어디에서나 싫어하지 않고 반기며, 밤중에 누가 찾아와도 자리만 펴면 잠자리가 마련되었고, 독일처럼 잠자리 때문에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점도 물론 실내생활이 침대생활이 아니고 바닥에서 살고 자는 습관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고,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올 수 있고 친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보았다.

코리나를 당황하게 한 것은 은행이나 상점에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참 미인이시군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코리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그저 웃음만 띄우고 나왔다고 했다. 나는 한국 사람은 그렇게 상대방을 존경하고 또 친근감의 표현으로 그런 말을 한다고 했으나, 실제로 그러한 인사의 유래가 친근감의 표현에서인지 아니면 상투적인 아첨에서인지 몰랐다.

또 코리나가 느낀 것은 아는 사람에게는 한국인은 정말 친절한데, 모르는 사람에게는 쌀쌀할 정도로 냉정하다고 했다. 지금까지 누가 어느 장소에 먼저 와서 있으면 나중에 들어오는 사람이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인사를 하며 들어오는 것이 상례인 문화권에서 살아오다가, 누가 들어오면 마구간에 소 들어오는 식으로 누가 있든 없든, 본체만체하는 한국인의 대인예식을 보고는 너무 무례하다는 것이었다. 같은 인간끼리 어찌 그렇게 상대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고,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자라났고 한국을 알고 있어도 너무 외국생활을 오래한 탓인지 이 점에는 동감이 갔다.

며칠 전 동생집에 있을 때 아침에 내가 거실에서 신문을 읽고 있었는데 동생과 사업상 관련이 있는 어느 부인이 들어왔다. 나를 보고는 인사는커녕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동생이 나올 때까지 주춤거리며 서 있었다. 나는 민망해서 누구를 찾느냐고 물었더니, “아, 예 좀 ..” 하면서 말을 얼버무리고는 대답하기도 싫어했다. 조금 있으니 동생이 나왔다. 동생이 그 여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나를 가리키면서 오빠라고 하니, 그제야 깍듯이 인사하며 먼 길 오시느라고 고생이 많으셨다고 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그 여인의 친절에 구역질이 났다.

코리나보다 두 살 위인 윤아가 코리나에게 제 남자 친구 J군을 소개했다. 그들 셋은 자주 바깥에서 하루 종일 함께 놀다가 헤어졌다. 하루는 J군이 윤아와 코리나를 집에까지 바래다준 후 혼자 발걸음을 돌렸다. 코리나는 왜 이까지 왔다가 들어오지도 않고 가느냐고 함께 들어가자고 하니 윤아가 코리나의 팔을 잡으며 그냥 가게 두라고 했다.

“아버지, 윤아는 그 친구를 벌써 삼 년째 사귀고 있데요. 그런데 아직 한 번도 제 집에 데리고 온 적이 없어요. 고모님은 윤아가 남자 친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모르신데요.”

“내 생각으로는 아마 네 고모가 알고 있지만 윤아가 그릇된 짓을 하지 않으니까 모른 척하고 그냥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그릇된 짓이라뇨?”

“예를 들어 밤늦게 들어오거나 혹은 그와 함께 밤을 새운다 등등.”

“아버지! 윤아는 대학교 4학년생이에요. 다 성숙한 22세의 여인이지 않아요? 결혼할 나이인데 오래 사귀는 친구와 함께 놀다가 밤 늦게 들어오거나 심지어 그와 함께 밤을 새우는 것이 무슨 그릇된 짓이에요?”

나는 여기에 한국의 사회윤리와 유럽의 성문화가 맞서는 것을 느꼈다.

나는 코리나의 남성교제에 대하여 딸의 결정에 맡겼다. 제가 평생 살 사람을 제가 사귀어서 이 사람이면 내 평생을 함께 즐기며 살 수 있겠다고 확신이 선다면 결혼하라고 했다. 물론 그것도 행복의 보증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코리나는 독일에서 태어난 2세 중에 제일 나이 많은 축에 들어감으로 아직 어린 자식들을 가진 교포 이웃들이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딸을 의학이나 법학을 시키지 않고 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둘 뿐만 아니라 딸에게 전적인 성의 자유를 허락하는 나에게 가끔 힐책 비슷하게 딸을 그렇게 키우면 딸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질문도 했다.

나는 그럴 경우에는 동화 이야기를 꺼내었다. 마녀의 요술에 의해서 왕자가 개구리로 변하여 우물가에 있는 것을 발견한 한 소녀가 개구리에 입을 맞추니 개구리가 왕자로 다시 변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내 딸이 왕자를 만나려고 하면 수많은 개구리의 입을 맞추어 봐야 어느 놈이 변신한 왕자인지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해서 딸이 남자 친구들을 분별없이 사귀지 않았다. 삼년 전부터 피터라는 친구와 사귀고 있고 피터는 아들처럼 집에 드나들며 아침저녁 식사도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러한 자유를 누리는 독일에서 자란 코리나가 제보다 두 살이나 위인 윤아가 아직까지 행동의 제한을 받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코리나에게 또 말을 덧붙였다.

“한국은 젊은 여인이 결혼할 때까지 남자를 모르고 지나는 것을 미덕으로 안다. 결혼 전의 성생활을 윤리적으로 배척하고 그러한 행위를 하는 여인은 윤락된 사람으로 취급한다.”

“아버지 우리가 한국에 산다면 저도 이렇게 키웠어요?”

나는 정확한 대답을 찾으려고 애썼다. 내가 어떤 대답을 하던 그것은 유럽에서 살면서 얻은 생활철학이 선입적인 경향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인간은 유아독존 하는 것이 아니고 한 사회인으로서 그가 생활하는 사회의 질서와 윤리를 인정하고 가꾸어야 하기 때문에 나도 아마 너를 네 고모처럼 키웠을 거야.”

내가 한 대답이었지만 하고 나니 석연치 않았다.

한국에 와서 아버지의 조국을 경험한 코리나는 한국의 문화와 생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의 피가 섞였다고 자식이 한국을 사랑하거나 한국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코리나에게 한국은 어디까지나 아버지의 고향이고 조국이지, 제 조국이 아니었다. 딸은 한국인을 아버지로 가진 독일의 젊은 여성으로서 한국을 알려고 했고 한국의 문화와 접촉하려고 했다. 코리나는 아버지의 조국에서 그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어떤 유전자적인 것 외에는 사회적인 정체성은 찾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반평생을 독일에 살면서 독일에서 새 고향을 얻었지만 독일이 고향의 감정을 나에게 주지 못하는 사실을 보는 듯 했다.

코리나는 다음 방학에는 혼자 다시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다음계속>

필자소개
파독광부 50년사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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