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전의 종말론과 '휴거' 소동
    [산하의 오역] 1992년 9월 24일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 구속
        2013년 09월 26일 10: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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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10월 28일이라는 날짜를 혹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바로 ‘휴거’의 날이었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라’는 말에서 ‘다’와 ‘미’를 딴 다미선교회에서 지구의 종말이 닥치며 믿는 자들은 하늘로 들림을 받는 ‘휴거’를 경험하게 된다고 선언한 날이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1999년 7월보다 7년 먼저 일어난다고 예고된 이 종말론에 수많은 사람들이 빠져 들었다. 멀쩡한 철도원이 전 가족을 데리고 잠적하는가 하면 종말론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부모를 원망하며 음독자살한 여학생도 있었다. 전 재산을 팔거나 재산의 태반을 매각해 교회에 바치고 10월 28일까지만 연명할 재산을 들고 기도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전국적으로 따지면 수천 명에 달했고 해외 지부까지 있었다.

    이 다미선교회를 이끈 사람은 이장림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휴거’의 개념을 처음으로 국내에 도입한 사람이기도 하다. 1978년 어네스트 앵글리의 예수 재림 소설 Raptured를 번역하면서 처음 사용했는데 이 휴거는 매우 어려운 한자말이다 휴거(携擧).

    성경에는 이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데살로니카 전서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라는 말씀이 등장하는데 이때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짐’ 즉 공중들림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예수 재림의 말세가 되면 선택받은 자는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진다는 것이다. 이장림은 이것이 발생한다고 예언했다. 그의 신도들 가운데에는 들어 올려질 때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낙태를 감행한 이들도 있었다. (믿음이 약한 자 같으니 니가 강호동인들 하느님이 못 들어 올리겠냐)

    당시의 방송화면

    당시의 방송화면

    수천 명의 신도들이 휴거를 믿으며 전 재산을 바치고 골방에서 기도로서 세월을 보내는 사태가 벌어지자 당국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1992년 8월 12일 대검찰청은 산하 수사 기관에 “시한부 종말론이 확산되면서 일부 신자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가산을 교회에 헌납하거나 일부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학업을 중단한 채 가출하는 등 이른바 종말론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함에 따라 이에 대해 본격수사를 벌일 것”을 지시한다. 하지만 신도들이 스스로 헌납했다고 주장하는 이상 손 쓸 방법 또한 신통치 않았다.

    언젠가 한 용감한 PD가 사이비 교회에 숨어들어 장착한 몰래 카메라를 통해 마귀를 쫓는다는 집사가 신도들을 개 패듯이 패는 광경을 확보하고 경찰에 제출했음에도 신도들이 일치단결 집사님은 자신들을 때린 게 아니라 마귀를 쫓은 것으로 자신들을 도운 것이라 우겨 버리자 경찰도 집사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검찰은 이장림을 옭아맬 단서를 찾아낸다. 이장림이 1993년에 만기되는 환매조건부 채권(RP)을 구입한 걸 찾아낸 것이다. 1992년에 휴거될 사람이 웬 환매조건부 채권을 구입한단 말인가. 이외에도 수십억 원을 신도들로부터 받아 유용한 사실을 더해 검찰은 1992년 9월 24일 이장림 목사를 구속한다. ‘휴거’ 한 달 전이었다. 그러나 이장림은 억울하다며 피를 토했다.

    “저는 이번 휴거(携擧) 대상자가 아니고 ‘환란시대’에 지상에 남아 순교해야 할 운명입니다. 그래서 활동비를 준비해 둔 것뿐입니다.”

    진술하는 거 보면 거의 양심수 수준이다. “신앙생활을 충실히 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법정에 서서 처벌을 받아야한다는 현실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습니다.,,, 선교회를 설립한 이후 단 한 번도 신도들에게 헌금을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한 신도가 아파트를 팔아 헌금을 낼 때 무작정 사양하는 것은 그의 독실한 믿음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해 임시로 보관만 했을 뿐입니다.” 뼛속까지 평화주의자가 밥솥폭탄 운운하는 수준의 뻔뻔스러움.

    1992년 9월 24일 이장림 목사가 구속됐지만 휴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믿음은 불타오르기만 했다. 자신들의 선지자에 대한 박해는 휴거 이전의 프롤로그로만 보였고 고립된 교회 안의 믿음은 불길처럼 불타올랐다. 아예 가족과 집을 팽개친 신도들은 교회에 모여 집단생활을 하며 휴거를 기다렸다.

    심지어 10월 25일 이장림 목사가 사과 성명을 내고 휴거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선언했으나 이미 다른 선지자(고등학생이었다는데)를 모신 신자들은 아랑곳없었다. 드디어 10월 28일이 왔다. 전국 166개 교회에는 하느님이 보시기에 잘 고르라는 취지인지 하얀 옷을 차려입은 성도들이 집결했다. 종말론 따위 믿지 않는 시민들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주변에 운집했다.

    내 기억에 그날 서울에는 가을비답지 않은 소나기가 쏟아졌다. 하늘이 시커멓게 되어 낮인지 저녁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의 비였다. 그래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정말 휴거 되는 거 아니냐며 웃기도 했었다. 아마 신도들은 그 비를 보며 환호했으리라.

    그러나 밤이 되고 자정이 가까웠지만 그들은 중력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방 한 마리가 불빛 속을 날아가자 “나방이 휴거된다.”고 환호성을 지르며 하늘 향해 두 팔 벌렸지만 하느님은 구름 위에서 낄낄거리고만 계셨지 그들의 털 한 오라기도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주시지 않으셨다. 목사들은 담 넘어 도망치고 속았다 싶은 사람들은 책상을 둘러엎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한테서 들은 얘긴데 어느 신도는 흥분하는 동료들 앞에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형제 여러분! 우리 시간이 아니라 이스라엘 시간으로 열두십니다!”

    그렇게 휴거 소동은 끝났다. 1992년 9월 24일 구속됐던 이장림 목사는 1년의 빵살이 후 나와서 행한 첫 설교에서 이런 말을 했다. “시한부 종말론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으며 영혼에 대한 마약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사람답게 살겠다고 이름도 ‘이답게’로 개명했다는 이 목사는 간간히 휴거 날짜를 특정한 게 잘못이지 휴거는 일어난다고 하여 아직 그 버릇을 완전히 고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는 전언이다.

    사람들은 흔히 사이비 종교를 보면서 어떻게 정상적인 사람들이 저런 말도 안 되는 교리에 빠져 자신을 망치고 집안을 말아먹고 사회를 어지럽히게 되는가를 개탄하게 된다. 앞서 말한 폭력 교회의 경우 결국 문제의 전도사는 사람을 때려죽이게 된다. 맞아 죽은 사람은 처음에 경찰서에서 개입했을 때 “우리 전도사님이 나를 구했단 말이오!!!”라고 격노하며 항의하던 바로 그 여자였다. 아마 그녀는 목이 부러져 죽어가면서도 할렐루야를 외쳤을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싶다가도 요즘 페북 담벼락을 들여다보면 뭐 그럴 수도 있겠거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마도 이장림도 구속되면서 신도들에게 그랬을 것 같다. “형제들 저는 이렇게 순교의 길을 갑니다만 웃으며 함께 갑시다. 휴거는 옵니다.” 그때 신도들은 이러게 외쳤겠지. 뚜쟁~~!! 아니 아니 참 아멘~~~

    필자소개
    '그들이 살았던 오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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