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적 성역과 터부,
    북한만이 아니라 남쪽에도 많아
        2013년 09월 26일 09: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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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대개 북조선을 비난할 때에 “거기에서 김일성 가문이나 최고 지도자를 비판할 수 없잖아요”라는 부분을 빼어놓지 않고 꼭 집어넣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민족영웅”으로서의 김일성에 대한 존경심도 있다 하더라도, 대체로는 김일성과 그 가문은 위로부터 만들어진 “인민” 집단의 “대동단결”의 사회문화적 코드, 한 사회를 통제 가능한 “단위”로 만든, 온갖 터부에 둘러싸인 성역이 된 것입니다.

    각종의 내외부 모순에 가득한 조선 빨치산이자 중국 공산당 당원, 쏘련 적군의 대위 등으로서의 김일성은 간 데 없고, 한 치의 빈틈이 보이지 않는, 일절 모순이 없는 “민족 영웅”만 남고 말았습니다. 전자의 김일성, 즉 실질적인 역사 행위자로서의 김일성에 대해 훨씬 더 애착이 많은 저로서야, 이런 “공식 영웅화” 과정은 비극으로만 보이지만, “인민” 집단 창출의 논리상 불가피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북조선의 “인민” 집단 못지않게 남한의 “국민” 집단의 창출도 온갖 성역화 작업이나 터부 등에 뒷받침돼 왔습니다. 단, 그 성역화의 구체적인 과정은 북조선과 많이 다를 뿐, 성역화 그 자체는 북조선 수준이나 북조선 이상입니다.

    그러나 다소 뻔한 (건국 창업주 격인 인물과 그 자손의 신성화) 북조선에서의 성역화 과정과 우리의 성역화 과정들은 하도 다른 모습을 보이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우상 숭배”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점검하지 못할 뿐입니다.

    또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언론이나 교과서 등이 철저히 통제돼, 대다수 북조선인에게 김일성 가문의 숭배가 당연하듯이 우리에게도 우리들의 “작은 김일성들”의 숭배도 극도로 당연시됩니다. 한 번 간단히 우리들의 우상들을 여러 군(群)으로 나누어봅시다:

    1.

    북조선의 경우와 달리 남한의 초대 대통령이 극도의 대외의존성, 무능, 부패를 특징으로 했으며 경제개발에도 민족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정통” 정립에도 자신과 자신 계통의 영구집권에도 (다행히!) 실패하여 결국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419시위의 모습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419시위의 모습

    이제 그의 열렬한 팬인 유영익 씨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 됐기에 아마도 북조선을 방불케 하는 “창업주 컬트 (숭배)” 만들기 시도를 예상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이승만 치하가 어땠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아직 많아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 김구 등 일찍이 비극적 죽임을 당한 다른 극우파 지도자들이 그 대신 신성불가침의 “민족 영웅”으로 남을 셈입니다. 물론 김구와 그 계통의 극우파들이 저지른 각종의 암살행각 (김립 암살, 옥관빈 암살 등)의 본질이나 극민당 남의사 등 중국 파시스트들과의 유착 등의 문제에 대한 일절의 공개적 논의는 여전히 불가능할 셈입니다. 너무나 민주적이게도요.

    2.

    한국 정치 리더들의 모자라는 카리스마를 보완하듯이, 각종 종교적 “영웅”들의 숭배는 각 종교집단 별로 여전히 강하게 남을 셈입니다. “청빈의 종교인” 한경직이 아무리 월남까지 가서 “국군”의 침략 종범 행각을 축복했다 해도, “우리 시대의 고승대덕” 이성철의 보조지눌 돈어점수론 비난 등이 아무리 무의미한 독선과 독설에 불과해도, 그들은 각자의 종교집단 안에서는 여전히 절대적 권위를 지닐 셈입니다. 그런 절대적 권위에의 복종은, 과연 “위대한 수령”의 숭배와 본질상 그렇게까지 다를까요?

    3.

    “글로벌” 신자유주의 시대인 만큼, “국제적 가시성”이 특별하거나, 그런 가시성을 보유하면서도 국제적인 엄청난 돈벌이를 하는 이들도 신성불가침의 대열에 들어와 “국민 영웅”이 됩니다. 예컨대 노무현 시절에 유엔사무총장이 돼 일약 “국위선양”에 엄청난 기여를 한 유신시대 외교관료 출신의 반기문 씨를 보시죠.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대해 한 마디의 비판을 하지 않은, 그 반대로 입증되지도 못한 “천안함 격침”에 대해 철저하게 남한 외무성의 입장을 취한 그는, 인제 6만5천 명의 유엔노조와의 협상을 거부해 (관련 기사 링크) 유엔까지 가서 울산(현대자동차)이나 부산 영도(한진중공업)식의 노동탄압을 자행하는 자입니다. 그건 한국 언론들이 제대로 언급할 것 같습니까? 불문가지, 우리 ‘국민 영웅’은 무오류입니다!

    아니면, 한 때에 일본 광고대리회사 덴츠의 제안으로 IB스포츠가 그 메니즈멘트를 맡은 김연아 (관련 기사 링크)는 자신의 돈벌이와 함께 한국과 일본 등지의 광고대리업체, 그리고 피겨 생중계 방송의 광고주, 즉 국제자본의 돈벌이도 아울러 보장해준다는 점에 대해 과연 국내 언론들은 자주 이야기합니까? 피겨는 인제 “국민의 자랑”인 만큼 신성시되고, 자본의 “계획상품”의 성격을 지니게 되는 피겨 스타들은 “국민의 신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국가”, ‘국민”,그리고 자본이 중첩되는 이런 현상은 우리에게 그저 자연스럽기만 하고, 공개적인 비판을 거의 받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발언의 자유가 일부분 주어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한국처럼 언론자본이 국가와 보조를 맞추면서 철저하게 잘 관리하는 사회에서 그 어떤 체제비판적인 발언도 결국 황야에서의 외침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즉, 체제로서는 그런 비판이 덜 위험한 만큼 용인되는 셈이죠. 그러나 외침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해도 “나” 자신이라도 이 전체주의 사막에서 미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계속 외치는 것이 나을 셈입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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