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 식탁을 위협하나?
[에정칼럼] 기후변화와 WTO, 식량안보 그리고 자본주의
    2013년 09월 24일 11: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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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과 함께 찾아온 먹거리 걱정

이번 추석은 참 길고 긴 연휴였다. 이 긴 연휴를 나름의 휴식시간으로 보낸 사람들도 꽤 있겠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았고, 가족이 모이고, 기름 냄새를 풍기며 풍요로운 명절을 보냈다. 어느 명절보다 음식이 많아 행복한 추석을 두고 오죽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하겠는가.

늘 가장 좋은 재료를 골라 준비하는 추석, 그런데 올해 추석은 이전보다 더 조심스러운 상차림으로 기억될 것 같다. 장을 보면서 원산지를 꼼꼼히 체크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내 사전에 처음이었고, 시민단체를 사회봉사단체 쯤으로 여기는 친척들이 나에게 수입산 농수산물들의 신뢰도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 일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던 2011년이나 작년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방사능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졌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심지어 올해는 대형 마트부터 동네 5일장 까지 국내산을 홍보하기보다 일본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데 더 열을 올렸을 정도이니 드디어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싶다.

아마도 이는 추석을 앞두고 일어난 일본산 수산물에서의 방사능 검출과 수입금지 조치, 일본의 올림픽 유치와 아베총리의 ‘방사능 오염수 완전 통제’ 발언 등 몇 가지 사건과 함께 주요 지상파 다큐멘터리에서 이러한 문제를 심층 보도하면서 더욱 관심이 고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환갑이 넘은 나의 어머니조차 난생 처음으로 가공제품의 원산지까지 꼼꼼히 체크하게 되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2011년부터 일본 농축수산물의 수입금지를 촉구해왔던 시민환경단체(사진=환경운동연합)

이미 2011년부터 일본 농축수산물의 수입금지를 촉구해왔던 시민환경단체(사진=환경운동연합)

식탁! 먹을거리 이상의 의미

그렇다면, 우리가 꼼꼼히 먹을거리의 원료들을 살펴보기만 하면 우리의 식탁은 안전할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식탁을 차리는 사람들에게 음식은 그저 단순한 먹거리와 그 재료로만 여겨질 뿐이겠지만 사실 ‘식탁’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만나 먹거리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2012년 농림수산식품 주요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012년 현재 22.6%에 불과하고, 식품자급률은 44.5%이다. 특히 곡물자급률에서 쌀을 제외하면 이는 5% 남짓이다. 즉 80%에 육박하는 수입 곡물과 66%에 달하는 수입식품이 우리의 식탁을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의 국제 시장을 의미하고, 그 시장은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이를 차지하기 위한 혹은 지켜내기 위한 정치적, 외교적 관계를 만들어낸다.

최근 한국정부가 후쿠시마를 포함한 8개 현에서 생산된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취하자 일본은 이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행태지만 허울 좋은 ‘세계화’, ‘자유시장’이라는 단어 아래서 우리는 우리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위험성 있는 농수산물을 제제할 권리조차 위협당하고 있다.

사실 이번 일본의 WTO 제소 발언 전에도, 세계무역기구는 자유무역의 확대를 위한 국가 간 장벽 허물기라는 미명아래 끊임없이 우리의 식탁을 위협해 왔다. 그리고 당장 2014년으로 끝나는 쌀 수입 개방유예기간이 끝나면 2015년부터 한국을 쌀 관세화를 통한 전면 개방 위기에 처해 있다. 이것은 단순히 쌀 시장개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도 유지해온 22.6% 곡물 자급율의 위협이고, 이를 지켜온 농민들에 대한 위협이며,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식량안보의 위협이다.

식탁의 몰락과 기후변화

이렇듯 시장에서 팔리는 우리의 식탁은 계속해서 몰락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21세기 인류 최대의 난제인 기후변화가 그것이다.

올해 초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는 ‘기후변화가 식량공급에 미치는 영향분석과 대응방안’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경우 기후변화로 인해 심각한 경우, 2050년 쌀 자급률이 55%로 급락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당장 농업분야의 기후변화적응을 위한 대안이 시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후변화로 인한 생산성 감소는 비단 한 국가의 영향으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미국에 불어 닥친 기록적인 가뭄은 세계 곡물 수급의 불안정으로 이어졌고 그 파장은 전 세계에 미쳤다. 우리나라도 일제히 과자 가격이 오르면서 뉴스에 연일 보도된 바 있다. 미국의 가뭄이 아이들 과자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세상인 것이다. 그것이 지금은 먹지 않아도 그만인 아이들 과자로 표면화 되었지만,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기후변화와 함께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쌀시장을 포함하여 식탁의 모든 곳에서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기후변화의 문제 또한 시스템의 문제로 귀결된다. 기후변화는 인간의 화석연료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벌어진 것이고, 이 화석연료 사용에 가속페달을 밟도록 조장한 것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였다.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의 야욕은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한 후에 계속되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대응이 화석연료의 사용 저감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원자력과 인류의 식량인 옥수수나 사탕수수를 이용하는 바이오에너지였다. 결국 그 대안들은 후쿠시마 재앙, 곡물 가격 상승과 같은 더 심각한 문제를 만들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은 탐욕이고, 탐욕을 연료로 하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문제이다. 우리의 식탁을 위협하는 것은 원자력 발전에 목을 매는 원자력 마피아들, 농민과 민중의 아픔을 뒤로 한 채 농업을 거대 산업으로 만든 초국적 기업들 그리고 어느새 이러한 체제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들의 무관심이다.

무엇이 우리의 식탁을 위협하는가?

일본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으로 시작한 우리 먹거리에 대한 걱정은 이제 한걸음 더 나가야 한다. 지금 우리의 식탁을 위협하는 것은 일본의 방사능 오염 농산물뿐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끊임없는 시장개방의 압력, 기후변화, 그리고 유전자변형식품(GMO) 까지 너무도 많은 것들이 우리의 식탁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니 단순히 나만 안전한 식품을 먹는 것, 유기농 제품을 구매하는 것, 로컬푸드를 선택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지금 우리 식탁을 위협하는 것은 결국 시스템의 문제이다. 끊임없는 공급과 이를 위해 소비를 조장하는 지금의 자본주의는 지금 우리 식탁을 위협하는 모든 요소의 근본 원인이다. 그러니 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 되지 않는 한 우리는 매번 같은 문제에 봉착 할 수밖에 없다. 자유무역, 자유시장은 더 좋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공정하게 소비하는 것에 대한 관심보다 먹거리를 더 많이 판매하고 먹거리 시장 확대와 수익을 얻는 것에 만 관심을 가진다.

문득 지난 2010년 12월이 떠오른다. 2003년 이경해 열사가 WTO 5차 각료회의를 무산 시키며 투쟁했던 멕시코 칸쿤, ‘WTO가 농민을 죽인다’고 외치며 자결했던 그곳에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 참여한 환경단체, 인권단체, 반세계화 반자본주의 단체들이 모여 기후정의를 외쳤다. 기후변화와 WTO, 그리고 식량안보는 자본주의 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결국 ‘신자유주의가 우리의 식탁을 죽인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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