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계신을 아시나요?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 네팔
    [서윤미의 착한여행] 자연에 대한 외경심에서 비롯
        2013년 09월 19일 02: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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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라구요? 남자만 쉰다구요? 왜요 왜요 왜요?

    무슨 남자만 쉬는 축제가 있다는 것인가? 뱀신을 기리는 나그 판차미(Nag Panchami)가 지난지 언제라고 또 축제지? 나그 판차미는 뱀신을 기리는 날로 집 앞에 뱀신의 사진을 두고 뿌자를 드리는 날이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네팔 친구는 성이 ‘sapkota’ 인데 삽코타라는 뜻이 ‘뱀의 목을 자른다’는 의미로 조상 대대로 뱀을 잘랐기 때문에 본인들은 이 날을 기리지 않는다고 했다.

    인구수보다 훨씬 많은, 셀 수 없는 힌두신들, 그리고 민족마다 기리는 축제가 다른 축제의 계절이 다가온 듯하다. 8월에만 나그 판차미를 지나 남자들만 쉰다는 저나이 푸니마(Janai Purnima)에다가 사랑의 신으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크리쉬나 신을 기리는 Shree Krishnna Janmastami까지 축제가 몇 개인가.

    저나이는 성인이 된 바훈, 체트리 남자들이 목에서부터 가슴으로 연결해 매는 실을 뜻하며 푸니마는 보름달(fullmoon)을 의미한다. 저나이 푸니마는 바훈 체트리 남자들이 저나이를 새로 교체하는 날이라고 했다. 또한 여자형제들로부터 락키라고 하는 팔찌를 팔에 매고 있다가 11월에 있는 ‘빛의 축제’ 인 띠하르 때까지 하고 있다가 락쉬미뿌자 때 소 꼬리에 매달면 천국에 간다고 믿기도 한단다.

    남자들만 쉬는 축제가 지나고 여자들을 위한 축제 띠즈(Teej)가 왔다. 나가르콧 가는 길에 위치한 브라만 집성촌인 ‘바스똘라 마을’에서 내가 홈스테이 했던 집의 딸인 사비나가 띠즈 때 자기네 마을에 놀러오라고 연락이 왔다.

    띠즈는 여자들을 위한 축제라고 하지만 결혼한 여성은 남편의 무병장수를 위해 하루 종일 물도 안마시고 굶고 춤을 춘다고 한다. 결혼하지 않는 나 같은 여성은 미래의 남편을 위해 굶으란다. 이게 무슨 여성들을 위한 축제란 말이지?

    나는 내가 홈스테이 했던 마을에 들르기 위해 길을 나섰으나 예고 받지 못한 ‘번다(문을 닫다라는 뜻으로, 정치적 이유로 많이 이용되며 파업으로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거리에는 차도 다니지 않고 모든 가게는 문을 닫는다)’ 로 오전에는 묶여 있다 12시 이후에 번다가 풀려 갈 수 있었다. 이제 20살도 안된 사비나도 띠즈가 시작되는 12시 밤부터 굶는다고 같이 자고 가라고 했으나 같이 찍었던 사진만 건네주고 어머니의 카자(오후에 먹는 간식 같은 의미의 먹거리)를 맛있게 먹고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일찍 띠즈 때 네팔 여성들이 기도를 드리기 위해 찾는다는 파슈파티나트 사원에 찾았다. 파슈파티나트 근처 교통은 통제되어 멀리에서 내려 걸어가야만 했다. 걸어가는 길 내내 빨간색과 초록색 사리를 입은 여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빨간 색 사리만 쫒아가니 사원이 나왔지만 파슈파티나트 사원 중에서도 힌두교인들만 들어갈 수 있고 외국인은 들어갈 수 없는 황금사원에 들어가 기도를 드리기 위해 사원 밖으로 늘어선 행렬이 사원을 몇 바퀴 돌고도 남을 길이이다. 이 더운 땡볕에 하루 종일 굶고 물도 안 먹고 이 줄을 서있는단 말인가? 외국인인 나는 황금사원에 들어가 기도를 드릴 일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문으로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사원이 전체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황금사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선 빨간 사리행렬

    황금사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선 빨간 사리행렬

    디디,버히니들이 뭐하는지 구경하는 아이들

    디디,버히니들이 뭐하는지 구경하는 아이들

    황금사원 안에서는 기도를 드리고 춤을 추는 여성들이 보이고 사원을 감싸고도 남을 빨간 사리를 입은 여성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후에 들어보니 줄을 서있다 쓰러지는 여성들도 많다고 했다. 화장터로 사용되기도 하는 파슈파티나트, 한쪽에서 춤을 추고 한쪽에선 시체를 연신 태운다.

    띠즈가 지나고 외부에 나갔다 왔던 직원은 오늘이 ‘기계신을 위한 날’ 이라며 기계에 꽃을 달아주고 기계에 뿌자를 하는 날이라고 했다. 어쩐지 택시마다 빨간 천이 펄럭거리더라니…

    8월에도 축제가 많지만 9월에도 띠즈와 기계를 위한 날을 시작으로 인드라(Indra) 라는 비의 신께 우기가 끝나고 풍요로운 수확도 기원하면서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 여신’이 나와 국왕께 축복을 내리는 인드라 자트라(Indra Jatra)로 이어진다. 인드라 자트라는 네와리 민족이 주로 기리를 축제라고 한다. 하지만 네와리 민족은 띠즈는 기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10월에는 두르가 여신이 물소마왕을 물리친 승리의 기념으로 우리나라 추석과 비슷하게 카트만두로 일하러 온 모든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떠나는 더사인(Dasain)이, 11월에는 전기가 부족한 나라라고 믿기지 않는다는 빛의 축제 띠하르(Thihar) 가 기다리고 있어 네팔사람들은 벌써부터 분위기가 들썩인다.

    문득 궁금해졌다. 띠즈 때 정말 여성들은 남편을 위해 굶고 춤을 추는 것일까? 여성 입장에서 보면 분개할 일이지만 그런 축제를 하게 된 문화적 배경은 무엇일까? 난 생각했다. 속으로 남편을 욕하며 나를 위해 춤을 추진 않을까? 라고..

    우기가 끝나고 이제 건기가 시작되면 전기는 더 부족해질 것이고 헌법도 없이 불안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연신 번다가 예고되어 있다. 힌두교인들이 대부분인 네팔 사람들은 어떤 문화적, 민족적 배경으로 이런 축제가 많아진 걸까?

    먹고 살기도 힘들고 정국도 불안한데 신께 기도드리고 서로서로를 축복해주는 축제가 많으면 그걸로 위로를 삼지 않을까? 가난 속에서도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서로를 챙기는 네팔인들의 축제가 그냥 놀고먹는 축제로만은 생각되지 않는 이유이다.

    기계신에게 기도를 드린다는 말에 웃음도 났지만 최근에 읽었던 정유경작가의 소설 <28> 중 ‘작가의 말’ 이 생각났다.

    호시노 미치오가 쓴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에는 알래스카 인디언들의 고래사냥 이야기가 나온다. 고래를 잡으면 고기를 취한 후 “내년에도 또 오너라” 라고 외치면서 턱뼈를 바다에 돌려준다는 것이다. 세상의 온갖 생명체, 물과 바람까지도 영혼을 가지고 존재하며 인간은 지켜보고 있다는 세계관과 자신들을 먹여 살려주는 자연에 대한 외경심에서 비롯된 풍습이란다.

    필자소개
    구로에서 지역복지활동으로 시작하여 사회적기업 착한여행을 공동창업하였다. 이주민과 아동노동 이슈에 관심이 많고 인권감수성을 키우려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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