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깊은 절망감 속에서
    피어오르는 ‘다른 희망’
    [문학으로 읽는 우리시대]최성각 생태소설 <쫓기는 새>
        2013년 09월 17일 10: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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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년 도쿄에서 개최될 올림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들이 잇따르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시사만평에서 적나라하게 꼬집듯이 후쿠시마 원전사태로 인한 방사능 유출의 문제가 심각한 현실 속에서 일본 정부는 자국뿐만 아니라 세계를 향해 후쿠시마 원전의 문제를 일본 정부의 이해관계에 따라 취급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의 모습

    후쿠시마 원전의 모습

    이미 외신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진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오염을 감시하기 위해 열린 원자력규제위원회에서는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근처의 바다에서 측정한 방법이 잘못 되었으며, 도쿄전력은 2년 동안 실제 수치보다 방사능 오염도를 낮게 발표하였음이 밝혀졌다. 이렇게 후쿠시마 원전은 2011년 3월 11일 이후 국가와 민간거대자본이 서로의 이해관계에 충실히 공모하면서, 자국민과 국제사회를 향한 기만의 수사를 남발하고 있다.

    원전 사태로 인해 유출되고 있는 방사능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고, 급기야 생태계의 교란으로 뭇 생명의 존재 자체가 파괴되고 소멸되는 묵시록적 현실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이에 대한 투명하면서도 철저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와 도코전력이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공모하고 있는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 낯익은 국가발전주의와 개발주의를 환기시킨다.

    최근 프랑스의 일간지 르몽드는 이명박 전 정부에서 녹색성장의 상징이었던 4대강 사업이 부패, 건설 결함, 환경 문제로 생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실패로 기록됐다고 하면서, 총 사업비가 22조원으로 예상보다 8조원이 더 들었을 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 효과도 애초 기대한 96만 개의 1%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4대강 사업 부실을 보도하는 '르몽드' 인터넷판 모습

    4대강 사업 부실을 보도하는 ‘르몽드’ 인터넷판 모습

    사실, 4대강 사업의 문제는 일찌감치 예상했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 흐르고 있던 물줄기를 인위적으로 뒤틀면서 없어도 되는 수중보와 댐을 건설하고, 그 과정에서 강 바닥을 무지막지하게 헤집는 것도 모자라 온갖 건설폐자재를 방치하고, 공사 현장에서 일어난 각종 사고 등은 4대강 사업이 안고 있는 총체적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국책사업이란 미명 아래 버젓이 작동되고 있는 국가발전주의와 개발주의는 ‘녹색성장’이란 교언영색으로 우리의 삶과 자연 생태를 한층 교묘하게 위협했던 셈이다. 아무리 우리시대가 혼종성의 엄연한 현실을 살고 있다고 하지만, 그 함의하는 바가 전혀 다른 ‘녹색’과 ‘성장’의 두 단어를 대수롭지 않게 합성하는 저 모험주의는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2.

    최성각의 생태소설집 <쫓기는 새>(실천문학, 2013)를 읽으면서 이 모험주의에 대한 래디컬한 비판과, 아울러 이 모험주의에 혹시 공모하고 있을지 모르는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의 계기를 만난다.

    <쫓기는 새>에 수록된 작품들 중 특히 관심이 가는 것은 엽편소설로 묶인 것들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편, 중편, 장편이 아닌 엽편의 서사양식을 통해 최성각은 그 자신이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생태운동의 문제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최성각의 생태소설집 쫓기는 새

    여기서 그의 엽편소설에 대한 서사적 논의를 상세히 할 수는 없되, 이것만큼은 강조해둘 필요가 있다. 그의 엽편소설들은 기존 소설이 추구하는 (허구적)서사와 달리 현실의 문제를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말하자면 현장 르뽀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면서 해당 사안에 대해 비판과 반성을 수행하는, 그래서 그의 엽편소설 자체가 생태운동을 실천하는 서사의 몫을 충실히 맡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엽편소설에서 자주 접하는 ‘걷기’와 ‘삼보일배’의 행위에 대한 작가의 서사적 관심이다. 이 두 행위는 국책사업에 의해 파괴당하는 자연생태를 지켜내기 위한 생태운동의 일환인데, 최성각은 이 행위를 “가장 작은 맨몸뚱이로 가장 큰 것과 싸우는 적극적 수동성”이라는 어느 시인의 성찰을 소개한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매스컴에서 ‘삼보일배’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행위에 담긴 어떤 정치적 수행의 극적 효과에 주목했을 뿐, 그 행위에 직간접 참여한 사람들의 도정 속에서 소중하게 발견한 정서적 울림에 대해서는 소홀하였다. 최성각은 ‘삼보일배’를 통해 새롭게 발견한 이 정서적 울림을 주목한다.

    찰거머리 같고 철벽같은 현실 권력에 대한 용서하기 힘든 분노와 그 분노만큼의 무력감, 12년간 새만금 소동으로 인한 낭비한 에너지에 대한 억울함과 사람들의 무관심에 대한 절망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는 몇 아름다운 정신에 대한 존경심 따위가 그 울음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문정현 신부님이 이번에 고백한 몇 마디 말은 두고두고 되씹어볼 만한 것이었다. “다신 전투경찰들한테 지팡이를 휘두르지 않을 거야. 진정한 운동은 그들을 패는 게 아니라 울리는 일이야”라는 말이나,(「삼보일보 배후기(背後記)」, 316-317쪽)

    최성각의 엽편소설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은 문제의식이 있다면, 모든 것을 용해하고 있는 ‘울음’이었다. 적의(敵意)를 무장해제시키는 울음,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성찰하도록 하는 울음, 아름다운 삶에 절로 고개를 숙이는 울음, 부정한 것을 정화시키는 울음……. “진정한 운동은 그들을 패는 게 아니라 울리는 일이야”라는 이 간명한 발언 속에 우리시대의 진보를 향한 운동이 결코 쉽게 간과하지 말아야 할 모럴이 있다. 적대적 타자를 울린다는 것은 곧 타자와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부딪치는 사안에 대해 함께 상생하는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정서로 충일되는 것인 한, 이것은 ‘감동’이 아니고 무엇인가. 생명을 살리기 위해 모두 생명을 살리는 순정에 휩싸일 때 ‘울음’은 터지기 마련이다.

    3.

    여기서, 우리가 최성각의 생태소설집에서 귀 기울여야할 것은 생태운동과 진보운동의 포개짐이다. 얼핏 이 두 운동은 서로 갈등의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근대의 맹목을 경계하면서 근대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심층적 근대를 함께 추구한다는 점에서 서로의 문제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최성각의 엽편소설 「풀꽃나라 이야기」는 심층적 근대에 대한 작가의 정치적 상상력을 매우 실감있게 보여준다. ‘자유독립공화국 풀꽃나라’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은 기존 반생태적인 국민국가와 전혀 다른 세계관과 우주관을 지닌 나라로서 국방부장관과 건설부장관이 필요 없으며, 그 외에 기존 국민국가의 시스템에 필요한 정부 관료가 필요 없고, 나라의 뭇 생명이 공생공존하며 행복의 가치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곳이기에, 전 세계에서 취재요청이 잇따르고 부러움을 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자유독립공화국 풀꽃나라’는 남의 나라를 조금이라도 위협하려고 하지 않는 작은 규모의 나라이기 때문에 마음 편히 행복하게 살 것을 주변 나라들이 스스로 인정한다는 점이다. 이쯤되면, 이 나라는 지상낙원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최성각의 이 나라를 한갓 허구적 산물로만 치부해버려서는 곤란하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최성각의 ‘자유독립공화국 풀꽃나라’의 부재는 우리가 풀어야 할 숱한 난제들을 환기시키고, 이 난제들에 직면한 진보운동의 크고 작은 기획과 실천의 구체성을 가다듬도록 한다.

    그렇다면, 최성각이 원대하게 꿈꾸며 실현하고 싶은 ‘심층적 근대’란, 이러한 난제들을 힘들게 만나는 ‘과정으로서의 근대’, 바꿔 말해 기존 우리에게 익숙한 근대와 ‘다른 근대’를 향한 믿음으로서의 실천이다. 그래서인지, 최성각의 작중인물 ‘나’의 다음과 같은 고뇌의 행간으로부터 우리시대의 생태운동과 진보운동이 맞닿아 있는 난경(難境)과 곤혹스러움, 그리고 이것에 힘겹게 맞서 싸워야 할 숙제를 성찰해본다.

    뚫릴지 알면서도 하는 운동, 갯벌이 메워질지 알면서도 하는 운동, 희망은 거기 숨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신(神)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키우는 믿음, (중략) 깊은 절망감 속에서 피어오르는 ‘다른 희망’이 있지 않겠는가. 그것은 싸움의 끝이 아니라 싸움의 태도일지도 모른다.(「도롱뇽은 어디에 있을까」, 354쪽)

    “분할하고, 경쟁하고, 낭비하고, 비밀스럽고, 돈 만능의 가치관 문제”, “이른바 낮은 층위의 세계관관 자연관의 문제”(411쪽)를 “통합과 공생의 세계, 절약하고 공개하는 시스템, 돈이 아니라 ‘녹색 감수성’이 존중받는 세상으로 가는 길”(412쪽)을 향한 ‘희망’을 품는 것이야말로 악무한의 지금, 이곳을 극복해낼 수 있는 소중한 저항의 동력이다.

    필자소개
    문학평론가, 광운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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