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즈의 사건, 타자 목숨도 하나뿐
    [야구좋아] 승패 달렸지만 목숨 건 전쟁은 아냐
        2013년 09월 16일 11: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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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즌 최다이닝 등판, 최다경기 완투, 최다승, 최다패. 비록 한 해에 벌어진 일이지만, 이렇게 대단한 기록을 남긴 이는 바로 장명부였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도 했었다. 바로 그가 한국 최초로 빈볼을 던진 선수라는 점에서다. 그가 ‘너구리’라는 별명을 갖게 된 이유도 상대 선수에게 빈볼을 던진 후 너구리같은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장명부가 빈볼을 구사했던 이유는 그만큼 효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상대 선수에게는 일차적인 고통과 심리적 압박을 느끼게 되었다. 인간이란 학습하는 동물. 즉, 한 번 날아온 사구에 공포를 가지고, 그만큼 소극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검투사 헬멧이 등장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심정수를 시작으로 이종범, 이종욱, 김상현, 김태완 등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실제 검투사 헬멧을 착용하고 경기에 나섰다. 그만큼 빈볼은 상대 타자에 대해 심리적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 방법 중 하나였다.

    단순한 사구와 빈볼을 구분하기는 어렵다. 사구는 단순히 타자의 몸을 맞추는 포괄적인 개념이지만, 빈볼은 의도적으로 선수를 맞추는 것을 뜻한다. 머리를 뜻하는 속어 Bean과 공을 뜻하는 Ball이 합쳐져 생긴 말인 만큼, 주로 머리를 향해 던져지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투수가 어떤 의도로 던졌는지는 그 투수만이 아는 것 아니겠는가. 심판도 신이 아닌 이상 알 수는 없을 게다.

    최근 문제가 된 LG 트윈스 레다메스 리즈의 사구가 사실 한 주간 이슈였다. 지난 9월 8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6회초 무사 1루 상황에서 던진 공이 배영섭의 머리를 맞춘 것이 발단이 됐다. 단순히 공이 빠진 것으로도 볼 수 있었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애매했다. 배영섭이 1회 리즈에게 홈런을 쳤던 선수라는 것, 또한 배영섭이 실려 간 다음 이어진 타자들을 모두 삼진을 잡은 뒤, 세레머니를 펼친 것에서 옹호받기 어려워졌다. 전날 LG팬에게 배영수가 뒤통수를 가격당한 일 때문에 LG 트윈스를 비하하는 ‘쥐통수’라는 말까지 나오면서 달궈진 여론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빈볼

    리즈는 사과의 뜻을 전했지만, 이 빈볼 논란은 사그러들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되려 지금까지 리즈의 사구를 맞은 선수들의 리스트부터 당시의 구속, 해당 선수들이 이전에 리즈에게 냈던 성적 등 구체적인 논거들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리즈는 국내무대 첫 해인 2011년 15개, 2012년은 9개로 줄었지만 올 시즌 사구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메이저-마이너 9시즌 동안 기록한 사구는 총 48개. 의도적인 사구가 아닌 이상 이렇게 늘어날 리가 없다는 주장은 그래서 줄곧 리즈를 향했다. 물론 반론에 있어 애초 리즈는 컨트롤이 좋은 투수가 아니라는 부분이 이야기되며, 리즈를 보호하는데 일조하는 주장으로 활용되었다. 실제로 2012년 4월 13일 KIA와의 경기에서는 16연속 볼을 기록하기도 했던 리즈다.

    다만, 최근 리즈가 기록한 사구 중에 의심스러운 면도 있다는 부분들에 대한 정황이 조금 더 눈에 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7월 16일 롯데 장성호가 리즈 상대로 스리런을 날린 후 다음 타석에서 사구를 맞았고, SK 최정의 경우 리즈 상대로 홈런을 뽑아 낸 후 다음 게임 바로 첫타석에서 사구를 맞았던 전례가 있다. 적시타를 친 후 다음 타석에서 역시 사구를 맞았다. 이번에 문제가 불거진 배영섭 역시 1회에 홈런을 친 후에 두 번째 타석에선 볼넷, 세 번째 타석에서는 사구를 맞았다. 리즈의 볼은 나비같이 사뿐히 날아오는 100km/h의 너클볼이 아니어서 더 문제다.

    투수에게 몸쪽 공은 가장 강력한 무기다. 고양 원더스 김성근 감독은 “몸 쪽 공을 구사하지 못하면 그건 투수가 아니다”라고 했다. 선수가 맞을 수도 있는 전제가 깔린다. 하지만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 고쳐 매지 말라”는 속담이 있듯, 그 횟수가 잦아지고, 의도적이라 보일 정도로 티 나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는 말도 여기에 포함이 될 것이다.

    MBC 스포츠 조용준 해설위원은 현역 시절 타자들이 “죽을 각오를 하고 타석에 선다”는 말을 누구보다 이해한다고 말했다. 몸 쪽 공에 빈도를 높이지만 동업자 정신 역시 높아져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1955년 선린상고의 최운식, 해외에서는 1920년 레이 채프먼이 빈볼로 유명을 달리했다. 보호장구가 발전했고 극단적으로 사망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지만 선수로서의 생명을 잃는 경우는 아직도 종종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야구는 승패가 달린 경기긴 하지만 목숨이 달린 전쟁이 아니다. 모든 상황에 논란이 있을 수는 있지만 잦아서는 분명 곤란하다.

    필자소개
    '야구좋아'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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