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리는 사람들
    [끝나고 쓰는 노점일기-3] 언제 올 지 모르는 기다림
        2013년 09월 16일 10:23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시간은 균일하게 흐르지 않는다.

    퇴근시간 한 시간 전인 오후 5시. 그때부터 시간은 ‘냠냠’하고 흐르지 않고 ‘범버꾸 범버꾸’하며 흐른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버스 안. ‘벼랑 위의 포뇨’처럼 우다다 달려가 펄쩍 뛰어 덥석 안기고픈 마음일 때, 시간은 ‘째~에~에~에~에~에~까악!’ 하고 흐른다.

    나는 혼자 1인 시위를 할 때 시간이 제일 늦게 간다고 믿고 있다. 겨울날의 집회에서 참다 참다 뛰어간 화장실에 줄이 길 때 초침은 방광에서 뛰기도 한다. 기다림의 시간, 참 엿가락 같다.

    기다릴 것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 대상이 명확하다면. 언젠가 온다면 말이다.

    그러나 언제 올 지 알 수 없는 기다림.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기다림은 늘 버겁다.

    기다리는 사람들.

    내가 사는 한강시민공원으로 가는 이면도로에 잉어빵 마차가 있었다. 그 거리에 마차는 달랑 하나였지만 그 아주머니는 장사를 잘 하지 않았다. 겨울의 낮 시간에만 잠시 장사하고 마차는 늘 접혀 있었다. 나는 그 마차가 노는 동안 내가 장사한다고 얘기해볼까하는 생각도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잉어빵 장사를 하면서 그 아주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잉어빵 틀은 잉어빵 열 개 만들어 낼 수 있다. 주물로 된 잉어빵 틀의 온도를 일정정도 유지하는 게 중요했기에 한 번 구울 때 계속 굽지 않으면 다시 온도 맞추기가 어려웠다. 다 구워진 잉어빵을 올려놓는 쟁반 틀은 40개 정도를 담아둘 수 있다. 온도가 적당한 잉어빵 틀을 4번만 돌리면 꽉 찬다. 그런데 만들어진 잉어빵은 한 시간이 지나면 식으면서 질겨졌다. 열심히 구워도 팔리지 않으면 식어버리는 잉어빵.

    시흥사거리는 유동인구에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잉어빵을 굽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많았고, 가스를 틀어놓아도 질겨지고 식어가는 잉어빵을 바라보며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었다.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하염없이 질겨지는 잉어빵을 바라보며, 그래도 가스를 틀고 있어야 하는 시간들. ‘가스 값도 안 나오겠구나… 팥 듬뿍 넣었는데 버려지면 어쩌나… 이놈들 4천원인데 3천원에 팔아치워야지…’

    그 아주머니는 어쩌면 그 시간들을 견디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의선913

    의선913-1

    필자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해서 단속만 없으면 좋겠다 하다가 단속이 없는 날은 장사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커진다. 그러나 단속 없는 날의 기다림이란 언제 반죽 값 하나. 가스 값도 계산해야하는데… 뭐 이런 생각들로 시작된다.

    사실 손님이 많으면 이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지만, 나는 구워놓고 식어가는 잉어빵을 애써 외면하기 위해 퍽이나 산만해졌다. 돈도 세어보고, 팥고명도 떼기 쉽게 잘 치대주고, 잉어빵틀의 찌꺼기도 떼어내는 등 한껏 산만을 떨어도 기다리고 있는 시간은 내게 너무 버거웠다.

    차를 세워두고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기사가 습관처럼 돈을 세는 이유도 그러하리라.

    좌판의 할머니들이 쪽파며 도라지며 더덕이며 다 까두는 것은 기다림의 시간을 수익으로 전환시킨 지혜의 결과물은 아니었을까.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노점상을 미워하는 건 이 기다림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돌리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동네의 작은 길에는 저녁마다 순대곱창볶음 노점차량이 들어온다. 소규모의 아파트가 있는 지역이긴 하지만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는 골목이다. 차량노점이기에 공무원이 퇴근한 저녁 6시가 되어야 나와서 자정까지 있는다. 다마스 트럭 짐칸을 개조하여 철판을 두었기에 차 안에 앉지 못하고 짐칸 옆면에 어정쩡하게 앉아 있는 노점아저씨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거리를 보며 앉아 있다.

    내가 노점 하기 전에도 그 차량노점을 봤으나 한 번도 나는 그곳을 이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노점을 하게 된 후 집에 들어갈 때마다 그 아저씨를 보게 된다. 하염없이 앉아있는 아저씨의 무거운 시간을 본다.

    양화대교를 남단으로 건너면, 다리 끝에 노점상이 있다. 주로 만 원짜리 면도기나 휴대폰 충전기를 파시는 분이다. 변변한 현수막이나 차량도 없이 위험하리만치 작은 안전지대에 서서 신호에 걸린 차량들의 운전사들을 쳐다보시는 분이다.

    차량운전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이런 노점상들이라고 한다. 이 분들이 나타난다는 건 차가 많이 막힌다는 증거여서. 서부간선도로에도 외곽에도, 막히는 곳곳에 차량을 대상으로 뻥튀기와 호박사탕과 커피를 파는 노점상이 있다. 도로 한복판에 마스크를 쓰고 나타나는 이분들이 나는 정말 무섭다. 자신의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온갖 매연을 다 맡아가며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혹은 그저 기다릴 수도 없는 노점상도 있다.

    시흥사거리에서의 첫 일요일. 내 앞에 작은 이동식 좌판 하나가 깔렸다. 나보다 조금 젊어 보이는 여성이 땅콩과 곶감을 올려놓고 앉아 있다. 주말에는 단속이 없으니 주말에만 나오는 노점상인가보다 했다. 인사겸 해서 잉어빵 몇 개를 주며 말을 걸었다.

    이 언니는 알바를 하는 것이었다. 벼룩시장에 보니 ‘하루 5만원 보장’이라는 문구에 연락을 했더니 노점이더란다. 여기저기 노점을 깔고 물건을 배치한 후에 그곳에서 장사를 해서 얻은 수익의 일정정도를 일당으로 주는 구조이다. 노점의 하청이랄까. 파는 물건도 여러 가지여서 시흥사거리는 중국인을 대상으로 땅콩과 곶감을 가져왔지만 동네마다 다르다고 한다. 당연히 일당 5만원은 보장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 언니는 마땅한 다른 일이 없어 3일째 그냥 따라 나온다고 한다.

    겨울햇살을 받으며 꼬박꼬박 졸던 이 언니는 마수걸이도 못했는데 나에게 자리를 봐달라며 어디론가 간다. 한 시간 가량이나 자리를 비우더니 커피전문점의 아메리카노를 두 개 들고 와 나에게 하나를 건넨다. 나는 그 커피가 눈물 나게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언니 돈 벌긴 틀렸네…….’라는 생각을 한다. 오후 5시가 되니 차량이 와서 좌판을 거두어가려고 한다. 내가 본 바로는 땅콩 세 개, 곶감 하나 팔았다. 나는 2천 원짜리 땅콩을 하나 샀다. 나도 돈 벌기는 틀렸지. 그래도 그 언니의 기다림에 대한 무딤이 조금 부러웠다.

    기다림의 구원.

    노점을 하면서 외로움과 기다림이 단속과 추위보다도 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 혼자임에 온몸이 전율할 때 이해 못하던 것들을 이해하게 된다. 내가 견뎌야 하는 시간의 무게만큼 다른 사람들의 삶의 무게도 조금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왜 큰 사거리 건너 멀리멀리 있는 분식점에서 나를 구청에 신고하는지. 내 옆 골목의 잡곡을 파는 노점할아버지는 나에게 단속만 나오면 불안한 얼굴로 구경을 나오는지.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왜 나는 노점상 조직에서 여성 부의장에게 미움을 받아야 했는지, 혼자서도 나보다 백만 배 씩씩한 노점상 언니가 왜 애인도 아닌 사람에게 ‘여보’라고 하는지.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이해가 될 것 같았다. 노점의 일만이 아니었다.

    선악이나 누구의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꼬여왔던 사람들과의 관계들. 조직과 개인의 사이에서 벌어진 폭력들. 혼자이지 않기 위해 다가왔음에도 내가 떠난 사람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차. 바람 부는 밤. 충전한 작은 배터리에 연결한 작고 희미한 등과 잉어빵을 데우기 위한 약한 가스 불에 의지하는 시간. 내가 미워하고 혹은 ‘이해 못 해!’라고 단언했던 것에 대해 오래오래 생각했다.

    필자소개
    전직 잉어빵 노점상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