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환경 교통의 시작,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에서
    [에정칼럼] 제도적 장치 보다는 개인과 기업 자율성 중심
        2013년 09월 11일 02:29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잦은 고장으로 위험시설의 대명사가 된 ‘고리원전’이 있는 부산 기장에서는 요즘 원전이 아닌 다른 이슈로 한창 뜨겁다. 바로 ‘부산 프리미엄 아울렛’ 개장으로 벌어진 교통대란 때문이다.

    <국제신문>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정식 개장한 ‘부산 프리미엄 아웃렛’은 첫 주말을 맞은 지난 1일 하루 2만5천 대의 차량이 몰려 3킬로미터에 달하는 인근 도로는 순식간에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다.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주민들이 강하게 항의하자, 지난 주말엔 공무원과 경찰 등 100여 명과 운영사인 신세계사이먼 측 교통정리요원 130명이 교통정리에 나섰지만 아울렛을 찾은 2만 대가 넘는 차량을 통제하기엔 마찬가지로 역부족이었다.

    사정이 이렇게 심각하지만, 아울렛 측은 속으로 흐뭇해할지도 모른다. 도로를 타고 매장으로 유유히 흘러 들어오는 승용차 고객의 행렬을 보면서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무엇보다도 아울렛 측은 도농복합지역에 위치해 있어 교통유발부담금마저 면제 받고 있다.

    교통 혼잡의 원인이 되는 시설물의 소유자에게 매년 부과하는 교통유발부담금이 현행 법령상 인구 10만 명 이상의 도시에 적용되는 ‘법의 맹점’을 교묘히 악용한 것이다. 신세계사이먼의 ‘대책 없는 개장’을 놓고 주민들은 교통유발부담금 징수와 도로 확장 등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시는 3개월간 모니터링 후 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을 내놓았을 뿐이다.

    교통유발금

    2011년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진=서울환경운동연합

    극심한 교통 혼잡에도 결국 신세계사이먼 측은 현행법의 한계로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당장 도로를 확장하더라도 시나 기장군의 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어, 여러모로 업체 측은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다.

    또 주민들의 주장대로 아울렛 측에 뒤늦게나마 교통유발부담금을 부과하게 되더라도 업체의 부담액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통혼잡비용은 매해 늘어나지만 1990년 시행 이후 교통유발부담금의 단위부담금은 23년 동안 한 차례도 인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통유발부담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수년간 설득력을 얻어왔지만,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업체들은 정부의 부담금 인상안에 줄곧 볼멘소리를 내며 반대해왔다. 전국에서 교통유발부담금을 가장 많이 내는 시설물은 영등포 타임스퀘어로 2011년 10억1149만원을 냈다. 이 건물은 그 해 1조5000억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여형구 국토교통부 2차관은 6월 11일 기자간담회에서 내년부터 실시될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안을 발표했다. 1평방미터당 350원인 단위부담금을 내년 600원으로 시작해 2018년까지 최대 1000원으로 단계적 인상하겠다는 계획이다. 건물 면적에 따라 부담금을 차등 부과하겠다는 내용도 포함시킨 이번 인상안을 국토교통부는 기획재정부 산하 부담금운영심의위원회에 제출한 상태다.

    올해 인상안을 가지고 정부가 업체들과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부는 매년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안에 대해 기업의 입장을 우선 고려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해왔다.

    지난해 8월 17일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15개 부처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3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교통유발부담금 조정 시기를 연기한 대목만 봐도 그렇다.

    회의 결과를 보면 “부담금 인상 및 그 실효성에 대해 이해관계자간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인상 추진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기업 부담 등을 고려하여 부담금 조정 시기를 2013년으로 연기”하겠다며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1년이 지난 올해 정부가 인상안을 다시 가까스로 꺼냈지만, 업체 측은 여전히 부담을 이유로 이를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손님 줄었는데 교통유발부담금 폭탄’이라는 제목의 8월16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경기 침체에 따른 매출 감소와 출점(出店) 규제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데 교통유발부담금까지 크게 올라 경영에 부담이 될 것 같다”는 한 대형마트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각 지자체가 단위부담금과 교통유발계수를 올려 “이미 물가상승률이 반영됐다”는 업체의 반박도 제기됐다. 교통유발부담금은 ‘시설물의 각 층 바닥면적의 합계×단위부담금×교통유발계수’로 계산되는데, 지자체장은 조례를 통해 단위부담금과 교통유발계수를 100% 범위에서 상향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교통유발부담 부과와 관련해 지자체의 조정 권한은 지역별로 다른 특성을 현실성 있게 반영하기 위한 개선책이었다. 전국 교통유발부담금 징수액의 47%를 차지하는 서울시는 1996년부터 3천 평방미터 이상 건물에 대해 단위부담금을 700원으로 적용한 것이 거의 유일한 인상요인이었다. 서울시로서는 오히려 교통유발계수의 상향 조정 권한을 현재 100%에서 200%로 늘려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해왔다.

    게다가 교통유발부담금 부과대상 시설물 소유자가 교통량 감축을 위한 자발적 노력이 인정되면 교통유발부담금을 경감해 주는 ‘교통량 감축 프로그램’이 동시에 시행되고 있다. 이 제도를 통해 시설물은 교통유발부담금을 최대 100%까지 감면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서울시의 경우, 2012년 기준 교통유발부담금 징수액 882억 원 중 ‘교통량 감축 프로그램’에 참여한 2700여 개의 대상 시설물이 총 146억 원을 감면 받았다. 실제 교통량 감축 효과를 검증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는 이 제도를 통해 기업들은 지금까지 상당한 액수의 교통유발부담금을 감면 받아왔다.

    지금까지 발표된 관련 연구와 여론조사에서도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의 당위성은 일관되게 뒷받침돼왔다. 하지만 정부는 불명확한 근거로 이를 매번 유보시키면서 결국 일부 기업의 이익만을 보호하는 데 기여해왔다.

    국토해양부의 발주로 한국교통원이 2012년 제출한 ‘교통유발부담금 산정기준 개선방안’ 보고서에서는 “교통유발부담금 제도의 본래 취지와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제도 시행 이후 교통여건 변화 등을 반영하여 교통유발부담금을 현실화하고 부담금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2012년 8월 서울환경운동연합이 20세 이상 서울시민 502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63.9%가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에 찬성한다고 나타났다.

    23년간 동결된 교통유발부담금의 조속한 인상은 기업이 사회에 전가해왔던 교통 혼잡의 비용을 원인자(오염자)에게 제대로 부과해 형평성을 구현하기 위한 과제다.

    그런데 교통유발부담금 현실화라는 매우 온건한 주장에 대해서 ‘사회적 책임성’을 보여주는 기업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되레 교통유발부담금이 “결국 해당 건물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에게 그 부담이 전가될 수밖에 없는 구조”(체인스토어협회)라는 윽박만이 들릴 뿐이다.

    정부는 현재의 교통체계를 대중교통과 자전거·보행과 같은 친환경적이고 에너지 절감형 교통체계 중심으로 개편해 교통부문의 온실가스를 2020년까지 34.3%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얼마 전 발표했다. 이런 대책이 나올 때마다 교통수요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가장 우선순위를 차지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시행하는 교통수요관리 정책이란 ‘승용차 요일제’나 ‘기업체 교통량 감축 프로그램’과 같이 개인이나 기업의 자율적 노력에 기대는 측면이 크다. 반대로 교통 혼잡 완화의 시행 효과는 크지만 기업 등의 반발이 예상되는 혼잡통행료나 교통유발부담금과 같은 제도에는 정부나 지자체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지자체들이 앞 다투어 ‘걷고 싶은 거리’와 같은 슬로건을 내걸며 보행자‧자전거 등 친환경 교통체계를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도시의 과밀한 차량 통행량을 줄이지 않는 한 도로가 보행로나 자전거도로에 기존의 자리를 내어줄 것 같지는 않다.

    필자소개
    서울환경운동연합 기후에너지팀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