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 노동정치 재정립 제언 ②
[분석과 제안] 노동중심성은 조합원 중심의 조직이기주의가 아니어야
    2012년 06월 13일 12:11 오후

Print Friendly

노동정치의 혁신과 재구성을 위해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노동정치의 위기와 무력감을 돌파할 수 있는 길은 혁신을 위한 창조적 파괴에 있다. 썩은 살을 도려내고 새 살이 돋아 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제 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먼저 노동정치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근본적 변화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까지 노동정치는 노동조합운동의 경험과 인식 틀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였다. 조합주의적 사고와 실천이 진보정당운동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특히 노동조합의 내부정치가 정당정치에 이전되는 현실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공장과 사업장 수준을 넘어서는 노동정치의 상과 전망을 만들어내야 한다. 자신의 현장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 정도로 진보정치를 인식하는 조합 활동가들의 정치의식을 전환해야 한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은 평조합원과 평당원들에게 새로운 지역정치와 진보공동체의 형성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제시하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민주노총이 중앙집행위에서 결의한 노동정치의 복원은 민주노동당 시절과 같은 과거로의 회귀가 되어서는 안된다. 노동정치의 전환, 심화와 확장을 위해서 진보정당과 노동조합은 각각 자신들이 봉착하고 있는 관성과 악습을 극복하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하며, 이러한 성찰과 혁신의 기반 위에서 비로소 새로운 진보정치와 노동정치의 만남이 가능할 것이다.

노동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한 비전과 전망을 만들어야

또한 평조합원과 평당원을 민주노총 조합원과 진보정당의 당원으로 가두기 보다, 노동사회와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진보적인 노동시민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들을 동원과 재원조달의 대상으로 규정한 과거와 단절해야 하며, 이들의 요구를 아무런 정제장치 없이 그냥 수용하는 고충처리기관으로 진보정당을 왜소화시켜서는 안된다.

민주노총 노동자대회 모습(사진=참세상)

왜냐하면 조합원 조직으로서 노동조합의 요구와 대중적 진보정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반드시 일치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노동조합과 정당간 연대가 정책연합, 선거연합, 정치연합과 같이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듯이, 긴장관계 또한 본질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더 많은 노동자와 민중을 위한 대중적 진보정당의 정치적, 전략적 선택에 대해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가로막는 행위는 이제 중지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이 지난 30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의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면, 노동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이제는 노동자와 시민을 가르는 경계와 장애물을 없애고 노동사회와 시민사회를 잇는 가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가치의 사회적 인정과 노동존중 사회의 실현을 위한 주체형성

진보정치의 노동중심성은 조합원 중심의 조직이기주의가 아니라, 노동가치의 사회적 인정을 확보하고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주체형성에 있다. 진보정당의 노동중심성 복원은 기존과 같이 최고위원과 대의원을 할당받거나, 노조출신 의원 몇 몇을 배출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정당에 돈과 사람으로 줄을 대는 노동조합의 노동정치는 오히려 진보정치의 발전에 장애물가 될 수 있다.

진보정당의 노동중심성을 따지기 전에, 민주노총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얼마나 일반노동자를 대표하고 있으며, 노동가치의 존중과 실현을 위해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냉엄한 반성과 현실진단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생활정치의 진보적 개혁을 위한 민주노총의 노력은 사실상 전무하였다. 조합원들의 왜곡된 이해와 요구를 추종하는 노동운동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공장과 사업장에서는 물론, 지역사회와 가정으로 돌아오면 자본의 논리를 추종하는 조합원의 이중적 의식과 태도를 바꾸기 위한 노동조합의 의식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이 주로 거주하는 아파트단지에서 같은 또래의 퇴직한 아파트 경비의 최저임금을 보장하기 보다, 아파트 관리비를 줄이기 위한 인원 정리가 아파트입주자대표자회의에서 결정되기도 했다는 사실은 민주노조운동의 생활정치가 얼마나 미숙한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진보정치의 노동중심성 복원은 노동가치의 존중과 실현을 위해 앞장서는 정당으로 진보정당이 거듭나는 한편, 조합원조직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민주노조운동의 적극적인 사회연대운동을 통해서 일반노동자 및 국민 대중으로부터 노동조합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허구적 ‘배타적 지지’ 철회와 새로운 관계 재정립을 위한 모색

마지막으로 노동정치의 복원하기 위해서는 형식과 내용 모든 측면에서 그 근거가 무너진 진보정당에 대한 기존의 배타적지지 방침을 이제는 철회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통합진보당과 민주노총의 관계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새로운 관계설정과 질적 변화를 위한 민주노총, 그리고 진보정당 각각의 성찰과 혁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통합진보당의 혁신비대위와 같이, 민주노총 또한 중앙집행위에서 결정한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특위’를 혁신적인 내외부 인사로 구성하여 과감한 내부수술을 감행해야 한다.

한편 민주노총은 이제 조합원들에게 자신의 과오를 보다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2007년 민주노동당이 한창 잘 나갈 때도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 당원은 4만 5천 정도였으며, 분당 이후 그 수는 반 토막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현재 민주노총 소속 당원이 통합진보당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80만 민주노총 조합원의 수를 고려한다면, 그 비율은 많아야 3-4%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배타적 지지의 기반이 되는 대표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더 큰 문제는 소위 대주주들이 이러한 과잉대표성을 무기로 하여 민주노총의 명예와 정체성을 더럽히는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에 근거한 결정사항을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상층에서 일방적으로 내려박는 행위는 이제 그만 해야 한다. 조합원들을 정치혐오증에 찌들게 만들기 보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진보정치에 대한 애정과 선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체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결국 진보정치와 노동정치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진보정당과 노동조합간 관계를 새롭게 재설정해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물론, 진보신당, 더 나아가 수년이 지나도 아직 준비위원회 명칭도 떼지 못한 좌파 정치세력도 예외는 아니다.

당과 노조의 기존 관계에 대한 반성과 전환은 과감한 단절과 쇄신 하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인적 청산은 물론, 고질적인 정파담합을 깰 수 있는 창조적 파괴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이 지난 20년간 민주노조운동진영의 전략적 조직방침이었던 ‘양날개론’은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진보정당과 노동조합과의 새로운 관계설정은 썩어 문드러져 부러진 날개를 그대로 둔 채 불가능하다. 각각의 날개부터 먼저 수술해야 한다.

‘전달벨트’로서의 노조, ‘고충처리기관’으로서의 당으로 대변되는 과거의 관계는 청산해야 한다. 진보정당과 민주노조운동의 관계 재정립은 각자의 고유성으로 인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긴장관계와 상호의존성에 내재된 정체성 혼란을 어떻게 잘 극복하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필자소개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