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 체제의 뿌리와 의미
[책소개] 『덩 샤오핑 시대의 탄생』(안치영/ 창비)
    2013년 09월 06일 06: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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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개혁개방 30년은 흔히 “정치개혁 없는 경제개혁”으로 요약된다. 공산당 일당독재를 유지한 채 별다른 정치체제의 변화 없이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경제체제의 근본적 전환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공산당은 사회의 근간을 뒤바꾼 30년 넘는 개혁개방기를 지나면서 여전히 대안적 정치세력을 허용하지 않는 유일한 정치세력으로서, 개혁의 선봉대를 자처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는가. 중국공산당은 어떻게 그 지배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는가.

『덩 샤오핑 시대의 탄생』은 그런 문제제기에서 시작해 ‘개혁개방의 아버지’ ‘개혁의 총설계사’라 불리는 덩 샤오핑 체제의 형성과정을 추적한다.

특히 이 책은 정치개혁 과정의 ‘평반(平反)’에 착안해 중국공산당이 평반을 통해 문화혁명 전후의 정치적 균열을 해소하고 이념적 통합을 이룩했음을 규명하고 있다.

법률적 권리의 회복에 더해 정치적 재평가, 배상과 원직 회복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인 ‘평반’은 문화혁명 이후 역사재평가를 통해 개혁의 전제가 되었으며 덩 샤오핑 개혁체제를 형성하는 직접적인 기제였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이는 “정치개혁 없는 경제개혁”, 개혁과 반개혁 세력의 대립이라는 기존 연구의 관점을 넘어선 것으로, 중국 개혁에 대한 종합적이고 유기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문혁 전후에서 덩샤오핑 체제의 완성까지 최고지도부 내의 정치 변화를 세밀히 탐구해 생동감과 설득력을 높인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특장이다. 경제개혁의 정치적 기초를 탐색하고 인민 정치생활의 실질적 변화를 규명하여 총체적 이해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사회주의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한 참신하고 독보적인 연구 성과라고 하겠다.

덩샤오핑

문화혁명이 남긴 문제, 덩샤오핑 체제 형성의 뿌리

개혁개방의 지도체제인 덩샤오핑 체제는 시기적으로 1978년 12월의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11기 3중전회)에서 1992년 중국공산당 제14기 전국대표대회(14차 당대회) 이전까지 중국공산당의 지도체제를 말한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덩샤오핑 사후의 지도체제 재구성을 포함한 개혁시기 정치 전반을 규정하는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덩샤오핑 체제는 1976년 마오쩌둥 사망과 문혁 주도세력인 4인방 체포로 문혁을 종결짓고 등장한 ‘화궈펑 체제(華國鋒體制)’를 대체하여 성립했다.

화궈펑 체제가 붕괴한 근원에는 문혁을 둘러싼 정체세력 간의 갈등과 대립, 그로 인한 화궈펑 체제의 태생적 모순이 있었다.

사회주의의 급진적 이상주의적 실험이자 새로운 사회주의 발전모델이었던 문혁은 총체적인 정치적 사회적 균열과 경제적 낙후를 과제로 남기고 실패했다. 문혁을 거치면서 중국 정치세력은 문혁 주도세력인 급진파(장칭을 비롯한 4인방파)와 화궈펑으로 대표되는 문혁 수혜자, 문혁의 피해자(류샤오치, 덩샤오핑 등)와 생존자(저우언라이, 예젠잉, 리셴넨 등) 의 네 집단으로 분열되었다.

4인방 척결을 위해 수혜자와 피해자가 연합했던 화궈펑 체제는 그 자체 문혁의 수혜자이자 계승자이면서 한편으로 문혁의 부정자여야 하는 모순을 안고 있었다. 정치적. 사회적 균열도, 경제적 낙후도 문혁문제의 청산 없이는 해소하기 어려웠으나, 화궈펑 체제의 성격은 이에 관한 근본적 해결을 불가능하게 했다.

따라서 피해자 세력으로서 반문혁 세력을 결집해 등장한 덩샤오핑 체제는 화궈펑 체제가 해결하지 못한 문혁문제의 청산과 경제개혁을 지상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문혁이라는 실패한 사회주의 발전모델을 넘어서는 새로운 발전모델로서 개혁개방 노선은 필수 불가결했다.

또한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문혁을 사상적 실질적으로 청산하고 사회를 재구성할 기제가 필요했다. 그것이 ‘평반’이다. 화궈펑 체제가 체제내적 모순으로 인해 반4인방파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시행할 수밖에 없었던 문혁 평반을 덩샤오핑 체제는 과감하고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평반, 정치와 경제 개혁의 도구이자 전제

사전적으로 “잘못된 판결과 잘못된 정치적 평가를 바로잡는 것”인 평반은 법적. 정치적 복권(復權)을 포함해 원직 회복 또는 배상을 수반하는 개념이다. 비판-숙청-평반의 정치운동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진 중국에서 평반은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 인민의 모든 행위의 전제인 옳고 그름, 허용-금지의 근거 자체의 변화를 의미했다.

문혁은 마오쩌둥 사상의 좌경화 속에서, 경제적으로는 해소되었지만 정치적. 사회적으로는 ‘불가촉민’이라 불리는 지주, 악질, 부농, 자본가 등을 분류. 양산했다.

최고지도부에서 일반 인민 전체에 이르기까지 벌어진 이러한 분류작업(‘모자 씌우기戴帽子’)은 전시회에 계급적 적대관계를 조성했을 뿐 아니라 모든 구성원에게 자신의 모든 행위에 대한 사상적 자기검열을 내면화했다.

따라서 문혁에 대한 평반은 단순한 차별의 철폐나 복권을 넘어 전사회적 ‘사상해방’이자 ‘역사 재평가’의 의미를 가졌다.

1979년 7월부터 중국공산당은 인민의 성분 분류에서 자본가 항목을 없애고, 과거의 상공업자 출신을 노동자와 차별하지 않도록 했다. 또한 국민당과의 전쟁 잔재 청산, 대타이완 화해 정책을 추구하고 타이완으로 간 친척. 가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평반을 실시해 차별을 철폐했다.

문혁시기에 자본가로 분류되었던 86만명 가운데 1979년 81퍼센트인 70만명이 노동자로 재분류되었다는 것은 평반의 범위와 반문혁세력의 존재가 얼마나 광범위했는지, 평반을 통한 문혁 청산이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평반이 하나의 정치적 의제를 넘어 경제개혁의 전제가 된 것은 그로써 문혁시기 자본주의적 개혁 또는 수정주의라고 비판받던 각종 금기를 폐기했기 때문이다.

호별영농제, 농민의 자기 경작지 보유, 가정 내 부업(副業), 보너스 제도, 농촌 시장, 상공업의 개인 경영 등 개혁개방 경제노선에 필요한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전제로서 “자본주의로의 복귀이자 자본가계급의 부활”이라는 낙인을 거두어야 했던 것이다.

이는 구 지배계급, 자본가계급 개인들의 자유의 신장뿐 아니라 경제문제를 ‘계급적 관점’ ‘정치 우위’로 파악하던 관점을 일변시킴으로써 새로운 발전모델 운용을 가능케 했다.

평반의 결과 당과 국가는 통합을 회복할 수 있었으며, 공산당은 그 과정을 주도함으로써 문제 해결의 주체로서 당의 위신을 높였다. 또한 평반은 사상해방과 정치생활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고 변화를 선도할 수 있도록 당의 체질을 개선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은 개혁을 주도하는 선봉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덩샤오핑 체제 이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중국공산당

덩샤오핑 체제 이래 중국공산당은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서 경제적 낙후를 극복하는 경제개혁과, 혁명 전통과 사회주의 유지라는 이중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왔다. 사회주의는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급진적 개혁 요구를 제한하는 ‘4항 기본원칙(사회주의. 무산계급독재. 공산당의 지도. 맑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의 4원칙 견지)’이 개혁개방 노선의 전제가 되었다.

이는 안정적 개혁과 정치적 통합을 유지하는 방책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불안정을 배태했다. 경제발전에 따른 사회적 변화와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는 데 현재의 당-국가 체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중국공산당이 계급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변모를 꾀하는 과정에서 전통적 사회주의는 의미를 상실했고, 당원은 자본가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외연을 확대했다.

이러한 변화는 분명히 모순을 포함한다. 이제까지 중국공산당이 고수해온 이념의 수정과 원칙의 견지가 앞으로도 양립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의 변화는 새로운 유형의 공산당을 창조할 것인가, 공산당의 정체성을 혼돈에 빠뜨릴 것인가. 중국공산당은 새로운 도전 앞에 있고, 결과는 어느 쪽이든 다양성과 변화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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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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