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치 노동정치 재정립 제언 ①
    [분석과 제안] 정파 수준에도 못미치는 계파, 인맥정치 청산해야
        2012년 06월 12일 09: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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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소야대의 실패와 야권연대의 교착으로 대변되는 4․11 총선의 결과를 놓고 진보개혁진영 내부의 진지한 성찰과 모색을 채 하기도 전에, 드디어 대형사고가 터졌다. 비례후보과정에서 발생한 선거부정이 내부고발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지면서 불거진 사태이지만, 소위 ‘총체적’ 부실의 근본적 원인은 보다 깊은 곳에서 이미 잉태되어 있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진보정치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 뿐이다.

    현 사태의 본질은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치운동 속에 내재된 정파정치의 악습과 관행이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며, 더 이상 ‘진보’, ‘노동’을 입에 올리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동정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진보정치의 역사적 굴절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현 사태는 현상적으로 작년 말까지 진행된 진보대통합 논의의 실패, 올 초 삼자에 의해서 이루어진 원샷 통합으로 상징화되는 급조된 통합진보당 건설, 그리고 부실과 부정의혹으로 얼룩진 내부 정치계파의 선거전략으로 초래된 것이다.

    올 1월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의 노동정치 토론회

    작년 진보신당 탈당파(새진보통합연대), 민주노동당 등 제 진보정치대통합을 통한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위한 모색은 자기 지분의 확보에 매달린 대주주들에 의해 파산을 선고받았다. 이어 급속하게 진행된 삼자 통합은 새로운 진보정당의 가치와 비전에 대한 대중적 공론화는 전무하고, 오직 선거연합 수준의 합의에 기초하여 진행되었다.

    야권연대를 통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맞추어진 원샷 통합은 내외적으로 대중적인 납득과 해명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하였다. 특히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대한 기존 진보정치세력의 해명은 사실상 전무했으며, 정권교체의 당위성과 4․11 선거승리를 통해 제반 문제를 타고 넘겠다는 정략적 판단이 깊게 스며들어 있었다.

    이러한 과정, 그 중심에 이번 사태의 원인제공자들이 순번을 달리할 뿐, 차례대로 서 있었으며, 경기동부연합으로 대표되는 구 당권파가 바로 맨 앞에 서 있었다. 그래서 이번 사태의 본질은 지난 십 수년간 진보정치운동에서 암묵적으로 용인되거나, 자랑스럽게 일상화된 정파간 과잉경쟁과 그들 간의 담합정치에서 찾아야 한다.

    진보정당의 책임정치 이탈, 민주노총의 책임 또한 무거워

    이번 후보선거과정에서 확인된 총체적 부정이라는 작금의 사태에 대한 책임에 있어 통합진보당 만이 아니라, 노동정치의 부실과 왜곡을 심화시키는데 일조한 민주노총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미 작년 진보대통합 과정에서 주도적 책임성을 가졌어야 할 민주노총은 통합의 구심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였다. 공식적인 입장과 내부정치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진보정당 선통합, 국참당과의 후통합을 주장했지만, 사실상 추동력을 발휘하지도 못하였고, 소위 ‘자주파’라고 이야기되는 특정 정파의 구도 하에 끌려갔다.

    아래로부터의 혼란과 이탈 현상은 야권연대에 기반한 4.11 총선 이후 달성될 여소야대 정치구도를 통해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 역시 오판이었다는 것을 확인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히 민주노총의 선거방침은 사실상 만신창이가 되었다. 민주노총 후보와 진보정당(진보신당 포함)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지만, 민주노총은 없고 개인이든, 노조든, 정파든 사실상 각자 알아서 해라는 메시지와 다름 없는 결정이었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비례대표 집중투표제의 문제였다. 시간의 제약 등 객관적인 한계가 분명 존재했지만, ARS 조사기관의 대표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후보로 출마한 상태에서 여론조사를 그 조사기관에 맡겼다.

    또한 지지정당 전화조사 과정에서 불거진 부정시비를 아직도 명확하게 해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총체적 부정선거의 한 당사자로서 민주노총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사실상 이번 선거과정에서 개인 후보와 노조 후보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민주노총 후보는 존재하지 않았다.

    후보선출 절차와 기준에 대한 논의도 부실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내외부의 공론화과정을 제대로 밟지 않음으로써, 민주노총의 결정과 방침을 스스로 무력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뼈 속까지 스며든 정파주의, 적을 닮아버린 진보정치

    한편 이번 선거에서 대주주의 패권주의적 폐해가 중앙 뿐만 아니라, 지역에까지 심각하게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지역후보의 선출과정은 뼈 속까지 정파주의에 찌들어 있는 진보정치와 노동조합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번 선거에서 노동정치의 실패는 단지 민주노총의 분열로 노동자 밀집지역(영남벨트)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진보신당까지 포함하여 진보정당인이 후보가 되기 위해, 더 나아가 당선되기 위해 새누리당과 똑같은 작태를 보였다는 점이다.

    시의원 등 공직 사퇴문제, 상층부 정파 이권에 따라 이루어진 낙하산 공천, 후보자가 되기 위한 주소 이전, 민주주의 원칙 조차 훼손하고 벌어진 선거운동 및 투표동원 등이 바로 진보정당의 모습이었다.

    진보정당을 사랑하는 평조합원들은 “울산연합의 오만함이 패배를 불렀다”, 혹은 “창원은 민주노총 출신 평등파와 자주파 싸움으로 인해 말아먹었다”는 말을 들을 때 마다 억장이 무너졌다.

    민주노조운동은 무엇을 성찰하고 반성해야 하는가?

    지난 10년을 되새겨보면 어느 순간부터 진보정당은 민주노총의 정치대리 기구로 전락하고 있었다. 또한 민주노총은 진보정당의 물적 동원부대로 퇴락하고 있었다.

    1995년 민주노총이 건설되고 난 후 민주노조운동은 산별노조운동과 진보정치운동이라는 양날개론에 기반하여 한국사회의 개혁과 변혁에 복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2004년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 후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그 의미와 목표가 왜곡, 굴절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민주노총은 소속 조합원이 당내 다수를 점하여 민주노동당을 민주노총의 이해와 요구를 외치는 정당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집단적 당원 가입운동과 대대적인 세액공제를 통해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확보하는데 조합원을 동원하는가 하면, 대의원할당, 파견최고위원, 후보추천권 등을 통해 대주주 정파의 권력분점을 용인하였다.

    한편 노조운동으로 풀리기 힘든 노사관계, 노동문제를 자신의 대리기구인 민주노동당을 통해 해결하려는 도구주의적 발상에 기초하여 진보정당을 노조의 ‘고충처리기관’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결국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내부 견제세력의 약화와 이탈과정을 거치면서 ‘일하는 사람의 희망’ 이었던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 아니 ‘자주파’의 당으로 퇴락하게 된다.

    조직노동자는 물론, 미조직, 비정규직, 사회적 약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사회공론화하고 이들의 권익을 정치쟁점화해야 할 진보정당의 ‘본연의 임무’가 민주노동당에서 구호와 문건으로만 남게 되는 형국이 조성되었다.

    계파 담합정치의 노리개가 되어 버린 진보정당과 민주노총

    노동정치는 왜 이 지경까지 온 것인가? 그건 바로 정파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계파 및 인맥정치가 노동정치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원론적으로 보면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은 아직까지 가치, 이념과 노선 및 정책에 있어 단일하고 통일된 입장으로 조정될 수 있는 정교하면서도 세련된 정치적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또한 짧은 역사로 인해 축적된 정치적 인적 자산도 상당히 부족한 게 현실이다. 결국 정치적 입장과 방침을 대표하는 인물들과 내부 정치세력간 타협과 조정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내부정치를 대표하는 기존 정파, 아니 계파들은 오히려 이러한 위치를 악용하여 편가르기에 몰두했고, 평당원과 평조합원, 더 나아가 국민 대중의 눈과 귀를 가리는 기득권세력의 ‘담합정치’에 앞장섰다.

    이러한 진보정치의 굴절과 왜곡이 터져버린 모습이 바로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당, 진보신당의 탈당파 이탈, 진보대통합논의의 파산, 지금 벌어지고 있는 통진당의 ‘진통’이다.

    한편 이러한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대주주인 정파그룹은 대중조직으로서 이러한 갈등과 혼란을 수습하고 정리하는데 그 역할과 소임을 다하기 보다, 권력투쟁을 확대하고 악화시키는데 일조하였다.

    민주노동당 분당시 평등파의 협박과 자주파의 공모, 진보신당의 분열 시 평등파의 내분과 자주파의 펌프질, 작금의 사태에서 나타나고 있는 자주파의 분열과 평등파의 와해전술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민주노총의 대의와 비전은 사라지고, 오직 정파적 판단과 이해가 우선시되는 풍조가 횡행한 것이다.

    결국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적 유산은 소실되고 악습과 관행만이 진보정당으로 흘러 들어가는가 하면, 역으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내부에서 벌어진 이간질과 분탕질이 민주노총으로 유입되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진보정당과 민주노조운동의 관계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양상으로 왜곡되었다. 더욱이 민주노총의 공적 조직과 기능은 무력화되는 동시에, 정파간 담합결과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대중조직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현재 진보정당의 위기는 민주노총의 위기로, 더 나아가 민주노조운동의 붕괴로 이어질 상황까지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소개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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