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세 둘러싼 소동의 진실
        2013년 09월 06일 11: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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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주 초에 보내온 김진석 교수의 기고 글이다. 이석기 사건 파동 등의 여파로 글 게재 시점이 늦어졌다. 김 교수에게 사과의 말씀 드린다. 여전히 우리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복지사회, 소득분배, 복지재원 문제 등에 대한 고민들이 녹아 있는 글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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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답한 노릇이다. 보수진영조차도 동의하는 최소한의 복지제도의 안정적 시행, 그리고 더 나아가 복지국가의 밑그림을 대한민국에 현실적으로 적용해볼 수 있는 기회를 최근 우리 사회가 연달아 놓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첫 번째 기회는 지난 대선과 함께 찾아왔다. 지난 대선 동안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복지정책의 경연장이었다. 여와 야,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더 많은 복지를 약속하고 나섰다. 복지는 대세였고, 누구도 그 대세를 거스르려하지 않았다.

    청와대를 놓고 격돌하던 세 명의 후보는 복지제도와 관해서만큼은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듯 더 많은 복지를 약속하고 나섰다.

    대선 경연장의 외곽에 머물러있던 진보진영은 십 수 년전에 자신들이 외롭게 외쳐대던 구호를 이제는 보수진영의 후보들이 원래부터 자기들의 것이었던 양 더 큰 목소리로 외쳐대는 모습을 씁쓸히 지켜봐야했다.

    표면적으로 지난 대선에 대한 복지 관련 기억은 여기서 끝이지만 자세히 들어다보면 이 기억은 완성본이 아니다. 복지에 대한 논의에 빠져서는 안 될 복지재원에 대한 논의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대선이 본격적인 레이스에 접어들면서 각 후보진영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복지재원 마련방안에 대한 논의에서 발을 뺐다. 더 많은 복지,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는 도구인 재원 마련에 대한 논의가 대선 경연장으로부터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면서 “더 많은 복지공약 경쟁”에서 그 진실성과 책임성에 대한 고민도 슬며시 사라져버렸다.

    복지재원 마련 방안, 좀 더 구체적으로 증세 방안을 둘러싼 논의와 주장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러한 주장들은 대선 경연장에서 우선시되는 정치공학에 밀려 어두운 골방에 꼭꼭 갇혀 지내야했다.

    이렇게 먼 길을 돌아 우리는 지금 “증세 없는 복지확대”라는 형용모순이 우리나라 국무회의에서 논의되고 있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8월 8일 기획재정부의 입을 통해 박근혜의 “증세없는 복지”의 완결판(?)이 발표된 후 역설적이게도 증세 논의가 확산일로에 있다. 기획재정부가 “원칙에 입각한 세제의 정상화”라고 이름 붙인 향후 5년간 조세정책 방향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 조세부담률 조정: 2012년 20.2% -> 2017년 21% 내외
    – 다만 직접적 증세는 배제하고 비과세·감면 정비,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과세기반 확대를 우선적으로 추진
    – 소득·소비과제 비중을 높이고 법인·재산과제는 성장친화적으로 조정
    – 조세지출제도를 성장 동력 및 일자리 확충, 서민 지원 중심으로 재편하는 등 조세지원의 효율화

    이러한 장기적 기조 하에 2013년 세제개편안은 소득공제의 세액공제로의 전환, 기타 비과세·감면의 정비와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입기반 확충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8월 8일 세제개편안 발표 모습(방송화면)

    8월 8일 세제개편안 발표 모습(방송화면)

    이들 개편안들 중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 등의 조치는 고소득자에 대한 누진성 강화, 과표 양성화, 소득세의 조세부담율 상향 조정 등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며 세입확충에도 일정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2015년까지 1년의 유예기간을 두기는 했으나 종교인에 보수를 기타소득으로 간주하고 과세대상에 포함한 점은 실질적인 세수 확보의 차원을 넘어서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과세·감면의 정비가 근로소득세에만 집중된 점, 법인소득에 대한 감세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점, 전체의 80%에 이르는 법인세 감면 혜택이 매출액 상위 1% 기업에 집중되고 있는 심각한 편중구조에 대한 정비방안이 누락된 점, 소득세율 최고구간 조정안이 누락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이번 세제개편안은 전체적인 기조에서 조세형평성 제고와 실질적 조세부담율 상향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게 한다.

    문제는 이에 대한 반응이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이 세제개편안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조차도 부정해버리는 대응이 그 하나이고, 세제개편안의 표면적 논점 자체에 몰입되어 복지재정 확보를 위한 큰 그림을 놓치게 되는 대응이 다른 하나이다.

    민주당의 헛발질과 기획재정부의 헛발질

    지난 8월 8일 발표된 세제개편안에 대해 마침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 국조 정상화 문제로 천막당사로 이동해 야성을 키우고 있던 민주당은 호재를 만난 듯 발끈하고 나섰다. 이른바 “세금폭탄론”이 구호로서 등장한 것도 이즈음이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바와 같이 통상적인 기준에서 중산층 근로자가 월 1-2만원을 추가 부담하는 정도(예: 총 급여 연 7000만원 기준 16만원/년 추가부담)를 “세금폭탄”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그야말로 가당치 않다.

    “세금폭탄론”이야 천막당사에서 농성까지 하고 있는 제1야당의 야성을 강조하기 위한 치기에서 나온 해프닝이었다고 너그럽게 이해한다고 쳐도, 그 이후 당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더욱 우려스럽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실현을 당헌에 명시하고 있는 제1야당의 유력인사들이 복지와 증세를 동일시하는 논법이 위험하다느니, 심지어 증세라는 표현을 쓰면 안된다는 의견까지 내놓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암담해진다. 민주당의 “세금폭탄론”이 사실은 “세금은 폭탄이다”라는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정부가 “증세없는 복지”라는 반칙을 구사하자, 민주당은 이에 맞서 증세논의를 금기시하는 방향으로 대응함으로써 아예 게임 자체를 몰수시켜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민주당의 경우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기획재정부의 경우도 헛발질을 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발표한 세제개편안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때만 하더라도 적극 사수할 의지를 보이는가 싶더니, 급기야 청와대발 재고 의지가 확인되자 불과 닷새만인 8월 13일 수정안을 내놓기에 이른다.

    문제는 이 수정안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소득층과 대기업의 세 부담을 늘리라는 요구에 귀를 닫은 채 근로소득 세액공제에 있어 추가적인 세부담의 기준선을 기존의 3,500만원 선에서 5,500만원 선으로 소폭 조정하는 선에서 조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세수 확보라는 본래의 목적도 희석시키는 데 그친, 그야말로 최악의 “신의 한 수”라는 점에 있다.

    세법개정 원안에 존재하는 문제의 본질을 무시한 이번 수정안으로 인해 세제개편안의 적절성과 보편적인 증세에 대한 논의는 본인의 의도와는 반대로 오히려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

    복지재정 확보, 증세만의 문제인가?

    복지를 위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점은 이제 상식의 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한다면 필자의 자신감이 지나친 것일까? 최근 학계나 언론을 통해 발표되고 있는 수치들을 살펴보면 필자의 자신감이 지나친 것은 아니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2006년부터 2012년 사이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된 복지정치의식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에 동의한다는 응답자의 수가 반대한다는 응답자에 비해 지속적으로 높은 값을 보이고 있다(1).

    또한 지난 2011년 한국인의 복지의식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보건사회연구원에 의하면 복지지출 확대에 따른 추가적 조세부담 의사를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중 49.2%가 부담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하여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20%의 응답자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2).

    마지막으로 최근 세제개편안 발표이후 국내 한 방송사(SBS)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금을 1년에 20만원 정도 더 내더라도 현재보다 복지를 더 확대해야 한다’라는 의견에 50%의 응답자가 동의한 반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면 그럴 필요 없다’라는 의견, 즉 현행 복지수준 유지에 동의하는 응답자는 39%에 불과했다.

    이상의 연구결과들을 종합해보면 현재 한국국민들은 복지의 확대와 정착에 필요하다면 일정한 수준의 추가부담, 즉 보편적 증세를 감수할 심정적 준비를 하고 있거나 이미 마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논의과정을 살펴보면 근로소득세제개편을 중심으로 한 복지재정 확보 방안에 일정한 구조적 한계가 있음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가 세금에 대한 전공자는 아니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논하자면, 한 나라에서 복지제도를 떠받치는 재정을 확보하는 주요한 방안에 크게 세 가지 수단이 있을 것이다.

    그 중 부가가치세와 같은 간접세의 경우 역진성의 문제를 고려하여 일단 논외로 한다면, 다른 하나가 노동소득에 대한 세금이고(예: 소득세), 나머지 하나가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예: 법인세)이다.

    2010년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내국세 기준으로 소득세와 법인세가 각각 26.6%와 26.5%로 거의 동일한 수준을 차지하고 있고, 부가가치세가 34.9%를 차지하고 있다(3).

    정부는 국내총생산 대비 낮은 소득세의 비중(2010년 기준 3.6%; OECD 평균 8.4%)과 높은 법인세의 비중(2009년 기준 3.7%: OECD 국가 중 4위)을 들어 소득세에 대한 적극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노동소득분배율에 대한 나라별 비교 OECD 통계

    노동소득분배율에 대한 나라별 비교 OECD 통계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이 높아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법인세율이 OECD 평균에 비해 낮은 편임에도 불구하고(2010년 현재 실효법인세율 23.4%; OECD 회원국 평균 25.6%(4)) 법인세 과세소득 금액이 불균형적으로 늘어난 데 따른 착시현상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다(5).

    결국 우리나라의 GDP대비 법인세의 비중이 소득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것은 전체 국민가처분소득 가운데 법인들이 가져가는 몫의 증가분이 개인들이 가져가는 몫에 비해 크게 늘어난 데 따른 결과인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늘어나는 노동생산성에 비해 정체되어 있는 실질임금의 문제나, 최근 정체되거나 하락하고 있는 노동소득분배율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그 특성으로 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이미 너무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는 한국 경제의 현 상황에서 앞서 문제시했던 자본소득세, 즉 법인세율을 무작정 올리는 것은 그다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길이다.

    다음으로 노동세율을 높여서 복지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이 있을 텐데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증세에 대해 심정적으로 준비가 되어있는 납세자들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내는 만큼 너도 낼 것이다”라는 상호주의(reciprocity)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납세라는 행동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

    이는 결국 단순한 제도개편으로서의 증세, 혹은 복지재정을 마련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증세의 도입을 넘어, 사회적 연대의 형성을 통해 복지제도에 대한 사회적 재가를 얻어가는 과정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이러한 사회적 연대의 형성을 통한 증세의 관철이 복지재정의 확보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한 물적 토대에 대한 문제이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구조를 살펴보면 국내에서 소득세 비중이 낮은 이유가 하나는 비과세·감면 혜택이 초고소득층에 집중되어있기 때문이고, 더 중요한 이유는 임금근로자의 소득수준 자체가 너무 낮기 때문이다.

    이번 세제개정안에 따르면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는 임금근로자의 비율이 전체의 50%가 넘는 점도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결국 앞서 언급한 노동소득분배율의 상향조정을 위한 추가적인 노력이 없이 노동소득에 대한 세율조정만으로는 복지재정의 확보라는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구조적인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법인세의 비과세·감면 혜택을 노동소득분배율과 연동시켜 조정하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고려해볼만 하다.

    맺으며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와 노동소득에 대한 과세도 여의치 않을 때, 복지재정의 마련을 위해 정책입안자들이 만지작거리는 카드는 결국 돈을 빌려오는 것, 즉 재정적자를 감수하는 방안일 것이다.

    한 나라의 경제규모가 계속 성장하는 추세에 있고 그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할 때에는 일정한 수준의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복지제도를 실행해도 지속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런 전망이 가능하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재정적자를 감수하는 방식으로 복지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결국 우리 세대가 잘 먹고 잘 살자고 우리 자식세대에게 빚을 전가하는 것에 다름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한마디로 할 짓이 못된다.

    <참고자료>
    1 안상훈. (2011). “한국 복지정치의 지형”,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 2011 춘계학술대회 자료집.]
    2 노대명·전지현. (2011). “한국인의 복지의식에 대한 연구: 사회통합을 위한 정책과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3 한국조세제정연구원
    4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2012). [보도자료] “기획재정부의 법인세 비중 반박주장에 대한 공개질의서 발송”:
    5 선대인. (2012). “법인세 부담에 대한 기획재정부 주장의 허구”. 선대인경제연구소:

    필자소개
    서울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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