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통진당 탄압 함께 맞서야 한다
        2013년 09월 05일 10:55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 레디앙 독자가 통합진보당 탄압에 대해 어떤 전제 조건도 없이 함께 싸워야 한다는 취지로 독자 기고글을 보내와서 싣는다. <편집자>
    ————————

    요즘 소위 “내란음모”사건으로 시끌벅적합니다. 국정원은 통합진보당의 일부 의원과 당원들이 모종의 “조직”을 꾸리고 서울 모처에서 “내란”을 모의했다고 주장하는데요.

    정말로 내란을 일으켜서 제나라 국민을 도륙했던 자들은 진지하게 국회에 간첩이 침투했다고 주장하는 모양입니다만, 다행히 대다수의 양식 있는 사람들은 국정원의 주장이 대단히 미흡한 근거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내란음모”라는 엄청난 죄목을 걸고 소동을 일으킨 이유가 박근혜 정권과 국정원, 자신들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도요.

    그렇다면 상황은 간단합니다. 국정원의 죄목들, 대선 불법 개입과 지금껏 저질러 온 수많은 용공조작 사례에 “2013년 통합진보당 공안 탄압”을 추가하고 국정원 해체를 위한 운동을 보다 확대하면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상황은 간단치가 않아 보입니다. 비록 내란을 도모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지만, 어쨌든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발언이 소위 “국민 상식”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라는 주장이 개혁 언론, 그리고 일부 진보적 언론과 논자들 사이에서 팽배합니다. 툭 까놓고 말해, 국정원은 나쁘지만 북한 편드는 사람들은 방어할 수 없다, 이런 말인데요.

    이유인 즉, 북한은 독재 국가고, 핵을 갖고 있고, 우리나라와 무기를 맞대고 있고, 그러므로 북한을 편드는 것은 진보적 가치에 반하는 행동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른바 “녹취록”에 등장하는 발언자들의 발언은 그런 북한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죠.

    북한은 독재 국가다, 그런데 북한을 지지하다니, 이건 독재국가를 지지하는 거다, 그러므로 진보가 아니다, 그러므로 국정원도 나쁘지만 독재국가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나쁘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국정원 비판과 통합진보당 방어를 분리하는 게 일견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 까요.

    만약 당신이 소매치기에게 지갑을 뺏겼다면, 경찰에 신고하면 됩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경찰은 당신에게 지갑을 되찾아 줄 것입니다. 일상시기에 국가와 피지배계급은 평화롭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직장에서 부당하게 해고를 당했다면, 경찰에 신고해 봐야 별무소용입니다. 가까운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우리 사장 때문에 나와 내 가족의 생계가 끝장나게 생겼소, 어서 사장을 잡아가고 내게 임금을 주시오, 아무리 말해 봐야 경찰은 오지 않습니다. 당신이 억울함에 복받쳐 사장을 찾아가 사장의 멱살을 잡거나 사무실 유리창이라도 깨면, 그때서야 경찰은 득달같이 달려와 당신을 잡아갈 겁니다.

    바로 그런 시기에, 당신이 “독재국가를 지지하는 자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지금 탄압받고 있는 바로 그 사람들이 당신의 옆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당신의 평범한 삶을 앗아간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울 겁니다.

    한 집단이나 개인이 진보적인지 아닌지는 그가 발 딛고 있는 계급적 위치, 그리고 실천에 달려있습니다. 저마다 추구하는 이념이나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방법론이 제각각이어도, 피지배계급에 기초해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주장과 실천을 한다면 그들 모두가 이 사회의 진보세력입니다.

    백보 양보해서 지금 탄압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했다는 말들이 사실이라고 칩시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끼리의 모임에서 무슨 말을 했든,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서, 농민들의 생존권 확보를 위해서, 반값 등록금을 위해서, 쿠데타 세력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서 싸워왔습니다.

    국정원이 통합진보당을 탄압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정작 북한에게 뒷돈 찔러주고 휴전선에서 총 한 방만 쏴다오 부탁한 권력자들, 북한의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착취하고 이윤을 누리는 자본가들, 개인 자격으로 북한 찾아가 “적의 수괴”와 식사도 하고 기념사진도 찍고 이런저런 덕담도 나눈 박모 씨, 지금 청와대에 계시다죠. 국정원은 이런 자들을 북한과 접촉했다며 탄압하지 않습니다.

    다른 가정도 해볼까요. 만약 어떤 집단, 한 백 명 된다고 칩시다. 그 백 명이 자기들끼리 골방에 모여 비비탄 총으로 국가 기간시설을 파괴할 계략을 세우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단지 그런 황당한 모의만 할 뿐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하지도 않고, 농민들의 눈물을 닦아주지도 않고, 청년들의 일자리나 등록금 문제에도 관심이 없으며, 총칼로 민주주의를 파괴한 독재세력이 집권을 하든 말든 상관치 않는다, 오로지 비비탄 총으로 유류시설을 파괴할 생각뿐이다. 국정원은 이들을 탄압하기 위해 거액을 들여서 제보자를 침투시키고, 수년 간 도청, 감청을 하는 수고를 들일까요. 아마 관심도 기울이지 않을 겁니다.

    “탄압의 빌미를 줬으니 문제”라는 분열적 태도. 옳지 않습니다. 탄압의 빌미, 그건 “북한에 대한 그들의 태도”나 “비비탄 총”이 아니라 그들이 진보 운동의 헌신적인 일부라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국정원이 “진보운동의 발전과 쇄신”을 위해 “패권적”, “종북적” 세력을 걸러주는 것이라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이런 태도를 가져선 안 됩니다. 지금 “종북”을 빌미로 탄압하는 저들은, 노동자들의 “점거”나 “파업”을, 노동당의 사회주의 강령을, 정의당 인사들의 과거 이력을, 모든 운동의 요소들을 “빌미”로 삼을 것입니다.

    “너희가 반성하고 변화하면 도와주겠다”는 한가롭고도 오만한 태도.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필드 위의 선수지 구경꾼도, 심판도 아닙니다. 그들의 반성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운동의 발전을 위한 반성과 변화는 운동 내부에서 이끌어 내야 합니다. 외부의 탄압에 의한 변화, 그건 생산적 변화이기보다는 변질과 굴종으로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벌써부터 “헌법 밖에 진보 없다”느니, 각종 자기 검열적이고도 타협적인 발언들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냐, 어떤 수단으로 변화시킬 것이냐, 저마다 생각이 다를 겁니다. 각각의 집단이 지닌 실천 상에서의 오류나 약점도 존재할 겁니다. 토론합시다. 현실의 운동 속에서 증명합시다. 무엇이 가장 올바른 대안이고 실천인지.

    그러나 토론과 검증을 위해서도, 진보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시도에 견결히 맞서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지배자들이 감히 진보의 약점을 들춰 운동을 후퇴시킬 시도를 못할 그런 상태. 그런 상태야말로 어떤 성역도 없는 토론과 검증, 발전적 변화를 하기에 맞춤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는 우리가 단결해 싸우고, 쟁취하지 않으면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독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