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잉어빵 장수의 돈
    [끝나고 쓰는 노점일기 2] 지나가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
        2013년 09월 03일 10:2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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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지나가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

    하루 종일 거리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카메라의 셔터 속도를 느리게 해서 찍은 사진처럼 사람들은 지나간다. 잉어빵 마차 따윈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그러다 가끔씩 불쑥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마차 안으로 누군가 들어올 때 나는 거리에 나도 존재하고 있다 는걸. 퍼뜩 깨닫는다. 주로 길을 물어보거나 잉어빵을 사기 위한 사람들이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경우가 있다.

    내가 있는 시흥사거리는 바람이 많이 불고 횡당보도 신호대기 시간이 길다. 낮 시간에 현대시장에 오는 대부분이 연세가 많으신 할머님들이다.

    나는 천막 안으로 들어와 신호가 바뀔 때까지 바람을 피하시라고 권한다. 얘기도 하기 전에 천막으로 대피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할머님들은 잉어빵을 사지 못하는 게 미안하신지 꼭 한마디 하신다. “아유, 젊은 색시가 왜 이런 고생을 해”

    아… 젊은 색시라는 말에 잉어빵 하나 안 드릴 수 없다. 할머님은 바람도 피하고 잉어빵도 하나 챙겨 흐뭇하게 떠나시고, 잉어빵을 파는 젊은 색시는 또 다른 할머님을 기다린다. 노점은 보행권을 침해하는 것만은 아니다.

    매일 시흥사거리로 출근하는 할머니가 계시다. 신호대기중인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시는 분이다. 날이 엄청 추운데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거리로 나오신다. 내가 오고 나서는 중간 중간에 마차에 들어와 몸을 녹이며 나에게 전도를 시도하신다.

    나는 물었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쉬엄쉬엄 하시지 무얼 그리 무리해서 나오시냐고. 할머니는 얘기하신다. 말씀을 전파하는 게 자신의 소명이고, 신념이라고.

    신념. 소명. 그것에 대해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단호하게 얘기하시는 할머니. 왠지 할머니의 그 단호함이 부러웠다. 그리고 할머니의 신앙이 너무나 이상한 사이비종교라는 것에 조금 서글펐다.

    시흥사거리 담당 환경미화원 아저씨. 늘 인사를 해도 반응이 없는 무뚝뚝한 아저씨다. 잉어빵을 권해도 받지 않는다.

    저 아저씨는 여기 마차가 있는 게 마음에 안드나보다 생각하게 될 즈음, 아저씨가 마차로 들어와서 잉어빵을 달라더니 서론도 없이 이야기를 꺼내신다. “나는 처음에는 마스크를 쓰고 일했어요” 아저씨는 환경미화원 하는 것이 창피해서 언제나 마스크를 쓰고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창피할 일이 아닌데 스스로의 자격지심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잘 먹었다며 다시 일을 하러 나갔다. 그게 끝이다.

    그 아저씨는 내게 이런 일을 한다고 자격지심 갖지 말라는 말을 해주려 내 잉어빵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셨다. 잉어빵 하나에 큰 응원을 얻었다.

    마차에도 뿌리가 있었으면

    독거중년으로 살다보면 혼자 해결해야 하는 일투성이다.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혼자 해결해야만 하는 일들. 무슨 일이 발생하더라도 언제나 침착하게 스스로 해결해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 나는 노점을 시작하며 마차와의 씨름이 시작됐다.

    내가 처음 마차를 둔 곳은 시흥사거리의 모퉁이. 양쪽으로는 횡단보도가 있고, 정면은 공사장이다. 공사장의 건축물 쓰레기를 내오는 문이 바로 앞이고, 공사장 펜스를 경계로 인도가 이어져 있었다. 엄밀히 구분하자면 공사장의 문 입구 한 평 정도가 사유지이고 나머지는 인도다.

    나는 계속되는 단속에 마차를 끌고 노점 메뚜기가 되었다.

    단속이 나온다. 마차를 끌고 공사장 출입구 앞 사유지 부분으로 이동한다(사유지의 적치물에 대해서는 구청이 직접 단속하지 않는다) 공사장으로 차가 들어가려 한다. 다시 인도로 나간다. 다시 단속이 나온다. 다시 공사장 출입구로 이동한다. 공사장에서 차가 나오려 한다. 다시 인도로 나온다. 다시 단속이 나온다. 다시…

    필자의 마차

    필자의 마차

    노점 시작 3일차. 나는 그날만 마차를 7번 옮겼다.

    잉어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마차의 수평이 맞아야 한다. 아니면 반죽이 흘러서 잉어빵의 모양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가스불이 나오는 구멍은 쉽게 막히기 때문이다. 마차를 이동하려면 마차를 고정하고 수평을 맞추기 위한 고정핀을 풀어야 한다.

    낡은 마차의 고정핀은 손으로 풀리지 않는다. 누군가 있었을 때는 부탁할 수 있지만 혼자 있을 때는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녹슨 고정핀을 벽돌로 쳐서 돌려 푼다. 바퀴가 땅에 닿으면 천막이 날리지 않게 싸고 마차를 이동시킨다.

    천막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천막 아래 괴여둔 벽돌들을 옮긴다. 남은 짐들을 옮긴다. 다시 마차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고정핀을 벽돌로 치고, 천막을 고정시키고 벽돌을 괴여둔다. 다시 불을 피운다. 이 작업의 곱하기 일곱.

    노점상들은 자신이 장사하는 공간에 대해 ‘내 자리’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지금까지 그 표현이 불편했다. ‘점유’의 문제이지 ‘소유’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날, 재크의 콩나무처럼 내 마차에서 아래로 뿌리가 쑥쑥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 종일 난로 하나 없이 거리에 서있어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도, 잉어빵 하나를 만드는데 최소한 열 번 정도의 팔 운동이 필요하다. 잉어빵 세 개에 천원. 2천원어치를 사면 하나를 더 준다고 보고, 태워버리거나 팔리지 않아 버리는 것까지를 포함하면 잉어빵 장사도 간단한 노동은 아니다. 사실 장사가 잘되는 잉어빵 노점은 엄청난 노동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는 그것들이 팔리기를 기다리는 일이 더 힘든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즐거웠다. 적어도 나의 노동은 누군가의 허기를 메우거나 즐거움을 주는 일이었으며, 나의 노동의 대가가 일정 정도 돌아오는 일이었으며,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훔쳐볼 수 있는 기회였으며, 무엇보다 정신이 맑아졌다.

    내가 메뚜기를 하는 공사장의 인부중에 나를 유심히 본 분이 있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이면 꼭 나와서 오늘은 별일 없었냐고 묻는다. 그렇게 며칠 수다로 알게 된 그 분은 중국인 부인과 그녀의 가족을 모두 한국으로 모셔와 부양하고 있는 아저씨다. 기술이 있어서 주로 전기공사 쪽을 맡고 계신 것 같은데, 내 마차의 등을 켜는 배터리를 보시곤 전기를 끌어다 쓰라고도 하셨다. (그런 권한까지 있는 분은 아니었다)

    며칠 지나자 아저씨가 잉어빵을 2천원 혹은 3천원씩 사서 공사장분들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단골이 생겼다고 좋아했다. 잉어빵이 잘 나가지 않는 오후엔 아저씨가 언제 나오시나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공사장 인부들에게는 오후 간식으로 빵과 캔커피가 매일 원하는 만큼 제공되고 있었다. 아저씨의 구매는 출출해서라기보다는 내가 안쓰러워서였다. 아주 조금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동정 받고 있었으니까.

    나는 잉어빵을 사던 2천원, 3천원도 매우 어렵게 꺼내놓으시던 아저씨의 빈약한 지갑을 떠올렸다.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건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이다. 뭐 복잡할거 없다. 가난한 이들의 행복이 이런 거 아니겠나.

    돈. 혹은 그것을 둘러싼 에피소드.

    하나. 내가 있는 곳은 시흥사거리 현대시장 입구 쪽이다. 현대시장은 워낙 싼 가격으로 물건을 팔기에 조금 먼 지역에서도 사람들이 장보러 오는 곳이다. 다만, 시장물가가 너무 싸다보니 잉어빵을 사러오는 분들 중 대부분이 비싸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시장 안에는 잉어빵 4개에 천 원 하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노점의 하루만큼 서민의 하루도 버겁다.

    둘. 노점 7일차. 바람이 많이 불던 날이었다. 하루 종일 일해서 재료비를 빼고 손에 쥔 돈은 1만 5천원. 남은 돈의 액수보다 나의 종일의 노동과 기다림의 무게가 스스로 안쓰러웠던 날이었다.

    내가 전노련 사무처장 시절, 종로의 노점상들이 이면도로로 강제이주당했다. 내가 실태조사를 나가서 파악한 그분들의 소득은 하루에 2~3만원 수준이었다. 나는 언론과의 인터뷰 때마다 종로 이면도로 노점이 개시도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생각한다. 말은 얼마나 쉽고, 가벼운가. 현실에 비해…

    셋. 화창한 일요일 오후. 날이 좋아 잉어빵 팔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예배를 마친 인근 교회에서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커피와 차를 나누어준다.

    나도 생강차 한잔을 받아 마시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마차 안으로 들어온다. 완전 취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혼잣말을 중얼중얼 하다가 혼자 큰 소리로 껄껄껄 웃는다. 이 아저씨 계산이나 할 수 있을라나… 아저씨, 잉어빵 6개를 드시고 2천원을 낸다. 다행이군.

    아저씨는 커피 나눠주는 교회 분들에게 간다. 다행이다. 아저씨 다시 오신다. 잉어빵을 만원어치 싸달란다. 아저씨, 많이 드셨잖아요. 어디 가져가시게요. 아저씨 싸라면 싸란다. 주머니에서 빳빳한 새 돈인데 막 구겨 넣은 만원짜리가 나온다. 한판 구워놓고 쳐다만보던 잉어빵을 다 싸서 드린다. 아저씨 잉어빵을 가지고 교회 분들에게 가서 나눠준다. 그리고도 남았는지 어디론가 가고 보이지 않는다.

    30분쯤 뒤에 아저씨 또 나타나셨다. 잉어빵을 2만원어치 더 싸란다. 아저씨 집이 어디세요? 많이 취하셨어요. 집에 가세요. 아저씨 직장은 상봉동이고 집은 안산이란다. (그런데 왜 여기 계신거지?) 아저씨가 다 사가서 잉어빵은 지금 굽고 있고, 이 판을 가득 채워도 만원어치밖에 안돼요. 아저씨, 소리를 버럭 지르며 잉어빵 빨리 구워서 싸란다. 결국 아저씨는 월급을 받았다며 주머니에서 구겨진 새돈 만원짜리 두 장을 더 꺼내 놓고 양손에 잉어빵 봉다리를 가득 들고 가버렸다.

    아저씨, 집에 잘 가셨을라나. 아침에 왜 돈이 없는지 기억하실라나. 그 많은 잉어빵을 어찌했을까. 나는 혹여 아저씨가 돈을 돌려달라고 올까봐 일주일동안 그 삼만원을 들고 다녔다.

    유3

    아저씨의 3만원

    넷. 잉어빵을 팔다보니, 모든 금액이 잉어빵으로 환산된다. 예를 들면, 소주 한 병은 잉어빵 4개, 3천원짜리 커피는 잉어빵 10개. 휘발유 3만원이면 잉어빵 40~50개(누군가 3만원어치 잉어빵을 샀다면 이렇게 줬을 테니까)… 뭐 이런 식이다. 나에게 잉어빵은 곧 나의 노동이다.

    돈을 쓸 수가 없다.

    다섯. 총선을 앞두고 후보 등록과 선거운동이 한참이다. 잉어빵 장사를 하며 모은 돈을 한 명의 아끼는 정치인에게, 한 명의 노점활동가에게 후원했다. 각각 10만원씩. 나에게는 100만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돈이었고, 돈이라기보다는 나의 노동이고 마음이었다. 이렇게라도 함께 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전달하고 싶었다.

     

    필자소개
    전직 잉어빵 노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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