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종주의에 대한
    100년전의 경고, 지금은?
    [책소개] 『니그로』(W. E. B. 듀보이스/ 삼천리)
        2013년 09월 01일 11: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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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지구상에서 공식적으로 피부색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21세기 하이브리드(혼종) 세상이고,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인종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특히 흑인에 대한 사회문화적 차별과 분리의 역사는 생각보다 뿌리 깊고, 최근에도 미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문명국가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뉴스로 보도되고 있다.

    지금은 흑인이 미국의 대통령인 시대이지만, 사실 이 책이 나온 20세기 초에는 미국의 흑인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도 누리지 못했다. 이때 “20세기의 문제는 인종장벽의 문제다”라고 선언하며 미국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를 창설하고 범아프리카주의의 이론을 제시한 W. E. B. 듀보이스의 고전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인종 분리가 극에 달해 있던 100년 전 미국에서 출간되어 흑인해방운동과 범아프리카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했다. 오늘날까지도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이나 일반인들에게 흑인과 아프리카 이해의 출발점을 제공하는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흑인 최초로 하버드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W. E. B 듀보이스는, 무엇보다 미국 시민들에게 흑인에 관해 올바르게 설명해 주고 싶었고 그런 생각을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고대 인류 문명이 탄생한 나일 강에서부터 남아프리카 호텐토트족까지, 유럽 제국의 아프리카 침략에서 제2차 대전 이후 탈식민 시기까지, 대서양 노예무역의 시작과 신대륙 이주에서 노예반란과 흑인 공화국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흑인의 역사는 그야말로 세계사의 흐름과 함께했다.

    로마의 시인 테렌티우스, 오셀로와 프레스터 존 같은 전설적 인물, 아라비아의 안타르, 아이티의 투생 루베르튀르, 러시아의 푸시킨,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뒤마, 미국의 정치가 알렉산더 해밀턴에 이르기까지, 니그로 혈통은 인류 문화에 위대한 발자국을 선명하게 남겼다. 세계 지도를 그려 보면 아프리카 대륙은 물론이고 아시아와 아메리카, 오세아니아에서 흑인과 물라토들이 주요 인종으로 살고 있음도 역설한다.

    니그로? 흑인? 인종?

    니그로, 흑인, 인종이라는 말은 차별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공식적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하여 미국에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말을 선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니그로’(Negro) 또는 ‘흑인’(Black)은 검은 피부색과 짧고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두텁고 때로는 뒤집힌 입술, 턱 부분이 발달된 얼굴, 길쭉한 두상을 가진 ‘인종’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 출신이거나 먼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어떤 인종에 대해서도 그렇게 제한된 범위를 전체 집단에 적용하여 규정하지는 않는다. ‘백인’은 어떤 종류의 백인이든, 몸집이나 얼굴 모양에 상관없이 ‘백인’이라고 한다.

    두개골 크기도 다 다르고 신체적 특징도 천차만별이다. ‘황인종’은 아마도 백인보다 더 모호한 개념일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학계에서는 인종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오래전에 인류학자들은, 인종을 “과학의 탐구 대상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되었다”고 했다.

    니그로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과 오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아프리카는 ‘에티오피아’(흑인의 땅)이었고, 현대 유럽인들에게는 ‘미개한 어둠의 땅’이고 ‘모순으로 가득한 대륙’이었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인류가 처음 등장한 대륙일 뿐 아니라 이집트, 카르타고, 말리제국, 송가이제국의 땅이었다.

    나일, 콩고, 나이저, 잠베지 4대강을 중심으로 수많은 종족 집단이 다양한 문화를 이루고 살아온 거대한 땅이었다. 유럽인들이 ‘탐험’을 시작하고 식민지를 ‘개척’하고 본격적으로 노예와 자원을 수탈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 뒤로 이 거대한 대륙은 국제 교역에서 노예시장과 상아, 흑단나무, 고무, 금, 다이아몬드의 산지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아프리카와 흑인은 ‘문명사회’에서 무시되었고 세계사의 서술에서도 제외되었다. 이 생소한 아프리카는 여전히 이해나 연구보다는 오히려 관찰과 탐험의 대상이 되어 왔다. 아프리카는 유럽보다 세 배나 크지만 해안선 길이는 유럽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유럽처럼 아프리카도 아시아와 닿아 있지만 인도양 주변에서 남서쪽으로 굽어지고 동해안에는 만, 내포, 곶, 섬들이 거의 없다. 길고 폭이 넓은 강이 있지만 외부 세계와 이어 주는 교통수단이 아니었다. 강이 높고 평평한 중앙부에서 좁은 해안 지대와 바다로 급속하게 떨어져 큰 폭포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런 지리적 고립에 더해 서양의 침략과 노예무역, 수탈과 인위적 분할이 어쩌면 20세기 현대 문명에서 소외시켰는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전 세계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인종 가운데 하나인 흑인과 늘 친숙하게 지내 왔다. 사람들이 지중해 주변으로 모여들던 고대사회에서 흑인들은 놀라움이나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그들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세상은 흑인들이 왕래하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가운데 스스로 제 몫을 하는 것을 보아 왔다.

    식민주의와 노예무역

    인류 역사에서 고대든 중세 사회든 피부색이 노예제도의 상징이 된 적은 없다. 현대 세계에서도 기독교 국가들에서만 그러하다. 15세기까지만 해도 니그로 나라 문명과 유럽 문명에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지은이는 피부색인 검은 사람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바로 서양의 침략과 노예무역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한다.

    처음에 노예무역은 과거처럼 사막을 지나 북쪽 이슬람 세계로 가는 교역로를 통해 교역되었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1482년에 황금해안에 최초의 노예무역소를 건설하며 교역을 확대했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메리카 교역이 성장했다. 서인도제도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강인한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어났고 18세기가 되면 정점에 이르게 된다.

    이 무렵에 한 해 5만~10만에 이르는 니그로 노예들이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공급되었다. 이것이 바로 대규모의 노예 투매를 요구했고, 아프리카 전 지역, 즉 서해안 지대, 이집트계 수단과 수단 서부, 콩고 유역, 아비시니아, 호수 지역, 동해안 지대, 마다가스카르에 강요되었다. 약한 니그로만 노예로 잡힌 것이 아니라 강인한 반투, 만딩고, 송가이, 누비아인과 나일 니그로, 풀라니, 아시아 말레이인까지도 이 습격 대상에 포함되었다.

    이 시대는 쇠퇴의 시기가 아니라 셰익스피어, 마르틴 루터, 라파엘로, 하룬 알라시드, 그리고 에이브러햄 링컨이 태어난 시기였다. 이 시기는 세계에서 가장 야심 찬 두 종교가 엄청나게 팽창하는 시기였을 뿐 아니라 현대 산업 체제가 형성되는 시기였다.

    이런 진보와 고양의 시대 한가운데에서 노예무역과 노예제도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고, 인간성을 더욱 폄하하고 무시하도록 되풀이해서 가르치고, 고통에 냉담해지게 만들고, 비열하고 잔인하게 인간을 더욱 증오하도록 만들었다. 이는 현대 인류사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가장 비열한 오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신대륙 흑인의 역사

    18세기 카리브 해의 유럽 식민지에서 일어난 노예반란으로 시작된 아이티혁명은 세계에서 네 번째,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 다음으로 공화국을 세운 시민혁명이었다. 하지만 역사책에는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대혁명, 미국의 독립혁명을 이른바 3대 시민혁명으로 기술하면서 아이티혁명은 빼 버리기 일쑤이다.

    쿠바와 브라질, 멕시코, 볼리비아, 페루를 비롯한 아메리카 나라들의 현대사는 과거 식민지에서 해방과 주권을 찾는 투쟁의 역사였다. 그 과정에 이른바 니그로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지금은 다인종 다민족 국가로 국제사회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신으로부터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 권리 가운데 생명권, 자유권, 행복을 추구할 권한이 있다.” 역사적인 독립선언서를 당당하게 선포할 때, 미국 영토 안에는 무려 50만 명의 노예가 있었고 한다. 또 민주주의 국가임을 호언장담하며 등장한 이 나라는 157년 동안 인간 노예제도를 유지해 왔고, 이후로도 87년 동안이나 이 제도에 집착했다.

    니그로 노예제도를 현대 산업 시스템으로서 가장 오랫동안 실험한 곳이 북아메리카 대륙 본토, 다름 아닌 오늘날의 미국이다.

    이 책에 따르면 1910년 미국에서 니그로 후손으로 집계된 인구가 9,828,294명이었다. 이 수치에는 니그로 피와 섞였는지 판단할 수 없는 상당수의 사람은 물론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제외되어 있다. 당시 이른바 니그로라 불리는 사람 수가 1,250만 정도로 추정되었다. 이들은 거의 모두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려온 아프리카 노예들의 후손들이었다.

    헌법이 채택될 당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노예제도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북부에서는 노예를 해방하는 일련의 법들이 채택되었다. 버몬트 주가 1779년에, 뒤이어 매사추세츠 주가 1780년에 노예제도를 폐지했다. 펜실베이니아 주는 1780년부터 점진적으로 폐지하기 시작했고, 뉴햄프셔 주에서는 1783년에 노예해방이 완료됐고, 코네티컷 주와 로드아일랜드 주는 1784년에 폐지했다. 1787년에 북서부 영지에서 노예를 금지한다는 역사적인 결정이 나왔고, 뉴욕 주와 뉴저지 주에서도 1799년과 1804년에 점진적 폐지가 시작됐다.

    하지만 여전히 노예 주(州가) 여전히 남아 있었으며, 미국 전역에 벌어진 흑인과 노예에 대한 억압과 착취는 20세기까지 이어졌다. 이 책은 미국 역사에서 카토, 가브리엘, 터너를 비롯한 무수한 노예 반란은 물론, 도망 노예를 돕는 지하 철도(Underground Railroad) 운동에 이르기까지 흑인의 고난과 좌절, 승리도 함께했음을 보여 준다.

    프레드릭 더글러스, 존 브라운, 조너선 기브스를 비롯한 흑인운동 지도자에서 나이아가라 운동과 미국유색인지위향상협회 창설에 이르기까지 300여 년 아메리카 흑인의 역사를 비교적 서술하고 있다. 당시까지의 연구와 당국의 통계 자료 등을 참고로 미국 흑인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서구 중심주의와 탈식민주의의 뿌리

    100년 전 이 책을 쓴 듀보이스의 혜안과 예견대로, 오늘날 세계는 흑인과 아프리카를 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는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종 통계를 내지 않을 만큼 인종주의적 사고도 많이 사라졌다. 프란츠 파농, 에드워드 사이드, 호미 바바, 가야트리 스피박까지 이어지는 탈식민주의 담론은 백인과 서구 중심주의를 깨뜨렸다.

    하지만 흑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뿌리 깊고 식민주의와 노예무역의 유산도 여전히 남아 있다. 탈식민주의 이론은 마르크스주의나 제3세계 민족주의를 포괄하며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지만, 그 뿌리는 아프리카 흑인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듀보이스는 이 책을 마무리하며 다음과 같이 힘주어 말한다.

    “오늘날 인류 발전의 맨 앞자리에서 자신의 권리뿐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더 위대하게 만들고자 하는 이상을 위해 싸울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 여성 해방, 세계 평화, 민주 정부, 부의 사회화, 인류애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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