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노동체제가 좋은 사회 만든다
    [책소개] 『한국고용체제론』 (정이환/ 후마니타스)
        2013년 09월 01일 11: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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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 사회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동체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노동체제는 나라마다 상이하며, 이에 따라 일자리와 소득 등 삶의 기회가 개개인에게 배분되는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이 때문에 노동체제는 자본주의의 다양성(varieties of capitalism)을 규정하는 주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역시 고용과 노동시장 문제다. 이는 비단 어느 한 세대의 문제만도 아니며, 어느 한 계층에 집중된 문제 역시 아니다.

    2008년 기준, 한국의 임금 불평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으며, 성별 임금격차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 한국의 노동시장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1997년 이후 한국이 지향해야 할 사회 모델로 거론되고 있는 스웨덴, 네덜란드 등등 역시 모두 노동시장과 관련된 주요 사회 모델로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역시 매년 선거 때마다 비정규직 문제, 고용 안정성,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주요 정책으로 제시하고 있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모두 장밋빛 전망에 그치거나, 단기적인 처방에 집중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한국의 노동 현실을 더욱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은 한국의 노동시장이 ‘사회적 노동시장’으로 구축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물론 이와 같은 지향점은 사회적으로 규제되는 노동시장, 노조에 의한 연대 임금 정책, 그리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및 사회 안전망을 전제로 한 유연 안정성을 그 주요 내용으로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전환이 가까운 시일 내에 실현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향해야 ‘사회 모델’과 우리가 처한 ‘사회 현실’ 사이의 간극은 매우 크기 때문이며, 그간 한국 사회가 거쳐 온 경로 역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경로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이고, 이를 시작하기 위한 출발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목표는, 한국 노동체제의 특성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답해 보려는 것이다. 이 책은 주로 고용과 노동시장 측면에서 한국 노동체제의 특성을 해명한다.

    2.

    이 책에서는 한국 고용체제의 특성을 거시 고용체제 수준과 기업내부노동시장 수준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고용체제를 선진국의 고용체제와 비교해 보면서, 그 성격을 다시 한 번 검토해 보았다.

    우선, 거시 수준에서 한국 고용체제의 성격은 신자유주의적 분절 고용체제라고 규정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이면서 분절적이라는 규정은 일견 논리적 모순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한국 고용체제의 성격이며 여러 선진국과 비교되는 특징이다.

    그 외에도 한국 고용체제는 몇 가지 특징을 보여 주고 있는데 그것은 기업 중심성, 협소한 1차 노동시장, 그리고 성별 분절이다. 이런 특징들은 모두 선진국에 견주어 두드러지는 한국적 특징이다.

    한국 고용체제가 이런 다양한 특징을 보이는 것은 한국 노동시장이 다양한 작동 원리에 의해 구조화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장 중심성, 기업 중심성, 가부장주의, 그리고 노사 간 각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네 개의 작동 원리들은 서로 상충하기도 하고 서로 결합하기도 하면서 한국 노동시장을 구조화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 고용체제의 성격을 단지 신자유주의적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기업내부 노동시장 수준에서 한국 고용체제의 특징을 보면, 고용 측면에서는 폐쇄/시장형과 폐쇄/조직형의 중간 유형이고 임금 측면에서는 속인/경쟁형과 속인/비경쟁형의 혼합형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고용체제를 선진국 고용체제와 비교해 성격을 규정해 본다면, 거시 고용체제나 기업내부노동시장 모두에서 일본형과 미국형의 혼종형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 유형과는 거리가 멀다. 이 중에서도 미국형보다는 일본형에 더 가깝다. 그렇다고 한국 고용체제가 일본 유형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고용체제는 외국의 어떤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 ‘한국형’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고용체제론

    3.

    고용체제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 외에 이 책은 한국 고용체제의 주요 측면들을 재해석했다. 그 하나가 연공임금이다. 자료를 분석해 보면 한국 임금체계의 연공적 성격은 어느 선진국에서보다 강하다. 그러나 생계 보장 기능은 취약하다.

    근속-임금 커브와 연령-임금 커브 사이에 현저한 괴리가 있는, 일견 모순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블루칼라 근로자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특히 뚜렷하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장기근속 노동자의 수가 적기 때문이다. 오히려 연공임금은 고령층에서 임금불평등이 커지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이것도 블루칼라 근로자들에서 현저하다.

    한국의 고용불안도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비정규 노동자의 고용 불안을 중시하는 통상적 설명과 달리, 한국의 노동이동은 주로 자발적 요인에 의한 것이고 고용 불안은 중소 영세기업 근로자에게서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다. 여기엔 노동시장의 분절 구조가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

    4.

    이 책은 한국 고용체제의 변동 과정도 재해석했다. 기존 연구들은 ‘1987년 노동체제’와 ‘1997년 노동체제’라는 용어를 통해 1987년과 1997년 사이의 단절적 변화를 강조했다. 이 시기가 고용체제의 패러다임 전환의 계기였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1987년 전후, 그리고 1997년 전후의 고용체제의 변화 과정에서는 연속성도 강하게 발견된다. 먼저 1987년 노동체제의 핵심적 요소인 생산직 근로자의 기업내부노동시장과 노동시장 분절, 그리고 연공임금은 1987년 이전에도 존재했다.

    생산직 노동시장의 분절은 1987년을 계기로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1987년 전후 고용체제의 변화는 기업내부노동시장의 ‘형성’보다는 ‘확대’, ‘강화’, ‘제도화’, 그리고 ’성격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변화만으로도 당시 고용체제에 단절적 변화가 있었다고 말하기 충분하다. 그렇지만 1987년 이전 고용체제의 여러 특징이 1987년 이후의 변화 방향을 상당 부분 규정한 것도 사실이다. 기업별 노동조합도 그러하다.

    1997년 경제위기 전후 고용체제 변화 양상에서도 변화와 함께 연속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첫째, 1997년 경제위기 이후 부각된 노동문제들은 상당 부분 1987년 노동체제에 내재되어 있었다. 노동시장 불평등, 고용 불안, 그리고 고용의 외부화 경향 모두 1987년 노동체제에 잠재되어 있었고 이미 부분적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제도화된 고용체제라는 측면에서 볼 때 1987년 노동체제는 취약한 체제였다.

    둘째,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고용체제의 신자유주의화가 진행되었지만 이와 함께 노동시장 분절도 심화되었다. 다르게 말하면 고용체제의 신자유주의화는 분절 고용체제라는 틀 안에서 진행되었다. 여기엔 1997년 전후 노사관계의 기본 틀이 유지되었던 것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길게 보면 기업내부노동시장과 연공임금, 그리고 기업별 노사관계는 1970년대 이후 현재까지 한국 고용체제를 관통하는 일관된 특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강도와 적용 대상에는 변화가 있었으나 늘 한국 고용체제의 중요한 일부로 존재해 왔다.

    이 책의 구성

    제1장에서는 필자의 연구 시각을 제시했다. 고용체제의 다양성에 대한 외국의 선행 연구들을 검토하고, 일본 고용체제 논쟁을 훑어보고, 필자는 어떤 관점에서 한국 고용체제를 다룰 것인가를 밝혔다.

    제2장과 제3장에서는 한국 고용체제의 특성을 전체적으로 해명하고자 했다.

    제2장에서는 선진국과의 통계적 비교를 통해 한국 노동시장의 특징을 실증적으로 파악해 보았다. 통계자료의 한계 때문에 제한적인 비교밖에 할 수 없지만 이런 작업을 통해서도 한국 고용체제의 핵심적 특징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제3장에서는 본격적으로 한국 고용체제의 성격 규정을 시도했다. 전체 고용체제와 기업내부노동시장 양 측면에서 한국 고용체제의 성격을 정리하고 외국과 비교한 성격 규정도 해보았다.

    이 책의 가장 핵심적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필자는 한국의 전체 고용체제의 성격을 신자유주의적 분절 고용체제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짧은 보론들을 추가해 노동자 숙련과 고용체제, 그리고 경제구조와 고용체제의 상호 연관이 한국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도 살펴보았다.

    제4장부터 제7장까지는 한국 고용체제의 주요 측면들을 다루었다.

    제4장에서는 연공임금을 살펴보았다. 한국의 임금구조가 얼마나 연공적인가라는 문제보다는 연공임금이 생계 보장, 고용 안정, 그리고 불평등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제5장에서는 고용 불안을 다루었다. 여기서는 고용 불안이 주로 어떤 이유로, 어느 근로자층에서 문제가 되는가를 살펴보고, 그것이 고용체제의 성격에 가지는 함의를 따져 보았다.

    제6장에서는 외부노동시장의 성격을 시론적으로 살펴보았다. 기업내부노동시장의 규모가 작은 한국에서 고용체제의 성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선 외부노동시장의 특성을 아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7장에서는 한국 노동시장 불평등의 요인으로 고용 형태와 기업 규모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가를 분석했다. 이 주제를 다룬 이유는 한국 노동시장의 분절 구조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다.

    제8장부터 제10장까지는 한국 고용체제의 역사적 변동 과정을 다루었다. 기존 연구들이 1987년과 1997년을 계기로 한 변화를 강조한 것과 달리 필자는 변화 속의 연속성을 부각시켰다.

    제8장에서는 1987년 이전 고용체제의 성격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1987년 전후의 변화를 재해석했다.

    제9장에서는 이른바 ‘1987년 노동체제’를 고용체제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되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시기와의 연속성에도 주목했다.

    제10장에서는 1997년 이후 고용체제의 성격을 다루면서 1987년 노동체제와의 변화 또는 연속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필자 나름의 입장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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