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살 전쟁에 저항할 의무
    미국의 시리아 폭격과 침공에 반대하며
        2013년 08월 29일 04: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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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오슬로의 날씨는 놀랍도록 좋습니다. 약 25도의 온도, 햇빛이 가득한 누리, 평화롭게 뭔가를 속삭이는 푸른 나무들… 북방에서 흔치 않은 기회인지라 드러낼 것을 다 드러내고 최소한의 옷을 입고 다니는 어른들, 밝게 웃는 아이들… 낙원을 찾으려면 아마도 이런 날에 낙원의 그림자쯤을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 1914년 6월 28일의 유럽 날씨도 이 정도로 좋았을까요? 히로시마와 아우슈비츠의 세기가 시작된 그 날에 말입니다. 딱 99년 전에 그 화사한 여름 날을 즐겼던 파리나 백림의 시민들은, 불과 1-2년 후의 그들의 운명을 예감했을까요?

    하기야, 제가 지금 여유만만하게 이런 역사 사색에 빠지는 것도 그저 있는 자의 오만일 것입니다. 아직도 평화의 유령이라도 붙잡을 수 있는, 여유 있는 자의 거만한 마음. 미국 폭탄과 미사일이 꼭 떨어질 다마스크의 주민들에게는 역사의 비극들에 대한 생각할 여유는 없을 것입니다.

    미국이 이웃나라 이라크에서 벌인 침략의 결과로 죽은 생명들은 적게는 60만 명, 많게는 약 1백4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과연 시리아를 기다리는 도살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요? 이미 서방세력들에 의해서 열심히 부추겨지는 내전으로 인해 거의 10만 명을 잃은, 피를 흘리는 나라에서 말입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1914년 6월 28일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의 왕태자를 암살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의 “방아쇠”를 댕긴 세르비아의 청년 열혈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1918년에 한 감옥 부속 병원에서 죽어 갈 때 그 담당의가 그에게 묻기를, 수백만 명의 도살로 이어진 그 운명의 암살에 대해 후회하지 않느냐고.

    거기에 대해 프린치프가 왈 “그게 무슨 대수이었습니까? 제가 쏜 총탄이 아니더라도 독일인들은 전쟁 발발의 다른 빌미를 찾아냈겠죠”.

    실패한 모험주의자의 궁색한 자기변명?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한 번 그 당시의 독일 신문들을 다시 읽어보시죠. 예컨대 <굘니세 차이퉁>, 1914년 2월 24일: “러시아는 아직도 무기를 통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지만, 2-3년 후에 달라질 듯 한다. 반독일 군사동맹의 대가로 프랑스로부터 받은 차관 등에 힘입어 저들은 1917년 가을쯤에 무력을 통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할 전망이다”.

    아니면 나중에 와서 알게 된 그 당시 독일 정책 담당자들의 발언을 종합해보시죠. 1914년 5월 19일, 독일 참모총장 몰트케가 독일 외상 야고브에게 왈: “대러 개전의 연기는 우리 승산을 꺾는다. 선제공격 이외의 길은 없다. 조기 개전을 위해 정책을 취하도록 노력하자”.

    물론 궁극적인 전쟁에 준비하고 있는 것은 러-불-영도 딱 마찬가지이었는데, 그들의 입장은 – 독일 정보기관이 맞게 파악한 대로 – 러시아의 병력 소송용 철도 부설 계획이 완비될 1917년쯤에 개전할 여건이 되면 개전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양쪽에서 대대적인 살육이 준비되어 갔는데, 프린치프의 총탄은 그저 부수적인 역할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의 시리아 대통령 아사드의 “화학무기 이용설”도 딱 마찬가지입니다. 유엔 시찰단이 불과 15킬로 거리의 지점에 있을 때에, 그렇지 않아도 내전에서 이기고 있는 정부군이 화학무기 사용이라는 무리수를 두었다는 이야기는, 아마도 – 2003년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보유설”과 마찬가지로 – 그저 설화(?)에 불과합니다.

    시리아 내전의 황폐한 모습

    시리아 내전의 황폐한 모습

    화학무기가 사용됐다 해도 그 주체는 얼마든지 반대편, 즉 극우 종교근본주의적 반군일 수도 있고, 어쩌면 미국/서방의 사주를 받은 세력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상당한 시일이 지나서야 우리가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화학 무기가 있었는가, 없었는가, 누가 쐈는가는, 여기에서 그저 부수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중국의 군 현대화 프로젝트가 완성을 보기 전에, 러시아-중국-이란 등이 보다 강력한 단결체를 이루기 전에 미국이 이란의 동맹국이며 친러시아 성향의 시리아 정권을 미사일 공격을 통해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려고 하는 것일 뿐입니다.

    시리아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희생되는 일 외에 이 같은 대대적인 전쟁을 향한 포석은 과연 무슨 결과를 가져올까요?

    장기적으로는 미-영(제한적으로는 佛)의 대러, 대중 대립의 첨예화일 것이고, 단기적으로는 이란까지 가세해 중동을 휩쓸고 있는 전쟁이 보다 더 끔찍한 모습으로 확대될 셈입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국 대통령이 결국 중동에서 영구적인 전쟁 하나 키워냄으로서 세계평화사업에 공헌하는 셈인데, 정말 슬픈 아이러니 치고도 좀 심하네요. 물론 마찬가지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럽연합의 핵심 국가들의 친절한 도움을 받아서 말입니다.

    미-영이 정말 시리아를 공격할는지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 미지수입니다. 저는 그래도 전쟁세력의 괴수들이 마지막 순간에라도 정신을 차리고 궁극적으로 자기 파멸로 돌아올 이 망동을 멈출 것을, 그래도 믿고 싶기도 합니다. 소망적 사고일 것입니다만요.

    금번의 시리아 공격 망동은 어쩌면 중지될는지도 모르지만, 중동 유전지대의 완전한 장악을 위해 이란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그 정권과 연계된 일체 반미, 저항 세력들을 소탕(?)하려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거시적 정책은 크게 바뀔 것 같지 않고, 그런 정책이 실시되는 이상 아주 큰 전쟁의 가능성은 늘 상당히 있습니다.

    아, 우리는 지난 한 세기 동안의 모든 비극들을 다 봤으면서도 다시 한 번 순한 소처럼 전범들이 운영하는 도살장에 끌려갈 것인가요?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는 반전 저항은 의무입니다. 세계 자원 나누어먹기의 다른 이름인 “안보” 논리의 허위성, “군대”라는 조직의 본질적인 범죄적 성격에 대한 대대적 계몽부터 반전집회, 대대적 징집, 군사훈련 거부까지는 이제 좌파의 주요 과제가 돼야 할 셈입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새로운 대규모의 도살이 시작된다면… 1914년 8월부터 레닌이 줄기차게 주장한 논리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도살장에 끌려오게 되면 우리로서의 유일한 탈출구는 그 도살장을 부수고, 도살업자들이 그 폐허 속에 묻히게끔 하는 것이죠.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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