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의 스무살은 찌질하다
    [기승전병의 맛] 박수봉 작가의 '수업시간 그녀'
        2013년 08월 23일 12:55 오후

    Print Friendly

    남자의 스무살은 찌질하다. 대체로 그렇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그 나이 남자는 대체로 연애 경험이 거의 없다. 내가 좋아하는 그 여자가 어떤 마음인지 좀처럼 알기 힘들다.

    내 마음 가는 대로 잘해주려고 하지만 어느새 다른 남자(어쩌면 복학생 선배)와 사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다른 남자를 사귀지 않더라도 점점 불안해지는 마음이 커지고 그러면 이 스무살 남자는 더 찌질해진다. 그렇게 좋아하는 여자에게 이상한 행동을 하고 나서 후회한다. 결국 첫사랑은 첫사랑으로 남는다.

    지난해 <건축학개론>을 보고 나와서 첫사랑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첫사랑이란 건 없었으니까. 대신 찌질했던 스무살의 기억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진 않았지만 얕은 연애의 감정에 오락가락하던 시절. 도대체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르던 시절. 누군가의 시답잖은 조언조차 한줄기 빛처럼 느껴지고 그 조언은 결국 악영향을 끼치고 말던 그 시절이 떠올라 괴로웠다. 게다가 돈도 없었다.

    이런 남자들의 스무살에 대한 웹툰이 있다. 네이버에서 연재하는 박수봉 작가의 <수업시간 그녀>다.

    제목에서부터 이미 어떤 이야기인지 대략 짐작가능하다. 주인공 남자는 우연히 같이 수업을 듣게 된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된다. 짝사랑이다. 같은 발표조가 되면서 둘은 연락처도 주고받고 영화도 보고 데이트 비슷한 것을 한다. 남자의 감정은 커지고 여자의 감정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는 또 다른 여자가 존재한다.

    <수업시간 그녀>에는 보편적인 남자들의 겪는 스무살의 연애와 사랑의 시행착오가 총망라되어 있다. 친구, 선배의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 혼자만의 착각, 가까운 사람의 감정을 알지 못하는 실수, 가난한 대학생의 험난한 데이트 등등.

    어쩌면 식상해보이기도 하는 그저 그런 연애물 같기도 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아련한 스무살의 기억이 있는 어른 남자에게 이 웹툰은 그때 그 감정을 순식간에 되살리는 기폭제가 된다. 남자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찌질한 것 같다.

    <수업시간 그녀>가 서른 중반의 아저씨를 그때 그 시절로 단박에 돌아가게 만들어주는 장치는 ‘만화적 연출’이다.

    신두영

    사실 이 웹툰은 흰 바탕에 검정색 펜으로 슥슥 그린, 언뜻 보면 대충 그린 만화다. 당연히 배경도 없다. 심지어는 작가는 캐릭터에 눈도 그리지 않았다. 보통 만화에서 캐릭터의 감정은 눈으로 표현된다. 눈이 커지면 놀라움, 눈꼬리가 올라가면 화남, 내려가면 슬픔을 표현하게 되어 있다.

    쉽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눈 대신 작가가 선택한 것이 연출이다. 남자와 여자가 영화를 함께 보는 11화를 보면 미묘한 연애의 감정을 표현하는 작가의 뛰어난 연출력을 느낄 수 있다. 대사도 거의 없는 이 에피소드에서 작가는 그림만으로 남자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민망함, 뻘쭘함, 어색함, 당황스러움, 후회, 슬픔까지. 연애에 눈이 먼 남자의 감정은 거칠지만 섬세한 그림을 통해 표현된다.

    높은 곳에서 내려 보는 부감, 클로즈업 등 인물을 바라보는 다채로운 시선과 비를 화살로 표현하는 만화적 장치를 통해 작가는 이 에피소드를 영화에서 회상신이나 시간의 흐름을 빠르게 보여줄 때 사용하는 몽타주 기법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대사를 덜어내고 감정표현을 줄이면서 오히려 독자에게 감정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이렇게 뛰어난 연출로 <수업시간 그녀>에게 시선을 뺏겼다면 그 다음에는 각 인물들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마력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그렇다. 이 웹툰에는 삼각관계가 등장한다. 알 수 없는 ‘수업시간 그녀’, 그 여자를 짝사랑하는 남자, 그 남자를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고 있는 여자. 남자는 다른 여자를 좋아하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친구에게도 친절하다. 자신이 느끼지 못하게 자신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친구를 챙겨주고 있다.

    각자의 상대에 대한 감정은 점점 커지기만 이 관계의 정점에 있는 ‘수업시간 그녀’는 정체를 알 수 없다. 이 남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심지어 그 여자는 안경을 쓰고 있다. 꽁꽁 감추어진 그녀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이 웹툰은 절정에 가까워질 것이다. 여기에 최근 업데이트된 14화에선 ‘수업시간 그녀’와 만나는 또 다른 남자의 등장마저 예고되어 있다.

    스무살의 찌질함. 그 여운이 <수업시간 그녀>에 있다. 이 답답한 남자 주인공을 보고 있자면 지금이라도 당장 만화 속으로 뛰어 들어가 진짜 쓸모 있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이 바보야, 네 옆에 그 친구가 널 좋아한다고, 친구의 엉뚱한 조언은 무시하라고, 데이트 할 때는 미리 준비를 했었어야지, 너무 성급해하지 말라고, 제발. 심지어 돈을 꿔주고 싶은 마음까지 생긴다.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왜 그때 우리가 스무살이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는지.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찌질한 스무살의 남자는 <수업시간 그녀>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필자소개
    '전설'의 만화 잡지 [팝툰] 기자로 일했다. 어쩌다 보니 지금은 영화 잡지 [씨네21]의 편집 기자로 일하고 있다. [레디앙] 모 기자의 열렬한 팬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