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점상,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아
    [끝나고 쓰는 노점일기–1] 잉어빵 장사를 시작하면서
        2013년 08월 22일 05: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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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반빈곤운동, 노점조직, 진보정당 등에서 적지 않은 활동을 하며 살았던 유의선씨가 작년 본격적인 노점을 시작했다. 잉어빵 장사에서 핸드폰 악세사리 판매 등 1년여의 노점 생활을 하면서 느끼고 부딪혔던 시간들과 경험과 고민들, 먹고 살기 위해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래서 연재 제목이 ‘끝나고 쓰는 노점일기’이다. 노점상의 삶도 우리 주변의 이웃들, 바로 우리들의 삶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내용들을 재구성하고 보완하여 연재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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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점만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노점조직을 거쳐 간 수많은 활동가들이 한번쯤은 생각했고 또 시도했지만 99%가 실패했던 노점. 노점은 그 자체로 삶이고 생활의 문제였기에 다른 일과 병행하기 어려운 까닭이었다. 나는 2012년 2월 3일 노점을 시작했다. 도망갈 곳을 만들지 않고 여기서 살아남겠다고 노점을 시작한 지 1년. 나는 노점상으로 살아남지 못했고, 이 일기는 노점상으로 살았던 날들의 일부 기록이다.

    노점은 경우에 따라 불법일 수 있다.

    노점 시작하는 날, 겨울치고는 날씨가 좋다.

    시흥사거리. 도움을 주러 온 분들과 ‘유동인구가 많아 대박 나겠다.’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마차를 기다렸다. 트럭이 도착하고 주홍색 마차가 내려지고 있는데 바로 경찰차가 온다. 그리고 5분도 되지 않아 구청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아줌맛! 여기서 장사하면 안돼! 당장 치워요!!”

    구청 직원들은 자리도 잡지 못한 마차의 천막을 냅다 뜯으며 당장 치우지 않으면 실어가겠단다. 나는 마차에 매달리고 지역장님과 도와주러 온 몇몇 분들은 구청 직원과 말싸움 몸싸움을 하며 한참 실랑이를 했다.

    1차는 격양된 말싸움과 약간의 몸싸움. 2차는 조금 더 격렬한 몸싸움. 3차는 협상 시도. 4차는 잠시 휴전. 5차는 1시간 내에 치우라는 경고와 구청의 퇴장. 6차는 마차를 실어갈 트럭과 함께 구청단속반 재등장과 몸싸움. 7차는 설득과 협박이 뒤섞인 일장연설…

    7차쯤이 되니 구청 직원이 말한다. “신규 노점은 무조건 안된다”

    기존에 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으나 새로 들어오는 노점은 절대,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노점이 불법이어서가 아니라 신규여서 안 되는 것이다.

    구청의 노점은 신규와 기존으로 나누어진다. 이미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고 있으면 기존의 노점이고 새로이 진입하려는 노점은 신규이다. 구청의 입장에서 보면 기존 노점은 단속이 어려운 반면 신규의 경우 적극적 단속의 대상이 된다.

    대다수 지자체의 노점 방침이 ‘신규 노점의 진입은 절대불가, 기존 노점은 점진적으로 감축한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단속 실적을 올려주는 것이 바로 신규 노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변 상가에서도 신규 노점이 반가울 리 없다. 품목이 겹쳐서가 아니다. 일단 먹거리이면 다른 품목이라도 내 장사에 영향을 줄 거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일단 싫다. 신규노점에 대해서는 주변 상가에서도 적극적으로 민원을 넣는다.

    기존 노점은 신규 노점을 제일 싫어한다. 일단 신규는 단속의 표적이기 때문에 기존 노점도 덩달아 단속을 받는다는 것, 노점이 늘어나서 본인의 노점에 좋을 게 없다는 것 등이 이유이다.

    나는 절대금지구역에 겁도 없이 마차를 내려놓은 신규 노점이었다.

    나름 벼랑 끝에서 단단한 각오로 먹고 살겠다고 한 발을 디딘 신규노점상에게 거리는 차갑고 매몰차고 폭력적인 곳이었다.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전노련 등 노점조직에 가입하면 자리 잡는데 조직이 함께 싸워주지 않겠느냐는. 그러나 노점조직은 이미 자리를 잡은 노점상을 회원으로 받을 뿐 자리 잡는 과정을 함께 해 주지는 않는다. 일단 마차에 쇠사슬을 매고 버티든 마차를 붙잡고 밤을 새우든 자신의 마차와 자리를 지키고 살아남아야 회원도 될 수 있다.

    나는 그나마 노점조직과의 인연으로 몇몇 분들이 도움을 주셨지만 ‘기존 노점’에 있는 그분들에게도 ‘신규 노점’은 우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서로를 길들여 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짧은 겨울 해가 넘어갈 때까지의 긴 싸움에서 구청 직원의 ‘신규여서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몸싸움보다 말싸움이 힘들어졌다.

    내 입에서 “저들은 되는데, 왜 나는 안 되냐”라는 말이 나올까봐.

    “나를 단속하려면 다른 노점도 단속해라”는 의미로 들릴까봐.

    아줌마

    나는 학생운동시절 ‘아줌마’라고 불렸다. 함께 했던 그룹에서 왕고이기도 했고, 가명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워 후배들이 붙여준 애칭이었다. 누구나 나를 ‘아줌마’라고 불렀고, 나는 스물여섯 꽃다운 나이에 시장에서 ‘아줌마!’하고 부르면 냅다 쳐다볼 정도로 그 명칭이 익숙했다.

    “아줌마! 마차 치워!” “아줌마! 안된다니까!” “아줌마! 왜이래!”

    “아줌마!” “아줌마!” “아줌마!” “아줌마!”….

    노점 첫날 단속반원이 끊임없이 불러대는 아줌마 소리가 긴박했던 상황에서도 왜그리 거슬리던지.

    구청주임이 퇴근시간 무렵 “아줌마! 오늘 무조건 치워요”라며 가려는데, 내가 대뜸 말했다. “저, 아줌마 아니거든요!!”

    구청주임이 차를 타려다가 나를 돌아본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 정도의 반응이었던 것 같다.

    아… 맙소사. 마흔 넘은 내가 아줌마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진보신당 서울시당 위원장에 당선되고 한 달이 되도록 ‘위원장’ 소리가 익숙하지 않아 불러도 쳐다보지 않으며 어색해 했던 나. 고작 1년도 안되게 ‘위원장’ 소리를 듣고 살았다고 ‘아줌마’ 소리에 심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한 평 안 되는 삶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만큼 한 숨도 안 될 과거의 지위를 내려놓는 것도 어려운 일일까.

    붕어빵 (1)

    잉어빵과 붕어빵은 다르다.

    구청직원들이 떠나니 해가 뉘엿. 마차를 펴고 첫 장사를 시작했다. 보다 정확한 표현은 잉어빵 굽는 법을 배웠다.

    누구나 별 자본 없이 시작할 수 있는 노점이 잉어빵(붕어빵)이다.

    재료상에서 잉어빵 장사를 하겠다고 하면 마차와 천막, 잉어빵 틀과 현수막을 무료로 제공한다. 반죽과 팥 이외에 종이봉투와 비닐봉투, 주전자와 틀 뒤집는 꼬챙이 정도를 재료상에서 일괄 구매하면 된다. 별도로 준비해야 하는 것은 가스와 전등을 켤 배터리 정도이다. 총 23만원 정도가 들었다. 물론 잉어빵 장사를 마치면 재료상에 마차와 장비는 반납해야 한다.

    잉어빵은 불 조절이 제일 중요하다. 적당히 달궈진 틀에 처음에는 마가린으로 기름을 먹이고 닦아낸다. 반죽만 조금씩 부어 익히고 익은 반죽들은 버린다. 틀을 청소하고 열을 고르게 들게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까지는 장사 시작할 때 한번 하면 된다.

    그 다음에 1번 틀부터 반죽을 반 붓고 팥을 올리고 다시 반죽 붓고 뚜껑을 덮어 뒤집는다. 팥을 머리부터 꼬리까지 꽉 차게 넣는 것이 포인트. 이렇게 절반 정도가 돌면 처음 반죽 넣은 1번 틀을 다시 뒤집어 준다. 첫 반죽틀이 한 바퀴 돌아오면 꺼내면 된다. 잉어모양 주변의 반죽은 꼬챙이로 긁어내서 진열한다. 나는 역시 음식쪽에는 소질이 있나보다. 제법 그럴싸하다.

    잉어빵의 소는 팥과 슈크림 두 가지이다. 팥은 주걱과 꼬챙이로 떼어내고 슈크림은 튜브로 짜서 넣으면 된다. 팥이 든 잉어빵은 통통하고 팥이 보일 듯이 진하게 익고, 슈크림 잉어빵은 얄팍하고 노란빛이 감돈다.

    잉어빵과 붕어빵의 차이는 크기의 차이가 아니다. 반죽에 찹쌀가루가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 팥 반죽에 팥알갱이가 들었는지의 여부라고 일반적으로 얘기한다. 결론적으로는 가격의 차이지만. 잉어빵은 세 개에 천원. 붕어빵은 일곱 개에 천원.

    나는 노점을 시작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잉어빵과 붕어빵의 차이만큼이라도 달라질 수 있을까.

    필자소개
    전직 잉어빵 노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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