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낡은 관행과의 전투
    [진보정치 현장]노조, 지자체 보조금이나 위탁 받지 말아야
        2013년 08월 21일 09: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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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구미 한국노총과 전투 같잖은 전투가 있었다. 한국노총으로 지급되는 외유 및 행사성 보조금이 문제가 된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작년 말 예산심사에서는 일부 전액삭감, 일부 전액통과로 결정이 났는데, 삭감된 내역이 6월 추가경정예산안에 똑같이 올라온 것이다.

    그동안 예산을 삭감하고 넘어가던 것을 이제는 그대로 둘 수 없다고 판단했고, ‘어용 관변’ 노조와의 일전을 선포했다. ‘

    어용’이라는 표현에 항의한답시고 구미 한국노총이 의회에 떼로 몰려온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나는 더 과감히 ‘양아치’라고 규정했다. 그들의 아우성이 더 커졌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들은 ‘양아치’가 맞고, 그것도 정면대결은 하지 못하는 양아치들이다.

    한국노총이 의회를 항의 방문한 것은 예결특위가 열리던 시기로, 나는 특위 위원이 아니라서 의회에 있지도 않았다. 그들이 그걸 몰랐을 리 없다. 나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항의방문을 할 거면 나를 찾아오라고 했다.

    구미 한국노총 사무처장이라는 자가 찾아오겠다며 전화가 왔다. 나는 의회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그러더니 그는 얼마 후 “부친이 쓰러지셔서 고향으로 가는 중”이란다. 나는 “나머지 분들이라도 오시라. 기다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작년 말 본예산 심사 당시 “일부라도 예산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다시피했던 친-한국노총 의원들은 낯빛을 싹 바꾸어 예결특위에서 한국노총 관련 예산 전액의 통과를 시도했고, 당시 특위 위원들의 성향과 구도상 결국 그들의 뜻대로 되었다.

    예산이 예결특위를 통과하자 나의 공격은 한층 강해졌다. 페이스북으로 그들이 ‘양아치가 맞다’라는 걸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그들은 회기 마지막 날 또다시 의회 앞에서 집회를 갖겠다고 했다.

    나는 ‘사이비 노조 해체하라’는 피켓을 만들고, 본회의에서 예산 통과를 성토하며 한국노총을 방청석에 앉혀 놓은 채로 개망신을 주기로 했다. 그들이 그런 광경을 예상 못했을까. 엄포만 놓고 빠지는 게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일 아침 의장이 중재를 명목으로 한국노총 구미 사무실을 방문했다. 나는 의장을 수행하던 의회사무국장에게 경고했다. “뭐하는 짓입니까. 돌아오십시오.”

    의장의 방문을 핑계로 구미 한국노총은 비실비실 집회를 취소했다. 어떤 지역신문의 기사에는 ‘의장이 김수민 의원 대신 사과했고 한노총은 두고 보겠다고 했다’는 식으로 기사가 떴다. (이 신문은 한국노총 행사 때 광고를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반면, 어떤 지역언론은 그날 본회의장에서 내가 한국노총을 규탄한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툭하면 기자한테 전화를 걸어 의회 비판 기사를 내리게 하는 의회사무국은 그런 기사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한국노총이 적당히 치고 빠지기 위해 만들어진 각본의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구미 한국노총에 대한 지역사회의 인식은, 간단히 말하면 ‘한국노총 빼고는 다들 한국노총 다 싫어한다.’ 그들 사업에 관한 제보가 잇따랐다. 나는 참고자료로 구미 한국노총 보조금 사용내역을 요구했다. 그 순간 국면이 바뀌었다. 담당 국장이 ‘가장 문제가 되는 해외관광 예산을 한노총이 반납하도록 주선해 보겠다. 자료 요청을 철회할 수 없느냐’고 간청했다.

    한국노총 경북지부 의장이 찾아와 “내가 구미지부 집행부를 총사퇴시키겠다. 이쯤에서 접어달라.”고 제의하기도 했다. 그는 10월에 구미갑에서 있을지도 모르는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으려는 사람이었다. 나는 모두 거절하고 이런저런 신경전을 거치며 자료들을 건네 받았다.

    ‘김수민 의원이 한국노총 약점을 쥐고 있다’는 식으로 와전되었지만, 나는 그 자료에서 직접적으로 칠 수 있는 타겟이 뜰 거라고 짐작하지는 않았다. 만에 하나 회계 부정이 있었더라도 조작되었을 것이 뻔하지 않은가. 나는 내가 들은 제보들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혹시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확보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자료들은 2010년까지는 보조사업평가위원회의 위원들이 모두 받던 수준의 자료였다. 그 이후로는 자료집 두께를 줄인다는 이유로 영수증이 죄다 생략되었다. 나머지 공부를 한다는 심정으로 받았다.

    구미

    구미 한국노총과의 갈등과 전투

    그렇다면 구미 한국노총은 무슨 사업을 하며 시 보조금을 타길래 문제가 되고 있는 걸까? 위에서 기술했듯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해외관광이다. 베트남이나 중국, 필리핀으로 ‘노사민정 벤치마킹’을 떠나는데, 그 나라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우는지 기가 찰 따름이다.

    2010년의 경우 구미 한국노총은 스웨덴, 독일을 다녀오겠다며 시로부터 1억을 지원 받고 4천만원을 자부담하기로 했다. 허나 이들은 행선지를 중국, 베트남으로 변경한 채 시 보조금은 줄이지 않고 자부담만 4백만원으로 줄인다. 게다가 4백만원 중 40%는 구미에 돌아온 다음 지출된 부식비(한국노총 매판장에서 구입한 것이다), 선물용 술 세트 구입비다.

    2011년에는 나를 비롯한 의원들이 항의해 이를 전액 삭감했고, 2012년에는 의원간 논쟁 끝에 반액 삭감으로 타결한 사항이다. 2013년 본예산에서는 삭감되었으나 6월 추경예산에서 되살아났다.

    그외에도 정체 모를 워크숍이나 ‘근로자의 날’ 기념식, 연맹별 체육대회 등에 시의 예산이 지원되고 있다. 구미 한국노총은 시립 시설인 근로자문화센터의 운영 수탁자이기도 하다. 이 센터는 처음부터 ‘한국노총용’이라는 눈총을 받았다. 한국노총 내에 소재한 노동상담센터와 취업정보센터도 시의 예산 지원을 받고 있다. 물론 그나마 이것은 외유 및 행사성 예산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볼 수는 있다.

    (구미 한국노총이 구미시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수행하는 사업의 자세한 내용은 지역언론 <뉴스풀e>의 기사를 참고. 관련기사 링크)

    노동조합과 지방정부, 행정기관의 관계 고민해야

    그러나 노동조합이 외유 및 행사성 예산이든 그와 다른 종류의 예산이든 가장 자주적, 독립적이어야 할 조직이 시에게 지원을 받는 것이 올바른가?

    우선 구미시 예산편성지침에 따르면, 공직선거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단체는 시로부터 민간이전경비를 지원받을 수 없다. 한국노총에 대한 구미시의 보조금 지원은 예산편성지침 위반이다. 현 구미시장과 시의회의 몇몇 의원들이 구미 한국노총이 지지하는 후보였다. 예산 지원의 토양은 정치적 유착 관계다.

    구미 민주노총은 시로부터 보조금 지원을 받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민주노총 몇 군데는 예산편성지침 위반에서 자유롭지 않다. 경남 민주노총에서 경남비정규직지원센터의 수탁 여부를 두고 격론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는 단순히 예산편성지침의 준수와 관련된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의 자주성이 핵심이다.

    나는 서울시로부터 노동복지센터나 비정규직지원센터의 운영을 민주노총이나 민주적 노동운동을 하는 단체가 위탁받는 것을 반대한다. 이 사업을 구미 한국노총의 외유 및 행사 따위에 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좋은 사업은 위탁받아도 되고, 나쁜 사업은 받지 않는다.’라는 방침은 적절하지 않다. 행정이 해야 할 일과 민간 노동조합이 해야 할 일은 구분되어야 한다.

    구미 근로자문화센터를 맡은 구미 한국노총은 자기네 산하 공공부문 노조의 사업에서 손을 떼는 분위기다. 한국노총 계열인 구미시청 환경미화원 노동조합이 외주화 반대 운동을 할 때도, 그들의 상급단체보다는 한국노총과 반목해온 내가 훨씬 더 적극적으로 결합했다.

    민주노총은 위탁사업을 해도 이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호언장담이 있을지 모르지만, 언제나 반대급부라는 것이 있다. 시의 지원을 받으며 노조의 자주성이 약해질 가능성은 민주노총이라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노총과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는 지난해 가을 ‘구미시 비정규직 권리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대표발의할 때, 시 산하에 비정규직지원센터를 둘 경우 구미시가 직접 운영하도록 못박아두었다. 한국노총으로 운영권이 넘어가는 사태를 방지할 목적이기도 했지만, 노동조합으로 시의 센터를 위탁 운영할 동력이 있다면 그 힘으로 철저히 자주적으로 사업을 하는 게 옳다고 봤다.

    행정기관이 공공의 인력과 얼마간의 계약직 전문가 인력으로, 법적으로 이미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부터 초보적인 사업을 수행하는 동안, 민주노총은 행정이 할 수 없는 일이나 하지 못하는 일 그리고 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고유의 조직화 사업을 해야 한다.

    조직화 사업을 위탁받은 시설에서 수행하겠다는 것은 꿈 같은 이야기거나 염치 없는 소리다.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노동 관련 센터 수탁을 찬성하는 이들은 ‘시장이 바뀌어도 사업을 지속하려면 우리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공공 기관에서 조직화 사업을 하다가는, 반노동적인 쪽으로 지방정권이 교체되고 위탁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즉시 수탁자가 바뀌기 마련이다. 누가 서울시장이 되든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면, 더더욱 자주적으로 민주노총의 안이나 곁에 센터를 설립해야 한다. 거기서 자유롭게 활동해야 한다.

    예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은 친자본 노동조합 CTV의 위원장을 두고 국민투표를 통해 신임을 물어 퇴진시켰다. 이 황당무계한 사건은 단지 차베스 정권의 엉뚱함 내지 ‘똘끼’ 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해당 노조가 이전 정권 시절 국가에 결탁해온 것에 대해 대가를 치른 셈이다.

    조돈문 교수가 근래 낸 <베네수엘라의 실험-차베스 정권과 변혁의 정치>에 따르면, 차베스 정권 이후 베네수엘라의 민주적 노동조합은 친차베스파와 계급주의파로 나뉘어졌다고 한다. 후자는 정권에 대해서도 긴장을 유지하는 반면, 전자는 친노동 정권이라는 이유로 정권에 계속 결탁했다. 만일 언젠가 정권이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CTV처럼 말이다.

    구미 한국노총의 행태는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전국의 민주노조들 역시 지자체와의 관계를 되돌아 보았으면 한다.

    울산북구 등 몇군데에서 공립 비정규직지원센터를 민주노총이 운영하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운영은 과도기라고 생각하고, (지자체 예산이 민간으로 이전되는 것에서 역으로) 민간에서 일단 맡아서 운영하던 것을 행정으로 어떻게 넘겨줄 것인지를, 그리고 행정이 하지 못하는 일을 노조 스스로 어떻게 자주적으로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혹시나 민주노총이 행사성 예산을 지자체로부터 받은 곳이 있다면, 당장 그만두시라. 친-한국노총 의원들은 한국노총 예산에 화를 내는 내게 “그럼 민주노총도 끼워서 사업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나는 항상 잘라 말했다. 내가 민주노총 조합원임을 확인하고 “민주노총이라서 우리 예산에 시비 건다”고 몰아가려 목소리에 화색이 돈 어떤 한국노총 간부에 대해서도 나는 찬물을 끼얹었다.

    “구미 한국노총의 행태는 한국노총이 해서 문제인 게 아니라, 그런 짓을 하니 한국노총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구미 한국노총처럼 예산을 지원 받고, 더더군다나 구미 한국노총처럼 외유성, 행사성 사업을 한다면, 내가 먼저 가서 민주노총을 박살내 버릴 것이다.”

    필자소개
    전 구미시의원. 스스로를 정당인보다는 사회운동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녹색당 소속. kimsoomi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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