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직들의 노조 가입을 막아라?
        2013년 08월 20일 06: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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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오후다. 오늘도 밖은 엄청 덥다. 거실에 에어컨을 켜놓고, 방마다 선풍기를 켰다. 며칠동안 미뤄왔던 ‘숙제’를 하기 위해 컴퓨터를 켠다. 몇 일전, 일반직 지회를 추진하시는 분들과 한 잔 하면서 “회사 논리에 대한 우리 입장을 제가 정리해 보지요” 이 한마디가 숙제가 되었다.

    현대자동차 회사측은 지난 여름 휴가 시 현대자동차지부(노조)의 임시대의원대회를 앞두고 관리직 간부들을 동원하여 노조 대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소위 ‘선무작업’ 지시를 내렸다.

    발각된(제보된) 회사 자료에 따르면 대의원대회에 대응하기 위해 현장 여론을 어떤 식으로 몰아가야 한다는 구체적인 내용과 함께 최근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현대자동차 일반직지회(과장급이상 관리직 노조)에 대한 집중 공략 방법을 담고 있다.

    이는 명백하게 회사측이 현대자동차지부(노조)의 운영에 ‘지배’하거나 ‘개입’한 증거인 것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부당노동행위) 4항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따라서 현대자동차 사용자는 동법 벌칙조항 <제81조의 규정에 위반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에 따라서 사법처리 될 것이다. 이미 현대자동차지부에서 금속노조 법율원과 법정대응 추진중이다.

    여기서는 회사 측의 문건 중 일반직지회에 대한 ‘선무작업’ 지침에 대해서 우리(노동자)의 시각으로 반박을 해 본다.

    자료에는 “일부 대의원의 관리직 단체에 대한 반감을 적극 자극하여 규약개정 2/3가 되지 않도록 선무”라는 구체적인 목적을 명기해 놓고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제공하고 있다.

    일반직

    일반직 지회에 대한 현대차 사측의 선무작업용 문서

    (1) 관리직의 이기심 : “일반직 지회를 추진하고 있는 주요 인자들은 정년을 1~2년 정도 남겨놓은 자로서 자신들의 정년연장과 PIP교육에 직면하자 자신들의 기득권 보장 등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노조 설립을 하려고 한다”

    반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살펴봐도 <“노동조합”이라 함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인 것이다.

    따라서 개별근로자는 자신들의 근로조건을 유지-향상시키고, 고용안정을 확보할 목적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이다. 지금 현대자동차 관리직 노동자들은 ‘간부사원취업규칙’에 묶여 현대자동차지부 조합원들의 권익(단체협약)과 비교할 때 정년도 2년이나 빠르고, 년월차 휴가제도에서 불이익을 받고, 상시적으로 비상동원 대상이 되었고, PIP교육이라는 퇴출 목적의 제도에 의해서 고용이 심각한 불안에 내몰려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불이익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으로 뭉치자고 하는 것은 당연한,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노동조합 조합원이 되는 순간 규약과 규정과 규칙을 준수할 의무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들의 이기심을 회사가 앞장서서 걱정(?)할 짓이 아닌 것이다.

    (2) 현자지부의 불법화 될 가능성 : “노조법상 불허된 인사, 노무담당자 또는 해고자가 조합원이 될 경우 현대자동차지부가 노조법을 위반하여 정권과 자본에 의해 불법단체가 될 가능성이 농후함”

    반박: 현대자동차지부가 바보가 아니니 이런 걱정(?)은 집어치우시라.

    전국금속노조는 규약 제2조(조직대상)에서 1. 조합활동과 관련하여 해고된 자 2. 조합에 임용된 자 3. 금속산업과 금속관련산업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 구직중인 실업자로 규정하고 있다.

    즉, 현대자동차지부가 소속된 금속노조는 산별노조로서 해고자는 물론이고 실업자까지도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노조다. 이미 그런 노동자도 가입되어 있다. 현대자동차지부(노조)의 역사상 매년 해고자가 없었던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노조가 해고자가 조합원 자격을 가졌다고 “불법단체”라는 시비를 받은적이 없다. 그리고 인사-노무를 현업으로 하는자를 노조원으로 받아드릴 바보는 없다.

    (3) 신분보장 문제 : “PIP 대상자들은 모두 지부에 신분보장 요청을 할 것인데 10명만 발생한다 하더라도 지부가 10억원 이상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임”

    반박: 이건 머, 대놓고 PIP교육 대상자를 짜르겠다는 고백이구만. 나쁜 사람들.

    금속노조는 ‘신분보장심의위원회’라는 별도의 기구에서 조합원의 신분보장을 결정하고, 현대자동차지부의 경우 확대운영위원회와 대의원대회(해고,구속)에서 신분보장을 심의하고 결정한다. 신분보장 심의기구에서 명백하게 노조활동으로 인한 노동탄압에 따른 해고임이 밝혀진다면 100억이 들어가도 신분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고되기 전에 회사측을 상대로 투쟁해서 PIP퇴출 프로그램과 부당한 해고를 사전에 차단하는 게 노동조합의 우선 임무인 것이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단결하고 투쟁하는 조직이 노동조합인 것이다.

    (4) “노조 추진 세력 중 일부 관리자가 과거 구사대 역할을 수행했을을 적극적으로 전파하라”

    반박: 선량한 간부사원들의 양심마저 짖밟으며 구사대 역할을 누가 지시했는가? 구사대 역할을 지시하고, 통제하고, 감독했던 회사가 이제와서 그들의 등짝에 “저놈 구사대였다”고 대못을 박는다. 치졸하다.

    이미 일반직지회를 결성하려고 나선 관리직들이나 조합원 가입원서를 작성하는 관리직의 경우 이미 과거 반노조적인 행위에 가담한 부분을 ‘반성’하고, 앞으로 노동자의 입장에서 금속노조의 규약과 현대차지부의 규정과 규칙을 준수하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나선 사람들이다.

    회사는 쪽팔리게 과거 구사대 운영을 그따위식으로 까발리지 말고, 지금 이시간 “고과권”을 틀어쥐고, 연봉과 해고의 칼날을 들이밀면서 간부사원들의 영혼과 양심마져 짖밟으며 자행하고 있는 불법적인 ‘구사대’ 운영을 중단하라.

    (5) 노조 조직력 와해 가능성 : “관리직들을 무분별하게 노조원으로 인정한다면 사측에 의해 노조가 장악당하는 최악의 경우도 발생할 수 있음. 회사측 인물이 노조 간부로 진출해 각종 정보를 빼내 감. 회사의 입장에서 장기적으로 통제가 용이한 일반직 지회를 통해 현자지부에 간섭하고, 결국은 통제하게 될 것임”

    반박: 지금도 사측의 노조 활동에 대한 개입이 심각한 상황임. 회사측의 정보원(?) 비슷한 역할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노조 내 곳곳에 있음.

    4만 6천명 현대자동차지부에 몇 천명의 관리직들이 가입한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회사 통제하의 노조가 될 리가 없음. 만약 이렇게 될 수만 있다면 윤여철 부회장이 당장 그길을 택하지. 즉, 회사 중역들이 앞장서서 “관리직들 모조리 현대자동차지부에 조합원으로 가입해서 현대자동차지부를 회사 수하로 만들어라”이러고 다녀야지. 아니면 단체협약에서 부장급이하 관리직 조합원 가입을 바로 동의해 주던가.

    그런데 그렇게 안하고 반대로, 결사적으로 관리직들의 노조 가입을 막으려고 하는 회사측의 꼼수를 보면 그럴 리가 없를 꺼란걸 회사측이 먼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보 유출과 제공은 오히려 간부사원들이 대거 노조에 가입해서 조합원으로 활동한다면 회사측 정보가 훨씬 더 투명해지고, 불법 부당노동행위도 많이 근절될 것으로 보임. 노조만 불리한 게 아니란 이야기다.

    회사측의 ‘선무작업’이 얼마나 실효성있게 먹혔는지 모른다.

    최근에 후배 놈 중, 대의원하는 놈이랑 일반직지회와 관련해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형님, 그라머, 글마들 조합원되면 PIP해고자들 신분보장 그걸 우리가 다 해줘야 되능교? 열 명만되도 10억이 넘을낀데….”

    ‘햐, 요놈봐라’ 싶었다. 그래서 “어떤 놈하고 술 마셨노? 관리자가 그따위로 말하제? 너희 사업부 지원팀 과장하고 묵았나?”

    전쟁을 벌여도 상식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특히 노사관계에서.

     

    필자소개
    전 현대자동차노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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