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림, 만남, 공감 그리고 서울역
    [기고] 강정 사람들과 쌍용차 사람들...8월 24일 범국민대회
        2013년 08월 20일 01: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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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10시15분 제주행 비행기.

    여름 휴가철, 섬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한껏 멋을 낸 사람들이 들뜬 표정으로 올랐다. 여러 달을 머물 것도 아닐 터인데 여행 가방을 화물로 부치고도 배낭을 짊어진 사람, 손에 챙 넓은 모자와 선글라스를 든 사람, 먹거리를 잔뜩 들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경쾌한 발걸음은 내 발걸음을 더 무겁게 했다. 같은 장소에 있지만 나만 홀로 격리된 채 다른 공간에 있는 것처럼 이질감이 느껴졌다.

    ‘치유활동가’ 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장기투쟁으로 지친 사람들, 장기투병생활로 지친 이들을 적지 않게 만났지만 이번 제주 출장처럼 긴장되진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오직 ‘강정’의 활동가와 주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1년 여 전 강정 구럼비를 살리겠다고 무작정 비행기를 탔던 그 의욕의 ‘제주’는 아니었다. 이십 여 년 전 승마를 배우겠다고 무작정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그 설렘의 ‘제주’도 아니었다.

    90%가 기다림! 치유활동가로 일하며 얻은 몸의 기억이다.

    먼저 거칠고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얼굴을 익힌다. 그런 다음 주위를 맴 돌며 내 이야기를 하며 기다린다. 어느 순간 내 곁에 와 있는 사람들을 본다. 다가온 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터놓기 시작하고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닿는 순간이 온다.

    나의 치유활동 경험을 나누고 사람들의 상황에 맞는 프로그램을 당사자와 상담전문가와 논의를 거쳐 정한 뒤에야 드디어 본격적인 상담은 시작된다. 치유프로그램이 진행되기까지 짧게는 한두 시간, 길게는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 제주의 상황은 달랐다. 강정의 지친 활동가들에 대한 애정 어린 의견들이 물길마냥 밀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해군기지건설 현장에서 ‘춤’으로 대응하는 강정활동가들의 모습을 자주 보았고 나 자신 그 춤을 함께 추며 오히려 감동과 치유를 받은 경험이 있는 터였다.

    출장 전 통화했을 때 강정 주민의 “강정에 치유를 하러 오겠다는 이들이 수없이 많이 찾아 왔으나 진행이 안됐고, 주민들이나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너댓명 모이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는 말 또한 나를 위축시켰다.

    사실, 강정주민들에게, 그리고 삶의 터를 ‘강정’으로 옮겨 수년, 수개월을 활동한 분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 강정을 다녀간 후 짧은 경험을 상담사와 교감하기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방문에는 이례적으로 상담사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를 대동(?)하였다.

    비행기는 제주에 금세 도착했다. 지원군이 둘씩이나 있는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뜨거운 햇살이 온몸을 공격하는 공항을 정신없이 빠져나왔다. 강정으로 향하던 길에 제주에서 유명하다는 한치물회를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르게 먹어치웠다. 짧은 점심 후 잠시 바다가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웠다.

    언젠가 잡지에서 본 듯한 바다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서로에게 부딪혀 부드러워진 조개조각들이 하얗게 반짝이는 백사장에 발을 디뎠다. 흰 구름 아래 밝은 초록빛, 깊은 파란빛으로 아름답게 뒤섞인 바다다.

    제주에 왔으니 바닷물에 발은 담가보고 가자는 나의 말이 무색하게 쌍차 조합원은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상담사도 바다에 뛰어들었다. 나 혼자 주춤거리다 드디어 뛰.어.들.었.다. 아무 준비 없이. 몇 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바다는 내 근심과 걱정을 모두 삼켜버렸다.

    바다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 비로소 미소가 고개를 들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강정 또한 그냥 뛰어들면 될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걱정과는 달리 치유단 설명회에는 많은 분들이 참석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치유에는 별 관심이 없으나 4년 동안 투쟁해 온 ‘쌍차해고노동자’에게 관심이 있어서 참석한 분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참석하신 분들은 쌍차분들에게는 왠지 친밀감이 느껴진다는 말과 함께 강정 생명평화대행진에 함께 해준 쌍차해고노동자들에게 애정이 담긴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쌍차 조합원들이 강정에 자주 왔으면 좋겠다면서 자신들도 8월 24일 서울역에서 진행될 ‘쌍용차범국민대회’에 참가하겠다고 했다. 서울을 오가기에는 좀 멀지 않느냐는 말에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서울에서 강정도 오셨잖아요. 자주 와 주세요.”라고 답한다. 대한문에서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쌍차문제 해결을 위한 범국민대회 조직위원을 모집하고 트위터로 참여를 호소하던 내가 오히려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쌍차로 시작된 이야기는 자연스레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대화로 이어졌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주민 한 분이 치유단이 무엇을 하는 건지, ‘치유’를 체험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강정의 평화적, 예술적 분위기에 맞는 ‘춤 치유’로 의견이 모아졌고 “모르는 일이니 한번 해보자!”라는 주민들의 제안으로 그 다음날 춤을 매개로 자신과 소통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춤 치유를 살짝 맛 볼 수 있었다. 서로의 존재가 치유다. 마음이 만나는 것이 치유다.

    여러 해 동안 일터에서 삶의 터에서 쫓겨나 길 위에 머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안타깝지만 도울 방법을 모르겠다는 당신이라면, 쌍차 조합원이 온 몸을 바다에 던진 것처럼, 낯선 ‘치유’라는 행위를 그대로 받아준 강정사람들처럼, 당신도 그들의 ‘범국민대회’에 풍덩 빠져 우리의 ‘범국민대회’로 만드는 것은 어떤가.

    당신의 존재로, 당신의 마음으로 우리 서로를 치유하여 보듬어주는 것은 어떤가.

    그리하여 각자가 원하는 세상으로의 한걸음을 위해 하나, 하나 문제를 풀어가 보는 것은 어떤가.

    필자소개
    치유활동가(@kim71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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