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으로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2013년 08월 19일 09: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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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 작품이나 역사서는 인물과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이런 까닭에 문학 작품의 소재를 역사 현실에서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그렇고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가 그렇다. 그러나 역사 자체를 문학의 구조로 파악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러나 역사의 전개 과정도 이야기라는 일정한 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문학 작품의 구조를 이해하듯이 이해하면 역사를 더 잘 볼 수도 있다. 칼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19세기 중반의 프랑스 역사를 문학의 한 종류로 파악하고 있다. 그는 이 시기의 역사를 처음에는 비극이었지만 이 비극이 되풀이 되면서 희극이 된다고 한다.

    1848년의 2월 혁명에서 1851년 12월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까지의 약 4년 정도의 역사 과정을 다루는 이 책을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헤겔은 어디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笑劇)으로 끝난다는 사실 말이다(<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1장).

    문학에서 말하는 비극은 단지 슬픈 이야기를 뜻하지는 않는다. 비극은 영웅이 몰락하는 이야기이다. 반면 희극은 재미있는 인물과 사건을 보여줌으로써 웃음을 자아내며 이 웃음을 통하여 전체 사회가 다시 질서와 조화를 회복하는 이야기이다. 희극의 한 종류인 소극은 우스꽝스런 인물의 바보 같은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그런 인물을 통하여 관객들을 웃기는 이야기를 일컫는다.

    브뤼메르18일

    위 인용문에서 언급하는 역사의 반복은 1789년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 역사가 고대 로마 역사의 반복이라는 뜻이다. 왕정에서 공화정을 거쳐 제정으로 변화하였던 고대 로마의 역사는 프랑스의 역사에서도 반복된다. 왕정인 구체제가 1789년 대혁명으로 공화정(제1공화정)으로 변하였지만 이 공화정은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제정(제1제정)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 역사에서는 이 로마 역사의 반복이 한 번 더 되풀이 된다. 침략 전쟁으로 제국을 확대하던 나폴레옹은 연합국의 반격으로 패배하면서 몰락하고 프랑스에서는 다시 왕정(왕정복고)이 성립된다. 그러나 이 복고된 왕정은 1848년의 2월 혁명으로 다시 공화정(제2공화정)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이렇게 다시 시작된 공화정을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가 1851년 12월 쿠데타로 뒤엎고 다시 제정(제2제정) 체제를 만들어낸다.

    제1공화정을 쿠데타로 전복시켜 버린 삼촌과 같이 조카도 제2공화정을 쿠데타로 전복시켜버린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근대 역사는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말하는 역사의 반복이다.

    그러나 삼촌이 반복시키는 역사와 조카가 반복시키는 역사에는 차이가 있다. 삼촌인 나폴레옹이 프랑스 인민대중의 영웅이었으며 그런 영웅의 몰락이 비극적 결말을 갖는다면 삼촌의 이름으로 삼촌의 쿠데타를 반복한 루이 보나파르트의 민주공화체제 유린은 희극, 희극 중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자아내는 소극(笑劇)이라고 마르크스는 말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이 책에서 다루는 1848년 2월에서 1851년 12월까지의 기간에 일어났던 역사의 희극에서 바보의 배역은 부르주아 의회가 우선 맡는다.

    프랑스에서는 1848년 2월 혁명의 성과로 모든 성인 남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보통선거제가 1848년 6월 도입되었었다. 그러나 1849년 4월 보궐선거에서 노동계급이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이자 봉건 지주, 산업 부르주아지, 금융 부르주아지 등으로 구성된 의회는 1849년 5월에 보통선거제를 폐지하여 버린다.

    당시 프랑스의 선거법에서 대통령은 200만 표 이상을 획득해야 했고 이에 미달하면 의회가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되어 있었다. 의회의 보통선거제 폐지는 유권자 수를 줄임으로써 대통령 선거에서 200만 표 이상 득표자가 나오는 사람이 없게 하여 대통령 선출 권한을 의회가 가지려는 꼼수이기도 했다.

    이렇게 의회가 민주공화제의 기본 원칙을 유린하기 시작하자 한 해 전인 1848년 10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행정 권력을 장악한 루이 보나파르트는 인민 대중의 이름을 걸고 의회를 농락하기 시작한다. 당시 프랑스 헌법은 대통령의 연봉을 60만 프랑으로 정해 놓았었다.

    그러나 루이 보나파르트는 기밀비의 명목으로 연봉과 같은 60만 프랑을 의회로부터 얻어낸다. 60만 프랑을 큰 문제없이 얻어낼 수 있게 되자 이젠 300만 프랑의 연봉을 요구한다. 난색을 표하는 의회를 상대로 보나파르트는 보통선거제 폐지가 인민에 대한 범죄행위이며 이를 프랑스 인민 대중에게 폭로하겠다고 위협하여 300만 프랑에는 못 미치지만 원래 헌법이 정한 연봉의 네 배에 가까운 216만 프랑을 확보한다.

    더 나아가 보나파르트는 헌법상 단임제인 대통령제를 중임제로 개헌하라고 의회에 요구한다. 헌법 개정을 주저하는 의원들에게 보나파르트는 온갖 종류의 타협, 야합, 협박으로 구슬린다. 또 다른 한편 서로 다른 정치 세력으로 구성된 의회 내에서는 또 그들끼리의 복잡한 이해득실 계산으로 합의안을 만들어내지도 못한다.

    자기 밖에 모르는, 머리만 어두운 구멍에 숨기면 자신이 숨은 줄 아는 타조와 같은 바보이며 무능력자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의회라는 사실을 보나파르트는 조장하고 또 이를 대중에게 알리고 난 다음 1851년 12월 쿠데타로 의회를 해산해 버린다.

    이후 그는 대통령의 재임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한 다음 1852년 대통령에 당선되자 공화정을 폐지하고 제정을 선포한 다음 황제로 등극한다. 이 역사의 희극에서 연출자는 보나파르트이고 희극 배우는 의회이다.

    나폴레옹의 가면을 쓰고 역사의 희극을 연출한 보나파르트를 마르크스는 세계사를 희극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희극을 세계사로 파악한 인물이라고 비난한다.

    보나파르트에게 있어 희극은 세계를 이루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아니라 세계를 제물로 삼아 자신을 웃게 만드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보나파르트를 범죄자이고 사기꾼이라고 비난한다. 또한 마르크스는 그런 종류의 범죄자, 사기꾼, 협잡꾼, 부랑자, 거지, 소매치기, 노름꾼, 포주, 걸인 등의 룸펜프롤레타리아트 일당을 이끄는 깡패 두목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1848년에서 1851년 사이의 프랑스에서 있었던 정치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은 단지 지나간 또는 현재 진행 중인 역사 과정에 대한 논평만은 아니다.

    마르크스의 진짜 관심은 역사가 어떻게 보나파르트의 희극이 아니라 세계의 희극이 되어야 하는 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인민 대중이 보나파르트 같은 사기꾼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인민 대중 스스로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의식화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르크스는 인민 대중이 계급으로 구성되어야 인민이 주도하는 역사를 만들어가게 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이 글에서 계급화의 문제를 프랑스의 소농민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보나파르트는 19세기 당시 다수 유권자를 차지하는 소규모 농지를 소유한 소농민들의 절대적 지지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것이 결국 그의 반동 쿠데타를 가능하게 했다. 마르크스는 자신들의 이익을 구현하기 위하여 도시의 노동계급과 연대하여야 할 소농민들이 왜 자신들의 이익을 배반할 보나파르트를 지지하게 되는 지에 대해 그 이유가 이들이 계급으로 조직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마르크스는 인민 대중이 계급으로 조직화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소농민의 수백만 가구가 자신의 생산양식, 이해관계, 문화를 다른 계급의 생산양식, 이해관계, 문화와 구별 지은 채 그것에 대해 적대적으로 대립하게 하는 동일한 경제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한 그들은 하나의 계급을 형성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 분할지 농민들 사이에 단순한 지방적 연계만이 있는 한, 그리고 그들 간의 이해의 동질성이 그들 간에 어떠한 공통성이나 전국적 결합, 정치조직 등을 산출하지 못하는 한, 그들은 계급을 형성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의회를 통해서건 국민공회를 통해서건 간에 자기의 이름으로 자기계급의 이해를 관철시켜 나갈 수 없다. 그들은 스스로를 대표할 수 없고, 누군가에 의해 대표되어야 한다(<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7장).

    소농민들은 경제, 정치, 문화적 조건만을 놓고 보면 그들만의 계급을 이룰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이들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이 지주 계급과도 모순되고 부르주아 계급과도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 경제적 조건에 의해 소농민 집단이 그들만의 계급을 구성할 조건이 갖추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급으로 조직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족 단위로 따로따로 흩어져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공통의 이익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의 이익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치조직이 필요한지 등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소농민들은 그들끼리의 연대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 있으며 이런 이유로 그들만의 계급을 조직할 수 없고 그들의 대표를 통하여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보나파르트같은 사기꾼을 자신들의 대표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소농민들은 보나파르트와 같은 정치적 사기꾼에게 농락당할 수밖에 없다. 부르주아지 국가 체제에 의해 수탈당하는 소농민들이 더 이상 수탈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조직된 계급으로 새로이 탄생하여야 한다고 마르크스는 이 글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봉건 체제에 의해 그리고 현재는 관료적 국가 체제에 의해 수탈당하는 소농민들은 산업 및 금융 부르주아지에 의해 수탈당하는 도시의 노동계급과 유사한 조건에 처해 있다. 마르크스는 계급으로 조직되어야 하는 소농민과 계급이 이미 형성된 도시 노동자들이 연대하여 부르주아 국가 체제에 맞서 투쟁할 때 그들의 계급적 이익이 확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역사가 보나파르트같은 사기꾼의 희극에 머물지 않고 인민의 희극이 되기 위해서는 인민 대중이 계급으로 조직되고 계급의 이름으로 투쟁해야 한다는 얘기다.

    칼 마르크스

    칼 마르크스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분석하는 19세기 중엽의 프랑스 역사는 현재의 한국 역사와 너무나 닮아 있다. 삼촌의 이름을 걸고 집권한 다음 쿠데타로 황제가 되었던 루이 보나파르트와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집권에 성공한 현재의 한국 대통령은 상당한 정도 닮아 있다.

    보나파르트가 독자적 계급이 못되었던 소농민들의 지지로 집권하였듯이 현재의 한국 대통령 역시 계급의식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 대중의 지지로 집권하였다(투개표를 비롯한 선거 과정 자체가 불법이었는지는 일단 논외로 치자).

    또한 19세기 중엽의 프랑스에서 역사가 비극과 희극을 되풀이 하였다면 한국에서는 대중의 영웅으로 만들어진 아버지 독재자가 측근에게 살해당하면서 독재 체제가 무너질 때 그것은 적어도 한번 있었던 비극이었다.

    한국에서 마르크스가 말하는 희극, 희극 중에서도 소극이 되풀이 될지는 나로서는 예상이 안 된다. 확실한 것은 대중이 계급으로 조직되지 못하고 자신의 계급적 이익과는 반대로 정치 행위를 계속하는 한 대중은 루이 보나파르트에 의해 농락당했던 프랑스 소농민의 처지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소개
    민교협 회원,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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