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을 짊어진 거인들의 말
    [책소개] 『중국을 인터뷰하다』(이창휘 박민희/ 창비)
        2013년 08월 17일 01: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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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제1부 ‘중국은 왜 여기 서 있는가’는 사회주의 계획경제 30년과 시장개혁 30년을 거쳐온 역사를 담고 있다. 루쉰 연구로 저명한 첸리췬(전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의 인생역정을 기록한 첫번째 장은 한마디로 중국현대사를 압축해낸, 한 편의 살아있는 역사강의다.

    그는 대약진운동에서부터 문화대혁명, 톈안먼사건, 개혁개방 그리고 중국몽(中國夢)의 현재까지를 살아온 중국현대사의 산증인으로서 자신이 어떻게 그 파란만장한 현실과 학문 사이에서 “독립된 비판적 지성”으로 버텨낼 수 있었는가를 담담하게 증언한다.

    중국 농촌문제 전문가인 원톄쥔(런민대 농업농촌발전학원 원장)은 ‘백년간의 급진’이라는 용어로 중국현대사를 명료하게 집약해낸다. 중국은 1911년 신해혁명을 기점으로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 자본친화적 급진주의를 채택했고 이는 문화대혁명과 톈안먼사건을 지나면서 더욱 강고해졌다는 요지다.

    원톄쥔은 중국의 고질적인 삼농(농업·농촌·농민)문제가 어떻게 현대 중국의 자본주의가 맞은 위기로 이어지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재구성해준다. 북한과의 접경지역인 옌볜 조선족으로 태어난 장률(영화감독)이 들려주는 중국과 남북한, 민족과 역사, 인간과 영화에 관한 세번째 이야기는 ‘경계의 지식인’으로서 살아온 험난한 여정이 짙은 페이소스와 어우러진다.

    중국 인터뷰

    이 책에서 가장 첨예한 논쟁이 생중계되는 제2부 ‘국가, 시장, 그리고 인민’에서는 중국 학계의 좌·우·중도 등을 대표하는 4인이 각각 제시하는 이론과 그 이론을 숙성시켰던 역사적 조건에 대한 풍부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중국의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이론가 친후이(칭화대 교수)와 중국 신좌파 지식인 그룹의 대표이론가이며 당대 좌파지식계의 총아로 등장한 추이즈위안(칭화대 교수), 그리고 중국의 개혁개방 30년사에서 긍정적 요소를 찾을 수 있다는 ‘중국모델’ 주창으로 논쟁의 중심에 선 야오양(베이징대 교수) 등은 서로의 미묘한 쟁점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새로운 논쟁의 장을 펼쳐 보인다.

    특히 중국 서부 충칭시에서 보시라이가 진두지휘하여 벌인 여러 실험에 대한 세 이론가의 상이한 입장은 중국경제가 맞닥뜨린 ‘발등의 불’을 명쾌하게 드러내준다.

    충칭의 토지·호적 등 사회제도 개혁은 곧 중국 특유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지향과 일치한다는 주장(추이즈위안)과 이는 단지 국가경제가 민간경제를 짓누르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야오양)이 날카롭게 갈리는 가운데, 중국에는 국유화와 사유화의 대립이 아니라 공평과 불평등의 대립만이 있을 뿐이라는 주장(친후이) 또한 설득력을 지닌다.

    이처럼 이론가 각각이 선보이는 현실의 사례들은, 과연 그 에피소드들이 미래의 중국경제에 어떻게 수렴될 것인가에 대한 한편의 궁금증과 다른 한편의 기대를 품게 해준다. 이와 더불어 동아시아 차원의 근대 서구 극복을 주창해온 쑨거(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의 끈질긴 탐구를 엿볼 수 있는 2부의 마지막 대담은,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쑨 거 특유의 입론이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떻게 진화해가는지를 가늠케 해준다.

    중국 반체제운동가들의 생생한 경험이 담긴 제3부 ‘대륙의 안과 밖, 변화의 목소리’는 우리가 흔히 반인권적· 반노동적이라고 치부하는 중국의 현실이 과연 어떠한지를 판가름하는 데 정확한 실증자료를 전달해준다.

    1989년 톈안먼사건 현장의 노동자 지도자로서 격동의 중국현대사를 몸소 증언하며 현재 중국 노동권을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둥팡(「중국노동통신」대표), 베이징 근교 마을에서 ‘노동자의 집’을 세우고 전국적 노동자연대를 꿈꾸는 쑨헝(노동운동가), 홍콩의 대표적 NGO로서 중국 민주화를 위한 시민사회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아포레웅(홍콩 NGO 활동가)과 조셉청(홍콩시립대 교수) 등이 들려주는, 당국의 탄압과 이에 맞선 저항의 서사는 중국의 미래를 주도해가는 시민사회의 근황을 여과없이 드러내준다.

    중국 현 체제에 대한 보고서이자 현대 중국에 관한 입문서

    이 책의 엮은이들이 인터뷰이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은 수월하지 않았다. 원자바오에서 시 진핑으로 이어지는 지도부 교체와 ‘보시라이 사건’으로 삼엄해진 분위기 속에서 어렵사리 대담에 응하기로 한 인물과 연락이 두절되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대담이 시작되면 인터뷰이들은 외부의 정치적 긴장을 잊은 채 자신의 주장을 과감히 풀어냈다. 대담이 무르익을수록 문화대혁명, 톈안먼사건, 개혁개방 등 중국 역사의 급류가 그들의 인생에 남긴 깊은 흔적이 선명히 드러났다.

    11인의 인터뷰이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것은 바로 문화대혁명, 톈안먼사건, 개혁개방 등 대사건들 앞에서 자신들이 어떤 입장을 취했는가다. ‘톈안먼의 영웅’ 한둥팡은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넘어 망명의 길에 올랐고, 친후이는 계엄반대 성명을 발표해 고초를 겪었다. 원톄쥔은 자신의 연구실이 해체되는 장면을 목도했고, 문학을 공부하던 쑨거는 일생의 연구주제를 ‘정치’로 급선회했다. 추이즈위안은 이 사건들을 계기로 좌파적 상상력을 더욱 벼려 신좌파 이론의 토대를 세우게 되었고, 소설가 장률은 붓을 꺾고 ‘침묵의 십년’을 거쳐 영화감독으로 변신했으며, 홍콩의 아포레웅과 조셉청은 대륙의 민주화를 꿈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11인의 지성이 들여주는 스토리는, 중국인들이 품은 꿈이 단순히 하나의 구호만이 아니며, 그들의 정치·사회 씨스템이 어느새 거대한 변곡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또렷이 보여준다. 엮은이들은 중국의 변화를 “성급한 판단보다 겸손한 호기심으로” 지켜볼 것을 주문한다.

    과연 미래 중국이 어떤 모습일지는 함부로 예단할 순 없다. 다만 중국 곳곳에서 자신들의 힘으로 민주와 평등이라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존재는 중국의 미래가 지닌 청사진의 명확한 근거임에 틀림없다.

    [인터뷰이 소개]

    첸리췬 (錢理群) : 전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이다.

    원톄쥔 (溫鐵軍) : 런민대 농업농촌발전학원 원장이다.

    장률 (張律) : 영화감독이다.

    친후이( 秦暉) : 칭화대 역사학과 교수이다.

    추이즈위안 (崔之元) : 칭화대 공공관리학원 교수이다.

    야오양 (姚洋) : 베이징대 경제학과 교수이다.

    쑨거 (孫歌) :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이다.

    한둥팡 (韓東方) : 「중국노동통신」 대표이다.

    쑨헝 (孫恒) : 노동운동가, 음악가이다.

    아포레웅 (Apo Leung Po Lam 梁寶霖) : 홍콩 NGO 활동가이다.

    조셉청 (Joseph Yu-shek Cheng 鄭宇碩) : 홍콩시립대 정치학과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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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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