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전쟁은 패배다.
    생명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책소개] 『괴물이 우리를 삼키기 전에』(게르크 슈나이더/ 돌베개)
        2013년 08월 17일 01: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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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는 전쟁을 끝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를 종식할 것이다.”

    – 존 F. 케네디(1917~1963), 미국 제35대 대통령

    우리는 종종 전쟁을 역사책에만 존재하는 과거 이야기로 생각한다. 밖으로는 유례없는 양차 세계 대전이 한 세기 전에 막을 내렸고, 안으로는 한국 전쟁이 오랫동안 휴전 상태이기에 직접 전쟁을 겪어 보지 않은 젊은 세대는 특히나 전쟁에 둔감하다. 지금 우리 청소년들에게 전쟁은 컴퓨터 게임이나 공상 영화에 나오는 것 이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 없는 전쟁으로 자신과 가족의 목숨, 삶의 터전을 잃고 있으며, 한국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불안 속에 일시적으로 멈춰 있는 것이다.

    독일의 학술 전문 기자이자 과학, 경제,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청소년 교양서 저자로 유명한 게르트 슈나이더는 딱딱한 이론이나 통계 자료 대신 편지, 일기, 인터뷰, 가상의 대화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쟁의 실체를 알기 쉽게 이야기한다. 전쟁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다양한 사례들로 실감나게 보여 주면서 전쟁이 왜 나쁜지, 우리가 왜 전쟁을 끝내야만 하는지를 독자가 스스로 느끼게끔 한다.

    전쟁으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바뀐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전쟁사나 전쟁론을 다룬 책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게르트 슈나이더가 첫머리에서 강조하듯, 이 책은 단순히 전쟁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전쟁은 그것을 경험했거나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통계나 이론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중대하고도 잔혹한 사건들을 다루면서 저자가 초점을 맞춘 것은 전쟁이나 테러의 주동자도, 수치로 따지는 피해 규모도 아니다.

    무엇을 위해, 왜 싸우는지도 모른 채 혈기로 혹은 강제로 전쟁에 동원된 평범한 군인들, 느닷없이 끔찍한 테러를 목격하고 충격에 빠진 평범한 시민들, 남편을 전장에 보내고 궁핍에 시달리는 평범한 아내들, 어제까지 함께 놀던 친구가 수용소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도 못 본 척해야 하는 평범한 어린아이들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고향 집은 폭격으로 불타고 궁핍한 살림마저 군수 물자로 빼앗기고 운 좋게 살아남은 후에도 오랫동안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대략적인 사망자 수와 금전적 손실의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는 전쟁의 비극적인 참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쟁은 그것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주도하고 악용하는 일부 권력자가 아니라 싸움을 원하지도 않고 왜 싸우는지도 모르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생존자들에게도 평생 낫기 힘든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전쟁을 막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괴물

    생생하게 전하는 전쟁의 숨은 진실

    이 책에서 저자는 전쟁이 보통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시도한다. 전쟁을 과거의 사건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그 소용돌이 안에 서 있는 사람, 즉 사료를 토대로 한 실존 인물이나 전쟁의 참상을 잘 보여 줄 수 있는 가상 인물들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컨대 전쟁이 본질은 바뀌지 않은 채 겉옷만 바꿔 입으며 끝없이 반복되어 왔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가상 인물인 슐테 가족을 등장시켜서 무려 5대에 걸친 가계도를 그려 내기도 한다.

    슐테 가족의 비극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참전해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었던 1대 알프레드 슐테로부터 시작되어,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2대 빌헬름과 하인리히 형제(병역을 마치고도 자진해서 의용군으로 참전했던 빌헬름은 뒤늦게 전쟁의 잔혹함에 몸서리치고, 처음부터 전쟁에 반대했던 하인리히는 자기 편 독가스로 전사하고 만다.), 아버지 빌헬름의 말을 믿지 않고 전쟁을 신성하고 영광스러운 의무로 생각하고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비참한 고통을 경험하는 3대 아르투어, 어려서 경험한 2차 세계 대전의 충격으로 평생 정신적 외상을 안고 사는 4대 게르하르트를 거쳐, 현재 독일 연방군 소위로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어 매일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고 있는 5대 프리드리히까지 이어진다.

    저자는 이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내적 갈등에 대한 묘사, 이들이 나누는 대화나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글, 아울러 실제 경험자들의 인터뷰 등을 실어 통계 자료가 보여 주지 못하는 진실, 즉 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내적 갈등과 불안, 공포, 좌절, 슬픔을 독자들에게 오롯이 전달한다.

    또한 매 장마다 전쟁 찬성론자와 반대론자가 전쟁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들을 놓고 벌이는 가상의 토론을 실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균형을 잡아 준다. 각 장 첫머리마다 역사적인 인물이 남긴, 전쟁과 관련된 강렬한 명언을 실어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전쟁 게임인 체스의 유래나 예술과 문학이 다룬 전쟁 이야기 등을 하나의 장으로 할애해 전쟁 문제에 다각도로 접근하려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전쟁도 평화도 인간이 만드는 것

    이 책은 원시시대 물웅덩이 쟁탈전에서부터 십자군 전쟁, 30년 전쟁, 각종 내전과 식민지 전쟁, 양차 세계 대전과 오늘날 곳곳에서 벌어지는 테러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 수많은 전쟁의 맥락을 짚어 주면서 인류가 왜 그토록 전쟁에 열을 올렸는지, 그것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때로 터무니없는 일이었는지를 명쾌하게 분석한다.

    저자는 대부분의 전쟁이 신성한 의무, 민족의 영광, 조국 수호 등의 그럴 듯한 명분을 전면에 내세워 왔지만 실상은 권력에 대한 탐욕이 그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더욱이 오늘날에는 권력에 매수된 언론이 진실을 은폐하거나 조작하고 무관심을 조장해 전쟁이 한낱 뉴스거리로 전락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매 장에서 진행되는 가상의 찬반 토론을 통해 전쟁은 인간의 내재된 폭력성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므로 막을 수 없다는 회의주의적 태도를 비판하고, 인간이 가진 이성으로 내재된 폭력성을 제어하고 잘못된 권력의 흐름을 막을 수 있으며, 전쟁이 우리 안에서 시작된 것이듯 평화도 우리 안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강조한다.

    전쟁에 대한 무관심과 자조적 태도를 지양하고 전쟁의 추악한 민낯을 바로 보아야만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것, 결국 전쟁을 알아야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궁극적인 주제이다.

    종전이 아닌 정전 60주년, 우리의 ‘평화’를 점검해 보자

    이 책에서 언급한 전쟁들은 어찌 보면 시기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우리와 다소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지금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까닭은 앞서 말했듯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것이 ‘전쟁’이 아니라 ‘평화’이기 때문이다.

    좋은 전쟁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전쟁의 거짓에 현혹되어 평화를 포기했을 때는 감당할 수 없는 비극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진실하게 보여 줌으로써, 보다 교묘하고 더욱 위험한 방식으로 지금도 계속되는 ‘전쟁’의 시대에 ‘평화’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지구촌 마지막 분단국가이자 끝나지 않은 전쟁을 안고 있는 대한민국의 오늘은 얼마나 평화로울까. 위기를 극복하고 영구적인 평화를 지킬 힘은 전쟁을 직접 경험한 구세대가 아니라 앞으로 이 땅에서 계속 살아가야 할 지금 세대에게 있다.

    이 책은 전쟁을 지구촌 뉴스나 역사책, SF 영화와 컴퓨터 게임 속 이야기로만 생각하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불편하지만 꼭 알아야 할 전쟁의 진실을 마주하고 평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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