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사나이'는
    TV 속에만 있지 않다
    [TV 디벼보기] 지긋지긋한 군대정신과 군대문화라는 말
        2013년 08월 12일 03:39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티비 속에 ‘군대’가 들어간 역사는 길고도 깊다. 뽀빠이 아저씨의 얼굴과 ‘엄마가 보고플 때’로 시작하는 노래가 먼저 떠오르는 프로그램 ‘우정의 무대’는 웃음과 눈물을 쏙 뽑는 최고의 프로그램이었다. 그 후로 ‘청춘 신고합니다’ 등의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최근의 <푸른거탑>과 <진짜사나이>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다. 여하튼 요즘 가장 핫한 프로그램은 <진짜사나이>다.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는 마초적 느낌에 부합하듯 연예인들이 일주일간 병영 체험을 하고, 요즘 대세인 ‘리얼 예능’으로 풀어간다. 물론 이 프로그램의 신의 한 수라 일컬어지는 캐스팅은 단연 ‘샘 해밍턴’이다. 군대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전국민의 절반이 경험해 보았으며, 나머지 절반은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이 군대는 한국에서 가장 논쟁적 존재다.

    진짜사나이

    ‘진짜사나이’의 방송 화면

    일본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만난 인연이 있었다. 비슷한 연령대의 친구들을 여행지에서 사귀는 일은 쉽고도 어려운 일이지만 몇가지 공통점 때문에 우리는 매우 친해졌고, 여행 일정의 대부분을 함께했으며, 같은 호텔에 묵으며 술도 자주 마셨고, 귀국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함께 어울려 지냈다. 그들이 시꺼먼 남정네 셋이서 해외여행을 택한 이유는 이미 두 남자는 겪은 괴로운 길을 가야 할 후배 녀석을 위해서였다.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었고, 후배는 곧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감옥에 가야만 하는 처지였다. 우리의 눈에는 유쾌하고 술 잘 먹는, 그리고 일견 평범한, 때론 지나치게 순수해보였던 조국의 청년들과의 인연이었다. 빨갱이와 여호와의 증인이 만나 술자리에서 ‘빵 경험’따위를 안주삼아 떠들던 그 총각들은 잘 살고 있을까.

    나는 진짜 사나이를 볼 때마다 그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의 ‘학교’를 떠올린다. 나는 군대를 다녀온 적은 없지만 그들의 생활이 매우 익숙하게 느껴졌다. 나의 경험 속 어딘가에도 분명 저런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데자뷰처럼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것은 역시 10대의 기억이다. 갇힌 공간, 미래에 저당잡힌 청춘의 시간, 감시와 통제, 단일한 목표, 거세되고 잘려나간 시간, 똑같은 옷과 똑같은 머리길이에 갇힌 답답한 열정, 불안한 바깥세상, 할 수 있는 것 보다 하지 말라는 것이 더 많았던 공간에서 똑같은 시간표가 반복되는 조그만 교실이 너덜머리가 났다.

    나는 학교가 미치도록 싫었다. 별 말도 안되는 이유로 때리고 맞았으며, 내 가방을 뒤졌으며, 내 물건을 가져갔으며, 선생님들의 아침밥을 챙겼다.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성격탓에 종종 반란의 주동자가 되기도 했으며 합리적이지 않은 그들의 논리에 이의를 제기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매를 맞으며 ‘공부를 하기 전에 인간이 되라’는 말을 지긋지긋하게 들었으며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나는 지금도 ‘인간이 먼저 되라’는 말은 내 말에 수긍하는 인간이 되라는 말로 해석하고 있다. 굴러가는 낙엽만 보아도 까르르 거린다는 여고시절의 추억이 왜 없겠는가. 학교 담장을 넘어 야구를 보러 다니고,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위해 땡땡이를 치고, 좋아하는 오빠한테 손편지도 쓰고, 밤을 새워 시험공부하고 하고, 동아리를 만들기도 하고, 몰려다니며 분식집 간판털기를 하기도 했으며, 학생회를 하기도 했던 달콤한 기억은 차고도 넘쳤다.

    하지만 군대에 다녀온 남자들이 모두 그러하듯 하는 나의 10대 시절을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을 망정,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군대에서 왜 즐겁고 재미있는 추억이 없겠는가. 자그마한 일탈의 짜릿함과 끈끈한 우정도 쌓았을 것이며, 인생에 대한 반추도 해보았을 것이며, 삶은 빽이며 줄이다라는 진리를 얻었을지 모른다. 어른들 말대로 정신차렸을지도 모르며 그때만큼 효자가 된 시절도 없었을 것이다. ‘한번은 갔다와야 사람이 되지’라고 말하는 이들조차 재입대하는 악몽을 꾸며 두 번갈 수는 없다고 버티는 곳이 군대다. 귀신이야기가 가장 많은 곳은 학교와 군대다. 갇혀지고 통제당하는 곳, 내일의 가나안 땅을 위해 현재를 저당잡힌, 의무적 삶, 개인보다는 조직이 우선되던 곳, 낙오되는 자에게는 ‘의지’와 ‘정신력’의 부족으로 가차없이 내쳐지던 곳에 기담과 괴담이 많은 공통점을 가진 곳이질 않는가.

    고등학교를 벗어나 대학에 갔지만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선생님 대신 ‘하늘 보다 높으신 선배님’이 있었을 뿐이었다. 능력이 아니라 시간이 선물한 권력의 달콤함을 누리는 건 운동권들도 다르지 않았다. 후배들을 옥상으로 불러 동기사랑을 가르치며 기합을 주는 모습은 단지 내게만 국한된 기억이었나. 민중을 말하고 인민의 평등함을 강조하던 운동권들은 총짱님을 신주단지 모시듯 모시고 다니질 않나 선후배 기합까지 잡는 꼬라지는 종종 목도되었다. 대학원은 더했다. 물론 회사도 다르지 않았다. 신입사원은 훈련소를 갓 나온 작대기 하나에 불과했다. 툭하면 ‘빠져서’를 외쳤다. 정신상태가 그 모양이라 조직생활이 쉽지 않겠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알아서 야근을 자청하며 출근해서 컴퓨터 바둑을 두는 부장님에게 커피를 가져다 드리지 않는 꼬장꼬장한 신입사원이었던 것이며, 회식 때는 노래방에서 상사들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몸개그를 선보이지 않는 그런 사원이었던 것이다.

    진짜사나이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돌인 박형식이 ‘아기병사’가 되어 걸그룹에 열광하는 이등병이 되듯 사회에선 잘나간다는 그들도 그곳의 룰에 적응하기까지는 어리바리한 시간을 거쳐야 하며, ‘프리’한 삶을 살아온 놀아본 외국 오빠가 다나까를 못쓰며 버벅거리는 모습은 과거의 추억과 무용담을 버무려 웃기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국방부의 압도적 액션 물량 지원은 블록버스터급 볼거리도 선사한다. 바닷가에서 육지와 해상에서 동시에 펼쳐지는 작전의 모습을 넘어 K-9자주포의 사격 모습을 보여주더니, 공병대의 (4대강 사업으로 유명한) 남한강 도하 훈련 모습은 예하 부대까지 끌어모은 헬기가 당최 몇 대나 동원되었는지 모를 물량 공세였다. 조국의 강성한 자주국방의 모습에 몰디브 바다같은 영롱한 감동이 밀려드는가. ‘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우리 군은 필사즉생의 각오로 선제적 타격을 통해 조국의 영토와 영해를 지킬 수 있는 각오가 되어있다’는 저 병사의 말에 심장이 바운스바운스 해지나.

    아들을 군대에 보낸 것이 죄인이라는 군 의문사 유가족들의 절규도, 군수 비리문제도 그저 다 잊힌다. 그놈의 ‘정신무장’차원에서 아이들에게 해병대캠프 따위를 보내는 나라다. 군대는 어디에나 있다. 티비 속에만 있지 않다. 학교도 직장도 모두가 군대다. 그놈의 ‘빠져서’타령. ‘정신력’ 혹은 ‘의지’타령. 상명하복은 단지 청춘의 한자락 푸른거탑 속에만 있는가. 할 수 없는 것들은 오히려 그때보다 지금 더 많지 않은가. 수평적 리더쉽 따위는 복날 삶아먹을래도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 단지 군대뿐이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까라면 까야지’라는 말, ‘없다고 하면 군대생활 끝나나?’ 라는 말은 단지 그곳에서만 들어본 말인가.

    지긋지긋한 군대정신과 군대문화는 어디에나 있다. 진짜사나이를 보며 낄낄거리며 내가 생각하는 찝찝함의 근저에는 내가 숨쉬는 공기가 저들이 숨쉬는 공기가 다르지 않다는 지랄맞은 현실때문이다.

    뱀발 : 여담이지만 몇몇 보좌진들이 모여서 ‘올해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진짜 사나이>관련 한 꼭지 이상의 질문이 나온다’에 내기를 걸긴 했다.

    필자소개
    [체르노빌 후쿠시마 한국]의 저자, 은근 공돌 덕후 기질의 AB형 사회부적응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