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사용자, 다른 노동자를 넘어
        2013년 08월 01일 10: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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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순광 비정규교수노조 전 위원장의 비정규교수문제와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기고 글 시리즈의 마지막 글이다. 기고해준 임 전 위원장에게 감사드린다. 기고 지난 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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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같은 사용자 다른 노동자, 결론은 교육대산별?

    * 비정규교수노조와 대학노조의 교섭단위 분리 신청

    2012년에 비정규교수노조와 대학노조 등은 자신들의 지부나 분회가 속한 지역의 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단위분리신청을 하였다.

    대학처럼 이미 복수노조가 존재했던 사업장은 2012년 7월 1일부터 교섭창구단일화 절차가 진행되었으므로 2012년의 정상적인 임단협을 위해서는 교섭단위를 분리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각 지방노동위원회는 교섭단위 분리 결정문을 해당 노동조합에 보냈다. 한마디로 교섭단위 분리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 핵심근거는 사용자에 해당하는 대학과 각 노동조합들이 모두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하였고, 각각 교섭해 오던 것이 오래된 관행이었으며, 교원과 직원은 적용하는 법 규정이 다르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도 고용형태와 관련 취업규칙이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몇 가지 사항은 이 결정서에 담겨 있지 않다.

    첫째, 대학 내 모든 노동자들의 임금 및 근로조건은 최종적으로 대학의 재정 상태를 감안하여 대학 최고 의사결정기구에서 결정된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고용형태나 사업장에 속해 있더라도 모든 대학 내 노동자들에게 최종결정권자는 법인의 이사장이든 총장이든 하나의 사용자이다. 공무원의 월급도, 교수 연봉도 최종 결정은 모두 대학 내에서 이루어진다. 정부가 모든 인건비를 지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간이나 각종 자원 통제권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학 내 자율이 상당부분 존재하며 어떤 경우에는 등록금 때문에 그 몫이 정부에 의해 규제되는 것보다 더 크다. 사립대학 시간강사의 임금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사립대 시간강사의 임금을 주지 않으며 법적으로 규제하는 최저선도 없다.

    국립대 공무원의 임금 상당부분은 기성회비로 채워져 왔다. 심지어 국립대 시간강사 단가를 정부가 정해 놓고도 그 금액만큼의 재정 지원을 하지 않고 대학 보고 부족한 부분을 예산의 범위 내에서 알아서 확보하라는 식의 무책임한 공문을 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고용형태가 어떻건, 관련 법 규정이 어떻건, 고용기간의 정함이 있건 없건 같은 사용자이니 한꺼번에 교섭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12년이야 처음 교섭창구단일화 절차가 진행되니까 방어적 차원에서 분리 신청을 하였다하더라도, 이후에는 여러 노동조합들이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사용자를 대상으로 더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지 않을까. 대학별 노동전선이나 민주-노동단체협의회 같은 것을 만들고, 공동교섭-공동행동을 이끌어내고, 사업장협의회(노사협의회) 같은 곳을 협력적으로 장악하는 활동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둘째, 결정서에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교섭권에 대한 언급이 없다.

    과거에는 직접 고용되었지만 최근에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간접고용된 청소노동자, 시설관리노동자 등은 대학을 대상으로 한 교섭단위 분리 신청조차 하기 힘든 처지이다. 사용자들이 사용자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단순 연대를 넘어 총노동 관점에서의 공동전선을 펼치지 못한다면 앞으로 더욱 확대될 간접고용노동자화, 개별사업자화의 경향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 대학에서의 임금 및 근로조건은 교육공공성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국립대학교와 교섭할 때 법적 사용자 책임은 총장에게 있기도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그 책임은 정부의 것이기도 하다. 아부하기 좋아하는 자들은 총장을 국립대 ‘오너(owner=주인)’라고 추켜세우지만 이는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국립’이란 말뜻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의 블랙 코미디인 것이다. 사립대학도 정부로부터 엄청난 재정 지원(국가장학금, 각종 연구사업, 대학 운영에서의 각종 특혜 등)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책임이 적지 않다.

    결국 대학에서 사용자는 재단과 정부이다. 이들을 상대로 한 직접고용, 간접고용, 정규직, 비정규직, 교원, 비교원 집단 간의 공동 임단투가 필요하다.

    대학구조조정

    대학구조조정 반대 교수학술단체 집회 자료사진

    * 정부와 자본, 하나의 사용자

    지난 20년간 교육부가 주도면밀하게 관철시키려 하고 있는 국립대법인화 정책을 비롯하여 교육역량 평가, 정부재정지원 제한 대학 선정, 대학자율화조치 등의 대학구조조정 정책은 모두 대학 내 노동자들의 임금 및 근로조건에 현저한 영향을 끼친다.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전환 시 노동자 일부를 평가를 통해 탈락시키라는 정부 지침에 따라 칠곡경북대병원은 멀쩡한 사람들을 별다른 이유 없이 평가 결과조차 알려주지 않은 채 해고한 뒤, ‘계약해지를 했을 뿐이니 부당해고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학 밖의 각종 공공기관에서는 시간제 공무원을 10% 이상 활용하라는 지침이 비정규직화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정부 재정 지원을 일정 비율(15%)의 대학에서 제한하는 정부 정책(흔히 ‘부실대학 선정’)은 대학 교직원들의 구성과 근로조건 및 교육․연구환경을 크게 뒤흔들어 놓는다.

    이러한 구조조정 정책에 대항하여 각개약진의 방식으로 싸우는 것은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다. 사용자가 법인이라 하여도 마찬가지이다. 동시대응이 훨씬 더 위력적이다. 하지만 동시대응은커녕 안에서 노-노 갈등이 불거지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대학 안 노동자들 간의 단결과 연대는 아직 공고하지 못하다. 자본의 분할지배전략이 먹혀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합법성을 취득한 비정규교수노조 조합원도 전업시간강사(대상자 수 약 4만 명. 가입자 수 약 1,500명)가 절대다수이고 나머지 2만 명 이상의 비전임교원들(겸임교수, 초빙교수 등. 가입자 수 100명 미만)과 비전업시간강사(대상자 수 약 4만 명. 가입자 수 100명 미만)는 극소수만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있다. 본인이 차별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동조합에서 배타성을 보이는 측면도 일면 있다.

    같은 교직원의 일을 함에도 교육공무원법 상의 ‘공무원성’에 따라 다른 정규직 직원과의 격차 또한 존재한다. 또한 공무원 자격을 갖추어도 임시발령의 방식을 통해 비정규직으로 부리는 관행은 산학협력연구지원단 등의 부서에서 최근 일반화되고 있다. 조교들은 수십 년 간 일을 해도 1년 단위로 계약하며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어떤 경우에는 장기 근무한 조교가 대학 본부의 핵심 업무(예: 대학원 관리, 학적 업무, 교원․인사업무 담당)를 계속 수행하는 일도 있다. 계약직 직원도 계속 증가하지만 이들을 기존의 노동조합이 완벽하게 포용하고 있지도 못하다.

    미조직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교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그런데 이들을 조직하는 방식을 중앙에서 일원화시키지 못해 여러 조직이 구역 나누기 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학 청소노동자만 하더라도 서울의 경우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공공운수노조의 서경지부 등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경북대학교 상황을 봐도 민주노총 대구 일반노조, (예전에 가입했던)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직가입 시설관리노조, 여성노조의 경북대분회 등 조직 경로가 다양하다. 역사적 경험과 전통도 중요하지만 이런 식으로 조직화되고 필요할 때만 사안별로 연대하는 방식으로는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나의 노조 안에서도 단체행동에 들어가면 그 후유증이 큰 데, 교섭창구단일화라는 장벽 앞에서 몇 개로 나뉘어 교섭을 하고 단체행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 대산별노조, 자본에 맞서는 하나의 전략

    산별노조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교환되고 있다. 필자는 말 그대로 정부와 총자본을 상대로 하는 산별노조 건설이 매우 중요한 과제라는 데 동의한다. 다만, 현재 민주노총의 산별노조들이 그런 모습을 제대로 갖추었다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산별노조라면 정말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부단위의 교섭이나 지회교섭은 불필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별노조(연맹)들은 아직 서구의 산별노조와는 상당히 다르다.

    산별교섭은 철저히 정부와 국회 및 총자본을 상대로 하며 그것이 전 사업장에 관철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총파업은 특정 산별노조 내 일부 지부나 지회들의 파업이 아니라 전 산업부문에 걸쳐져 이루어질 때 그 ‘본령’-세상을 바꾸는 파업의 상(예를 들어 1946년의 9월총파업은 전 부문에 걸친 ‘총파업’이었다. 10월항쟁은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계급전쟁으로 이어졌다)-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다.

    노동운동진영의 대산별노조 건설 전략에 있어서 조직의 틀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매우 단순하다. 공공부문의 노동자는 하나의 노조로 통합되어야 하고, 그게 지금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사용자인 부문에서 여러 조직들이 난마처럼 얽혀 있어서는 강력한 투쟁을 하기 힘들다. 지금의 공공운수노조를 뛰어넘는 초거대 공공노조가 있다면 고립된 각개전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공공운수노조와 전교조, 공무원노조, 교수노조, 비정규교수노조, 대학노조, 학교비정규직노조, 민주연맹 등이 한 틀로 묶일 수 있다면 총자본에 ‘맞불’을 놓을 수도 있다. 물론 합법성 취득, 단체행동권 쟁취, 조직간 이질감 극복, 여타 갈등의 치유 등 넘어야 산들이 많고 어쩌면 중도포기 될 공산이 훨씬 크지만, 몇 십 년이 걸리더라도 그런 지향점이 분명해야 운동이 더 활성화될 수 있다고 본다.

    초거대 공공노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교육대산별 건설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대산별 관련 활동은 서구와 비교해 보았을 때 맹아적 수준에 불과하다. 서구의 주요 나라들에서 교육대산별노조는 거대한 규모로 존재하고 그 역사도 100년을 훌쩍 넘는다. 교육대산별노조가 교육정책의 입안과 실행에 관여하고 대선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물론 부르조아 선거에 몇 표 영향을 끼치는 것이 본질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 다른 나라에서 노동자들이 어떻게 교육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규합하고 투쟁하고 있는 지는 필자가 [레프트대구] 5호에서 다룬 바 있다).

    다만, 진정한 교육대산별 건설과 공동투쟁에는 별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눈을 돌린다면 앞으로 전진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공공부문의 각 산별노조들이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대산별노조로만 통합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필자는 2년 전 교육노조‘협의회’ 건설에 동의했다. 노조가 아니라 협의회 형식으로 오랫동안 상호이해와 공동실천을 하며 대산별 건설을 위한 초석을 닦아보자는 심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진행 경과에 대해서 그리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는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5. 무엇을 할 것인가?

    공공부문 투쟁은 철저히 국가의 공공성 확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거대한 단결 투쟁, 당사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포괄하고 조정하는 공동교섭, 이것을 진두지휘 할 산별노조간의 원활한 협력,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조절, 노동친화적 시민단체들과의 연대 등이 융합해야만 최소한의 성과라도 거둘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한두 가지 사안에 잠시 집중하다가 흐지부지하기 십상이다. 비록 활동가들의 열정과 의지와 노력이 충만하고 가열차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거대한 적을 상대로 의미 있는 승리를 쟁취하기는 어렵다.

    아래로부터 더 교육하고, 자각하고, 조직적으로 결합해 가며 융합하는 그런 운동, 초거대 공공노조 건설 운동의 정신을 함께 더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정부와 자본을 상대로 한 ‘진짜 산별교섭과 투쟁’이 될 것이니까.

    대학에서도 그런 정신에 입각해 ‘투쟁공동체’를 하루빨리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비정규교수노조처럼 노조가 거의 없는 곳은 노조를 만들고, 학교 안의 노조끼리 먼저 뭉쳐서 교육공공성 확보와 정치기본권 및 노동권 보장을 위해 함께 싸워나가자는 것이다.

    중앙 차원에서는 국립대법인화 시도 저지, 줄세우기식 대학구조조정 정책 폐기, 비리재단 퇴출과 국공립화, 정규교원과 교직원 100% 확보, 고등교육재정 OECD 평균 수준 확충, 등록금 폐지, 총액인건비제 폐지 등을 내걸고 싸워야 할 것이다.

    대학 안에서는 공동임단투, 교육환경과 연구환경 개선, 대학 내 자원 독점 철폐와 중복 투자 방지, 무분별한 기업식 구조조정 저지, 외주화 저지 등을 내걸고 투쟁할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교수노조 경북대분회가 2003년에 출범한 후 1년의 준비를 거쳐 100일이 넘는 천막농성과 50여 일간의 파업투쟁으로 국공립대 최초의 단체협약을 쟁취하던 시기, 억수같은 비를 뚫고 가장 먼저 우리의 천막농성장에 연대하러 온 사람들은 여성노조 환경미화원 분회의 조합원들이었다. 그 분들이 천막농성장의 전기를 지켜주었고 아침마다 안부를 물어 주었다. 이후 경북대학교에는 노동조합들과 학생회 등이 결합한 민주단체협의회가 생겼고 국립대 법인화 등에 공동대응하고 있다.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고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배제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조만간 초심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본다. 노사협의회에 직접고용 노동자만 포함된다하더라도 우리가 민주단체협의회나 노동단체연합 등의 틀거리를 만들어 포괄하면 된다. 우리가 공동교섭을 요구하고 함께 싸우면 된다. 하나의 노조가 아니라도 하나의 노동계급으로, 기업화된 학교와 정부에 대항할 때 비로소 자본에 약간의 파열음이라도 낼 수 있다.

    2012교육혁명대장정 부산대 앞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남부지방에서는 폭염을 뚫고 중북부지방에서는 폭우를 헤치면서 제3회 교육혁명대장정(2013.7.22~7.30)을 진행하고 있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학벌철폐, 경쟁교육과 특권학교 폐지 등도 주장하지만 대학공공성 확보, 비정규교수 문제 해결, 비정규직 철폐 등도 내걸고 울산의 비정규투쟁 현장, 밀양의 송전탑, 국립대학, 지하철노조 농성장 등을 행진하며 선전전을 하고 있다. 비정규교수노조도 몇 명 안 되지만 그 투쟁에 광주, 부산, 대구의 투쟁 현장에 수시로 동참하고 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 투쟁에 거의 다 담겨 있다. 교육공공성 확보, 학문사상의 자유 보장과 교육환경 개선, 노동문제 해결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교육혁명은 교육부문에서 끝나는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니라 더 나은 체제로의 변환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한 변화를 공동의 실천으로 추구할 때 (시간)강사법 시행이나 기업식 대학 구조조정에 올바로 대응할 수 있다. 다시 긴 호흡 큰 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이다. 교육자나 학자 이전에 같은 노동계급으로서!

    필자소개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전 위원장. 경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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