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베의 일본, 어디로 가나?
    일본 유권자들, 이념적 진보와 생활 보수주의의 공존
        2013년 07월 31일 10: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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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정권의 일본호의 향방을 가를 한여름 선거가 자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아베 정권은 중의원은 물론 참의원에서도 다수를 점하게 되었고 안정적인 정권 운영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민당의 압승은 내외적으로 아베 정권에 대한 여러가지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근린국가인 한국과 중국은 아베 정권의 우경화노선에 따른 양국간의 관계악화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한편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두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첫번째는, 역시 자민당의 신우경화 노선에 대한 우려이다. 특히 미국은 일본 아베 정권의 역사 인식 문제가 동아시아 정세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서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싸고 미국. 중국. 일본. 한국의 공조체제가 중요할 뿐만아니라 동아시아에서의 일본과 중국의 대립은 미국으로서는 바라지 않는 구도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아베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 성장 전략인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와 우려이다. 국제사회에서 일본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아베노믹스의 성패가 국제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한 만큼 아베의 정책 추진이 탄력을 받게 되었고 따라서 국제 투자자본을 중심으로 그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점점 악화되고 있는 일본정부의 재정 상태는 국제경제의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아베노믹스는 중앙은행의 통화 확대, 정부의 재정 확대 정책이 그 중심에 있기 때문에 일본 국채가격의 하락과 국채의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고 급기야는 국채 가격의 폭락까지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선거 이후 아베 정권은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 개선, 아베노믹스를 통한 디플레이션 극복 및 재정 건정성 확보라는 두가지 과제는 ‘보통국가’로의 전후레짐의 전환이라는 우경화 노선을 추진하는데 핵심적인 통과지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아베-2

    일본 아베 총리의 모습

    일본 유권자의 생활보수주의와 아베의 우경화 노선

    2012년 한국 대선에서는 50대의 투표가 그 선거의 향방을 갈랐다. 보수화된 50대가 박근혜를 지지한 것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한국의 50대가 이념적으로 보수화되었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번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나타난 일본 유권자의 투표 성향에서도 2012년 한국 대선에서의 투표 경향과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일본 참의원 선거 직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유권자 이념 성향만 놓고 보면 자민당이 압승할 만한 구도는 아니었다. 왜냐면 현재의 일본사회를 둘러싼 핵심 쟁점, 즉 헌법 개정, 원전 재가동, 소비세 인상, TPP 참가 등과 같은 대립축이 명확한 핵심이슈에 대한 유권자의 여론은 모든 분야에서 추진 반대가 더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민당의 정당 지지율은 40%대를 유지했고 선거에서는 압승했다. 이런 현상은 일본 유권자의 생활보수주의 경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생활보수주의는 이념적 보수주의와는 다르다.

    선거 직전에 일본인 친구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번 참의원 선거와 관련해서 ‘당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알려주는’ 선거 관련 사이트에서 친구 5명이 테스트를 했다고 한다. 이 사이트는 사이트에서 제시한 모든 설문에 응답하면 자신이 이번에 투표해야 할 정당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친구 5명 전부 테스트한 결과 1순위 공산당, 2순위 사민당, 3순위 민주당이었다고 한다. 그 결과를 보고 5섯명 모두 “혼토니=정말로?”라며 웃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평소에 공산당을 지지하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선거는 이념적 대립이나 가치에 의한 투표가 아니었다. 현실과 가치의 완전한 분리 현상이 이번 투표를 지배한 것이다. 특히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일본 유권자 구조는 생활보수주의 경향을 더욱더 강화시키고 있다.

    생활보수주의는 개인화된 현실주의에 기반한다. 자기 자신의 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이슈가 아니라면 진보든 보수든 관여치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가치 판단에서는 옳은 쪽을 선택한다. 즉 원전 반대, 헌법개정 반대가 높다. 왜냐하면 그것이 옳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슈가 바로 직접 자기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선거에서의 판단 기준으로서의 영향력은 약하다.

    하지만 자신의 월급, 연금, 보험, 부동산, 세금문제에 대해서는 민감하다. 2009년 민주당의 정권교체도 사실은 국민연금 문제, 아동수당,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 등 개인 생활에 관련된 민주당의 공약이 큰 힘을 발휘했다. 어느 일본 정치학자는 2009년 민주당이 압승한 중의원 선거를 ‘연금선거’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도 아베는 모든 선거 유세에서 원전 재가동, 헌법 개정, 소비세 인상, TPP 참가 등 민감한 이슈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를 줄곧 강조했다.

    아베노믹스가 주가 상승, 엔화 하락, 이로 인한 대기업의 실적 향상이라는 결과를 가져왔고 마지막으로 종업원의 급여 인상으로 이어진다고 하는 현실적 주장을 선거기간 내내 강조했다.

    이에 반해 야당은 이구동성으로 원전 재가동, 헌법 개정, 소비세 인상, TPP 참가 등 중요하지만 당장의 개인 생활과 먼 주장만을 되풀이 했지만 지난 수년간 임금 하락을 경험한 유권자들로서는 당장의 자신의 지갑두께와는 관련이 없는 문제로 인식한 것이다.

    갈 길 잃은 제1야당 민주당

    더욱 심각한 문제는 참의원 선거 이후 일본 유권자들이 정권을 맡길 만하다고 생각하는 대항야당이 무너졌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은 몇개월전까지 정권을 운영한 정당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참패했다.

    참패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념에 근거한 명확한 대립축의 형성에 실패한 점, 정권 운영에서 보여준 능력 부족, 당 내의 파벌연합 구조 등이 주요한 이유로 꼽힌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과의 차별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자민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겼던 이전의 사민주의적 공약들은 후퇴했다.민주당을 이끌었던 트로이카(오자와, 하토야마, 칸)체제가 붕괴된 이후에 들어선 민주당의 신주류(노다 전 총리, 마에하라 등)는 자민당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우파적이었다.

    2009년 정권교체 당시의 정치 주도를 통한 관료개혁, 생활제일주의를 통한 사민주의 정책, 한국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아시아공동체 구상 등 유권자의 기대를 모았던 진보적 정책들은 이번 민주당의 공약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민주당은 정권운영 능력에 있어서도 유권자의 ‘회고적 투표’에 의해 작년 연말과 이번 선거를 통해 심판받았다. 또한 정권교체 이후부터 계속되던 당 내의 파벌간 알력은 선거 참패의 수습 과정에서도 그래로 드러났다. 2009년 정권교체 이후 두번째 총리를 지낸 칸 나오토가 이번 선거에서 동경 선거구에 출마한 자기당 후보가 아닌 무소속 후보를 지원한 것에 대한 징계문제로 파벌간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이런 제1야당 민주당의 사분오열은 결국 두가지 방향으로 일본 정당시스템의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

    결국 민주당은 내분을 수습하고 왜소한 제1야당의 자리를 지키면서 독자생존할 것인가 아니면 당 해체를 전제로 야권재편으로 갈 것인가 하는 두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독자생존의 길을 통해서는 유권자의 지지를 만회할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이 없다는 점, 그리고 야권재편은 워낙 정당간 색깔이 다르기 때문에 쉽지도 않고 민주당이 지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통합을 주도할 능력과 동력이 없다는 것이 어러운 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군다나 참의원 선거직후 아베는 헌법개정 문제에 있어서 민주당 내의 헌법개정파와 언제든지 연대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만약 자민당이 헌법 개정, TPP, 소비세 인상 등의 정책 추진 과정에서 민주당 흔들기를 할 경우 민주당은 공중분해될 가능성마저 안고 있다.

    일본 에니메이션의 거장이면서 자민당과 아베의 우경화를 강하게 비판한 미야자키 하야오

    일본 에니메이션 거장이면서 아베의 우경화 노선을 비판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아베 정권의 장기집권 가능성

    이후의 아베 정권은 유권자의 이러한 생활보수주의와 야권의 대응에 따라서 자신의 우경화 행보를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즉 자신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가 어느 정도 현실적인 효과를 보인다면 그 시점에서 우경화 노선을 노골화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유권자의 개인화된 현실주의를 만족시킬 만한 경제정책의 성공이 없는 한 우경화 노선의 현실화가 그리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의 아베 정권의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아베노믹스가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서 역풍을 맞는다면 전후레짐의 전환이라는 아베 최대의 과제는 시련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면 아베의 경제정책이 생활보수주의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한 모든 이슈에서 이념적 진보주의를 견지하고 있는 일본 유권자의 심판이 언제 내려질지 모를 뿐만 아니라 야권의 재결집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베 정권의 장기집권 여부는 그가 추진하는 경제정책에 전적으로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경제 회복, 즉 크지는 않지만 임금인상의 현실화 등 유권자의 실리적 기대를 계속 불러 일으킬 수 있다면 아베정권은 지금의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고 2016년 의회해산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정당간 경쟁구조에 있어서도 부실한 제1야당과 자민당보다 더 오른쪽에서 자민당을 대변해 주는 일본 유신회의 존재는 자민당에게 유리한 정치지형을 제공한다.

    향후 3년간 즉 아베가 의회를 해산하지 않는 한 다음 중의원 총선이 실시되는 2016년까지는 전국적 규모의 선거가 없다는 점도 그 가능성을 높게 해주고 있다.

    아베 정권은 향후 3년간 경제정책에 올인한 이후 다음 선거에서 다시 한번 지지를 얻은후 본격적인 우경화 노선, 즉 그들이 주장하는 ‘보통국가’를 향한 행보를 가속화하려는 장기집권 전략을 그리고 있다.

    아베의 또 하나의 고민은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다. 자신의 우경화 노선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경제정책 성공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어느 정도 높일 수는 있지만 한국.중국과의 관계 개선은 자신의 역사인식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역사인식의 전환이 없이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이대로 계속 방치한다면 결국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결국은 외교정책의 실패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 실제 일본의 모든 언론에서는 한일, 중일 관계개선을 주문하고 있다. 이것은 특히 일본 재계를 중심으로 더욱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 중국시장 확대가 최대 과제인 자동차업계 등은 실제 중일관계 악화로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외무차관이 중국을 방문해서 중일 수뇌회담을 위한 막후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센카쿠열도 국유화 문제때문에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물론 북핵문제를 둘러싼 한·미·일 공조체제도 일본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국내에서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도 아베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만약 아베가 지금 당장이 아니라 자신이 우경화 노선을 좀더 장기적으로 실현하고자 한다면 당장은 재집권에 주력할 것이고 그것은 헌법 개정 등의 우경화 노선보다 실용적 경제정책이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외교정책에 있어서도 수뇌회담 개최 등을 위해서 어느 정도 실용적 외교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아베 정권은 이번 참의원 선거를 통해서 자신감과 여유를 찾았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정치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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